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장성해 나가고 이제 식구라곤 집사람과 나 달랑 둘만 남았으니
제사음식도 오래간다. 예전엔 생선도 민어 조기 각 한 손씩, 돔도 큰 놈을
쓰다 보니 그것을 소진하는데 한 달이 걸릴 때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생선도
한 마리씩만 사고 크기도 작은 것으로 줄였다.
어릴 때는 다 같이 못살았으므로 제사음식을 넉넉하게 장만해서 이웃들과도
갈라 먹었다. 새벽에 일어나 먹는 남의 집 제삿밥과 고기반찬은 별미였다.
그런 연유로 도회지에서 헛제삿밥을 파는 곳도 있었다. 부산에서도 시립박물관
뒤편 도로가에 헛제삿밥 식당이 있었으나 그래에는 문을 닫았는지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생선뿐만 아니라 나물도 마찬가지다. 조금씩 하더라도 제사음식은 가지 수를
채워야 한다. 3탕 5 채란 탕은 육류, 문어, 조개류로 만든 것과 도라지, 고사리, 콩나물,
무, 근대나 어린 배추등 푸른채소류를 말하는데 도라지와 고사리는 빠지지 않는다.
더구나 제사 나물에는 마늘이나 고춧가루 등 양념을 하지 않으므로 입에 당기지 않으므로
오래간다.
제사상에 고사리가 빠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백이숙제의 고사와 관련이 있지 않겠는가 싶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일흔 편의 열전 중 첫 번째로 고죽국 군주의 두 아들인 백이와 숙제의
고매한 인품을 허유 무광과 대비하면서 그려 나간다.
고죽국 후작인 삼 형제의 아버지 묵태초는 삼남 숙제에게 군주 자리를 물려주려 했다.
묵태초 사후, 백이는 부친의 뜻을 따르고자 했지만 숙제는 관례에 따라 큰형 백이에게 왕위를
양보했다. 이에 백이는 막내아우를 아낀 부친의 뜻이라며 사양하고 나라 밖으로 피신해 버렸다.
이에 숙제도 형제간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형을 따라 도망쳐 버리는 바람에 그 나라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둘째 아들 아빙을 왕으로 세웠다.
이후 백이와 숙제는 서백(西伯) 희창(姬昌), 즉 미래에 주문왕으로 추존될 이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으나 이미 서백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슬픔에 잠겨 있던 백이와 숙제는 서백의
아들 무왕이 부친의 상중에 은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그리고 무왕의
수레를 말고삐를 잡아 막으며,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아직 장사도 지내지 않았는데 전쟁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주나라는 상나라의 신하 국가인데 신하가 임금을 주살하려는 것을 어찌 인(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라며 만류하려다가 목숨을 위협받았다. 그나마 강태공이 형제를 죽이려는 무왕과
신하들을 만류하며 "이들은 의인들이니 죽여선 안된다"라고 변호해 형제는 목숨을 건졌다.
무왕의 주나라가 강국이 되자 형제는 주나라 백성이 되기를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에 은거해 고사리(薇)를
캐 먹으면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야사에 따르면 나중에 주나라 백성 중 한 사람이 "어차피 이 수양산도
주나라의 땅이 아닙니까?"라고 하자 형제는 크게 상심하여 결국 고사리까지 캐 먹지 않고 스스로 굶어 죽었다.
주나라의 곡식을 먹느니 굶어 죽기 택하는 지조와 절개에서 고사성어 불식주 속이 나왔다.(위키에서 퍼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