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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모 주교의 명상 칼럼] 칼 융의 빛으로 바라보는 나(1)
"당신 페르소나와 그림자에서 벗어나라"
글 | 윤종모 주교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때로 복잡하고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진정한 자신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된다. 평생 스스로도 우울증에 시달렸던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이야기를 귀담아보자. /셔터 스톡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때로 복잡하고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진정한 자신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된다. 평생 스스로도 우울증에 시달렸던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이야기를 귀담아보자. /셔터 스톡
나는 참으로 누구인가 하는 자아 성찰을 위하여 칼 융(Carl G. Jung)의 분석심리학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칼 융의 삶과 주장을 살펴보면, 우리가 명상을 하면서 부닥치는 문제와 매우 비슷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융은 겉보기에는 인정받는 의사이며 교수였으나 그는 삶에서 점점 현실감을 잃어가면서 삶의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는 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어떤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그 욕구에 따라 살기로 결심했다.
그가 무의식 속에서 발견한 것은 거대한 ‘용암의 흐름’ 같은 것이었는데, 그 열기가 그의 인생을 재조명했다. 융의 문제는 일종의 네오테니(neoteny)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네오테니란 숫자로 표시되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어른이 되어도 어렸을 때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개념이다. 그 특성이란 열린 마음, 호기심, 즐거움, 흥분, 웃음, 유머, 장난기 같은 것이다.
네오테니는 비록 나이가 들어 육체는 늙어가도 마음은 영원한 청년을 유지하는 길이다. 나는 이것이 명상에서 추구하는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명상하는 사람들이 융의 빛을 통해서 바라보아야 할 것은 참으로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제는 개체화(individuation)라는 개념이다.
모든 사람은 크든 작든 모두 어느 정도의 신경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신경증의 이면에는 미개발된 인성이 있다. 신경증의 치료는 전인성의 획득에 있으며, 융은 전인성으로 향하여 움직이는 과정을 개체화라고 했다. 개체화는 남들과는 다른 독특성이 있으므로 개체화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 혹은 ‘자아실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개체화 과정을 가지고 있다. 융은 각 사람의 개체화 과정은 독특하긴 하지만, 그 과정에는 보통 네 가지의 일반적인 자원이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명상과 관련하여 의미가 있는 세 가지 요소를 소개한다.
첫째는, 페르소나(persona)를 벗는 일이다.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즉 그의 실제 성격과는 다른 한 개인의 모습이다.
페르소나는 본래 그리스인들이 연극을 할 때 자기가 맡은 역할에 따라 썼던 가면을 말한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리스인들이 연극을 할 때 썼던 가면처럼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직함에 맞는 가면을 쓴다. 융은 이처럼 인간이 쓰는 가식의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어른들이 용납하고, 그에 따르는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행동과 태도를 익히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행동과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가지고 있다.
인간은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이므로 다른 사람의 인정과 보상을 받는 행동과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성격, 즉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위해 ‘나’가 타인에 대해 갖는 성격화된 ‘나’가 곧 페르소나인 것이다.
어느 정도의 페르소나는 사회생활에서 피할 수 없다. 문제는 페르소나가 심각한 위선과 병리현상을 동반하여 자신과 타인에게 독이 되는 경우이다.
페르소나는 순기능도 있으나 과도한 페르소나의 경직성에서 벗어나야 성장하고 치유된다. 과도한 페르소나의 경직성에서 벗어나 영성이 성장한 사람은 명상에서 추구하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의 그림자(shadow)와 직면해서 그림자의 실체를 알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그림자는 우리의 열등감과, 페르소나, 이상 등과 마찰을 빚기 때문에 무의식 세계로 억눌러버렸던 성격의 부정적인 측면인데, 이런 것들은 의식될 기회를 잃어버려 미분화된 채로 남아 있다.
