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병이 정훈교육 맡아라."
내가 복무했던 수송부대 부대장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그렇게 통보하셨다.
1984년 당시, 정훈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는지 2군 사령부에서 연대 단위에 있던 정훈교육 장교를 각 대대 단위로 확충 배치하는데, 확충할 장교 인력이 없으니 사병 중에서 정훈교육병을 임명하고, 실제 정훈교육 시에는 장교로 예우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지명된 이유는 간단했다.
군경력을 사회에서 그대로 인정해주는 수송 주특기병들은 지원병들이 많았는데, 그들 대부분의 나이는 스무살 전후였지만 난 스물 넷으로 나이가 제일 많았고 이름없는 지방대학이라도 졸업하고 왔기 때문이었다.
지방대 중에도 기계전공이라 정훈교육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군대니까 적당한 이유 붙이고 하라면 할 수밖에. ㅎㅎ
교육 차트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데 다행히 차트글씨 특기병으로 군 복무를 했던 작은형 따라 어깨너머로 흉내를 내본 덕에 차트 작성이 어려울 것 같지 않았고, 고단한 일병 시절 교육 자료 준비를 핑계로 내무반 생활과 점호를 면제 받을 수 있다하니 그보다 더 좋을 일이 또 있을까.
게다가 사병이 일주일에 두시간씩 장교가 되는 일이니 이 어찌 보통 일일 수 있겠는가!
이 보직을 오래 잘 해야겠다 마음먹고 교육 교재로 나온 두꺼운 책을 펼치고 그 내용을 충실하게 읽기 시작했다.
책 제목은 '한민족의 용틀임'
정훈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책이니 당연히 그렇듯 억지 애국과 충성을 강요하는 내용이 주일 것이란 선입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몇 장 안 넘겨 그런 생각은 사라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며 뭔가가 울컥울컥 가슴에서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얼른 돌아가 지은 이를 보니, ROTC 장교로 임관한 역사학도가 쓴 책이었다. 물론 혼자 쓴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역사에 대한 인식과 역사를 통해 나아갈 바를 밝히는 그 내용들이 얼마나 진취적이고 역동적인지 젊은 나를 격동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국난을 극복했던 수많은 전사에는 현대적 전술 개념을 접목하고 대비하여 해석을 해놓아 재미있는 역사소설을 읽듯 숨가쁘게 읽던 그날, 나는 그가 인용했던 시 하나를 읽다가 울컥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 시를 쓴 시인은 훗날 친일파 행적이 드러나 지금까지 뭇사람들의 손가락질 아래 곱게 잠들지 못하고 있지만, 난 그녀의 그 시를 읽고 눈물을 흘렸던 그 공감이 너무 커서 그녀를 군중따라 욕하는 대열에 서고 싶지는 않다.
몇 번의 정훈 교육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딱딱하지 않게 교육이 재미있고 들을만 하다는 소문이 나고 타부대 부대장들까지 애써 찾아와 내가 하는 정훈교육을 듣고가기도 해서 내 어깨에 한참 힘이 들어가던 어느 날의 정훈교육 시간, 나는 마음 속에 품고만 있던 그 일을 실행에 옮겨보았다.
나를 울 수밖에 없이 만들었던 그 시를 정훈교육 시간 중에 직접 읽어주었다.
목소리를 착 내려깔고 ㅎ 최대한 감정의 기복없이 차분하게 읽어나가는데 군데군데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다 읽고나니 다시 울컥한 마음에 사로잡혀 간신히 진정시키고 있는데 부대장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차츰 대대원들 전부가 공감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 순간은 젊음을 나라에 바친다는 한마음이 되어 부대원 모두가 다같이 전우가 되었던 오래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되었다.
그 시를 쓴 분은 짐작하시는 바와 같이 시인 '모 윤숙' 님이셨고, 그 시는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입니다.
서사시와 같이 긴 그 시를 다 소개할 수는 없고
그 일부분만 두 부분 발췌해서 옮겨 봅니다.
**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노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나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레 숨지었나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나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
첫댓글
정훈장교는 아닐지언정,
정훈교육의 적임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지금의 글 내용도 그러하고,
제가 보아 온 것에 대한 느낌이기도 하지요.
모윤숙님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의 내용이
감격적이고 코끝이 찡합니다.
젊은 혈기의 시절에
마음님의 낭독 또한 대대원들에게 감명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요일 아침에 일찍 콜로라도로 향하는 일정의 반복이라 금요일과 토요일이 저에겐 주말입니다.
금요일은 아내와 식구들 장도 봐야하고 밀린 집안일도 해야하니 토요일이 저에겐 글 읽고 쓰기에 딱 좋은 날이지요.
