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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동문학인협회
2016년 3/4분기 우수작품상 선정 결과 발표
수상 작품
○ 동시 부문: 「현충사 ‘옛집’에 가서」 (전병호 작, 『어린이와 문학』 7월호)
○ 동화 부문: 「고양이 조문객」 (선안나 작, 『어린이와 문학』 6월호)
심사 위원
○ 예심 위원: 박정식, 한명순, 김희숙, 심상우
○ 본심 위원: 권영상, 윤미경
○ 시상 내용: 상패와 기념품
○ 시상식: 2017년 정기총회 시
심사 경위
○
2016년 3/4분기 우수 작품상 심사는 『어린이와 문학』 6월호, 7월호, 8월호, 『아동문예』 7월호, 8월호,
『열린아동문학』 여름호, 『시와 동화』 여름호, 『아동문학평론』 여름호, 『어린이책이야기』 여름호,
『창비어린이』 여름호, 『월간문학』 6월호, 7월호, 8월호에 실린 회원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하였다.
○
2016년 3/4분기는 동시 심사 대상 작품이 48편이었고, 동화는 24편이었다. 예심을 통해 동시 8편,
동화 7편이 본심에 올라오게 되었다. 이번에는 동시와 동화 모두 예심에서 올라온 작품들의 중복 추천이
없어서 본심 대상 작품이 늘어났다.
○
우수 작품상 운영진은 항상 심사 위원의 심사를 전적으로 존중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무더운 날씨
에도 불구하고 심사 마감일 전에 결과를 보내주신 예심, 본심 심사 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심사평 - 동화 부문
3/4분기 우수 작품상 후보로 7편의 작품이 올라왔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이라 모두 작
품 수준이 높다. 형식의 파괴가 돋보이는 작품과 따뜻한 가족애를 그린 작품, 신선한 발상과 소재의
참신성이 눈에 띄는 작품 등 어느 하나 마음이 가지 않는 작품이 없다. 그 중에서 선안나 작가님의
「고양이 조문객」을 당선작으로 조심스럽게 추천해 본다. 판타지 형식을 빌려 현 세태를 지적한 훌
륭한 작품이다.
할머니의 장례식에 찾아온 세 마리 고양이 조문객. 할머니가 거두어 키운 길냥이 세 마리가 할머
니의 은혜를 잊지 못하고 조문 온 것이다. 이어 줄을 서 조문하는 다른 길냥이들과 너구리와 오소리.
그에 비해 장례식장에서 사람의 풍경은 가족 간 친척 간의 송사가 오가기도 하고 늙은 부모의 장례
식에 나타나지 않는 자식들조차 있다. 사람은 참 짐승만 못할 때가 많다.
‘사람이나 은혜를 모르지 짐승이 은혜를 모르겠나.’
작가가 고양이의 입을 빌려서 전하는 메시지를 오래오래 되씹어 보며 심사평을 마친다.
- 심사 위원 윤미경
심사평- 동시 부문
깊은 교감과 소통을 보여주다
본심 당선작으로 전병호 시인의 「현충사 ‘옛집’에 가서」를 가려냈습니다. 이 작품은 3수로 되어
있는 연시조입니다.
시는 현충사, 충무공이 청년일 적에 살던 옛집이 주된 배경입니다. 이 시 속의 화자는 모처럼 그
옛집을 방문합니다. 장군의 방 앞에는 길게 놓인 쪽마루가 있는데 이곳을 찾아온 방문객들이 모두
그 쪽마루에 걸터앉아 쉬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꼭 장군을 뵈러 들어갈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발상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화자는 장군을 뵙고 싶어 마루에 앉아 장군이 보던 추녀끝 파란 하늘을 엿보며 장군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입니다. 화자인 ‘나’는 환청을 경험합니다. 마지막 연
의 종장이 그것입니다. ‘장군이 방문을 열고 나를 부르실 것 같다’는 이 부분. 장군을 만나 뵙고자
하는 나와 그 마음을 아는 장군과의 깊은 교감과 내면의 소통이 일체화되는 극적 순간입니다. 이
시는 그런 감동을 우리에게 선물합니다.
