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2.土. 맑음
거실 한 쪽 벽에 15호 크기 그림이 두 점 걸려 있다. 너덧 명의 아이들이 파도에 가볍게 흔들리는 조각배에 타고 재미나게 놀고 있는 그림 한 점과 싸릿대로 낮은 담장을 친 지붕이 붉은 양철집이 양지쪽에 자리 잡고 있는 풍경이다. 그래서 그럴까, 클럽 회장 댁 거실에서는 짭쪼롬한 갯냄새를 실은 바람이 간간이 갈매기를 실어 나르고, 밀려 오가는 파도의 율동을 타고 고래가 자맥질하고 홍어가 춤추듯 유영하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온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연이 물과 바람으로 빚어놓은 풍광 속에서 은근히 익어가는 섬마을 정취와 따스한 인정도 굽이굽이 흘러넘친다. 남해 끝 어느 바다와 섬이 어우러진 눈 시원한 경치를 통째로 거실 안에 들어 앉혀놓고 우리 모두는 그 진경珍景을 날로 즐기고 있다. 우리들은 그 품 안에서 먹고, 마시고, 떠들고, 이마를 맞댄 채 침을 튀겨가며 지난 일 년 동안 마음에 낀 주름과 땟물을 씻어 낸다. 그 흥겨운 몇 시간에 마치 신바람을 일으켜 난장으로 한 마당 놀고 난 것처럼 몸과 가슴이 후련해진다. 창밖에서는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 어느 토요일 밤이 낙지가 뿜어놓은 먹물이 흘러내리듯 어둠에 짙어간다.
집에 도착한 순서대로 상을 마주하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정성들여 준비한 음식이 이 집 마나님께서 정한 순서대로 하나둘 상에 올라온다. 오늘 모임의 명분을 만들어 준 방금 담근 새빨간 김장김치가 굴을 머리에 이고 접시에 수북하게 담겨 올라오고, 고등어를 숭숭 토막을 쳐서 묵은지에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와 대파와 생강과 간장을 선뜻 부어 자박자박하게 조린 고등어조림, 오들오들한 뼈가 어슷히 박혀있는 돼지고기 보쌈이 연이어 나오고, 파와 버섯을 버무려 넣은 굴전과 삼삼하게 간을 맞춰 입에 쩍쩍 달라붙는 싱싱한 조기 매운탕, 그리고 가을 햇볕에 쫀득하게 말린 장어를 대파와 버섯과 무를 넣어 고실고실 우려낸 장어탕이 또 나온다.
소주와 매취와 칡술 맛은 알겠는데 식도를 찌르르 울리며 내려가는 중국산 고량주는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른 채 몇 모금을 들이킨다. 한참을 먹고 마시고 거나하다보니 가장 늦게 선을 보인 가격이 만만치 않은 21년 산 로얄 살루트가 쓴 소주만도 못한 대접을 받게 된다. 하기야 소주든 막걸리든 양주든 고량주든 뱃속에 들어가 일단 섞이고 보면 세상이 참이슬 뚜껑만 하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때부터 모든 액체는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고 그냥 입에 털어 넣는 평등한 대접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장서서 깃발을 휘두른 클럽 회장 님 덕분에 자유와 평등을 모처럼 만끽한 쾌통한 하루 저녁을 흥겹게 보낸다.
멋진 시간과 맛난 음식을 준비하시느라 노고를 아끼지 않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배가 터질듯 부르니 마음이 든든하고, 분위기가 흥겨우니 뽀땃한 즐거움이 가슴 가득한 참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 토요장달 뒤풀이 번개를 온몸으로 맞으며 -)
첫댓글 걸판지면서도 소담스런 안주에다 정성이란 고명 들어가니 둘러앉은 선달님들 술맛이 절로 나고 온 세상이 참이슬 뚜껑만 해지고 . . . 글을 읽다보니 나도 한 자리 차고 앉아 취해가는 느낌이 듭니다. 참 부러운 술자리외다, 꿀꺽!!
12월이면 이런 날들이 많다면서요? 후덕하신 긴울림님은 더욱 이런 자리가 많으시지요? ... 기분 좋게 거나해진 모습이 그려집니다.
제가 다 완벽한데ㅋㅋㅋ 딱 하나! 술을 못 합니다. 두려움이 많다고 할까.... 다음 날 아플까 두럽고, 취해서 실수할까 두렵고, 내 아닌 다른 것이 튀어나올까 두렵고.... *^^* 그래서, 저는 술 잘 마시는 분들 부러워합니다. 특히, 이렇게 정성 듬뿍 들어간 안주로 좋은 사람과 유쾌한 시간을 더 더욱 부러워합니다.
다 완벽한 호밀밭의파수꾼 님, ㅋㅋㅋ 모놀 까칠녀 비움은 항상 확인을 필요로 한답니다. 다른 것은 완벽한 걸 제가 믿겠는데, 한 가지만 더 확인하고 싶어요. 오늘 내로 비키니 수영복 사진좀 올려주세요. 눈알 뻐근하게 기다릴게요.
ㅋㅋㅋㅋㅋ 허걱! 비움님께 바로 멱살 잡혔넹 ㅋㅋㅋ 하루도 못 지나 이실직고 해야 하는 제 심정 헤아려 주십시요! 헛점투성입니다. 특히 목아래로 내려 갈수록 더 가관이라.... 차마...... 으흐흑흑흑흑 ..... 긴울림님과 함께 하는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5등신 사진 올리겠습니다. *^^*
좋은날 되시며오늘도 행복 하세요~~~~~~*
하루밤에 다 먹기엔 너무나 아깝습니다...어찌나 표현을 잘 하시는지...제 입에 침 고인 것 보이시나요? ㅎㅎ
"자박자박" "오들오들" "고실고실" 이런 말들을 의태어라고 하나요? 우리말 표현이 참으로 이쁜게 많습니다
한밤중에 괜히 봤어..어 배고파,.안주가 너무 많아요..하나 같이 맛있는,,, 저렇게 많이 먹어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