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을 접은 노을처럼
강우현
목숨을 걸어야 해
계보를 위해
고요 우거진 풀숲 한 채에 들어
풀물이 가득 찬 몸을 몸에 꽂은 뒤
반항을 접은 장엄한 노을처럼 지는 거야
환희의 순간
입맛 다시는 소리를 들으며
체하지 않도록 머리부터 씹어 삼키고
입을 풀에 스윽 닦은 뒤
숲으로 갈까 바위 밑으로 갈까
고민할 당신을 위해
낫처럼 앞다리를 굽히고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며
숨을 멈추는 거야
단번에 다 내어주는 모습을
신은 마른침 삼켜가며 바라볼 거야
다음 대본에서
봄볕에 물이 오른 날
나는 다시 사는 거야
-시집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반면에,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노인에 대한 사회보장제도와 복지예산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정의가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삶을 선호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생물학적이고 통속적인 편견을 벗어나, 떠날 때에 떠날 줄을 아는 것과 죽음을 또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정의 아래, ‘인간수명제’를 실시하여 자기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멋진 죽음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 자살은 참으로 가장 더럽고 끔찍한 사건인 만큼, 누구나 ‘인간 70’이 되면 스스로, 자발적으로 ‘인간존엄사’를 신청하면 된다. 건강과 질병의 유무조차도 따질 필요가 없으며, 자기 자신이 더 이상 사는 것이 치욕이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하면 6개월 정도의 숙려의 시간을 가진 뒤, 프로포폴을 맞은 것처럼, 1분 이내로 하늘나라로 승천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부모님의 재산을 두고 그 구성원들의 소송전도 없어질 것이고, 국가의 재정도 더욱더 튼튼해지고, 그리하여 그 복지비용을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의 행복을 위해 투자를 하면 될 것이다. 신세대와 구세대간의 세대교체도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저출산 고령화의 장벽’도 무너지고, 오히려, 거꾸로 ‘인간 70의 수명제’로 인하여 그 옛날의 충효사상이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인간수명제’를 실시하면 우리가 얻을 것은 지구촌의 행복이고, 우리가 잃을 것은 ‘저출산 고령화의 재앙’과 함께, ‘지구촌 열대화 현상’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아름답고 멋진 죽음을 위해, 자기 자신의 명예와 ‘종의 건강’을 위해, 자기 자신의 목숨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요 우거진 풀숲 한 채에 들어/ 풀물이 가득 찬 몸을 몸에 꽂은 뒤/ 반항을 접은 장엄한 노을처럼”지지 않으면 안 된다. 좀 더 오래 살기 위해 인공관절을 해달고, 좀 더 오래 살기 위해 똥오줌을 싸며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사는 것처럼 더욱더 추악하고 고약한 일도 없으며, 그 결과, 모든 자식들이 부모에게 소송을 걸며, 그 더럽고 추악한 삶에 이를 부득부득 갈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과 딸들과 손자들도 몰라보며, 미치, 시체처럼, 유령처럼 살며, 모든 천연재화를 다 축내며, 우리 젊은 자식들의 밥줄과 숨통을 조여대는 것이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막장극이자 잔혹극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강우현 시인의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은 황홀한 시간이며, 죽음의 신이 입맛을 다시는 시간이다.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 “체하지 않도록 머리부터 씹어 삼키고/ 입을 풀에 스윽 닦은 뒤/ 숲으로 갈까 바위 밑으로 갈까/ 고민할 당신”, 즉, 죽음의 신을 위해 “낫처럼 앞다리를 굽히고/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며/ 숨을 멈추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며, 죽는다는 것은 죽음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부채를 상환하는 것----이다. 가장 아름답고 장엄한 노을처럼 단번에 나의 몸을 바치면 죽음의 신은 마른 침을 삼켜가며, 더욱더 맛있고 즐겁게 식사를 하며, “다음의 대본에서” 나의 새로운 봄날의 배역을 정해줄 것이다.
생명의 신도 자연의 신이고, 죽음의 신도 자연의 신이다. 자연의 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수명연장이며, 산소호흡기를 입에 달고 똥오줌을 싸며, 그토록 더럽고 추하게 생태계를 교란시킨 인간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중죄로 처벌한다는 것이다. 수명연장은 원자폭탄과도 같은 재앙이며, 우리가 하루바삐 강우현 시인의 [반항을 접은 노을처럼] 인간수명제를 실시할 때만이 그 재앙으로부터 이 지구촌을 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가장 아름답고 멋진 노을처럼 죽을 자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