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말씀 2026, 10, 1(목) 찬송 27
말씀: 욥기 9:1-20
제목: 하나님의 공의에 동의하는 욥
묵상하기
하나님이 의롭다는 말에 동조하는 욥이 답답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하는 욥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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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1-11)
욥은 하나님의 공의를 주장하는 빌닷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였습니다. 2절에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그러한 하나님 앞에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것은 자기를 정죄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절에 그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과 변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천 마디에 한마디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지혜와 능력이 어떠합니까? 그의 진노에 산이 움직여지고 땅도 흔들립니다. 그분이 홀로 하늘을 펴셨고, 숱한 별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도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4절에 세상에 이 하나님을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할 존재는 없습니다.
2.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12-20)
욥은 어느 누구도 공의의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물을 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14절에 ‘라합을 돕는 자’들도 그 밑에 굴복하는데, 그 하나님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고 하였습니다. 15절에 그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의로울지라도 대답할 수 없으며, 20절에 자신이 온전할지라도 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음성(기도)을 들었다고 믿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17,18절에 하나님께서 폭풍으로 자기를 치시고, 이유없이 그의 상처를 깊게 하시고, 숨도 쉴수 없는 고통에 두시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가 볼 수 없고 깨달을 수 없어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먼저,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십니다.
우리의 당면 문제는 이 하나님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11절에 내 앞으로 지나가실 때도 볼 수 없고, 내 앞으로 움직이실 때도 깨달을 수 없는데, 그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공의를 나타내실지 어찌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욥이 답답해 하는 것이요, 우리도 답답해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겸손히 이를 인정하고 복종할 뿐입니다.
다음, 나의 기도를 외면하시고 침묵하시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고난 당하는 사람들이 정말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는 것 같은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폭풍으로 치시는 것처럼 상황이 나빠지는데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외면하시고 침묵하시는 것 같은 상황입니다. 그럴지라도 그때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막을 존재는 없습니다. 그 힘과 지혜를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삶을 통해서 그분의 공의를 드러내십니다.
기도: 주님!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폭풍으로 치시는 것 같은 상황에서 공의의 하나님을 굳게 붙들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One word: “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