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간
골3:13-14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학생들과 함께 본 영화 제목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을 용서하는 일, 그건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공지영의 소설을 극화한 것으로 주인공 유정과 사형수 윤수의 만남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세 번이나 죽으려고 했던 부유하고 화려한 여자와 세 명의 여자를 살해한(?) 가난하고 불우했던 남자. 너무도 다르지만, 똑같이 살아있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하던 그들. 처음엔 삐딱하고 매몰찬 말들로 서로를 밀어내지만, 이내 서로가 닮았음을 알아챕니다. 조금씩 경계를 풀고 서로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두 사람. 조그만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의 온기만큼 따스해져 가는 마음. 그들은 비로소,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진짜 이야기’를 꺼내놓게 되면서 두 사람은 상처를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유정의 고백을 들은 윤수의 진심 어린 눈물은 유정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윤수의 불행했던 과거와 꼬여버린 운명은 유정의 마음을 울립니다. 상처로 상처를 위로하고 다독이면서 그들의 절망은 기적처럼 찬란한 행복감으로 바뀌어가지요. 이제, 여자는 스스로 죽을 결심 따위는 할 수 없게 되고, 남자는 생애 처음 간절히 살고 싶어하며 세상에 ‘사랑’이 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의 기쁨을 알게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요? 첫 번째는 그들의 ‘진짜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밖으로만 드러난 화려한 모습 또는 무섭고 끔찍한 사형수의 모습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교도소에서 털어놓으면서 서로에 대해서 이해하게 됩니다. 아름답게 포장되고 꾸며진 모습이 아니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자기 안의 상처를 들추어내는 아픔이 우선이었습니다. ‘이야기’ 그 안에 우리가 살아온 진솔한 삶의 흔적과 우리의 역사가 담겨져 있기에 이야기의 효과는 관계의 질병은 물론 마음의 병까지 낫게 합니다.
두 번째는 ‘공감’입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는데 있습니다. 여주인공 유정은 나이 열다섯 때 친척 오빠에게 강간을 당해 울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려고 하지만 엄마는 집안 부끄럽다고 매몰차게 비밀로 은폐하기만 강요합니다. 도대체 행실을 어떻게 했느냐고 나무라기만 하지, 자신의 아픔을 전혀 공감해주지 않고 외면해버린 엄마를 유정은 증오하며 살아갑니다. 윤수 또한 어릴 때 가출한 엄마, 그래서 엄마의 따스한 손길 한번 받지 못한 그는 애당초 공감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인생이었습니다. 입력되어진 대로 출력된다고 공감 받아 보지 못했던 그는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사형수가 된 냉혈 인간인 그에게 공감은 정녕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그가 자기를 공감해주는 유정 앞에서 조금씩 공감의 마법에 빨려들고 맙니다. 세상에 태어나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을 경험하고, 한번도 배우지 못했던 일을 배우면서 두 사람 사이에 비로소 사랑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는 죽기보다 어려운 용서를 하면서 둘은 사람도 변할 수 있다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들은 어쩌면 이미 딸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는 박 할머니로부터 용서하는 법을 배웠는지 모릅니다. 윤수의 사형 집행을 막기 위해서라면 제 어미도 용서하겠다는 유정의 결심은 상처와 복수가 희생과 용서로 바뀌는 기적을 보여줍니다. 사형수 윤수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하면서 연세 지긋한 노신부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물고기가 사람이 되는 건 마술이고, 사람이 변하는 게 기적이야" 그렇습니다. 정말 사람이 변하는 것 만한 기적이 없습니다. 공감만 해주면 사랑을 알게 되고, 사랑이 있으면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죽기보다 어려운 일이 때로는 너무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놀라운 진리는 ‘용서’속에 숨어있었습니다.
행복한 시간은 다름 아닌 두 사람 모두 한 인격체로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용서하고 타인을 용서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랑받을 때 비로소 살고자하는 열망이 생기고,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음의 상처와 열등감, 쓴 뿌리를 치유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연약함이 가시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떠한 이야기도 죽음에 갈 때까지 비밀이 지켜질 수 있다는 믿음 안에서 고백되어질 때, 그리고 그 이야기에 동감해주는 공감이 있을 때, 상처는 치유되고 용서되어 사랑이 싹트며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따뜻한 행복은 소리 없이 우리의 가슴속에 파고드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