과거의 장군과 지금 내 앞에 존재하는 듯한 장군의 모습을 고도의 트릭으로 잘 구사해 낸 매우
빼어난 동시조입니다.
- 심사 위원 권영상
2016년 2/4분기 우수 작품상 - 동화 |
고양이 조문객
선안나
낡고 오래된 시골 장례식장에는 손님이 없었어. 그래서 막내는 어머니의 빈소를 금방 찾을 수 있
었지. 사무실과 안쪽 빈소 한군데만 불이 켜져 있었거든.
막내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103호실로 들어섰어.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 고양이 세 마
리가 있지 뭐야.
“순딩이 이제 왔냥?”
“어서 오라냥. 할머니가 기다렸다냥.”
세 마리 고양이가 공손히 허리를 숙였어. 막내는 흠칫 놀랐지만 자기도 모르게 마주 절을 했지. 상
대가 누구든 일단 예의는 갖추는 게 도리잖아.
‘내가 꿈을 꾸고 있나?’
막내는 뒤로 물러서서 호실과 고인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어.
103호실, 고인 방말련. 어머니 함자가 틀림없었지.
“먼저 분향부터 할 거냐옹?”
얼룩 고양이가 앞으로 나오며 물었어. 입과 턱이 비뚤어진 기괴한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지.
“혹시, 저번에 집에서 봤던……?”
“맞다냥. 나를 기억하는구냥!”
반가운 표정을 지으니 얼룩 고양이 얼굴은 더 괴상해 보였어.
반 년 전 막내가 집에 다니러 왔을 때 어머니는 차에 치인 고양이 한 마리를 보살펴주고 있었어.
턱뼈가 부러져 괴상한 얼굴로 변한 고양이였는데, 어머니가 예쁜아 예쁜아 불러서 기억에 남았지.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신 함박꽃이다냥. 순딩이가 드리라옹.”
한쪽 귀가 잘린 하얀 고양이가 탐스러운 작약꽃을 내밀었어. 그러고 보니 하얀 고양이도 집안에서
본 것 같아. 어머니가 나비야 하고 불렀지, 아마.
얼떨결에 꽃을 받아 든 막내는 어머니의 영정 사진 앞에 살며시 바쳤어. 사진 속 어머니는 웃는 듯 우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
‘우리 순딩이 왔냐?’
어머니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것 같았어.
먹고 자고 먹고 놀고 종일 보채지 않는 순한 아기였다며,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막내를 순딩이라
불렀지. 그러나 이제 자신을 그렇게 불러 줄 사람은 세상에 없어.
“엄마…….”
막내는 가만히 영정 사진을 만져 보았어. 진짜 어머니는 따뜻했는데 사진은 너무 차가웠어. 날카로
운 얼음 칼에 베인 듯 막내는 가슴이 찌르르 아팠지.
막내는 빨리 돈을 모아 남들처럼 번듯한 아들 노릇을 하고 싶었어. 그 생각만 하느라 정작 어머니
를 자주 만나러 오지 못한 자신이 미웠어. 심지어 오후에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누나의 전화
를 받고도, 새벽 세 시나 된 지금에야 장례식장에 도착했어.
화물차에 짐을 싣고 부산으로 배달 가던 중이었거든. 배에 실을 수출품이라 계약한 시간에 짐을
내리고 물품 확인을 해줘야 했어. 약속을 어겼다가는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물어야 하니까. 하지만 그
까짓 돈이 다 무어란 말인가?
“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막내는 어린 고아의 마음이 되어 엉엉 울었어. 엄마의 눈빛, 엄마의 냄새, 엄마의 웃음, 엄마의 숨
소리, 엄마의 품, 엄마의 손길…… 모든 게 너무 생생하게 그립고 아팠어.
눈물콧물 범벅이 된 막내에게 노랑 고양이가 두루마리 휴지를 건네주었지. 얼룩 고양이와 하얀 고
양이는 니야옹 냐아옹 낮은 소리로 같이 곡을 했고, 노랑 고양이는 막내 곁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간
간이 손을 핥아 주었어.
조금 뒤 막내의 울음이 좀 잦아들자 얼룩 고양이가 말했지.
“저기, 손님들이 아까부터 기다린다옹.”
“손님? 이 시간에?”
