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군과 전북연합군의 저항은 완강했다. 여기에 사파의 무리 바람세가 천관산까지 가세한 전투는 지리무림의 최고수를 가리려는 한판 대회전이었다.
배수의 진을 친 채 거칠게 반격을 시도하는 그들에게 수방사 남벌작전은 거센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항공모함^^의 형국이었다.
그만큼 수방사에게도 힘든 싸움이었지만, 그럴수록 더이상 지리무림을 춘추전국시대로 놔둬서는 안된다는 대의명분 앞에 수방사 또한 지리개혁의 사명을 외면할 수 없었다.
불패의 신화를 이어가는 '수도 서울의 방패' 수방사에게 이번 남벌은 지리무림의 평화를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어떤 피해를 입더라도 반드시 완수해야할 만큼...
수방사 남벌 야전사령부의 선봉대가 지리산 노고단~피아골 일대에서 수색정찰을 마치고 악양대첩의 전장으로 발을 옮기고 있을 즈음. 영수행님 가제트박 아수라 구례소녀를 주축으로 한 수방사 주력부대는 남벌 특별열차(!)에 오르기 위해 영등포역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28일 오후 3시 30분
온갖 눈치와 욕을 먹어가며 퇴근시간 보다 일찍나온 빨치산 금정역에서 가제트박 형님과 접선후 영등포에 도착한다. 그런데, 영수행님만 나타날 뿐 접선할 전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비상사태를 직감한 빨치산 긴급선을 날리고...
택시타고 이동중이던 아수라와 구례소녀가 사악한 세력의 방해공작으로 인해 차가 막혀 도로에 갇혀 있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아마도 여순공명 왕시루봉이 서울의 지인들을 모두 동원, 논현동에서 영등포로 오는 길목에 차를 집중투임해 교통체증을 유발시킨 것으로 보임..ㅋㅋㅋ)
'도로를 탈출 노량진에서 지하철을 이용하겠다'는 선이 날아들지만 시간상 기차시간을 맞추기는 어려운 상황.
영수행님 주재하에 긴급작전회의가 펼쳐졌다.
자칫하다간 주력전사 3명이 전투에 못 나갈 수도 있는 위급상황이었다.
'수방사 남벌의 역사적 의의와 악양대첩의 중요성을 고려 단 한명의 전사도 포기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수방사 지침에 따라 빨치산과 가제트박 형님이 예정된 열차로 먼저 내려가고, 영수행님은 나머지 전사들을 인솔해 뒤차로 오기로 결정한다.
4시
빨치산과 가제트박 형님이 허겁지겁 열차에 올라 앉아가고...
5시
영수행님 아수라 구례소녀 으악새님 등은 느긋하게 기차에 올라 서서가고...
8시 50분
구례구에 도착한 빨치산과 가제트박은 기다리는 시간동안 운기조식을 위해 배를 채우고...
긴급선을 날린 지리산광년이를 구례구역으로 유도, 접선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10시
주력부대 모두 도착.
급하게 악양으로 말을 몰아댄다. 이랴!~~~
주력부대가 악양에 도착했을 때, 수방사 남벌 선봉대는 거의 섬멸당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피해의 정도가 생각보다 커보였다.
남벌사령관 광야를꿈꾸며님은 심한 내상를 입은 듯 거의 전사 직전이었고 장인선님 또한 텐트 야전병원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노나메기님은 다음날 아침에야 얼굴을 봤을 정도로 일찍 전사했으며, 심원님 따르라님 그린데이님만이 가까스로 정신을 유지한채 여기저기서 날라오는 잔을 받아내고 있었다.
잠시도 쉴틈이 없었다. 저항이 거셀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수방사 선봉대가 이리 큰 피해를 입었을 줄이야...
영수행님을 중심으로 아수라 구례소녀가 포진한 가운데 술비린내나는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수방사 총사령관 영수행님의 총공격 명령이 하달된 것은 밤 11시가 넘은 시각.
