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우리 역사(2020.10.14.)
강만길 교수의 현대사 강의
창작과 비평사 1999
1999.4.1. 경기 의정부시 숭문당에서 김영복
강의를 시작하면서
1997년 초로 기억됩니다. PC통신을 운영하고 있는 어느 기업체로부터 가상대학을 개설하는데, 한국 근·현대사를 강의에 넣고 싶으니 24강의 분량의 강의안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제1강의 한반도는 왜 일본에 강점되었을까요
제2강의 무단통치와 토지조사사업의 진상을 알아야 합니다
제3강의 3·1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대단히 큽니다
제4강의 1920년대 문화정치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제5강의 일제강점 시대, 조선 민중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제6강의 1920년대의 산미증식계획은 왜 실시되었을까요
제7강의 조선공산당운동도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입니다
제8강의 민족유일당운동·신간회 운동이 추진되었습니다
제9강의 일제의 병참기지화도 경제개발로 봐야 할까요
제10강의 1930년대 만주에서는 항일무장투쟁이 치열했습니다
제11강의 임시정부가 좌우익 통일전선정부로 되었습니다
제12강의 일제 파쇼체제에서도 민족해방운동은 계속됐습니다
제13강의 해방은 어떻게 왔으며, 38선은 왜 그어졌을까요
제14강의 통일민족국가 수립에 실패한 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제15강의 해방공간에도 통일민족국가 수립운동은 추진했습니다
제16강의 불행하게도 남북 두 분단정권이 성립하였습니다
제17강의 남한의 농지개혁과 적산불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18강의 6·25전쟁은 왜 일어났으며, 어떤 전쟁이었을까요
남북을 막론하고 분단된 민족을 무력으로 통일하려한 1950년대의 통일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평화통일이 아닌 무력통일을 위한 전쟁을 어느 쪽이 먼저 시작했는가를 밝히는 일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남과 북 모두 3년간의 치열한 전쟁과 그로 인한 엄청난 희생을 겪고도, 그 무력통일 의도가 왜 실현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를 아는 일이 한층 더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상충하는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남북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원인이 되어 분단된 한반도 지역에서, 적어도 1950년대의 상황에서는(그후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분단국의 어느 한쪽 세력이 주도해 한반도지역 전체를 무력으로 통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 바로 6.25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한반도의 남쪽만이라도 그 영향권 안에 두어야 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대륙에서 소련이 강대국으로 등장한데다가 중국의 사회주의혁명마저 성공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남반부가 일본의 안전을 지키는 전초기지 내지 보호벽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여긴데 있습니다.
제19강의 독재화된 이승만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20강의 4·19운동의 역사적 의의는 무엇일까요
4·19는 청년 학생층과 지식인층 그리고 도시빈민층 등이 중심이 되어 이승만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항거한 것으로, 결국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이승만정권을 무너뜨린 세력은 일반적으로 민중으로 부르는데, 그 역사적 사회적 성격이 아직 불분명한데다, 이들은 이승만정권을 무너뜨린 다음 스스로 정권을 쥐고 사회개혁을 단행하지도 않았습니다.
제21강의 5·16 군사쿠데타는 왜 성공했을까요
제22강의 7·4남북공동성명은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제23강의 박정희정권의 경제건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제24강의 왜 또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섰을까요
제25강의 직선제로 노태우 군사정권이 성립했습니다
제26강의 30년 군사정권 뒤 김영삼 문민정권이 섰습니다만
강의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