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56). 나는 익산(益山) 사람이다
신아문예대학 수필가 구연식
나는 익산시 왕궁면 도순리 부상천(扶桑川)에서 태어났다. 나는 공직에 있을 때는 직장따라 주소를 옮겼지만 퇴직 후에는 바로 본적지로 복귀했다. 중국 선진(先秦)시대 대표적인 지리서 산해경(山海經)에는 거대한 뽕나무가 동쪽의 해 뜨는 바다에 있었다고 하여 동쪽을 부상(扶桑)이라 했다. 그런데 우리 마을은 그 동쪽에 시냇물이 흐르고 있어 부상천이라 했다.
익산시(益山市)는 대한민국 전라북도 서북부에 있는 도시다. 익산(益山)의 문리적(文理的) 의미는 이로운 산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민족의 곡창 호남평야를 미륵산(彌勒山)과 용화산(龍華山)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배산임수(背山臨水)로 익산시를 품고 있다. 익산은 삼한 중 마한(馬韓)의 도읍지로 이미 옛적에 역사적인 수도로서 그 역할을 하였고, 그 후 백제시대에 와서도 백제문화의 중심부에서 그 역할을 다한 아주 역사성이 깊은 곳이다.
나는 올해 개교 108년인 금마초등학교 48회 졸업생이다. 재학 당시 소풍은 걸어서 갔었다. 어머니가 소풍날 싸주신 쌀밥 도시락을 다 먹지도 않고 남겨서 쌀밥 도시락을 기다리는 동생들한테 갖다 주어야 했다. 소풍 장소는 어린이 걸음으로 두세 시간 거리로 주로 문화재 코스였다. 그 시절에는 새로운 것도 없고 맨날 가는 곳으로 또 가서 싫증을 느꼈는데, 지금 생각하니 복에 겨운 투정이었다. 소풍 장소로는 미륵사지 석탑(彌勒寺址石塔 국보-제11호), 왕궁리 오층석탑(王宮里 五層石塔 국보-제289호), 심곡사(深谷寺 지방-제192호), 익산 쌍릉(益山 雙陵 사적-제87호), 익산 함벽정(益山 涵碧亭 지방-제127호), 사자암(獅子庵 지방-제104호), 익산 구룡마을 뜬 바위 등이었다. 그런데 2015년 미륵사지와 왕궁리 일대 익산지역의 소풍 장소는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익산은 한국불교 성지의 요람이다. 미래 부처님 미륵불(彌勒佛)이 56억 7천만 년 후에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시어 사바세계에 유토피아적 이상세계(=龍華思想)를 펼친다고 한다. 익산의 주산(主山)은 전설적인 미륵산(彌勒山)과 용화산(龍華山)이다. 익산 미륵사지(益山彌勒寺址)는 우리나라에서 최대의 사찰지(寺刹址)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彌勒寺址石塔)은 국내 석탑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이다.
우리나라 최고(最古) 최대(最大) 불교성지 ‘미륵사지’, 근대종교의 발상지 ‘원불교’ 총본부, 상해에서 김대건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고 돌아온 기념으로 세운 전라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1906년) ‘나바위성당’, 남녀유별을 구별한 ㄱ자 교회 ‘두동교회’ 는 모두 다 익산에 있어, 익산에서는 해마다 4대 종단(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종교인들이 종교의 벽을 넘어 화합과 구도(求道)의 길을 함께 걷는 종교성지순례대회가 열린다.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훗날 백제의 30대 왕이 되는 무왕(武王), 서동은 어린 시절 공주를 연모하여 퍼뜨린 〈서동요(薯童謠)〉의 전설은 미륵산과 용화산 골짜기마다 사랑과 낭만의 흔적이 가득하여 봄에는 진달래와 산벚꽃이, 여름에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가을에는 단풍이 그리고 겨울에는 함박눈으로 연인들을 불러 모은다. 그래서인지 미륵산과 용화산의 등산로는 익산시민들의 뒷동산이 되어 토방의 디딤돌처럼 반질반질하다.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국도 1호선은 우리 마을 옆을 지나 익산지역 동쪽을 관통하고 있다. 조선 시대부터 국도에 30리마다 역(驛)을 세워 중앙과 지방 사이의 공문 전달, 관용품과 세공물의 운송, 관리들의 공무 여행을 위한 말(馬)의 대여와 숙식 제공했던 역(驛) 터가 우리 마을에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곳에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한 채가 있었는데, 그 집은 언제 헐리고 말(馬) 여물을 먹이는 곳이 아니고 자동차 여물을 먹이는 ‘역(驛) 터 주유소’가 생겼다. 역(驛) 터에서 조금 올라가면 조선 명기(名妓) 황진이가 사랑한 선비 소세양(연산군 10년, 1504년 과거급제 종 1품 좌찬성)에게 보낸 러브레터가 비문에 각인된 ‘소세양 신도비(神道碑])(지방 유형문화재 제159호)’가 있다. 가수 이선희가 번안하여 ‘알고 싶어요(1986년)’ 란 곡으로도 유명하다. 고개를 넘으면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다. 바로 앞산이 용화산 중턱으로 해가 지고 달이 뜨면 가람 선생의 시상(詩想)이 저절로 떠오르게 되는 곳이다.