오후부터 시작된 초반의 전투가 탐색전이었다면 심야 전투는 지리산 모든 세력이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 아래 모든 화력을 총동원한 역사적인 대전(大戰)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이어지며 불꽃튀는 전투는 더욱 열기를 더해가는 가운데 악양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수차례 잔들이 부딪치더니 이내 각 정파가 숨겨두었던 각종 계략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데자부가 방장산 왕자병의 심각성을 구구절절이 이야기 하며 방장산에게 화살을 날리자 뒤통수를 맞은듯 방장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데자부 네가 나를 배신할 줄이야...!!!) 데자부의 공격에 잠시 당황한 방장산 이내 전열을 정비하더니 "데자부가 오라버니로 부르는 남자들이 섬진강 모래만큼이나 많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맞불 작전을 편다. '오빠들 많은게 뭐가 문제냐'는 듯 되받아 치는 데자부.(데자부님 넘 멋있음^^*)
이에 아랑곳 않는다는듯 빨치산과 심원은 미인계로 유혹하는 데자부의 요염함(?!^^*)에 현혹되어 같은 편임에도 서로 얼굴에 주먹을 들어보이며 데자부를 사이에 놓고 서로 사진을 찍으려는 추태(!)를 연출한다. 그 와중에 심원이 데자부의 무릎에 손을 댄 장면이 다람쥐 형님에 의해 촬영되며 도덕성(!)에 큰타격(??)을 입는다.
처음뵌 피아산방 형님은 폭주족을 연상케 하는 멋진 모습이다. 묵묵히 잔을 비우시는 모습은 무림 검객을 떠오르게하고...(피아산방 형님은 지리산의 레니게이드로 명명되었다^^*)
왕시루봉님은 이쪽저쪽을 오가며 잔을 휘두른다. 수방사 종군기자인 빨치산에게 까지 공격을 퍼부을 줄이야...(술 한잔 제대로 못하는 빨치산 한태님의 계략으로 무려 10여잔이 넘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죽순주 마시고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잘려고 했는데... "전사하면 안된다"고 독려하는 심원님 덕분에 전사는 면했네여^^*)
술의 요정 버드님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맥주를 가져오며 계속 잔을 휘두른다.
한편으로 빨치산에게 은근슬쩍 정보를 흘리는데...
"8월 중순 서울을 치기 위해 홀로 혈로행을 감행할 것이니, 수방사는 각오하랏~~~*^^*"
허걱~~~ 이제는 여자들까지...^^(버드님 8월 중순 설에 오신답니다. 버드님 환영 설 벙개 8월에 있을 예정이니 잊지 마세여.~~^^*)
꽃다지님의 내공또한 만만치 않다. 조금도 흐트러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손에 뭐가 붙은듯 거침없이 빨치산의 옷에 닦으면서 도발해 오는 꽃다지님... 꽃다지님의 내공이 무서운 빨치산 변변한 항의조차 못하고...ㅠ.ㅠ
싸움이 치열해 지면서 음주전이 가무전으로 까지 확산됐다.
무적님이 빠진 부산 핑클(버드 바다 데자부)4인방에 구례소녀가 긴급히 합세해 핑클세력을 급조해내더니 현란한 춤사위와 함께 새야~~ 새야~~ 를 부르며 강변의 정적을 깨놓는다(구례소녀의 몸놀림 보기 보다 꽤 유연했음...ㅋㅋ^^) , 그 옛날 소싯적 진주 나이트 클럽에 죽치고 앉아 있어 '나이트 죽도리'라고도 불렸다는 장이님은 주춤거리며 옛 실력을 보여줄까 말까를 망설이고... 꽃다지님은 조용하고도 잔잔하게 꽃다지를 부른다.
모두가 돌아가면서 한곡조씩을 뽑아내며 여기저기서 노래소리가 울려퍼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영수행님이 마침내 멋진 기타 반주를 곁들이며 왜 가수인지를 보여주던 순간은 이날 가무전의 하이라이트.
멋들어진 영수행님의 노래에 이어지는 앵콜요청. 그리고 영수행님에 열광하며 수방사에 적극적으로 투항하는 부산 핑클 세력. (이때 남부군 부산지구 함락!!!^^*).
반야해지기도 나도 한노래 한다는 것을 시위하려는듯 앵콜 요청까지 받으며 거침없이 몇곡을 연달아 뽑으면서 분위기를 돋군다. 지리노래자랑이 펼쳐진 듯 한 모습이다.(노나메기님에 의하면 잠자다 노래소리를 듣고 영수행님 말고 가수가 또하나 있는줄 알았단다. 해지기 정말 노래 잘부른다!^^*)
시도때도 사라지는 영수행님과 아수라님은 강변을 거닐며 끊임없이 밀담(?)을 나누는 모습이었고('밀어'를 나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음. 구례소녀라고 말 못함....ㅋㅋㅋ), 바다1024님과 여우비님은 배가 출출해진 사람들을 위해 매운탕을 끓이기 위해 분주했고, 심원님과 떠나자님은 사진을 찍기에 바쁜 듯하다. 그린데이님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라져버린 장이님은 샘물님과 함께 둘만의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고...
