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연령화·흉포화하며 갈수록 늘고 있는 소년범, 그리고 그들이 갇힌 소년원. 그 안에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의 꿈과 미래는? 본지 취재팀은 소년범죄의 실태와 원인, 그리고 해결책을 찾아보기 위해 서울과 안양, 대덕소년원에 직접 들어갔다. 이삼일씩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취재한 사연들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 지난해 2월 절도죄로 대전 대덕소년원에 들어온 정원일(18·가명)군.
소년원에 수용된 지 1년이 되도록 아무도 면회 오지 않는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9세)때부터 몇번 가출하면서 타락하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좀도둑질도 했다. 하지만 장사를 하는 부모도, 학교선생님도 "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고 한다.
중1 때인 1997년 그는 정육점에서 돈을 훔치다 붙잡혀 처음 가정법원으로부터 보호처분을 받았다. 그후 춘천소년원(97년)·서울소년원(98년)·광주소년원(2000년)을 거쳤으니 이번이 네번째다. 팔에 거미 문신을 새긴 그는 "내겐 아무도 없다"고 냉소했다.
# "울 엄마다!" "올텐데, 온다고 했는데…."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해 12월 24일 안양여자소년원. 방마다 쇠창살에 매달린 소녀들의 시선이 바깥으로 향했다. 1년 중 하루종일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날. 하지만 이날 부모를 만난 소녀는 1백40여명 중 60여명뿐이었다.
장미향(14·가명)양의 부모도 오지 않았다. 이달 말 6개월간의 소년원 생활을 끝내고 퇴원하지만 張양은 청소년 쉼터에서 살게 된다. 아버지와 계모가 소년원에 `자녀 포기각서`를 냈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무도 오지 않을거라 생각했어요." 張양은 눈물을 훔치며 이를 물었다.
무관심에서 오는 불안과 외로움.
취재팀이 세 곳의 소년원생들에게서 받은 공통된 느낌이다.
군대 막사를 연상시키는 관물대. 잠잘 때도 미등이 켜져 있는 방. 그리고 쇠창살. 화장실까지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세상과 격리된 채 가슴 졸이는 아이들.
그들 중 상당수는 쉽게 도덕을 일탈하고 미래를 포기하려는 듯했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고 따뜻하게 대하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많은 아이들은 내팽개쳐져 있지요."
안양소년원 김장수 과장은 "그래서 쌓인 불안·소외심리가 또다른 비행을 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 피해자는 바로 자기자신이자 이 사회다.
취재팀은 지난 연말 세군데 소년원생 1백6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16%는 "가족이 면회를 전혀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54%는 고민거리나 신상에 문제가 있을 때 `친구나 선후배와 상의한다`고 답했다. 10%는 `아무와도 상담하지 않는다`였다. 첫 범죄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도 또다른 발견이었다. 앞서의 鄭군처럼 처음으로 보호 등의 처분을 받은 시기가 12∼14세인 경우가 20%나 됐다. 다섯 중 한명 꼴이다. 60%는 15,16세 때였다. "어려지고 흉포화하는 경향이 서서히 진행 중"이라고 소년원 관계자는 말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거의 같다. "범죄 연령은 우범 소년에 대한 가정과 학교의 무관심이 클수록 낮아진다."(연세대 사회과학연구소 이창무 박사)
"특히 학교가 본연의 교육을 지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형사정책연구원 정재준 연구위원)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청소년 범죄자의 평균 연령은 66년 18.5세에서 2000년 16.7세로 낮아졌다. 5년 전에 비해 청소년 인구는 3.8% 줄었지만 그들의 범죄는 오히려 21.8% 늘었다. 재범(再犯)률도 갈수록 높아져 간다.
법무부 이영면 사무관은 "특히 여자소년원생들이 죄의식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년원 취재는 이렇게 터널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취재팀은 그 속에서 어떤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교도소와는 달리 원생들에게 검정고시 또는 각종 자격증을 따게 하는 전문교육기관(특성화 학교) 성격이다. 수용경력도 전과(前科)로 남지 않는다. 수용대상은 만 12∼19세의 소년·소녀다.
죄질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비행으로 보호처분 경력이 몇번 누적되면 소년원 수용대상이 된다.
시설과 운영 면에서 한국의 소년원은 세계적 모델 케이스다. 그래서 종종 선진국 법무장관 등이 견학을 오곤 한다. 두명당 한대 꼴로 컴퓨터가 설치돼 있고 노래방과 DVD 감상실도 있다. 안양소년원은 유일한 여자소년원이고 대덕소년원은 권투·태권도·볼링 등 체육종목을 지도한다. 몸이 불편한 원생들을 별도 수용하기 위한 의료소년원도 지난해 경기도 안산에 생겼다.
(中)낙인 때문에 성인범으로:사회로 돌아가도 `전과자` 취급만
게재일 : 2003년 01월 22일 [9면] 기고자 : 글=김기찬·이무영·이철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지방의 한 대학에 합격해 3월에 대학생이 될 그를 소년원이 특별 배려한 것이다. 朴군은 지난해 2월 이곳에 들어와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11월에 수능시험을 봤다.
더 갇혀 있어야 할 처지지만 뒤늦은 면학열이 그에게 새 생활을 시작할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부모와 소년원 교사 말고는 대학에 다니게 된 일을 일절 비밀로 하고 있다.
