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린데도 맘은 쾌청하다.
초대받은 음악회 덕택이다.
나들이 하기 좋으면서도 음악회의 격을 갖춘 옷을 골라 입었다.
시골에 살면서 가장 갈급한것은 문화적 결핍이다.
하긴 도시 사람들은 내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이벤트 쯤으로 여기니
인생은 역시 제로섬임을 위로삼는다.
베에토벤, 챠이코프스키, 멘델스죤을 가까이 느끼는 음악회는 영혼에 기름기가 흐른다.
배우는 즐거움도 크다.
모짜르트도 멘델스죤도 음악적 천재성을 가졌지만
멘델스죤은 가문도 좋고 집안도 풍요로워 음악에 그 여유가 묻어난다 했다.
사람의 인격도 제 안에 있는 것이 드러난다.
늘 순간의 인격이 누추하지 않도록 언제든 자신을 돌아보고 갈무리할 일이다.
요즘은 친절하게 작품해설도 해 준다.
초대해 주신 분께
"봄을 품격있게 맞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인사를 드리자 밝게 웃으신다.
행복한 이웃, 풍요로운 이웃이 있는 건 복받은 인생이다.
인사동을 걸었다.
봄바람에 스카프 하늘거리며...
음악회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올라가 여유롭게 옛 추억의 거리를 걸어 보고 싶었다.
아무 것도 사지 않았지만 마치 세상을 다 살것처럼 여유만만하게 이 가게 저 골목을 기웃거렸다.
멋진 그림전시회도 좋았고,
꽃그림 그려진 화분 구경도 즐거웠다.
'도자기라면 사기막골에 가서 사야지' 하고 눈요기하고 돌아섰다.
작년에 한번 들른 적 있는 옷가게도 가서 요것저것 만져 본다.
비싼 것, 싼 것, 길거리 좌판에 넘치고 넘친다.
먹거리도 많았다,
꼬치구이부터 엿장사까지, 텔레비젼에서 본 그 사람도 거리에 있다.
천연물감을 들인 고운 스카프며 옷가지들이 넘치게 많다.
눈이 호사를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화장실 사용이 공짜다.
외국가서 첫 놀라움은 그거였었다.
굽이 어지간한 구두를 신고 서너시간을 돌았는데도 힘든지도 모르겠다.
볼거리 풍성한 인사동이니 아직도 수십번은 더 와도 되겠다.
머리핀 하나도 사지 않고 그 긴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 인사동거리를 지나, 종각 지나고,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을 접어든다 .
종로서적은 흔적도 없지만 그곳을 지나면서 건너다 보니
"연아! 종로서적에서 *시에 봐. "
하던 청재킷 입은 청년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남편을 대학 1학년 때 너무 일찍 만났다.
그래서, 대학시절 기억의 편린속에 그는 언제나 주인공이다.
그와 데이트하던 광화문 뒷골목 전원다방 자리는 비빔밥집이 되어 있었다.
그보다 더 전 광화문추억은 재수시절이다.
그곳 분식집에서 쫄면을 먹던 생각도 난다.
불안정한 청춘시절은 이 악물고 내일을 위해 나를 던져 갈고 닦던 때다.
돌아보면 인생의 단 한순간도 허투로 보낼 여유가 없었는데...
요즘 난 평안하다.
삿뽀로 우동집에서 국수 한그릇을 시켜먹고 작은 찻집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에 부자가 된다.
돈이 있어서가 아니다.
삶의 여유 덕이다.
용인에서 출발할 때 오래전에 알던 지인을 만났다.
버스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난 아침에 핀 복수초 생각에 기분이 들떠 있었다.
"아이~ 젬마씨! 편안해요?"
"네, 그럼요. 언제나처럼요. "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던 참이었다. 젊은이들처럼.
이제야 제법 스마트폰의 기능을 익혀 그 재미에 푹 빠졌으니까.
요즘 나를 보는 분들은 하나같이 편안해 보인다고 말들 한다.
오십 중반에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들으니 속썩이지 않는 가족들이 새삼 고맙다.
내 삶에 안도감이 드는 순간이다.
요번 우리집 수선화는 궁상맞기 이를 데 없는 꼴이다.
마당이 거름기없이 척박한 탓이다.
내 윤기나는 인생탓에 잔디가 고생이다.
냉이도 세 뿌리, 민들레 열 서너뿌리, 달래도 두어 뿌리, 돌아보니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
잔디밭이 아니면 어쩌랴!
꽃다지 가득한 잔디밭이 때론 걱정이다가도 언제 저걸 뽑아서 나물해 먹어야지 하고
긍정의 마인드로 돌아간다.
하루하루 흘려보내도, 억척스레 극성을 떨며 살아도 그저 하루일 뿐이다.
첫댓글 인사동에 다녀가셨어요?
연락주셨으면 한걸음에 달려갔을텐데...
정릉성당에서 20-30분이면 되거든요.
성주간 잘 지내시고 부활맞이 잘 하시길...
그렇군요. 담엔 연락 드릴께요.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