지리산의 전투에는 철학(!)도 있었다.
둘러앉아 한잔 술을 곁들여 노래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바다님이 물어온다(아프지는 않게 물었서 괜찮았음^^*).
"너무 늦게 묻는 것 같지만... 지난 노고단 정모 때 잘 들어가셨어여?" (그때 바다님을 비롯한 부산팀 일행과는 임걸령 삼거리에서 헤어졌다. 나는 반야봉으로 부산팀은 피아골로...)
(허걱~~) "이런 심오한(?) 질문이..." 마땅한 답을 생각해 내지 못한 나는 그저 "네 잘들어갔습니다." 답할 수밖에 없었다.
8개월 전의 일을 마치 현재형으로 물어오는 바다님의 질문은 마치 한편의 철학을 담고 있는듯 했다. 1년을 며칠처럼 며칠을 1년 처럼 생각하는것 마냥...
바다님은 왜 나에게그런 심오한 질문을 했을까? 보기에 따라 수방사에 대한 일종의 태클일 수도 있고, 아님 자신의 철학적 깊이를 말 해주려고도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건대 가장 정확한 답은 한가지 였다. 그것은...
그냥 심심했기 때문이었다...ㅋㅋㅋ^^*
카페 지리산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과 지리산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대화들이 여기저기서 오간다.
'민중의 한을 담고 있는 지리산. 피의 역사를 안고 있는 지리산. 끈질긴 생명성과 역동성의 지리산' 등등.
섬진강 옆자락이어서 그런지 참세상에 대한 의지로 옛날 섬진강을 건너던 빨치산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했고, 어둠 속을 뚫고 응시하는 지리산 속에 가난한 민중으로 고생하다 인간다운 삶을 향한 바램으로 입산을 결심했던 옛 산사람들의 움직임이 환영으로 보이는 듯 했다.
짙은 어둠속 환한 빛을 비추며 거칠게 오가는 차들 사이로 지리산의 모습은 그저 늠름하기만 했다.
치열했던 만큼이나 전사자도 속출했다.
전북연합군 총사령관 다람쥐 장군께서 새벽에 전사했으며(전북연합군 함락!!), 경남지구의 방장산 또한 일찍 전사해 무림에서 그동안 이름높던 방장산의 '왕자병도검법'이 쇠퇴해 가고 있음을 보여줬다(경남지구 함락!!!) 수방사 또한 광야를꿈꾸며님을 비롯, 동이 트기 한시간전에는 내상을 입었음에도 끝까지 버팅기던 그린데이가 전사했고, 지리산광년이도 새벽 4시를 넘어서며 결국 전사자 명단에 오른다. 꽃다지님도 이상과현실의 호위를 받으며 쓰러지기위해 '야전병원'으로 들어가고... 가제트 형님은 영수행님의 공격신호가 떨어지자 마자 전사해 최단시간 전사자 기록에 오른다. 그나마 버티던 부산 룰라누님과 바다님도 어느순간 부터 보이지 않아 전사자로 처리된다. 빨치산이 공격을 잘 받아내지 못하자 수방사의 전력이 별 것 아니라고 오판한 장이님은 3시가 넘어 스스로 전사의 길을 택한다. 아침에 보니 피아산방 형님도 보이지 않았고 중부지역당 오름 형님도 행방불명된 듯 눈에 띄지 않았다. 모두 전사한 것이다.
이번 전투에 처음 참여한 중부지역당의 활약은 눈부셨다. 수방사의 남벌을 도와 전투에 힘하던 그들은 우군세력이었다.
한편으로 신흥세력으로서 중부지역당의 존재를 지리무림에 확인해준 자리이기도 했다.
수방사를 돕기 위해 중부지역을 대표해 참석한 오름2001님과 지리무림의 큰별이 되겠다는 지리산(智異山)은 악양대첩을 통해 나름대로 전투력이 있음이 검증되었고, 특히 이들이 수방사의 휘하에 들어오길 원함에 따라 수방사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문어발식 세력확장이라는 지리무림의 비난여론에 대비해 남부군에게도 반대급부를 주는 방안을 마련한 수방사는 지리무림에 다음과 같은 포고문을 일방적으로 발표한다.