눈물을 닦으며 돌아보던 막내의 눈이 휘둥그레졌어. 언제 왔는지 고양이들이 빈소 앞에 길게 줄
을 서 있지 뭐야.
“어서 상복을 입고 손님 맞으라냥.”
“내가?”
“당연하지 않냐옹? 아깐 상주가 없으니 우리가 대신 했다냥.”
막내는 얼떨결에 시키는 대로 복장을 갖추고 상주가 되었어.
고양이들이 차례로 들어와 조문을 했지. 어머니의 영정 사진 앞에
들꽃을 놓거나 향을 피우고, 기
도를 하거나 두 번 절을 했어.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보기 좋게 절을 하는 고양이도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엉덩이
를 연신 실룩거리는 손님도 있었어. 앞발만 굽히고 엉덩이는 높다랗게 치켜든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꼬리까지 빳빳이 세우는 바람에 움찔거리는 똥구멍이 다 보이기도 했어. 그럴 때는 너무 슬픈 와중인
데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느라 막내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앙다물어야 했지.
“얼마나 상심이 크시냥.”
조문객들은 고인에게 예를 갖춘 뒤 상주에게도 위로를 전했어. 사람이 아닌 고양이들과 심지어 너
구리, 오소리까지 섞여 있었지만, 어머니의 장례식에 와 준 손님들이라 막내도 정성껏 예를 다했지.
“너무 슬퍼하지 마라옹. 할머니는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실 거다냥.”
막내의 손을 꼭 잡고 위로해 주는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막내를 끌어안고 서럽게 우는 손님도 있
었어. 저마다 자기 설움이 있는 건 사람뿐만이 아닌가 봐.
문상을 마친 뒤에도 조문객들은 바로 떠나지 않고 빈소에 모여 앉아 고인을 추모했어.
“그런데 다들 여길 어떻게 찾아온 건지…….”
막내는 궁금해서 곁에 있는 노랑 고양이에게 물었어.
“할머니가 생전에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작별 인사를 하러 오는 게 당연하지 않냥? 은혜를 모르
면 그게 사람이지 짐승이겠냥?”
“그렇고 말고지옹.”
조문객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어.
어머니가 고양이 밥을 준다는 것은 막내도 알고 있었어. 어쩌다 집에 오면 마당이며 뒤란이며 고
양이들이 자주 보였거든.
“이 동네에 고양이가 참 많네요.”
막내가 무심코 한 말에 어머니가 대답했지.
“어디나 고양이들은 있단다. 내가 밥을 주니 먹으러들 온 거야.”
막내는 잘된 일이라 생각했어. 낯선 시골로 이사를 와서 어머니도 외로울 텐데 짐승들한테라도 정
을 붙이면 좋잖아.
그런데 지난 사 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고양이 조문객들이 이렇게나 찾아온 걸까.
“우리 어머니한테 어떤 은혜를 입었다는 거지?”
“할머니가 차에 치어 죽어 가던 나를 구해 주셨다냥. 병원에서 수술도 시켜 주셨다옹. 병원비가 많
이 나왔는데, 할머니가 이를 할 돈으로 치료해 주셨다냥. 그 돈 순딩이가 준 거 알고 있다옹. 정말 고
맙다냥.”
얼룩 고양이가 막내에게 공손히 절을 했어.
“아, 그랬던 거구나.”
이가 두 개나 빠진 어머니가 안타까워, 막내는 어머니 생신 때 큰맘 먹고 목돈을 드렸어. 그런데 다
음에 만났을 때도 어머니는 여전히 이가 빠진 그대로셨지 뭐야. 왜 틀니를 안 하셨냐고 물었더니 돈
을 잃어버렸다며 연신 미안해했지. 그래서 막내도 그런 줄로만 알았던 거야.
“할머니 덕분에 우리 아가들이 잘 컸다냥.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먹을 걸 주셔서 걱정 없이 아가들을 지켜 줄 수 있었다옹.”
“우리 엄마가 아팠을 때도 할머니가 멀리까지 매일 밥을 갖다 주셨다냥. 돌아가신 뒤에는 산에 묻
어 주셨지옹.”
고양이 조문객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하였어.
