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하 눈눈이이)는 범죄 영화의 익숙한 내러티브에 기초해 있다. 뛰어난 지능의 범죄자와 검거율 100%를 자랑하는 형사의 대결은 범죄 영화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설정 중 하나이다. 이런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초반에는 지능적 범죄자의 현란한 범죄 수법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형사의 활약이 돋보인다. 힘의 중심축이 범죄자에서 형사로 서서히 넘어가는 과정에서 극과 극으로 대치하고 있던 두 사람 사이의 날카로운 감정이 의외의 방향으로 변모되기도 한다. 팽팽한 라이벌 의식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미묘한 우정까지 형성되는 과정이 또다른 재미를 준다. [눈눈이이]는 이렇게 익숙한 범죄 영화의 클리세를 적극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이 영화가 매우 대중적인 플롯을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을 반증이다.
서울 도심에서 일어난 신용금고 수송차량 강탈사건과 제주도 공항에서 일어난 밀수금괴 도난사건을 일으킨 사람은 뛰어난 지능의 안현민(차승원 분). 그는 대담하게도 신용금고 수송차량 강탈사건에서는 검거율 100%를 자랑하는 수사반장 백성찬을 사칭하여 돈을 빼돌린다. 사직서를 내고 바퀴벌레를 잡는 살충회사로 이직을 결심하고 있던 백성찬 반장(한석규 분)은 자신을 사칭한 안현민을 검거하려고 한다. 먼저 미끼를 던진 안현민의 페이스대로 이야기는 흘러가다가 서서히 백반장의 노하우가 발휘되면서 안현민이 궁지에 몰리고 그 과정에서 안현민의 진짜 복수 대상이 밝혀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인류 최초의 성문법전인 함무라비 법전 속의 한 귀절을 인용한 영화 제목은 복수의 뜻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눈눈이이]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이야기의 새로움도 아니고, 촬영의 신선함도 아니다. 그렇다고 배우들의 연기가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인 것도 아니다. 안현민 캐릭터의 차승원과 백반장의 한석규는 좋은 배우임에는 틀림없지만, [눈눈이이]가 그들이 갖고 있는 최상의 기량이 펼쳐진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 차가우면서도 복수에 사로 잡힌 뛰어난 지능의 안현민이라는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차승원은 검정색 머리와 검정색 슈트로 날카로움을 만들었고, 동물적 본능과 직업적 감각으로 집요하게 범인을 추적하는 백발의 한석규는 능글맞으면서도 강인한 백성찬 반장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직접 맞부딪치는 장면을 보면, 역시 한석규의 내공이 훨씬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믹의 제왕에서 연기폭을 넓히고 있는 차승원은 아직 2% 모자라고 조금 더 수련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눈이이]는 감각적 편집의 속도감에 모든 것을 의지한 속도의 영화이다. 처음에는 [우리 형]의 안권태 감독이 영화를 만들다가 제작사와의 관계가 어려워지자 [친구][태풍]의 곽경택 감독이 긴급 투입되어서 영화의 후반 촬영을 맡았다. 따라서 이 영화의 크레딧에는 두 명의 감독 이름이 올라가 있다. 후반 편집을 주도한 사람은 곽경택 감독이다. 그는 자신의 다른 영화들보다 한 템포 빠른 감각의 편집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 이야기의 양에 비해서 상영시간은 100분이 조금 안될 정도로 편집은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범죄의 재구성]의 놀랄만큼 경제적한 편집은 아니지만, 빠른 속도감에 의지해 숨돌릴 틈 없이 전개되는 편집은 상투적 이야기 전개의 단점을 어느 부분 가려주는 것은 분명하다.
안현민이 백성찬 반장에게 미끼를 던지는 방법은, 그가 강탈한 현금 수송차량의 현금 일부를 백성찬에게 소포로 배달하는 것이다. 백반장은 안현민을 조사하면서 그가 다음 범행으로 금괴 밀수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대대적인 작전을 펼치지만, 안현민은 백성찬과의 맞대결에서 압승한다. 백반장의 눈 앞에서 500kg의 금괴를 빼돌린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백반장은 안현민의 핵심 부하를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모진 심문으로 안현민의 뒤를 캐낸다. [눈눈이이]는 안현민과 백성찬 반장의 머리 싸움에 이야기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서로간의 일진일퇴가 반복된다. 안현민이 백반장을 따돌리고 한 건 올리는가 싶으면 곧바로 백반장이 안현민위 뒤를 따라붙는다.
[눈눈이이]의 진짜 재미는 안현민과 백반장 사이의 정서적 소통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흔한 범죄 영화 아류에 불과했던 이야기들은, 안현민의 공격적 접근으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왜 안현민은 백반장에게 자신의 목숨이 포함된 뜻밖의 제안을 던지는가. 백반장은 안현민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남자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후반부를 연상시키는 이야기의 마무리까지 어디서 많이 본듯한 장면이 이어지지만, 속도감 있는 편집은 관객들이 자신의 기억을 헤집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눈눈이이]는 철저하게 안현민과 백성찬의 버디 무비이다. 물론 낮에는 금은방 사장이며 밤에는 트렌스젠더 클럽 마담인 안토니오(이병준 분)의 트렌스젠더 연기가 웃음을 주고, 거대기업체를 움직이는 물욕의 화신인 냉혈한 김현태 역의 송영창이 카가운 카리스마를 발휘하지만, [눈눈이이]는 안현민 역의 차승원과 백성찬 역의 한석규에 거의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다. 188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시적 감성의 페이소스 짙은 분위기의 차승원과, 백발의 머리 염색으로 이죽거리고 능글거리면서도 범죄자를 향한 집요한 추적에 몸을 던지는 한석규는 영화의 시작이며 끝이다.
하지만 단역들의 연기 조련이 덜 되어 있어서 연기 조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깨고 이야기의 치밀한 전개를 방해한다. 또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설정 자체가 낯익은 방식이어서 캐릭터의 새로움을 주는 것도 한계가 있고 반전의 효과도 신선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눈눈이이]가 익숙한 장르 영화의 아류에서는 가까스로 벗어낫지만, 새로운 재미나 놀라운 충격은 주지 못하고 익숙한 공식의 단순한 변주에 그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