수방사 포고문(전문)
1.지리무림의 유일 강대 세력 수방사는 중부지역당을 수방사 직할지구로 관리하며 세력이 좀더 확대되어 독립요구가 있을시 중부동맹을 결성 분리독립을 허용한다.
2.수방사는 중부지역당 결성을 온 지리만방에 알린다는 명분으로 중부지역당이 준비할 정모(일명 : 논산총궐기!!)에 적극 참여한다.
3.수방사의 반야해지기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중부지역당 지도원으로 파견한다.
4.세력확장에 따른 다른 지구의 이의를 고려해 대구 경북과 강원지역을 향후 동부연방으로 독립시킨다는 전제아래 남부군 신탁통치 지역으로 인정한다.
각지구의 총사령관들이 전사하고 투항자가 이어지며 수방사에 함락되는 곳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벌이 거의 마무리되는 상황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세력은 여순지구와 사파의 무리 바람세가의 천관산.
진주지구는 수방사의 남벌에 지레 겁을 먹은 듯 퇴폐극락풍뢰도를 쓰는 진주지구장 퇴폐바람이 목숨 보전을 위해 어디론가 줄행랑을 놓으며 사실상 전멸해 수방사가 무혈입성한 유일지구였다. 사실 수방사의 비밀 첩보요원으로 큰아님을 통해 온갖 정보를 제공하던(그렇담 큰아님은 마타하리????..ㅋㅋ^^*) 퇴바의 정체가 밝혀진 마당이라 퇴폐바람의 선택은 현명했다고 할 수 있다.
악양대첩 전날 있은 진주정모 때 음식을 통해 기습해 온 식중독공 세력에 일격을 당해 3일간 전신을 가누지 못하며 쓰러져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어찌됐든 전사를 당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라리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광주지구는 일찌감지 수방사와의 밀약에 따라 협조하기로 한 상태였고, 수방사 남벌을 환영하는 플래카드를 제일 먼저 내걸은 중부지역당은 수방사의 직할지구가 되었으며, 부산은 핑클4인방의 투항으로 비록 황대득님이 끝까지 항전했음에도 불구하고 80%정도 남벌이 마쳐졌다. 경남지역에 대한 수방사의 남벌작전은 방장산의 전사로 완료된 상태였다.
동이 틀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서로를 향해 잔구를 겨눈 수방사, 여순지구, 바람세가 천관산의 전사들은 거바님이 가져온 폭죽을 이용 불꽃놀이를 통해 악양의 밤을 훤히 밝히며 지리무림지존을 놓고 마지막 일합을 겨루기 시작했다.
전북의 봉추선생 방통 거림골바람님.
비록 사파의 우두머리였으나 그의 무공실력은 뛰어났다.
거센 바람을 일으키는 춤사위 신공, 거기에 따라붙는 가공할 주량.
서울의 3.1 독립만세산행에서 선우도량을 일순간에 바람처럼 무너뜨린 그의 독공에 이번에는 광야를꿈꾸며님이 따르라님이 무너졌다. 지리산을 이틀간 오르다 온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거림골바람님의 춤사위 마공은 결코 위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람세가 천관산은 이번 악양대첩에서 수방사에 이은 대규모 세력이 각지구에 소속돼 전투에 임하고 있는 중이었다.
수방사의 핵탄두 구례소녀.
도대체 얼마가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는 신비의 주력(酒力).
악양에 오기전 구례 집에 들러 대량의 술을 가져오는 주도면밀함.
이곳 저곳 거침없이 잔을 휘두르는 '공포음주신공'에 핑클 4인방에 뒤지지 않는다는듯 '환상가무신공'까지 보여주며 전장터를 휩쓸고 다니는 전형적인 킬러의 모습.
구례소녀가 나서는 곳 마다 쓰러지지 않는 전사가 없었으니...
구례소녀. 그녀가 무림에 등장한 이후로 '소녀'라는 말만 들어도 모두가 겁을 낸다는 소문이 돌 만큼 그녀는 수방사의 핵이었다.
천하모사 여순공명 왕시루봉.
이번 악양대첩은 왜 그를 천하모사라 하는지, 여순공명이라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한판이었다.
제갈량이 지리산에 환생했다는 여순 참모장 왕시루봉.
카페 지리무림에서 유일하게 3력(또는 3발)이라 불리는 필력(筆力 글발), 구력(口力 말발), 주력(酒力 술발)을 모두 갖춘 인물.
