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정리사
1. 유품정리사란 직업으로서 고독사로 인해 방치된 망자의 공간 혹은 사건·사고 현장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들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보면 유품정리 의뢰가 들어오면 현장 방문 등 구체적인 상황 분석을 통해 투입할 분야별 작업 인원과 필요 장비 등을 파악하여 견적을 낸다.
병균, 악취를 제거하는 일부터 시작해 유품에 묻은 혈흔, 분비물, 인체조직 등 악성 폐기물의 위생적 처리, 자외선·오존 살균과 탈취 등 일련의 순서에 따라 유품을 정리한다.
현금, 유가증권 등의 귀중품은 상속자에게 정상적인 상태로 전달하고, 각종 가재도구는 사용 가능 여부나 의뢰인의 뜻에 따라 재활용 센터에 매각하거나 유족에게 전달한다.
2. 우리들에게 생소한 유품정리사라는 직업과 거기에서 등장하는 고독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여 색다른 세계를 알려준 사람은 전애원, 김샛별 부부로서 이들 모두 유품정리사다.
유품을 정리하다 보면 그 누구도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이들 부부는 그 이야기를 모아 넷플릭스 시리즈 <무브 투 헤븐>의 원작인 수필집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남겨진 것들의 기록> 두 권을 집필했다.
‘남겨진 것들’을 정리하기 위한 도구가 담긴 전씨의 특별한 가방 안을 엿보았고 그 가방안에 담겨진 이야기들중 3편을 골라 아래에 요약하여 올려본다.
3.
가. 한여름 갓 스물 청년이 부친의 유품정리를 의뢰했다.
현장은 더웠다. 시취(屍臭)는 한계를 넘었다. 펄펄 끓는 날씨에 사후 2주가 지나서야 발견된 아버지.
20세, 19세 연년생 두 남매를 홀로 키운 고인은 아직 55세, 젊은 나이였다. 덤프트럭을 몰며 생계와 양육을 책임졌다. 남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웠다. 자녀가 이르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차례로 떠났을 때, 간경화가 그를 덮쳤다.
술을 끊고 치료를 받으면 됐을 텐데. 너무 지쳤던 것일까? 그는 되레 술을 쏟아 부으며 삶을 포기해 갔다. 자식에게 남긴 손글씨 유언장이 슬프다. 삐뚤빼뚤한 글씨, 틀린 맞춤법이 되레 그의 고달팠던 생의 진실을, 온몸으로 그야말로 ‘육성’으로 들려준다.
" 내가 죽으면 일일장만 해. 혹시 여기 임대료 남아 있으면 그걸로 해. "
나. 명문대 다니는 아들이 목숨을 끊었다.
부모는 자식의 자취방을 차마 정리하지 못했다. 아들의 숨통을 틀어막았던 그 고통이 부모를 짓눌렀다.
그 방에선 숨도 쉬어지지 않는다며 유품정리사에게 의뢰가 왔다.
착한 아들, 모범생, 명문대 재학생으로 자라온 고인은 군대까지 다녀왔지만 여전히 성장의 문턱에서 머뭇댔다. 겁났다.
열심히 살아야지. 버젓한 사회인이 돼야지.
그런 결심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지만,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했던 것일까. 20대 초반의 낭만, 일탈…. 그런 것조차 용납하지 않은 삶에 지쳐갔던 것 같다.
유품정리를 하다 발견한 대학생의 슬픈 일기장. 그리고 뭔가 같은 것을 수없이 찾아본 태블릿 PC.
검색창에 뜬 단어들이 이 시대 청춘들의 넋두리처럼 느껴져 슬펐다.
다. 시신에서 흘러나온 부패물은 하수구까지 흘러갔다. 그동안 아무도 찾지 않았다.
방에는 온통 술병과 담배꽁초 수북한 재떨이. 30대 초반의 죽음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절벽과도 같은 고독.
하지만 유품정리사가 켜켜이 쌓인 고독을 걷어낼 때마다 청년의 좌절, 잠시라도 꿈꿨던 또다른 삶이 드러난다.
사실은 성실한 청년이었다. 없는 살림에 많이 배우진 못했지만 배달일을 하며 성실하게 살았다. 병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에게도 살가운 여자친구가 있었다. 함께 꿈꿀 미래를 감당하기 어려워서였을까. 스스로 밀어내 헤어진 여인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끝끝내 미련 속에 그녀의 손글씨를 품고 최후를 맞았다. 그 청년의 어쩌면 유일한 유품은 전 여친의 메모였다.
" 병원 가자. 힘내자! "
4. 위에서 소개한 글들은 우리의 마음을 찐하게 슬픔에 잠기게 하면서 인간의 죽음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죽는 것 마져 가까운 가족과 친척, 친구들의 애도속에 가지 못하고 시신을 거두어 줄 사람이 없거나 있더라도 거부당하여 자치단체가 장례를 치르는 공영장례가 흔하게 등장하고 그 사후처리를 직업적으로 하는 유품정리사가 등장하였는지 참으로 안탑깝다.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자유와 평등이 어느 사이에 정도를 지나쳐 사회의 구성원들 간의 유대를 끊어 놓거나 느슨하게 하였고 그 결과 누구도 자신 이외에 관심과 배려를 갖지 못하게 하였다.
그 결과 경쟁에서 낙오한 많은 사람들이 외부와 담을 쌓은채 고독사한다.
늙은이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이 정상적인 사회진출이 좌절되어 고독사하는바 이들에 관한 위 전애원부부의 글을 통하여 우리 사회가 원래의 공동체의 모습을 되찿고 개인이 홀로가 아니라 전후, 좌우, 상하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 누구나가 관심과 배려를 받는, 그리하여 죽음에 이르러서도 주위의 애도속에 갈 수 있는 모습으로 하루 빨리 복원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