"선배와 친구들을 피하려고요. "
朴군이 경찰의 표적이 된 건 중2 때부터다. 친구들과 어울려 폭력·절도·날치기 등을 저질러 다섯번을 경찰서에 들락거렸다.
"오토바이 날치기만도 스물두번을 했어요. 친구들의 꾐과 협박에 매번 넘어갔지요. 풀려나면 항상 선배와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와요. 집과 학교에선 `내놓은 놈`이 돼버렸지, 그러니 결국 끼리끼리 조직원처럼 어울리게 된거죠. `이러면 안되는데…`하면서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어요."
그는 자신을 묶고 있는 범죄 사슬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덕소년원의 모일광(16·가명)군은 좀 다른 얘기를 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학교 안팎에서 비행소년으로 낙인찍혔다고 한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술과 담배를 배웠다. 폭력과 갈취를 `업`으로 삼은 것도 그 무렵이다. 문신도 새겼다. 牟군 역시 퇴원시기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불안해한다. 불량한 친구들도 문제지만 그는 "경찰이 더 두렵다"고 했다.
"아는 형사들이 저를 만나면 다짜고짜 붙잡고는 관내에서 터진 사건을 추궁합니다. 옆에 부모가 있든, 또래 학생들이 있든 상관하지 않아요. 하지도 않은 일을 제가 한 것으로 꾸민 적도 있었어요. "
학원 폭력을 집중 단속하던 1998년 12월에는 형사가 학교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촉법소년`이란 낙인-. 牟군이 학교를 더 이상 다닐 수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했다.
소년원 아이들은 이렇게 증후군들을 앓고 있다. 원생 1백6명을 대상으로 한 취재팀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자.
절반(49%)은 사회에 나갔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을 `범죄의 유혹`으로 꼽았다.
다음은 `사회와 가족의 냉대`(26%)다. 심지어 71%는 `아무 잘못도 없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은 적이 있다`고 호소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이들을 다시 비행을 저지르게 만든다"고 장재원 대전소년분류심사원 교사는 단언한다.
66년 4.6%이던 청소년 재범률은 지난해 36%로 뛰어올랐다(형사정책연구원 통계). 그 이유가 무엇인지가 소년원생들의 입을 통해 새삼 확인된 것이다.
張교사는 "소년원은 교도소가 아닌 특수교육시설인데도 사람들은 소년원만 갔다오면 `아주 나쁜 애`로 여긴다"면서 "그래서 원생들에게 `여기서 생활했다는 얘기를 절대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사회적 낙인이 가장 극복하기 힘든 과제니까 아예 과거를 숨기고 살라는 얘기지요."
소년범들의 범행 동기 역시 불량 친구들과 어울린 탓이 가장 컸다. 취재팀 설문조사 결과 77%가 "친구들과 함께 범행했다"고 대답했다.
종합해보면 ^친구나 선·후배 관계가 나쁜 경우^부모와 학교의 무관심^물질 만능에 젖은 도덕적 혼란^사회의 편견과 의심^장래에 대한 두려움 등이 그들을 비행과 범죄로 끌고 갔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제거되지 않으면 그들은 대부분 재범을 하고, 결국 성인범으로 커갔다.
아직 철이 덜 든 범죄 불감증도 거기에 한 몫을 한다. 이런 소년·소녀들을 바로잡아나갈 방법은 뭘까.
경기대 이민식(범죄학)교수는 "피해자와 가해자, 경찰과 지역사회 민간기관이 협조해 비행에 영향을 준 원인을 없애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해법이다. 하지만 사실 그것 외엔 방법이 없는 듯했다. 결국은 어른들의 정성과 인내심에서 시작돼야 하는 것이다.
소년원을 두번 드나들다 끝내 전과 1범이 된 이종훈(21·가명)씨는 소년범에서 성인범으로 성장한 전형적인 케이스다.
金씨는 사업을 하는 부모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다. 그러나 중1 때 같은 반 친구와 사소한 시비로 싸움한 게 계기가 돼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그 때부터 선생님에 대한 반감이 커갔고, 불량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이듬해부터는 아예 학교에 가지 않다시피했어요. 잘못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지요. 출석 일수가 모자라 중2 때 자퇴했고, 부모의 성화와 야단을 피해 집을 나왔죠. "
가출한 그는 절도와 카드 사기 같은 것을 배워 써먹으면서 소년원 신세를 지게 됐다. 소년원을 나온 뒤 중학 중퇴 학력의 그로서는 할 일이 마땅찮았다. 어울릴 만한 사람이라곤 주변의 불량 친구들 뿐이었다. 그는 2001년 여름 여중생을 성폭행해 교도소에 수감됐다.
金씨를 조사했던 경찰관은 "학교가 문제였다. 한번의 잘못을 계도하기보다 낙인을 찍어놓고 조그마한 사안에도 과도한 체벌을 하는 등 반감이 생기게끔 다뤘다. 나도 그 나이에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렇게 비뚤어졌을 것 같아 무서웠다"고 말했다.
엄격한 金군의 집안 분위기도 그랬다.
한순간의 잘못을 누군가 바로잡아주지 않으면 `반감→죄의식 부재→범죄의 덫→문제아 낙인→재범→성인범`이란 악순환에 빠진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소년기에 1∼2회 범법한 청소년 중 56%가 성인범으로 이어졌고, 3회 이상이면 74%, 5회 이상이면 80% 이상이 성인 범죄자가 된다.
서울 강남경찰서 박태운 여성청소년계장은 "사소한 잘못에도 경찰서로 소년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