여순지구 관할지역인 광양 김금숙님과 구례 흐르는물의 지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여순에서 단기필마로 참여해 싸움에 임한 왕시루봉의 계략과 무공은 눈부셨다. 정말 사학하리만큼...
아이리스 대장군으로 부터 '싸움에 나서지 말고 지리산으로 귀향가라!'는 지시를 감히 거부하고 나섰기에 악양대첩은 왕시루봉님에게 배수의 진을 친거나 다름없는 자리였다.
따라서 만일 그가 악양대첩에서 심한 내상을 입었거나 전사할 경우 여순의 명예를 더렵혔다는 이유로 아이리스 대장군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심할 경우 여순문파에서 파문을 당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시종일관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하며 기필코 살려는 의지앞에 여순을 해방시키려던 수방사 남벌계획은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바람세가의 거림골바람과 겨루는 그에게 수방사 구례소녀까지 나서 잔구를 겨누며 수십합이 오고 갔으나 큰내상을 입었음직한 왕시루봉의 정신력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듯 끝내는 쓰러지지 않았다.
왕시루봉과 거림골바람의 겨루기는 여순 와룡과 전북 봉추의 한판이었다. "술자리에도 대의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한잔술에 열마디 말을 덧붙이는 왕시루봉의 계략. 거림골바람과 구례소녀가 응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싸움은 목소리큰 사람이 이기는 법인지라 바람세가가 밀리는 모습이다...ㅋㅋㅋ
사학 전공답게 논리력으로 밀어붙이다가도, 대응이 강할 경우 큰소리로 치고 나가고, 큰소리가 막히면 여지없이 잔을 치켜들며 내려치는 '사학소방신공'. 여기에 불을 끄며 익혔다는, 이른바 밀리는 분위기가 이어질 듯 하면 지체없이 찬물을 끼엊는다해서 붙여진 '특공진화(鎭火)도법'.
지리무림에서 이 도법을 깰 수 있는 유일한 무공은 단 하나 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은 오직 아이리스 대장군의 '일격필살기' 뿐...
종군기자인 빨치산에게 마저 무수한 잔을 날리던 왕시루봉의 치밀한 계략속에 여순은 이번 수방사의 남벌작전에서 생존율 100%를 자랑내며 남부군 유일의 미점령 지구가 되어 수방사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수방사의 남벌을 유일하게 면한 것으로 인해 앞으로 이어지게될 여순의 기고만장과 오만방자.
그들의 호전성을 볼 때 또다시 서울을 정벌하러 오겠다고 떠벌릴 것이 뻔한데...
전북연합군과 여순을 확실히 제압하지 못한채 전투가 마무리 되자 빨치산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한편, 악양대첩이 마무리 된후 수방사의 남벌작전에서 여순이 버텨낸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악양대첩에 참석한 전체 인원중 절반 가까이가 수방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수방사가 특유의 인해전술을 사용하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영수행님 아수라 구례소녀 으악새님 등 수방사 핵심전력이 모두 건재한 상태였고 더구나 수방사 직할지구인 중부지역당 세력의 지원도 가능했던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순을 살려보낸것은 무슨 저의가 숨어 있을거라는 이야기가 떠돌았고, '은밀한 협약이 있었거나 모종의 밀약이 있지 않았겠냐'는 밀약설과 음모론이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왕시루봉이 무림을 선동해 종군기자에게 까지 10여잔을 날리는 급박한 상황이었고, 전선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상황인지라 전술 사용이 다소 효과적이지 못했다. 따라서 고의로 살려보냈다는 사실은 어불성설이다." 라는 수방사 총참모부의 적극적인 해명으로 소문이 잠잠해지긴 했지만, 이 때의 일은 '악양대첩의 미스터리'란 이름으로 풀리지 않은 지리무림의 수수께끼가 되어버렸다.
일본에서의 김대중 납치 , 파리에서의 김형욱의 실종에는 중앙정보부의 개입되어 있다고 다들 믿고 있는 것 처럼 수방사가 여순공명을 살려보낸 데는 무슨 내막이 있을 거라고 하면서...
이날의 진실이 밝혀진 것은 정확히 10년 뒤의 일이었다. 10년 후 발간된 빨치산 회고록 <빨치산의 종군수첩> 중 '아이리스 대장군과의 밀약' 부분에서 그 자세한 내막이 밝혀진 것이다.