구봉님의 글을 읽다가 백년도 못 산다는 부분에서 김종환의 노래가 떠올랐고 그 생각을 따라가다보니 어느 이름 모를 산야에서 죽음을 맞았을 그 청년 장교의 주검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원래 쓰려던 글은 뒤로 밀려났고 이 글이 앞줄에 섰네요. ㅎㅎ
글이 글을 불러주는 수필방 글과 님들... 늘 반갑고 고맙습니다.
젊을 때의 군 시절이었으니
그럴 수 있었겠네요
시 만큼은 가슴 벅차지요 ~~~~
더러 여학생들은 암송하기도 했던것 같은데
아마 오래전의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나요
80년이면 그렇게 수면 위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을 때이지요 -
최근에야 낱낱이 파헤쳐지지만 ~
유명인사라 불리는 사람중에 지난 행적이 워낙 대조적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그런점을 뒤늦게 알고는
참 얄궂고 세상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지요
제가 다닌 시절엔 교과서엔 없었습니다. 있었다면 읽었을 때 충격 받고 눈물을 보이진 않았을 텐데요. '모 윤숙'이란 시인의 이름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ㅎㅎ
식민의 시대를 살던 지식인들 그들의 정신 세계와 삶은 어땠을지, 저라면 어떻게 살았을지 생각해보곤 합니다. 경제 성장으로만 치달리던 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그 마음들을 짚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저는 근대사에 대한 평가는 가급적 유보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일들에도 군왕이나 정승, 장군등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역사보다 그들과 함께했던 저와 같은 일반 사람들의 흐름을 읽어보려 애를 씁니다.
아무리봐도 마음자리 님은 문과형~
글 쓰는거, 말 하는거..무엇보다 기억력 탁월
장교들도 어리버리, 딱딱한 교관들 많은데..
아무튼 대단하세요..역시!!
그렇지요? ㅎㅎ
저희 형제들 모두 문과형 같은데 우습게 모두 이과 전공을 했어요.
저는 역사 선생이 되고 싶었습니다.
나도 군대 생활할때에 중대에서 정훈 교육을 시키라고 중대장이 명령한 적이 있다
문과가 아니고 공과라도 4년제 대학을 나왔으니 나에게 시킨거 같다
나 말고도 몇사람에게 시켰었다
정훈 교육?
어떻게 시켜야 하나?
난감했는데 뜻밖에 군대 내에는 자료가 많이 있더라
그래서 지금까지 대통령이나 명사들이 발표한 이야기들을 발췌해서 요약해서 발표를 하였다
그랬더니 뜻밖에 잘 했다네?
그래서 나에게만 한번 더 정훈교육을 시킨적이 있다
마음자리님이 군대 정훈 교육 이야기를 하니 나도 하게된다
그런데 마음자리님의 저 위의 글 중 모윤숙 씨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라는 시는 지금까지도
내마음을 사로 잡는 명시 인거 같다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 죽어간 국군의 아픔이 있는 시 이더라
이상입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아... 태평성대님 군 시절에도
정훈교육을 중시하던 때가 있었군요.
북한이 4대 군강령 중 하나로 '전군의 간부화'를 부르짖고 토론을 강화해 사병들의 간부역량을 키우려한다는 것을 알고 그에 대응하여 우리도 정훈교육을 활용해 대응하려했다고 들었습니다.
태평성대님이셨으니 얼마나 정훈교육을 재미있게 잘 하셨을지 짐작이 됩니다.
정훈 교육이 정신 교육 이지요 ^^
몸으로 하는 훈련을 하다가 정훈 교육 시간이 되면
졸기 바빴는데 마음 자리님의 교육은 정말
정신 교육이 되었던듯 합니다 ^^
ㅎㅎ 저도 정훈교육이라면
영화보는 것 빼곤 다 졸았기에,
제가 하는 정훈교육만큼은 졸음 안 오게 재미있게 해보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간부들도 다 좋아해주어서 신이 나서 했었지요. ㅎㅎ
마음자리님께서는 차분하게 잘 가르치지
싶습니다.
상관도 관상에서 마음님의 역량을 봤겠지요.
저 시에 모순이 많아요.
읽어 내리자니 보이네요.
홍성원의 소설'D 데이의 병촌'이
생각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정훈 장교였거든요.
중학생일 때 신문 연재로 읽었어요.
동아일보였던 것 같고.
하숙집 과부한테 연심을 품던데,
손을 만지려다 여자가 다리미로
남자의 손을 지지던데요.
내용은 다 까먹고 그 장면만 생각이 납니다.
예전에 그런 소설이 있었군요.
연심 품고 손 한번 만지려다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다니...
다시는 그런 연심을 핑계 삼은 성희롱은 없었겠지만 다리미로 지진다니 무섭습니다.
요즘에 그런 법을 시행한다면 사회에 일어나는 여러 이해 못할 뭇지마 충동 범죄들이 싹 자취를 감출 것 같기도 합니다.