“할머니가 치료해 주신 고양이도 많고, 묻어 주신 고양이도 엄청 많다옹. 그렇지 않냥?”
“맞다냥. 할머니가 안 계셨으면 쓰레기차에 실려 갔을 거라냥.”
조문객들은 생전의 고인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어. 주로 고인이 얼마나 정이 많고 고마운 사람이
었는가 하는 내용이었지만 색다른 일화도 있었지.
“다들 생각나냥? 쥐떼 빌라 사건 말이다냥.”
“아, 그때 정말 웃겼다옹.”
“동 대표 그 여자 탭댄스 추던 거 말이냥? 난 그 생각만 하면 배꼽이 빠질 거 같다냥.”
조문객들은 냥냥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데구르르 구르기도 했어.
무슨 이야기인가 하니, 산 아랫마을 새로 지은 빌라의 동 대표와 어떤 여자가 고양이를 싫어했대.
어머니가 고양이 밥을 주고 다녀서 피해가 심하다며 경찰서에 신고까지 했나 봐. 그러고도 모자라
약까지 놓은 바람에 그 빌라 주위에는 고양이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고, 자연히 쥐들이 오글오글 모
여 살았대.
그런데 하루는 동네 어린 고양이들이 쥐 사냥 놀이를 했다지. 혼비백산한 쥐 떼가 빌라로 몰려갔는
데, 하필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던 동 대표가 발밑의 쥐를 피하느라 비명을 질러 대며 탭댄스를 추었
대. 그 꼴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웠던지 고양이들뿐 아니라 사람들도 배를 잡고 웃었다나 봐.
쥐가 한 마리가 쥐가 두 마리가 쥐가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가.
쥐가 여섯 마리가, 쥐가 일곱 마리가, 쥐가 여덟 마리, 아홉 마리, 열 마리……
야옹 야옹 고양이 화났지 야옹 야옹 고양이 나왔지
쥐가 도망가지 쥐가 도망가지 쥐가 어디로 갔나 난 몰라
쥐구멍이지 쥐구멍이지
쥐구멍에 숨었지 야옹
꼬마 고양이들이 노래를 하며 춤을 추었어. 막내도 따라서 손뼉을 치다가, 아차 어머니 장례식이
지 싶어서 가만히 있었어.
그런데 노래가 끝나자 얼룩 고양이가 이렇게 말하지 뭐야.
“이번에는 순딩이가 노래 불러 드리라냥.”
“그러라옹. 할머니가 좋아하실 거다냥.”
막내는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어. 어머니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지.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머니는 자주 콧노래를 흥얼거리셨어.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같은 곡들
이었는데, 특히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있었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막내의 노래에 고양이들이 화음을 넣었어. 냐냥 냐냐냥 냐냥……. 조문객들은 일어서서 빙빙 돌
기 시작했지.
젊은 어머니가 분홍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함께 춤을 추었어. 어린 막내는 아장아장 어머니를 향해
걸었고, 일곱 살 누나는 어둠이라곤 모르는 얼굴로 뛰어다녔어. 어머니의 자랑이자 희망인 열두 살
형의 얼굴에도 햇살이 눈부셨어.
남의 나라 전쟁에 다녀온 뒤 말문을 닫아 버렸다는 아버지는 없었어. 막내가 세 살 때 저수지에서
시체를 건져 올렸다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서 다행이었지.
혼자 삼남매를 키우느라 어머니는 안 해 본 일이 없어. 그러다 이십 년 전 작은 식당을 열고, 하루
도 쉬지 않고 국밥 장사를 했지. 그렇게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느라 어머니는 단칸방, 반 지
하, 셋집을 수없이 전전했어.
그러다 비로소 집을 사서 시골로 이사 온 게 사 년 전이야. 일하다 심장이 잠시 멈추어 쓰러지지 않
았으면 어머니는 아직도 장사하고 있을 테지.
“왜 하필 이런 곳이에요?”
공동묘지 바로 아래 자리 잡은 골짜기 집이 막내는 마음에 들지 않았어.
“무덤이 있으면 어떠냐. 차 소리도 안 나고 얼마나 조용한데. 공기도 좋고 채소도 심을 수 있고, 나
는 여기가 참 좋구나.”