그림자가 억압되고 인식되지 않는 한 그것은 타인들에게 투사되고,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 그림자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이며 동물적인 존재와 같아서 때로는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파괴적인 폭력을 일으키기도 한다. (계속)
글 | 윤종모 주교
대한성공회 관구장과 부산교구장을 지냈다. 신학생 때부터 명상에 관심이 많았다. 20여 년 전 캐나다의 한 성공회 수녀원에 머물며 명상의 참맛을 느끼고 지금까지 치유 명상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명상 초심자와 수련자를 위한 책 '치유명상 5단계(동연)'를 펴냈다.
https://naver.me/5hJF4iHE
[윤종모 주교의 명상 칼럼] 칼 융의 빛으로 바라보는 나(2)
"진정한 자기를 발전시켜라"
글 | 윤종모 주교
우리가 진지하게 자신의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바라보고 그것들의 소리를 들으며 명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으며 영성적인 성장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셔터스톡
우리가 진지하게 자신의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바라보고 그것들의 소리를 들으며 명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으며 영성적인 성장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셔터스톡
무의식의 어둡고 음울한 영역에서 해결되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는 때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폭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일어난 한 예를 들어본다. 조그만 어떤 마을에서 모범생으로 소문난 고등학교 2학년인 한 소년이 아버지와 논쟁을 하던 중에 야구 방망이로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바로 그 소년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런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소년은 사실 아버지의 통제나 간섭 때문에 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하여 아버지가 원하는 모범생의 페르소나를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페르소나가 견고할수록 그의 그림자는 짙어졌을 것이고, 어느 순간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그림자가 자신도 모르게 폭력으로 튀어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림자는 인간이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쩌면 인간이 원하면서도 감히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일 수도 있다.
그림자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우리 내부의 모습이며, 심지어는 우리 자신 역시 그것들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억압과 거부를 통해 그것을 편리하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림자의 크기나 강도는 대체로 그 사람의 성장 체험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환경이 넓고 개방적일수록 그림자는 작고 옅으며, 환경이 좁고 폐쇄적일수록 그림자는 크고 짙다.
넓고 개방적인 환경이란 수용적이고, 개방적이며, 사랑과 존중이 있으며, 비율법적이고, 자존감이 높으면서 여유가 있는 환경이다. 반면에 좁고 폐쇄적인 환경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거부하고 억압한다.
그러므로 이런 환경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 사회적 승인 등이 매우 중요하므로 사람들은 페르소나를 발달시킨다. 이런 환경에서는 호기심이나 모험 같은 것이 용납되지 않아 그림자 속으로 억압되는 것이다.
참된 깨달음을 얻은 현자들의 가르침은 전인성(wholeness)을 지향하고 있다. 전인성은 나 자신의 밝은 면과 마찬가지로, 나의 어두운 면인 그림자까지도 의식 속에서 자아의 일부로 통합하는 것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거부하고 억압해온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고 통합하려고 한 사람들보다도 그림자의 힘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쉽게 정복당하기도 한다.
만일 우리가 진지하게 자신의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바라보고 그것들의 소리를 들으며 명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영성적인 성장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당신이 만약 자신의 그림자를 줄이고 대자유인이 되고 싶다면, 명상을 수련하여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고, 치유를 경험하라. 그러나 그 명상은 반드시 바른 스승을 만나 바르게 하는 명상이어야 한다.
셋째는,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되는 전체 인성을 통합시키는 핵인 진정한 자기(true self)를 발달시키는 일이다.
* 첫째와 둘째는 지난 주 칼럼을 참고.
진정한 자기(true self 혹은 대문자 Self)는 신성한 불꽃으로서,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의 형상(imago Dei)이다.
융의 진정한 자아 개념은 아싸지올리의 ‘보다 높은 자아’ 개념과 비슷하며, 기독교의 영혼 사상과도 통한다.
성장에 대한 프로이드와 아들러의 접근법은 중년기 이전까지의 성장과업에 좀 더 적합하다. 그러나 제2의 사춘기이면서 또 다른 질풍노도기로서의 중년기 이후, 즉 인생의 후반기의 성장 작업은 내부지향적(즉 영성지향적) 이어야 한다.
인생 전반기에 외부세계에서 발견하던 의미를 이제는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야만 한다. 중년기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영적인 위기이다. 그래서 융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했다.
“인생 후반기에 있는 나의 모든 환자들 중에서 그들의 문제가 인생에서 종교적인(영성적인) 조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융은 중년기를 위한 영성학교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명상이야말로 융이 말하는 영성학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명상은 영성학교를 넘어서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수행해야 하는 인생학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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