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키신저와 멍거의 건강장수 비결
‘구구팔팔’(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 ‘무병(無病) 장수’를 꿈꾸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구호입니다. 생활환경이 개선되면서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지만, 건강수명(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상태로 보내는 기간)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이달 초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2022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남자 79.9세, 여자 85.6세로 선진국 모임인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38개 회원국 평균보다 남자가 1.9년, 여자는 2.4년 높았습니다.
건강수명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지난해 출생아가 유병(有病) 기간을 제외하고 건강하게 살 것으로 기대되는 기간은 남자가 65.1년, 여자는 66.6년에 불과했습니다. 장수국가 대열에 올라섰다는 한국의 남·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15~19년을 병마 속에서 보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식의 장수를 축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두 명의 미국 저명인사,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찰리 멍거 전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의 건강장수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지난 5월 만100세 생일을 맞았던 키신저가 지난달 29일 별세했고, 멍거는 100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그 전날 타계했습니다. 두 사람은 숨지기 직전까지 건강의 어려움 없이 왕성한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키신저는 97세를 맞은 2000년 이후 코로나 사태 와중에서도 두 권의 책을 냈고, 세 번째 저서를 집필 중이었습니다. 책만 쓴 게 아닙니다. 올해에만도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느라 포르투갈 리스본에 출장 다녀온 것을 비롯해 미국, 영국, 독일 등 곳곳을 누볐습니다. 키신저는 그러나 의학전문가들이 장수 비결로 꼽는 3대 요소(건강한 식단, 규칙적인 운동, 최소한의 스트레스)와 꽤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습니다.
말년까지 소시지, 슈니첼(오스트리아식 돈가스) 등 기름진 음식을 포식했고, 운동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그의 직업은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도의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미국의 최고위 외교책임자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건강장수의 행운을 누렸는지, 아들 데이비드 키신저가 지난 5월 워싱턴포스트에 ‘설명서’(My father, Henry Kissinger, is turning 100. This is his guide to longevity)를 기고했습니다. “비결은 두 가지다. 첫째는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몰입이고, 둘째는 평생 사명감을 갖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나이를 무색케 한 헨리 키신저의 정력적 활동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최근 인공지능(AI)의 기술은 물론 철학적 문제까지 파고들었고, 지난해 구글 공동창업자인 에릭 슈미트와 그에 관한 공동저서를 펴냈습니다. “키신저는 40세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종일 일한다. 그의 장수 비결이 사명감과 일중독이라고 확신한다.”(에릭 슈미트)
워런 버핏의 직장동료이자 멘토였던 멍거의 건강장수 비결도 키신저와 비슷합니다. 멍거는 평생 피넛과자와 콜라를 달고 지냈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 “다른 사람을 너무 시기하지 않는다” “힘든 일이 있어도 결코 분노해선 안 된다” 등의 좌우명을 새기며 살았습니다.
두 사람의 삶은 세계 최고 장수국가인 일본에 거주하며 평균나이 115세 일본인들의 장수비결을 파헤친 스페인의 두 전문가(헥토르 가르시아, 프란체스크 미라에스)가 쓴 책 《나이 들어가는 내가 좋습니다》 내용과도 맥이 닿습니다. “일본 장수노인들의 공통점은 ‘이키가이(いきがい: 살아가는 보람)’ 정신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늘 활동하며 은퇴하지 않는다’ ‘현재를 산다’ ‘여유를 갖는다’는 게 그들의 특징이다.”
경제사회연구원 이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