어머니가 정말 기뻐하셔서 그래도 다행이었어. 어서 돈을 벌어 남들처럼 자리 잡고 사는 모습을 보
여 드려야지, 막내는 그 생각만 하고 또 했지.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어. 이 일 저 일 실패만 거듭하다 막내는 지금 화
물차 운전을 해. 그렇지만 어머니한테는 회사에 다닌다고 말했지. 위험한 일을 하는 줄 알면 밤낮으
로 걱정하실 테니까.
“엄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지 그랬어요. 왜 그렇게 바삐 가셨어요?”
막내는 흐느껴 울면서 생각했어. ‘어쩌면 이건 꿈일 거야, 깨어나면 어머니가 살아 계실 거야.’ 하고.
“막내야, 일어나.”
누군가 흔들어 깨웠어. 막내가 눈을 떠 보니 누나의 초췌한 얼굴이 보였어. 이곳은 빈소였고 어머
니는 여전히 돌아가신 채였지.
“고양이들은 어디 갔어?”
“고양이? 무슨 고양이?”
방금까지 북적거렸던 조문객들과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다 꿈이었단 말인가. 막내는 망연자실해
서 앉아 있었어.
“그런데 옷에 웬 털이 이렇게 묻었니? 아무리 싸구려 장례식장이지만 청소도 안 해 주고 이게 뭐람.”
누나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어. 그러고 보니 막내의 옷은 고양이 털로 범벅이 되었지 뭐야.
‘그럼 꿈이 아니었나?’
얼떨떨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는 막내를 누나가 걱정스레 바라보았어.
“너 괜찮니?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응 괜찮아. 그런데 누나, 엄마가 무슨 꽃을 좋아했는지 알아?”
“글쎄. 채송화? 분꽃?”
“함박꽃을 제일 좋아하셨대.”
“그랬나. 엄마가 언제 얘기해 주셨어? 아빠 계실 때 살았던 우리 집 화단에 함박꽃이 엄청 많이 피
었잖아.”
누나의 지친 얼굴에 잠시 함박꽃 같은 웃음이 서렸어.
“네가 고양이 어쩌고 해서 그 생각도 난다. 한번은 함박꽃밭에서 새끼 고양이 세 마리를 발견했잖
아. 그래서 오빠 고양이, 내 고양이, 네 고양이를 한 마리씩 정해 놓고 키웠어. 그때 찍은 사진이 내 앨
범에 어디 있는데.”
“그랬어? 난 하나도 기억 안 나.”
“당연하지. 넌 세 살밖에 안 됐으니까.”
“그래서 그 고양이들은 어떻게 됐어? 다 컸어?”
“모르지. 아빠가 돌아가신 뒤 큰아빠가 집을 뺏어갔으니깐……. 우리도 내쫓겼는데 고양이들까지
신경 쓸 수는 없었을 거야.”
그 얘긴 형이 종종 말하곤 해서 막내도 알고 있었어. 큰아빠가 상속 서류를 몰래 만들어서 할아버
지 이름으로 된 재산을 모조리 차지했다고 했지. 아빠가 물려받았던 집까지 가로챘다며 오빠는 분노
했어.
“엄마는 바보같이 싸우지도 않고 쫓겨났어. 형제간에 송사를 할 수 없다고 그냥 포기한 거야. 그런
사람들이 형제는 무슨 형제야? 엄마는 자기 자식들을 지켜 줘야지. 그 집만 있어도 우리가 그렇게 힘
들게 살지 않았을 거야.”
열두 살이었던 형은 모든 것을 기억했어. 큰집 식구들에 대한 노여움뿐만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품고 있었지.
하지만 막내는 알아. 엄마가 바보스러웠을지는 모르겠으나 자신들을 사랑했고, 있는 힘을 다해 키
웠다는 것을.
“누나, 내일이 발인인데 형이 올까?”
“알 게 뭐야. 언제 우리한테 신경 썼다고.”
누나가 퉁명스럽게 말했어.
‘사람이나 은혜를 모르지 짐승이 은혜를 모르겠나.’
노랑 고양이의 말이 생각나 막내는 씁쓸한 웃음이 났지.
