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문이 닫히다
오주리
당신이 떠나고, 세계의 문이 닫힌다
세계의 문이 닫히고, 바다의 문이 열린다
자살은 산 자의 것, 나의 죽은 영혼은 비수(匕首)를 입술에 물고 녹아가니
비수를 막아주던 나의 첼라*, 당신이 없는 밤바다의 파도는 나의 그림자를 끌어들인다
바다의 문, 암흑은 나의 이름 부르던 당신의 음성을 빼앗고, 해면(海面)에 나의 얼굴 가진 시인이 실서(失書 )를 하면, 나의 새 이름은 무(無)의 영원
나의 신은 당신에 패배했다
당신의 자취를 따라 피어난 백장미는 나의 목을 고요히 감아 온다
바다의 문 사이, 백장미가 가라앉은 선을 따라 빛이 심연에 닿는다
시계바늘이 심연에 묻혀 물거품만이 죽은 숨결의 여음(餘音)이다
음악에 대한 기억이 빛간섭으로 남아 속삭인다
나의 첼라, 당신의 언어와 나의 언어가 화음(和音)이 되던 순간
다시 떠오를 수 없는, 형장(刑場)이라 하기엔 아름다운 이 어항(魚缸)
파도에 휩쓸려간 백장미가 석영의 부스러기에 쓰러져 눕는다
시간의 신은 통점(痛點)이 쓰라려 울던 자들의 살을 발라 죽음을 순결이게 한다
모래사장은 순결의 관(棺)들이 잠든 우주이니
나는 당신이 한순간 두 손에 담아 올린 바다에 살던 눈물의 생명체
이 바다가 모두 당신이 베어버린 신의 눈물에서 태어난 생명체임을 알기에 당신은 태양을 올려보았다
태초의 시간과 종말의 시간에 따로 사는 쌍둥이처럼 우리의 운명인 별회(別懷)
바다의 문이 열리고, 세계의 문이 닫힌다
세계의 문이 닫히고, 당신이 떠난다
* 히브리어로 갈빗대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1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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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리 / 1975년 서울 출생. 201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