시낭송을 얼마나 잘 하셨으면
듣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박수를 받았을지
마음자리님의 음성을 유추해봅니다.
군대에서 이런 특별한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거 같아요.
정훈교육~
참 생소하지만 글을 통해 그런 교육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낭송을 잘 했다기 보다는
다들 스물 전후라 가슴이
뜨겁던 나이, 나라를 위해
몸 바친 그 소위의 주검에
저처럼 쉽게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 생활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
무척 많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를 즐겨하는 모양입니다. ㅎ
시인의 다른 시는 몰라도
인용하신 시를 읽고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
기억력이 참 종으십니다.
추억의 앨범 사진첩에서 는
어떤것이 끄집어 나오려는지
궁금해 집니다.
건필 유지하세요.
살아온 궤적 전체를 보진 못하더라도
어느 한 순간의 느낌과 감정들은
제가 처한 상황과 맞물려
공감 진폭이 크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더군요.
저 시도 그랬습니다.
그간 쓰신 글을 보더라도
마음자리님 충분히 잘하셨을거 갈아서
박수 드립니다.
남편 군인시절 교육 기간에는
같이 공부도 했었는데
육군대학 졸업식에는
저에게도 졸업장을 주더군요.
그 시절에는 애국자로 자부심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애국심은 강하고
신앙적 참신앙의 삶도 충실하지요.
고양이가 낮은키 화분을 망가뜨려서
인천 막내집에서 화분 가지고
우리집으로 가는,고속도로에서
옆자리 앉아 글을 읽고
댓글 작성하니 도착지가 가까이 왔습니다.
평화를빕니다.
고양이 참 귀엽게 생겼어요. ㅎ
부군께서 육군대학 졸업하셨군요. 군 간부로 오래 재직하셨던가 봅니다.
그럼요 나라 위해 애쓰셨으니 특히 더 애국자이십니다.
늘 따뜻한 마음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읽기만 해도 이리 마음이
애잔한데, 멋진 목소리로 낭송하면
얼마나 마음이 울컥했을까 싶네요.
본인들이 군인들이라 더 공감이 컸겠지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멋진 목소리를 가지신 마음자리 님
잘 읽고 갑니다
제 나이 스물 넷일 때이니 사실은 감정 기복이 심하게 읽었을 겁니다. ㅎ
시가 군데군데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는 구절들이 있어서...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ㅎ 다행히 제 정훈교육 시간엔 조는 병사들이 없었으니 정말 제가 정훈장교 무끼였던가 봅니다.
구봉님이 강사하셨으면 그 구수한 입담에 인기가 아주 좋았을 것 같습니다.
격랑의 그 시대
10 26, 12 12, 5 18
군 정신교육이 강화되던
레이건 대통령 그 시절
최전방에서 정훈하사 명 받고서
백악관에 감사?편지 쓰고....
모윤숙 시인
진작에 감 잡았더랬습니다 ㅎ
향적님도 정훈하사 명을 받으셨군요. 돌아보면 그때도 참 격랑의 시절이었습니다.
백악관에 감사 편지 또 왜요? ㅎ
목소리 착 내려깔고 '국군의 죽어서 말한다'
왠지 넘나 멋진 서사시였을 것같아요^^
그나저나 신병드라마 유티브로 보셨나요?
2000년도 신병과 맘자리님께서 신병때
하고는 많이 다를려나요?
2000년도에는 PX에서 카드를 쓰고 섬유유연제로 빨래를 하는건 달라졌을지 몰라도
신병 갈구는건 전통이라고 하던데요.
신병이 원래는 웹툰인데요.
넘나 인기가 좋아서 드라마로도 만들었어요.
정말정말 재미있어요. 시간 나실때 강추예요.
지난 번에 추천해주셔서 몇 편 잘 보았습니다. 만화도 영상도요.
내무반이나 PX같은 시설은 많이 달라졌지만 생활하는 것은 비슷해서 옛추억 생각하며 재미있게 보았어요.
@마음자리 아~하 보셨구나 만화도 보셨구나
근데요 드라마가 훨씬 현실감 있지 않나요.
일병 김동우를 못 살게 굴던 상병 강찬석
어쩜 그럴 수가 있는지 정말 맨날맨날
그렇게 당하면 동우같이 했을 것같아요.
성윤모를 혼내주던 중대장님 일장 연설
넘넘 멋있어요. 그~쵸^^
글 잘읽고 갑니다 .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는 별 재미가 없는데
마음자리님의 군대 이야기는 재미있네요.
수송부대 부대장님은 역시 보는 눈이
'매의 눈'이셨군요 .
군대 이야기, 재미 없지요. ㅎㅎ
나무랑님 추천처럼 '신병'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재미있는 이야기 많답니다.
제가 젊어서는 사람들 앞에서 뻥을 잘 쳤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