성공에 대한 집념이 남달랐던 형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교를 나와 프랑스 유학까지 갔
어. 갈수록 얼굴을 보기 힘들어지던 형은, 그곳에서 한인 사업가의 딸과 결혼한 후 소식조차 거의 끊
겼어.
그러나 형도 자기만의 어떤 사정이 있을 거야. 고양이 조문객들이 아니었다면 막내도 어머니에 대
해 많은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처럼.
“고마워, 누나.”
“뭐가?”
“장례식 준비도 혼자 하고…… 누나도 힘든데.”
이혼하고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느라 누나도 어머니처럼 억척스레 살고 있어. 그런데도 어머니가 돌
아가셨다는 경찰의 연락에 먼 길을 달려와 장례 준비를 하고, 밤에 잠시 집으로 갔다가 새벽같이 또
달려온 누나였어.
“별 소릴 다 한다. 내 엄마인데 당연히 내가 하지 누가 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누나의 얼굴에서 문득 어머니가 보였어. 막내는 왈칵 눈물이 나서 바람을
쐰다고 핑계 대며 밖으로 나왔지.
잡초가 자라난 시골 장례식장 마당에 아침 햇발이 들고 있
었어. 뼈만 남은 어린 고양이가 쓰레기장 쪽으로 가다 나
무 뒤로 몸을 숨겼지.
‘어머니가 안 계시니 고양이들 밥은 누가 줄까?’
막내는 주차장에 서 있는 자신의 화물차를 바라보았어. 어두운 길을 너무 위험하게 달려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는 멈춰 서는 게 좋을 거야. 어쩌면 지금이 그런 때인지도 몰라.
점점 밝아 오는 아침 하늘을 바라보며, 막내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 있었어.
♣ 동화 수상 소감
동화를 무척 오랜만에 썼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항일과 친일로 반대되는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삶
을 다룬 청소년 책을 쓰느라 2년 넘게 매달려 있었거든요. 그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처음 쓴 동화
가 「고양이 조문객」이었는데, 아동문학인협회 선정 우수 작품으로 뽑혀서 기쁩니다. 다행히 동화의
감을 잃지 않았으니, 이제는 부지런히 동화를 쓸 때라고 격려 받은 느낌이에요. 심사해 주신 작가님
들 고맙습니다.
길고양이와 인연을 맺은 지 6년째입니다. 약한 생명들이 살아가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 그동안 마
음 아픈 일, 때론 험한 일도 적지 않게 겪어야 했지요. 그렇지만 할 수 있는 한 모든 생명을 힘껏 살
리며 사는 게 사람의 할 일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확고해지네요. 그저 인연 닿은 만큼 소소하게 돌보
며 살아갈 뿐이지만요.
길고양이한테 커다란 죽은 쥐를 처음 선물 받고 참 기뻤던 일이 떠오릅니다. 우수 작품상 선정 소
식도 그동안 만난 길고양이들이 준 선물이구나 싶습니다. 인간뿐 아니라 뭇 생명이 더불어 천수를 누
리는 세상을 꿈꾸고 바라며,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글을 쓰고 삶도 살면 좋겠다는 생각
을 해봅니다.
선안나
경북 울산시 울주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새벗문학상과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었다.
『떡갈나무 목욕탕』, 『온양이』, 『잠들지 못하는 뼈』 등 많은 동화책과 그림책을 썼다. 한국아동문학상,
세종아동문학상, 열린아동문학상을 받았다.
2016년 2/4분기 우수 작품상 - 동시 |
현충사 ‘옛집’에 가서
전 병 호
장군이 청년일 때 살던 집을 찾아가니
사람들이 몰려와서 방문 앞에 앉아 있다
장군을 뵈러 들어갈 순서를 기다리듯.
장군이 지금 돌아와 방 안에 계신 것일까
나도 뵙고 싶어서 마루 끝에 앉았다
장군이 젊은 날 보던 파란 하늘을 보면서.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느니라
말씀 뜻 생각하다 혼자 얼굴 붉히는데
장군이 방문을 열고 나를 부르실 것 같다.