익산은 철길 트라이앵글 지역으로 호남선 전라선 그리고 장항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수도권에서 일을 보고 익산 오는 데는 언제 어느 시간이든지 편하게 고를 수 있어 철길 천국이다. 최근에는 KTX 익산역이 유라시아 대륙철도 거점 역으로 지정되길 바라는 시민들의 염원을 담은 범도민적 기원행사 및 정책 세미나 등이 지속해서 열리고 있다.
육로 또한 호남 지방 교통의 관문이다. 호남고속도로와 새만금 포항 고속도로 그리고 서해안 고속도로가 인근으로 지나며 국도 1호선이 지나는 사통팔방(四通八方) 교통 요지이다. 그래서 호남 지방을 담당하는 익산지방국토관리청과 한국철도공사 전북본부가 익산에 위치한다.
익산 함열역에서 익산역 사이 철길에 얽힌 유명한 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철로를 지날 때 1956년 5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신익희 선생의 뇌내출혈 사고로 슬픈 사랑과의 이별을 노래한 박춘석 작곡 손인호 노래 <비 내리는 호남선>, 시골역 철길 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에서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떠오르게 하는 임종수 작곡 나훈아의 노래 <고향역> 등은 익산시만 가지고 있는 철길 노래 속의 사연들이다.
익산 금마는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다. 금마 지역은 대통령 공약 사업인 고도(古都)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고도 보존과 정비사업을 추진해 명실상부한 마한·백제 역사를 대변하는 고도(古都) 중의 고도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소재지를 돌아보면 타임캡슐을 타고 옛 백제를 찾아온 양, 여기저기에서 석공들의 망치 소리가 그치지 않고 고래등 같은 한옥들이 들어서고 있다. 고샅길을 지날 때 담장 아래 이끼 낀 기왓장 하나도 도랑의 작은 돌멩이 하나도 모두 다 익산을 오랜 풍상에도 천400년 전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같다.
익산은 전국에서 가장 질 좋은 화강석 산지로 유명하다. 익산석(益山石)은 단단하면서 이물질이 적을 뿐만 아니라 특히 철분이 적어 오랫동안 부식되지 않는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익산 황등석은 국회의사당, 독립기념관, 청와대 영빈관에 사용되는 등 최고급 자재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석탑인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도 황등석으로 만들어졌다.
나의 본관(本貫)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이 본관인 능성 구씨(綾城具氏)다. 그런데 나의 파-시조(派始祖)의 묘소와 제각은 익산 함열 동지산에 있다. 나의 조상은 익산에 터를 잡고 가문을 세우셨기에 나는 익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고 자랐기에 먼 훗날 다시 익산의 산야에 묻혀 익산의 흙과 물과 공기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익산(益山) 사람이다.’ 익산의 풍요로움과 세계인들이 찾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문화가 좋다. 나의 서재 뒷창문을 열면 언제나 미륵산과 용화산이 다정한 형제처럼 앉아서 나를 굽어보며 “너는 익산 사람이다." 하며 빙그레 웃는다.
『위대하고 경이로운 도시-어메이징 익산(AMAZING IK SAN)』
(2019.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