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219. 아홉 번째 계명(「가톨릭교회 교리서」 2514~2533항)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
- 외젠 시베르트 ‘다윗 왕을 꾸짖는 예언자 나탄’. 하느님을 사랑하면 탐욕이 줄어든다. 순결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십계명의 아홉 번째는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그런데 여섯 번째 계명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렇게 여섯 번째 계명과 아홉 번째 계명, 심지어 도둑질하지 말라는 일곱 번째 계명과 남의 재산을 탐내지 말라는 열 번째 계명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왜 같은 계명들이 반복될까요?
두 판으로 된 십계명의 첫 번째 판은 1~3계명이며,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통합됩니다. 두 번째 판은 4~10계명이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1~3의 계명은 4계명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으로 성취될 수 있으며, 5계명 살인하지 말라, 6계명 간음하지 말라, 7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들은 8계명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라, 9계명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10계명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으로 실천될 수 있다고 저 나름대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사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부모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기 위해 당신의 협조자로 세우신 분들입니다. 그러니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안면 절반을 뒤덮은 화염상 모반(붉은 점)을 갖고 태어난 김희아씨는 아기 때 자기를 보육원 앞에 버린 부모까지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부모를 통해 자신을 태어나게 하신 것에 감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이 이 지상의 작은 창조자인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같은 의미로 제5계명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제8계명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라는 계명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 잘못을 감추려 상대방의 탓을 하였습니다. 나의 잘못이 아니면 누군가의 잘못이 되고 이것이 결국 타인을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악마를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라고 하시고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로서, 진리 편에 서 본 적이 없다”(요한 8,44)라고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제7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제10계명 타인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으로 다다를 수 있습니다. 탐내게 되니 도둑질하게 됩니다. 재물을 탐내지 않으려면 하느님께서 이미 타인의 소유로 정해주셨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공경하여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 이웃의 재물에 대한 욕심이 사라집니다.
제6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죄는 탐욕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 5,28)라고 하십니다. 왜 욕망이 생길까요?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뱀의 말을 듣기 전까지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에 대한 탐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뱀의 말을 듣고 그것을 자신들이 따먹을 수 있다고 믿게 되자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습니다.”(창세 3,6)
음욕에서 벗어나려거든 하느님께서 이미 그 여인을 이웃의 아내로 맺어주셨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 탐욕이 줄어듭니다. 우리가 하늘의 별들을 나의 것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그럴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최초의 죄를 낳은 불순종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입니다.”(2515) 그렇다면 순결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도 정결할 수 없습니다.(2520 참조)
[가톨릭신문, 2023년 5월 28일,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