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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9년이다.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유난히 일이 많았던 해를 보내고 맞이한 새해이다. 무시무종(無始無終)이 불교의 가르침이지만, 세간에 사는 범부들에게 해가 바뀌는 것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영축총림 통도사가 매년 연말연시에 화엄산림(華嚴山林)을 봉행하는 것은 불교의 정수를 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해가 바뀔 무렵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원산스님의 가르침을 청했다.
“세월 또한 인연 따라 오고 가는 것이며, 이 역시 무상한 것입니다.“ 통도사 주지 원산스님은 “세월을 두고 ‘흘러간다’고 하는데, 지나간 일에 너무 집착하거나 아쉬워하지 말라”면서 “잘못은 참회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무심(無心)을 강조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한 부처님은 연기법(緣起法)과 무상(無常)의 도리를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이 맘 때에 더욱 마음 깊이 받아들여야 하는 가르침입니다.”
원산스님은 “부처님은 출가해서 수행한 끝에 보리수 아래에서 우주와 인생의 근본진리인 도(道)를 깨달은 분”이라면서 “진리의 실상을 보여준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시라도 놓치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전했다. 스님은 “불교에서는 평등의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곧 모든 존재의 평등을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인과(因果)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금생은 전생의 결과입니다. 수 없이 많은 과거생으로 금생의 모습이 드러난 것처럼, 금생의 원인에 의해 후생, 즉 미래생이 나타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세인들도 흔히 말하고 있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지중함을 알고 바른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원산스님은 <화엄경>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통도사가 매년 화엄산림(華嚴山林)을 봉행하는 것도 <화엄경>의 진수를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화엄경에 일체 모든 것이 둘이 아니라는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가는 해’와 ‘오는 해’가 둘이 아니니 각자 자리에서 주인이 되는
‘수처작주’ 정신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을미년 새해에도 부처님의 크신 광명이 늘 함께하길 축원 드립니다
“화엄산림을 해온지 어느덧 4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경봉 큰스님께서 산중에 주석하는 스님들로 하여금 화엄을 설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통도사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을 초청해 화엄 설법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전통을 계승한 통도사는 지난 12월22일부터 1월19일까지 매일 설법전에서 고승(高僧)들을 초청해 화엄 법석(法席)을 열고 있다.
화엄산림에서 화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나타내고, 산림은 ‘최절인아산(摧折人我山) 장양공덕림(長養功德林)’을 줄인 말로 “너다 나다 잘난체하는 아상과 교만의 산을 허물고 공덕의 숲을 잘 가꾸라”는 뜻이라고 했다. 통도사 화엄산림은 창건조사(創建祖師)인 신라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에서 비롯됐다.
“자장율사는 당나라 태종에게 대장경을 받고 돌아와 통도사에 봉안했고, 자신의 집을 희사해 지은 원녕사(元寧寺)를 확장해 낙성한 것을 기념해 화엄법회를 열었습니다.” 이때 52명의 여인이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자장율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52그루의 나무를 심어 지식수(知識樹)라고 했다고 한다.
원산스님은 “자장율사는 매우 엄격한 청정지계 정신으로 신라교단의 기강을 바로 잡았으며, 우리나라에 화엄법회를 최초로 열어 해동화엄(海東華嚴)의 초조(初祖)로 불린 선지식”이라고 강조했다.
원산스님은 “<화엄경>에는 일체 모든 것이 둘이 아니라는 진리를 담고 있다”면서 ‘가는 해’와 ‘오는 해’가 둘이 아니니 각자 자리에서 주인이 되는 수처작주(隨處作主) 정신으로 정진해야 한다고 했다.
원산스님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화엄경의 핵심을 요약한 법성게(法性偈)를 소개했다. 7언 30구 210자로 되어 있는 법성게는 화엄경의 핵심을 간추려 정리한 것으로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에 들어 있다.
스님은 “법성게의 첫 구절인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이 불이(不二)의 진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면서 “법성은 원융해서 두 가지 모양, 즉 차별이 없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처럼 진리의 세계에서 바라보면,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면서 “무상하게 지나가는 세월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수행하고 정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통도사는 화엄산림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기존 법회 외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해 ‘수행과 학문’의 접목을 시도하며 화엄사상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화엄사상과 통합의 시대’란 주제의 국제학술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원산스님은 “매년 정기적으로 학술대회를 열어 10년 정도 하면 <화엄경> 전체를 논리적으로 조명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스님과 재가불자들의 수행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산스님은 “사바세계의 중생이 겪고 있는 고통은 욕심과 집착에서 비롯된다”면서 “탐진치 삼독(三毒)을 버리고,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할 때 행복과 열반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승불교 가르침의 핵심은 공(空)”이라며 “오온개공(五蘊皆空), 즉 색즉시공(色卽是空)과 공즉시색(空卽是色)의 가르침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온(五蘊)이 공(空)한 이치를 알면 불교의 진리와 <반야심경>의 핵심을 모두 알게 됩니다. 생사가 없는 경지까지 이르러야 불교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산스님은 평소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 수행을 통해 해탈을 성취해 일체중생을 고통에서 제도하는 수행과 자비의 종교가 불교”라면서 성불에 이르기 위해 믿음(信), 정진(精進), 염(念), 정(定), 지혜(智慧) 등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가져올 진리는 불교(佛敎)”라면서 “대립이나 투쟁하는 종교는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고 말했다.
“모든 사상과 종교의 근본 목표는 ‘괴로움을 없애고 즐거움을 얻는’ 이고득락(離苦得樂)입니다. 정치는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경제는 국민이 잘 먹고 잘 살게 하고, 예술은 무아의 절대경지, 즉 최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원산스님은 물질을 우선시하는 한국사회에 대해 “돈이 아무리 많아도 100년도 못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경책하고 “부처님은 나고 죽는 문제를 깨달았으며, 이 세상에 큰일이 많지만 생사대사(生死大事)가 가장 큰 일”이라고 설했다.
그러면서 세속에 살고 있는 국민과 불자들에게 ‘화엄 정신의 실천’을 재차 당부했다. “화엄의 진리가 세계화 되어야 한다”면서 “하나 속에 우주가 들어있고, 우주 속에 하나가 들어있다”고 지적했다.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되고 있는 현대사회에 더욱 필요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시간 또한 마찬가지라고 했다. “찰나 속에 영겁이 있고, 영겁 속에 찰라가 있습니다.”
원산스님은 “부처님의 화엄사상이 세계화될 때 세계평화가 이뤄지고, 모든 생명이 존중받을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될 때 인류가 행복하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 모두 화엄경의 정신을 선양해, 물질만능 풍조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하고, 참 자아를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정에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새해에도 부처님의 크신 광명이 늘 함께하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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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22일 통도사 ‘화엄산림’ 입재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원산스님. | ||
■ 원산스님은 …
1964년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8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통도사, 범어사, 동화사 강원에서 교학을 연찬하고, 극락선원, 송광사,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참선 수행했다. 직지사 관응스님에게 강맥을 전수 받았으며, 강호(講號)는 장해(藏海)이다.
직지사와 통도사 강주로 후학을 양성했으며, 중앙종회의원과 조계종 초대 교육원장을 역임했다. 교육원장 퇴임 후에는 통도사 백련암 무문관에서 3년 결사를 했다.
2011년 5월 통도사 주지 소임을 맡은 후에는 주민과 함께하는 연등축제를 개최하고, 통도사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전통사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노인요양병원, 국제템플스테이관, 선원 신축도 추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