♣ 동시 수상 소감
열심히 쓰겠습니다
내가 가끔 잘 가는 곳이 현충사입니다. 길이 잘 나 있거든요. 한 30분 정도 달려가면 되니까요. 천천
히 걷기도 좋고요. 그곳에 가면 꼭 들리는 곳이 박물관입니다. 박물관에 가면 꼭 장군의 장검을 보러 갑
니다. 장군의 장검은 두 자루입니다. 아래위로 나란히 걸려 있지요. 그 중에서 내 눈은 늘 아래에 놓인
칼에 머뭅니다. 그리고 칼날에 붉은 글씨로 새겨진 검명 ‘일휘소탕 혈염산하’를 거듭해서 읽습니다. 가
슴이 서늘해집니다. 장군은 이 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가 몇 번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마
다 자신도 모르게 장군의 말씀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도 계셨는데’ 또는 ‘지금 내 어려움
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하면서 힘을 냈습니다.
올 2월 말에 정년을 했습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딱 끊어져 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삶도 시도 그랬습
니다.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날은 박물관에서 나오자 장군이 젊었을 때 살던 ‘옛
집’으로 갔습니다. 생각해 볼 것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그날따라 ‘옛집’ 마루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앉
아 있었습니다. 마치 장군을 뵙고 말씀을 듣기 위해 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앞으로 내 삶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압니다. 다만 내가 받아들이는 준비 시간
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시도 그렇습니다. 내 시가 역사에 남아야 한다는 등 그런 우매한 생각은 버리기
로 했습니다. 그 대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쓰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팔리지 않을 것 같아서 동시집을 낼
수 없다는 출판사의 대답도 서운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거기는 장사하고 나는 문학하는 사람이니까요.
아마 앞으로도 이런 생각을 고집하며 지낼 것 같습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참, 예심 본심 심사 위원님들 감사합니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기쁨을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전병호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동아일보 신춘문예(1982)에 동시, ‘심상’(1990)에 시가 당선되었다. 지은 책
으로는 동시집 『백두산 돌은 따듯하다』, 『봄으로 가는 버스』, 『아, 명량대첩』 등이 있으며 세종아동문
학상, 방정환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받았다..
첫댓글 선안나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김혜옥 선생님 축하 댓글 달자마자 또 수상 소식을 접하니 무슨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네요. 조만간 29기 선생님들께 귀한 말씀 전해주셔요~^^
선생님, 축하드려요. 늘 따뜻하고 올곧은 시선을 가진 선생님.... <일제강점기 그들의 선택> 도 잘 읽었고요, 수상 동화도 참 따뜻하고 좋아요.
슬프면서도 미소가 지어지는 동화네요.^^* 우수작품상 받으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저도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습니다. 선안나 선생님,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선생님, 수상 축하드립니다. 저도 재밌게 읽었던 작품입니다. 😊😊😊
정말 따뜻한 작품이네요. 읽을 수 있어 감사드리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선생님의 마음과 따뜻한 사랑이 작품에서 느껴집니다.
좋은 동화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건강하시죠? 동화공부 처음 시작할 때 서점에 가서 동화세상 선생님들, 선배님들 책을 먼저 사서 읽었어요. <길 잃은 페르시아 왕> ! 그 후로 <삼거리 점방> <잠들지 못하는 뼈> 등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로 작품상 받으신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와!!!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선안나 선생님, 늘 열심히 사시고 열심히 글 쓰시는 모습 후배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의 생활 속에서 저절로 나온 글이네요. 마음 가득 담아 축하축하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
선생님 축하 드립니다. 냐옹이들의 냐옹냐옹 말투가 넘 귀여워요.^^ 따뜻한 작품 잘 읽었습니다.
선안나 선생님, 축하드려요. 좋은 작품 잘 읽었어요. 축하드립니다.^^
참 재미있고 따뜻한 작품이네요. 잘읽었습니다. 그림책, '나, 너, 우리' 좋아해서, 틈틈이 읽고 있어요. 직접 뵙진 못하지만 좋은 작품으로 선생님을 만나는 기분 또한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 선정 축하드립니다
동화세상 글벗님들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__^
축하드려요, 선생님!
축하합니다 ~
선안나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작품 잘 봤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려요~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작품 잘 읽었어요. 늘 화이팅하길~!!^^
좋은 글은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축하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