다음은 수록된 내용 전문
: "... 악양대첩 하루전인 27일 늦은 저녁 대화방에 빨치산의 요청을 받은 아이리스 대장군이 나타났다. 대화방으로 왕시루봉을 불러내 계속 투항을 권유했으나 왕시루봉이 끝내 말을 듣지 않아 아이리스 대장군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아이리스 대장군은 왕시루봉에게 "어찌 지리산으로 귀향가라는 명을 따르지 않냐"고 하면서 "수방사의 남벌은 대의이니 악양전투에 나서지 말라"고 재차 종용했지만 왕시루봉은 "여순의 명예를 지키려는 저의 저의 충정을 이해하셔서 제발 출정의 명을 내려달라"며 쉽사리 고집을 꺽지 않고 있었다.
아이리스 장군도 더이상은 어쩔 수 없는듯 "그럼 잘 다녀오게나" 라고 말하며 사실상 왕시루봉의 출정에 묵시적 동의를 해주고 말았다.
여순에 무혈입성하려던 수방사의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이었다.
착잡한 심정으로 대화방에 나와 전술을 점검하고 있을 때 여순과 연결되어 있는 핫라인이 울려왔다.
허걱~~~ 대장군께서 친히 내게 전화를 주시다니... 빨치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무선을 타고 대장군의 아리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아이리스예여. 빨치산님~~^^*"
아이리스 대장군의 옥구슬 같은 목소리에 맛이간 빨치산 그리움에 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 아이리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핫라인으로 전화했습니다."
"무슨??? (혹시 대장군이 직접 출병을...)"
"왕시루봉이 출병을 선언한 마당에 여순이 수방사의 강화조약에 서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29일 빨치산님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내여. 저두 꼭 만나고 싶지만 내일 남해지역 일꾼들을 격려하기 위해 현지지도를 나가야 하는지라 시간을 짧게 밖에 못 낼 것 같습니다. 저와 빨치산님은 만리장성을 쌓아도 모자란데 1시간 밖에 못보는 것은 도리어 아쉬움만 크게 남을 것 같아서..."
"음...만리장성이라"...ㅎㅎㅎ. 거기에 혹해버린 빨치산 밍설임없이 대답한다. "그럼 대장군 뜻대로 하셔야지여. 뭐 담에 만나 만리장성이든 천리장성이든 한번 쌓아보자구여...ㅋㅋㅋ^^* (크하하하하!!! )
"그리고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라하시면..."
"왕시루봉을 꼭! 살려보내 주십시요. 꼭!. 절대로 전사시켜서는 안됩니다."
"그건 조금 어려울 듯 합니다. 지리무림의 고수들이 모두 참석하는 자리인데 어찌 왕시루봉을 살려보낼 수 있단 말입니까. 불가능합니다."
"내 그러니 홍치산께 이리 부탁을 드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리무림의 고수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인지라 어느정도의 내상은 감수하겠지만 전사만은 않도록 도와주십시요"
"대장군의 부탁이시지만... 그게... 참..."
"제말은 또다시 순천아낙이 지아비를 찾기 위해 지리무림에 호소문을 띄우는일이 없게 해 달라는 말이요. 지난번 설에서 왕시루봉에 대한 수방사의 공격은 아무리 생각해도 심했습니다. 3패를 당한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어찌 기차에 못 오르게끔 만들어 순천아낙의 맘을 애닳게 할 수 있단 말이요..."
"그건... 그건..."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그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변명할 말이 없었다.
"만일 그때 수방사의 해명이 조금만 늦었던들 아마 여순은 출병을 선언했을 것입니다. 왕시루봉의 여순귀환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내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거기에 순천아낙이 지아비를 찾는 다는 호소문이 지리사회에 발표되고... 내 수방사에 그때만큼 서운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아래에다 장비를 챙기라 지시까지 해놓은 상황이었지만.. . 다행히 수방사 수색대의 노력으로 왕시루봉의 소재가 파악되고, '결코 의도성이 없었다'는 해명을 하기에 나도 그냥 넘어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탁이니 또다시 여순아낙이 속 끓이는 일이 도아주길 바라겠습니다. 왕시루봉만 살려보내준다면 내 조속한 시일안에 아무 조건없는 서울 답방을 준비하겠습니다."
조건없는 서울답방이라... 음... 더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대장군의 말씀 잘 알겠습니다. 수방사가 왕시루봉을 전사시키지 않도록 제가 힘을 써보지여. 단, 다른지구가 왕시루봉을 공격하여 전사시키는 상황에 대해서는 제가 어찌할 수 없다는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푸하하하!!! 알겠습니다. 하지만 수방사가 아닌 다른지구에 왕시루봉이 쓰러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왕시루봉의 내공은 이미 소문이 나 있으니..."
