그간 칡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인간의 생활에 대한 이해관계보다 덩굴식물에 대한 편견 탓이라고 본다. 현재 쓸모없는 나무가 미래에도 한결같이 쓸모없는 나무가 될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오늘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식물도 훗날엔 유익한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으므로 모든 식물은 일정한 수준의 관리가 필요하다.
칡은 콩과의 덩굴성식물로 전국 각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이다. 겨울엔 덩굴의 끝부분이 말라 죽어 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목본 식물로 나무에 해당한다. 줄기를 잘라도 다시 되살아나는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으로 인해 조림지나 산불이 발생한 지역 중 칡이 자라던 곳을 몇 년만 방치하면 칡밭이 되어 버린다. 또한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면서 생장을 방해하거나 고사시키기도 하여 임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미움을 받는다.
그런데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방향이 모두 왼쪽이다. 칡과 살아가는 방식이 비슷한 등나무도 홀로 독립하여 자라지 못하고 다른 물체를 의지하여 사는데 칡과 반대방향인 오른쪽 감기를 하며 성장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칡과 등나무 덩굴이 서로 반대방향에서 얽히는 것처럼 인간도 크고 작은 갈등투성이 속에서 살아간다. 이 갈등의 갈(葛)은 칡을 뜻하고 등(藤)은 등나무를 말한다.
우리나라 산에서 자라고 있는 약 1천여 종에 이르는 나무들은 대부분 주위의 다른 나무들과 힘겨운 경쟁을 하여 삶의 공간을 확보한다. 그러나 칡이나 등나무 같은 덩굴식물은 손쉽게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 태양광선을 독차지하는 등 숲속의 기초질서를 지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옛 선비들은 이러한 식물을 소인이나 간사한 사람을 표현하는 데 비유하였다.
칡을 쓸모없는 식물로 생각토록 하는 데 일조한 설화도 있다. 경북 김천시 증산면의 수도산에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수도암이 있다. 이 절에는 경주 석굴암 불상에 버금가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이 있다. 이 불상은 약 1,200년 전 경남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조성되었다고 한다. 돌로 만들어 워낙 무거운 불상인지라 어떻게 산으로 옮겨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한 노승이 나타나 내가 부처님을 모시고 갈 테니 따라오라면서 불상을 등에 업고 이 절까지 운반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노승의 법력에 모두가 감탄하며 뒤를 따라가는데 절이 보이는 어귀에서 노승은 그만 칡덩굴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화가 난 노승은 산신령을 불러 크게 꾸짖고 앞으로 이 절 주위에는 칡이 자라지 못하게 하라고 호령한 뒤 사라졌다. 그 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칡을 수도암 주변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부정적인 측면들이 많이 부각되어 더 미움을 받지만 사실은 긍정적인 측면이 매우 많다. 우선 콩과식물이어서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고정시켜 준다. 또한 무성한 잎은 야생동물의 먹이와 삶의 장소로 이용되어 생태계를 순환시키고, 비탈진 곳에서는 산사태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한방과 민간에서는 뿌리와 잎을 해열·발한·보약·지혈·숙취·중풍·당뇨·진정·감기 등의 약재로 쓰고 있다.
겨울에도 말라 죽지 않은 덩굴을 달여서 차 대용으로 장복하면 위궤양·만성위염 등 위의 기능을 촉진시키는 데 효험이 있다. 또한 꽃은 술을 마셨을 때 술독을 빼거나 하혈을 치료하는 데 활용되는 등 장차 인간에게 유익한 물질을 추출해낼 수 있는 자원으로 쓰일 가능성이 많다.
그간 칡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인간의 생활에 대한 이해관계보다 덩굴식물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때문이라고 본다. 현재 쓸모없는 나무가 미래에도 한결같이 쓸모없는 나무가 될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오늘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식물도 훗날엔 유익한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으므로 모든 식물은 일정한 수준의 관리가 필요하다. 경사가 급하여 산사태의 우려가 있는 곳 등 칡이 자라야 할 지역이라면 보호의 대상으로 삼아 함부로 뿌리를 채취하거나 고사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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