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많이 회자(膾炙)되고 있는 고문진보의 어부사(漁父辭)를 소개합니다.
사(辭)는 문체의 이름이며, 본래 초사(楚辭)의 일종인데 가사(歌詞)를 이른다 하였고, 굴원(屈原)의 어부사는 산문적인 변체라 하였습니다.
기원전 270여년전 초나라 대부 굴원이 어부(漁父)와의 문답형식으로 된 글인데, 어부사에 나오는 어부(漁父)는 은사(隱士)로 굴원이 자기의 절조를 대비 강조하려고 등장시킨 인물로 생각된다 하였습니다. 이 글이 비록 단문이긴 하지만 굴원의 청렴결백한 성격이 분명하게 잘 묘사되어 있으며, 한 번쯤은 되새겨 볼만한 글이라 생각되어 소개합니다.
1. 전문
屈原이 旣放에 游於江潭하며 行吟澤畔할새 顔色이 樵悴하고 形容이 枯槁하니 漁父가 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아 何故로 至於斯오한대. 屈原이 曰 擧世皆濁이어늘 我獨淸하고, 衆人이 皆醉어늘 我獨醒이라. 是以로 見放이로다하니. 漁父가 曰 聖人은 不凝滯於物하고 而能與世推移하나니, 世人이 皆濁이어든 何不굴(삼수변+屈)其泥而揚其波하며, 衆人이 皆醉어든 何不포(食+甫)其糟而철(又4개+酉+欠들어마실철)其리(璃-구슬옥변 대신 닭유변이 들어감,묽은술리,싱거운술리,박주리)하여, 何故로 深思高擧하여 自令放爲오하니. 屈原이 曰 吾聞之하니, 新沐者는 必彈冠이오 新浴者는 必振衣라 하니 安能以身之察察로 受物之汶汶者乎아. 寧赴湘流하여 葬於江魚之腹中이언정 安能以皓皓之白으로 而蒙世俗之塵埃乎아. 漁父가 莞爾而笑하고 鼓예(木+世)而去하며 乃歌曰, 滄浪之水가 淸兮어든 可以濯吾纓이오 滄浪之水가 濁兮어든 可以濯吾足이로다하고, 遂去하여 不復與言이러라.
2. 작자
屈原(굴원) [B.C.343~277?]
자는 원(原), 이름은 평(平). 주(周)나라 말 전국(戰國) 시대 초(楚)의 왕족으로 추방당하여 자신의 충정과 결백을 애타게 노래하다가 울분과 망국의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졌다.
3. 어구 풀이
放(방) : 죄를 입어 遠地에 쫓김.
江潭(강담) : 상강(湘江)의 못
枯槁(고고) : 생기가 없이 여윔.
三閭大夫(삼려대부) : 초(楚)의 왕족 소씨(昭氏)?굴씨(屈氏)?경씨(景氏)의 三家를 관리하는 장관(長官)이었던 굴원. ※ 閭 : 洞里의 門. 一族의 집단을 말함.
擧世(거세) : 온 세상. ※ 擧 : 온통. 모조리. 전부(全部).
聖人(성인) : 智와 德이 뛰어난 사람.
凝滯(응체) : 꽉 막히어 융통성이 없음을 말함.
(굴) : 물을 흐리게 함.
(철기리) : 박주(薄酒)를 빨아들이다.
※ 철 : 빨아마심. 吸飮(흡음). ※ 리 : 순미(醇味)를 짜내고 난 박주(薄酒).
屈原이 曰 吾聞之하니,
新沐者(신목자) :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
彈冠(탄관) : 갓을 털어 씀.
新浴者(신욕자) : 새로 몸을 씻은 사람.
振衣(진의) : 옷을 털어 입음.
(찰찰) : 맑고 깨끗함.
汶汶(문문) : 더럽고 욕됨.
寧(녕) : 차라리 ~하겠다.
湘流(상류) : 상수(湘水). 동정호(洞庭湖)로 흘러 들어가는 강.
葬於江魚之腹中(장어강어지복중) : 강물고기의 뱃속에 장사지내다.
安~乎 : 어찌 ~하겠는가? (반어형)
皓皓(호호) : 희고 깨끗함.
莞爾(완이) : 빙그레 웃는 모양.
鼓木+世(고예) : 돛대를 두드리면서 장단을 맞추다.