대장군 아이리스. 그녀 이름앞에 붙는 대장군의 칭호는 괜히 붙는게 아니었다. 전사들을 생각하는 넓은 마음. '위대한 대장군의 광폭통치하에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다는 여순의 표현은 어쩌면 그들만의 당연함인지도 모른다.
왕시루봉을 염려해 아이리스 대장군이 베푸시는 하해와 같은 은혜.
아이리스 그녀가 왜 대장군이어야 하는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29일 새벽
왕시루봉과 거림골바람, 구례소녀가 수십합을 겨루는 가운데 내심 왕시루봉을 눕히길 기대했던 거림골 바람님의 기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구례소녀, 왕시루봉 또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영수행님 아수라 으악새님 등이 달려와 인해전술로 구례소녀를 돕는다면 왕시루봉은 금방 전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순만 마무리 한다면 수방사의 남벌은 모두 마무리 되는 것인데...
그러나...
아이리스 대장군과의 약속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모른채 할 수밖에... 먼동이 터오며 전투가 마무리도 접어들고 있는 순간, 수방사 남벌의 대의가 여순의 생존으로 손상되는 상황이었지만 빨치산의 선택은 어쩔수 없었다. 남벌도 중요했지만 아이리스 대장군의 답방에 따른 지리평화가 더욱 중요했기에...
<빨치산의 종군수첩> 중 '아이리스와의 밀약' 중에서...
동이 터오고 있었다.
어둠에 쌓였던 세상이 금새 훤히 밝아져 왔다. 지리산 너머로 붉은해가 쑤욱 얼굴을 내밀며 섬진강을 비추었고, 강물은 햇살에 반사되며 반짝이는 모래알과 더불어 현란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은 이곳저곳에 널려져 있는 술탄들과 전사자들의 모습 속에 어제밤의 상황을 상상케 만들었고, 특히나 일부 전사자의 모습은 처연하기만 했다.
그 때 한명의 전사자가 눈에 들어왔다.
매트리스에 몸을 반쯤 걸친채 쓰러져 있는 따르라. 심한 내상을 입었음에도 간신히 간신히 몸을 추스리며 버텨내더니...... 결국은 야전병원에도 못 들어가고 이렇듯 전장에서 산화한 것이다.
몸을 잔뜩 웅크린 가운데 허리아래쪽만 매트리스에 걸친채 전사해 있는 따르라님의 모습은 처참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누구도 그에게 신문지 한장 덮어주지 않을 만큼 강호는 무정했다. 그 처참한 모습이란...
5.18 처참함도 게르니카 학살의 처절함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았으리니...
50년대 민중들의 고달픈 모습도 60년대의 보릿고개 때의 고통스러움도 이만하지는 못했으리니...
서울에 대패한뒤 내려가던 왕시루봉의 모습도 볼가에게 패해 잠이 덜 깨인채 기차역으로 달려가던 우리누리의 모습도 이보다 심하지는 않았으리니...
몇몇 사람들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사이로 사진기자(?)들이 다가와 그모습을 촬영한다. (심원이 곧 올릴 예정!) 사진을 찍는 심원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만 떠오르는 듯 했다. "퓰리처 상 수상!!!
서울역에서 주무시는 분들이 경악할 만큼, 지하도에서 주무시는 분들이 슬퍼할 만큼, 눈을 뜨고는 못 볼 수 없는 처참하디 처참한 모습의 따르라님.
아~
따르라여 따르라여!!
그대는 어찌 이리도 처참하게 쓰러지셨단 말입니까!
고귀한 따르라님의 뜻을 받든 수방사는 아무 공도 못세우고 전사한 그의 위상을 기려 그에게 지리'무공'(無功)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따르라. 그는 진정한 수방사의 혼이었다.
각지구별 생존자 파악이 시작됐다.
수방사의 생존인원은 7명. 전투에 참여한 15명중 절반정도가 살아 남은 것이다.
남벌 작전에 나선 수방사의 승리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바람세가를 따로 구별한다 할지라도 5명애 불과해 수방사의 생존인원에는 미치지 못했다.
