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산111-3
기본정보
의성 제오리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제오 2길[제오리 111 외] 1,656㎡에 산포하고 있다.
중앙 고속 도로 의성 IC에서 의성 읍내를 벗어나면 ‘공룡 발자국’이라 쓰여진 안내판이 있고,
국도 28호선 의성에서 영천 방향으로 내려가다 10㎞ 지나면 사곡이라는 마을로 좌회전하는 안내판이 나온다.
이후 약 2㎞ 정도 가면 공룡 발자국 화석지가 자리하고 있다.
공룡은 중생대의 쥐라기부터 백악기에 걸쳐 번성했던 길이 5∼25m의 거대한 파충류를 통틀어 말한다.
의성 제오리의 공룡발자국화석은 의성군 관내 지방도로 확장공사 중 산허리 부분의 흙을 깎아내면서 발견되었다.
화석은 중생대 백악기 때의 것으로 약 1억 1,500만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발목코끼리룡 등 3종류의 초식공룡발자국과 육식공룡인 한국큼룡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대·중·소형의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의 발자국이 동시에 발견되어 공룡의 서식지였음을 짐작게 한다.
의성 제오리의 공룡발자국화석은 발의 크기, 보폭, 걷는 방향 등을 알 수 있어 당시 공룡의 모습과 생활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373호]
#4. 고운사
저승의 염라대왕이 묻는다. “자네, 고운사(孤雲寺)는 다녀왔는가?”
세상을 떠나 하늘에 이르면 염라대왕이 그리 묻는다고 했다.
“고운사엔 다녀왔는가?” 해동제일의 지장도량이라 불리는 고운사 일주문에 발을 들여야
염라대왕의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의성의 동북 끝단 구계리에는 ‘구름을 타고 오른다’는 등운산이 있다. 산의 서쪽 사면을 타고 흘러내린 산자락은
반쯤 피어난 연꽃 형상이다. 그 꽃 속에서 물이 솟아 안망천으로 흐르는데 꽃이 핀 자리, 천(川)이 시작되는
자리에 681년 의상대사가 절을 짓고 고운사(高雲寺)라 했다.
*.고운사 가운루
신라 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신라 최고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고운은 12세 때인 868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6년 만에 과거에 합격했고,
여러 벼슬을 지내며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최치원은 42세 즈음 관직을 버리고 세상을 떠돌다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고운사의 가운루와 우화루는 그가 유랑할 적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가운루의 원래 이름은 가허루(駕虛樓)였다. 이는 도교 사상이 담긴 이름이다.
최지원이 품었던 이상세계로의 간구 또한 깃들어 있다.
고운 최치원이 거처간 뒤,
그의 자(字)를 따 ‘높은 구름(高雲)’을 뜻하던 고운사는 비로소 ‘고독한 구름(孤雲)’ 고운사가 되었다.
*. 공민왕의 현판
현재 2개의 가운루 현판 중 누각 바깥 처마에 걸린 행초서 글씨는 공민왕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공민왕은 내란을 겪으면서 노국공주가 세상을 뜨자 실의에 빠져 전국을 유람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고운사를 찾아 현판의 글씨를 남겼다.
구름에 몸을 싣고 세상사를 잊고 싶어 한 당시 공민왕의 심경이 담긴 어필이다.
노국공주를 잊지 못하는 공민왕의 애틋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 연수전(1)
고운사는 고려시대와 조선조에 걸쳐 여러 번 중창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군의 전방기지로 삼았다.
특히 연수전(延壽殿)은 영조 20년(1774)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한 전각으로
1887년 다른 전각들과 함께 중수됐다. 1902년에는 고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새로 지었다.
약사전 맞은편에 품위 있게 낡은 연수전이 보전되어 있다. 나침반의 바늘이 꼼짝하지 않을 정도로
기가 센 자리라 한다. 대문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태극 문양에 문득 저릿하다.
일제강점기 동안 고운사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다.
*. 연수전(2)
#5. 사촌마을, 사촌가로숲
1).사촌마을(沙村마을)
사촌마을은 고려중기 출장입상(出將入相)의 훈신(勳臣)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의 후예인
감목공(監牧公) 김자첨(金子瞻)이 안동(安東) 회곡(檜谷)에서 1392년 이곳으로 입향하여
중국의 사진촌(沙眞村)을 본 따 사촌(沙村)이라 하였으며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 등
많은 유현들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점곡길 17
054-830-6355
기본정보
사촌마을은 고려중기 출장입상(出將入相)의 훈신(勳臣) 충렬공(忠烈公) 김방경(金方慶)의 후예인
감목공(監牧公) 김자첨(金子瞻)이 안동(安東) 회곡(檜谷)에서 1392년 이곳으로 입향하여
중국의 사진촌(沙眞村)을 본 따 사촌(沙村)이라 하였으며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천사(川沙) 김종덕(金宗德) 등 많은 유현들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 후 1750년경 병촌(屛村) 유태춘(柳泰春)이 이곳에 이주하여 수백년 동안 안동김씨(安東金氏)
풍산유씨(豊山柳氏) 등이 세거한 반촌마을이며 임진왜란과 명성황후 시해 때 의병을 주도한 마을이기도 하다.
사촌마을은 풍수상의 명당으로 마을 뒷산으로는 문필봉이 버티고 있고, 왼쪽으로는 좌산이 있어 좌청룡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우측은 광활하여 우백호가 없었다 한다. 그래서 비어 있는 우측을 보하기 위하여
사촌의 서편 매봉산 기슭을 따라 길이 약 1,040m, 폭 40m의 방풍림을 조성하여 비보하였는데
이것이 의성 사촌리 가로숲이다.
마을 주변은 경관이 뛰어나고 전통마을인만큼 유적과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김치중(金致中) 의사의 전적지로 유명한 건마산성과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강학처였던
영귀정(詠歸亭) 등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의성 만취당(晩翠堂)은 1582년 퇴계(退溪)의 제자
만취당 김사원(金士元)이 지은 집으로 규모가 웅장하고 건축 양식이 특이하다.
또한 사촌마을은 주요 유적들과 마을사람들의 살림집들이 한데 붙어 있다.
그밖에 유적으로는 사촌리 후산 정사, 사촌리 향나무 등이 있다.
2).사촌가로숲
사촌가로숲
의성 사촌리 가로숲은 고려 말에 안동 김씨인 김자첨이 사촌으로 이주해 오면서 마을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림을 조성하며 생겼다.
이주 후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설과 샛바람을 막아 삶의 터전을 보하려는
선현들의 혜안이 있어 방풍림으로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점곡길 17
054-830-6549
기본정보
의성 사촌리 가로숲은 고려 말에 안동 김씨인 김자첨이 사촌으로 이주해 오면서 마을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림을 조성하며 생겼다.
이주 후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설과 샛바람을 막아 삶의 터전을 보하려는
선현들의 혜안이 있어 방풍림으로 여러 종류의 나무를 심었다.
이후 마을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농사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약 6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의 역할 외에도 아름다운 풍광을 통해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명승지가 되었다. 현재는 경상북도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풍치림이다.
이곳은 조선 선조 대에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과도 관련된 곳으로 전해오고 있기도 하다.
점곡면 사촌리 356번지 일대에 있으며, 1999년 4월 6일 천연기념물 제 405호로 지정되었다.
의성 사촌리 가로숲의 총 면적은 3만 7,164㎡ 정도이며, 길이는 1,050m에 이른다.
부근에 있는 점곡 초등학교 운동장 길에도 은행나무가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점심식당: 의성마늘한우프라자 ( 054- 832 - 4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