滄浪(창랑) : 한수(漢水)의 하류 지역 이름. 푸른 물결.
不復與言(불부여언) : 다시는 더불어 말하지 않음.
4. 해석
굴원이 기방에 유어강담하며 행음택반할새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담에서 노닐고 못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이 고고하니
안색이 초췌하고 몸이 수척해 있었다.
어부가 견이문지왈 자비삼려대부여아
어부가 그를 보고는 물어 말하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닌가?
하고로 지어사오한데.
어인 까닭으로 여기까지 이르렇소?"라고 하였다.
굴원이 왈 거세개탁이어늘 아독청하고,
굴원이 말하기를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중인이 개취어늘 아독성이라. 시이로 견방이로다하니.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그래서 추방을 당했소이다."하니
어부가 왈 성인은 부응체어물하고 이능여세추이하나니,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사물에 얽매이거나 막히지 않고 능히 세상을 따라 옮기어 나가니
세인이 개탁이어든 하부굴기니이양기파하며,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하면 왜 그 진흙을 휘젖고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며
중인이 개취어늘 하불포기조이철기리하여,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으면 왜 그 술 지게미를 먹고 薄酒(박주)를 마시지 않고는
하고로 심사고거하여 자령방위오하니.
무슨 까닭으로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으로 스스로 추방을 당하셨소?"라 하였다.
굴원이 왈 오문지하니, 신목자는 필탄관이오 신욕자는 필진의라 하니
굴원이 말하기를 "내 듣기로, 막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冠(관)을 퉁겨서 쓰고
막 목욕을 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하였소이다.
안능이신지찰찰로 수물지문문자호아.
어찌 몸의 반질반질한 곳에 外物(외물)의 얼룩덜룩한 것을 받겠소?
영부상류하여 장어강어지복중이언정
차라리 湘江(상강)에 뛰어들어 강 물고기의 배속에서 葬事(장사)를 지낼지언정
안능이호호지백으로 이몽세속지진의호아.
어찌 희디흰 純白(순백)으로 世俗(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쓴단 말이요?"라고 하니
어부가 완이이소하고 고예이거하며 내가왈,
어부가 빙그레 웃고는 노를 두드려 떠나가며 이에 노래를 불러 말하기를
창랑지수가 청혜어든 가이탁오영이오 창랑지수가 탁혜어든 가이탁오족이로다하고,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을 수 있고, 창랑의 물 흐리면 내 발을 씻을 수 있도다."하고
수거하여 불부여언이러라.
마침내 떠나가 다시 그와 더불어 말하지 못하였다.
5. 해설
위 글은 <고문진보> 산문집에 실리어 고금에 회자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어부사 속의 어부와 굴원은 결국 굴원의 입장에서 꾸며진 인물 설정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둘은 세상에 대하여 공통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처세방법을 다르게 갖고 있습니다.
이 둘은 세상은 언제나 혼탁하다고 합니다. 그러한 세상에서는 늘 간신배가 들끓어 인재가 제대로 등용되지 못하고 퇴출 될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치 오늘날 사람들이 세상이 못된 사람들 투성이고, 정치인들은 정쟁과 사리사욕에만 매달리고 있어 뜯어 고쳐야만 된다고 믿고 있는 것 처럼요.
어부는 이 혼탁한 세상에 적당히 끼어 살면 어떠하냐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부 자신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혼탁한 세상이기에 그 속에 파고 들어가 통째로 뜯어 고칠 능력이나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굴원에게 권한대로 적당히 끼어 살면서 자위하는 삶을 살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어부가 그렇게 숨어살고 있는 이유도, 굴원이 분개하며 울부짖는 세상에 원인을 두고 있으며, 단지 처세방법만 다를 뿐입니다.
어부는 소극적으로 대처하여 달아나 숨어 버렸고, 굴원은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나아가 싸워 보는 것입니다. 어부는 은자로 살다 사라졌고, 굴원은 그 의기의 명망을 빛내 후세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옛날보다 더 많아진 인구와 다양해진 삶 속에서 우리는 숨어살기가 쉬워졌습니다. 세상의 불의와 자신의 양심에 대해 깊이 고민할 사이도 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숨 가쁘게 살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직장 속에서 부딪치는 불의나 비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나는 어부가 될 것인가? 굴원이 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재미있겠죠!
또 어부나 굴원이 보는 세계관, 곧 세상은 언제나 혼탁하여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는 지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