수방사(중부지역당 포함)는 영수행님,아수라,심원, 구례소녀,으악새,빨치산,,반야해지기,지리산(智異山)이 살아남았고, 광주지구는 여우비,바다1024,장천재 등이 살아남으며 젊은 파워를 과시했다. 부산지구는 버드,데자부,황대득님이 살아남아 자존심을 지켜낸 모습이고 전주지구는 거림골바람,떠나자, 이상과현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순지구은 왕시루봉이 살아남으며 생존율 100%를 기록하고...
수방사의 승리가 확인되는 순간 황대득님의 나지막한 음성이 귓가에 날아들었다.
"음... 아직 내무공의 반도 사용하지 않았거늘.. 전투가 벌써 끝났단 말인가... 앞으로 부산은 이 황대득이가 지켜야 겠구만... 부산에는 핑클4인방과 더불어 이 황대득이도 있음을 지리무림은 똑똑히 알아야 될 것이야."
'허걱~~ 아직 무공의 반도 사용 못했다니...'
그날 이후 지리무림의 새로운 강자로 부산 황대득님이 존재가 강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훗날 강호에 그가 뿌리고 다니는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지리산 남부군 부산사수대장 황대득^^*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수방사의 승리를 확인한 총사령관 영수행님, 겉보기에는 말짱하더니 내상이 심한 듯 자리를 펴고 누우며 나지막히 속삭인다. "빨치산 내 잠듦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옆에다 자리를 피며 따라눕는 심원의 코러스 "me too!"
왕시루봉님은 출근하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고,
한켠에서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바다1024와 한잔을 나누는 광야를꿈꾸며님이 시야에 들어온다. .
아침체조를 하는 다람쥐 형님과 솔선수범 뒷정리를 열심히 하는 반야해지기(해지기 정말 착하게도 뒷정리를 도맡았다. 바다님 이상과현실님과 함께...)
구례소녀와 아수라, 왕시루봉을 싣고 홀연히 떠나는 전주의 떠나자.
이른 아침 섬진강가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했다. 언제 전투가 벌어졌냐는 듯 주변은 청소돼 있었고 섬진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지리산에 둘러쌓인 악양벌의 모습을 아슴푸레 보고 있는 옆으로 소주병 40여병과 맥주병 막걸리병 등이 가지런히 정열되어 있어 새벽에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청.사.에.길.이.빛.날.악.양.대.첩.
수방사도 남부군도 전북연합군도 아닌 지리산의 아름다운 사람들 모두가 대승을 거둔 꿈같은 시간이었다.
지리산 카페史에 영원히 남겨질 악양대첩의 승자는 지!리!산!이라 기록될 것이다.
첨뵙는 분들과 인사하고, 오랜만에 보는 님들과도 반갑운 인사를 나누고...
삼삼오오 둘러 앉아 먹는 술과 고기맛은 일품이었습니다. 비록 술은 잘 못마시지만 작은 잔에 한잔 가득따라주는 만큼의 마음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이란 공간속에서 닉네임만 알고 지내던 많은 분들을 실물로 보는 재미는 아마도 오프라인 모임이 주는 독특한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큰어른이신 다람쥐 형님이 주는 삶은 계란이 그래서 더욱 맛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강가에서 먹는 한젓가락의 라면도 왠지 맛이 다르게 느껴지더군여.
정답게 바작 붙어 사진을 찍은 데자부님에게서 누이같은 맘도 가질 수 있었고... 해지기나 지리산(智異山) 에게서 친동생같은 맘도 느낄 수 있었고... 오랜지기 같았던 모든 님들....
끊임없이 공격해 모기떼들의 공격도 정모의 즐거움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밤새도록 오랜 지기를 만난듯이 도란도란 재잘거리는 대화속에 때론 사뭇 진지해지기도하고, 한바탕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기도하고, 맑은 노랫가락이 하늘로 퍼져나가는... 2001년 지리산 여름캠프 악양대첩은 지리산 축제의 현장이었습니다.
지리산은 역시 다르더군여.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의식. 거기에 덧붙어지는 해학. 힘들어하는 자들에 대한 위로. 정말 따듯한 마음의 사람들이 모여 있음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모임이었습니다.
오랜기간 지리산을 맘에 두고 있던 지리산광년이에게 지리산을 말해 주고 함께 걷던 지리산 분들.
지리산에 대한 마음이 지리산으로 인해 상처가 되었던 광년이에게 지리산이 찾아준 지리산에 대한 기쁨은 지리산의 따뜻한 맘이 합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모두들 넘 반가웠고 즐거웠습니다. 화개동천에서 함께 있지 못했음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추억에 남을 즐거운 여름캠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