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양혜왕상(梁惠王上)’ 편 3장에 양혜왕과 맹자의 대화가 있습니다.
1절 양혜왕이 말하였다. “과인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河內가 흉년이 들면 그곳 백성을 河東으로 이주시키고 그곳 곡식을 하내로 옮겨 구휼하였으며, 하동에 흉년이 들면 역시 그런 식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의 정사를 살펴보면, 과인만큼 마음을 쓰는 자가 없는데,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더 줄어들지 않고 과인의 백성들이 더 늘어나지 않는 것은 왜입니까?”
2절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왕께서 전투를 좋아하시니, 전투를 가지고 비유를 해 보겠습니다.
둥둥 북이 울려 칼날을 부딪치며 접전을 벌이다가, 한쪽이 패하여 갑옷을 버리고 무기를 끌고 달아나게 되었습니다. 어떤 병사는 100보를 도망간 뒤에 멈추고 어떤 병사는 50보를 도망간 뒤에 멈추었는데, 만약 50보를 달아났다 하여 100보를 달아난 자를 비웃는다면 어떻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그럴 수야 없지요. 100보를 달아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 역시 달아난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왕께서 만일 이것을 아신다면 백성들이 이웃 나라보다 더 많아지길 바라지 마십시오.
여기서 온 말이 “이오십보 소백보(以五十步, 笑百步)”입니다. 그러니까 오십보를 도망간 사람이 백보를 도망간 사람을 보고 웃었다는 얘기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인데 요즘에는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즉 오십보와 백보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야구에서 실책 하나가 1점을 내줄 수 있는데 실책 두 개는 2점이 아니라 더 많은 점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출범한 민주당 혁신위원회는 제 명도 못 채우고 간판을 내렸다. 국민의힘 혁신위는 아슬아슬하게 난항 중이다.
여기에도 큰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우리 정치체제에서 혁신이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개념이다. 두 혁신위는 다 선거패배가 계기였다. 돈봉투, 코인거래 같은 도덕성 문제는 부차적이다.
민주당 혁신위는 대선과 지방선거 연패에 대한 솔직한 복기가 전제였다. 강서구보선 패배에 따른 국민의힘 혁신위의 동기와 목표도 같다. 물론 코앞 총선이 아니라면 이런 호들갑조차 없었을 것이다.
양대 정당의 혁신위가 갖는 본질적 한계는 뻔하다. 공천권을 포함해 극단적으로 권력 집중적인 우리의 인물정치 구조에서 거수기 정당의 혁신이 무슨 의미가 있나. 백날 혁신을 논해봐야 보스의 뜻을 거스르는 방안은 낼 수도, 채택될 수도 없다.
처음부터 친명 눈총을 받았던 김은경 혁신위가 먼저 내놓은 안은 이재명 대표를 불편하게 했을 불체포특권 포기였다. 결국 친명계 반발에 밀려 ‘정당한 영장청구’란 피신처와 함께 ‘체포동의안 기명표결’이라는 반대파 압박책으로 명분을 꺾었다.
이후 민주당의 당대표 결사수호 행태는 보스 의사에 반하는 혁신 시도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확인시켜준다. 이외에 기억나는 건 친명계에 유리한 전당대회 대의원 권한 축소 정도다. 혁신위로 이재명 체제만 더 공고해졌다.
인요한 혁신위는 그나마 좀 나아 보이긴 하다. 친윤을 겨냥해 험지출마 등의 희생을 요구하고, 이준석 유승민 등과의 통합을 말하는 건 확실히 예상을 넘는다. “소신껏 거침없이 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신호가 사실이라면 김은경 혁신위보다는 나은 안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그래도 이게 혁신의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전술했듯 우리의 인물정치구조에서 핵심은 정파의 수장이다. 대선과 지선에서 민주당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이 대표다. 정권이 초라한 지지율에 허덕이는 가장 큰 책임은 누가 뭐라든 윤 대통령에 있다. 이 둘이 스스로의 책임과 한계를 새삼 통감하고 앞장서 변화의 책임을 떠맡지 않는 한 우리 정치에 혁신은 없다. 정당의 개혁은 그 종속변수다. 정치변화와 발전의 가장 큰 장애가 윤 대통령, 이 대표라는 뜻이다.
어쨌든 이 대표의 변화부터 기대하기 어렵다. 생존이 급하기 때문이다. 사법리스크에서 자신을 지키는 친명체제 약화의 위험을 감당할 이유가 없다. 오래전부터 낡디 낡은 586정치인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번에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구조상 586의 청산은 정치인 이재명의 청산으로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의 용단 외엔 길이 없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당내 기반이 없던 터라 어떻게든 제 사람을 깔아 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인사에서 매양 실패하는 원인일 것이다). 낮은 윤 지지율의 원인은 정책보다는 그런 난맥 인사와 불공정, 독선, 불통 등이다. 벌써부터 윤핵관 등의 이탈조짐이 보이나 본안은 아니다.
늘 강조했듯 대통령 지지율이 곧 당 장악력이다. 관건은 스스로의 혁신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느냐다. 혁신은 말 그대로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내년 총선의 시대적 의미는 낡은 정치의 청산이다. 그럼으로써 쇠락하는 국가 경쟁력을 회복하고 확실하게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행태로는 턱도 없다. 선거행위는 평가이자 희망의 투사다.
평가는 거론할 것도 아니거니와 지금으로선 차마 희망도 말하기 힘들다. ‘알량한‘ 여의도 정치게임을 떠나 국가사회를 위한 두 수장의 결단, 그게 유일한 진짜 혁신이다.>한국일보. 이준희 고문
한국일보. 오피니언 이준희 칼럼, “진짜 혁신은 尹, 李에서 시작돼야”
“혁신(革新)”은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아주 새롭게 함’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혁신은 새로운 방법을 도입해 관습, 조직, 방법 등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혁신에 의해 투자, 소비 수요가 자극되어 경제 호황이 형성된다고 주장했던 미국의 경제학자 슘페터의 경제발전론의 중심 개념이라고 하는데, 신기술과 기업 경영에서 많이 쓰이며 조직 내의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생합니다.
정치에서의 혁신은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가지고 있는 인적 자원은 그대로이고 호박에 줄 긋기로 혁신을 하려고 하니 그것은 결국 말장난으로 끝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정치판에서는 혁신이 아니라 혁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혁명은 낡은 것을 바꾸거나 고쳐서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즉 새 세력이 구 세력을 몰아내고 차지하는 것인데 지금 윤석열 대통령도 그렇지만 이재명 대표가 자기 자리를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들은 가진 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걸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니, 결국 ‘하와이는 니가 가라’는 얘기밖에는 안 될 것입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