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
안산 분향소와 팽목항을 찾는 게 제게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저 참담한 실체를 두 눈에 담기가 버거웠던 거지요. 그래서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1월 23일, 한국작가회의 회원들과 함께 마침내 찾은 안산과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먼저 제 눈에 가득 들어찬 것은 음울한 펼침막들이었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숱한 펼침막들이 여기가 어디인지, 어떤 상황인지를 단박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버스좌석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제 자세를 바로잡았습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 그만큼 거리 풍경은 가라앉아 있었고 목메는 흐느낌들이 스며 있었습니다.
이를 꽉 물고 합동분향소를 들어섰지만 눈 가득 들어차는 영정들 앞에서 저는 숨 턱 막혔습니다. 죽음이 너무 많아서, 그 많은 죽음들이 일순 실감나지 않아서 눈 둘 데를 찾지 못했습니다. 어쩌다가 고개 쳐들어도 저를 바라보는 영정 속 영령들이 몹시 해맑아서 저는 곧 눈빛 떨구고 말았습니다.
이런 죽음이라니요. 누가 이런 죽음 속에 저들을 가두었나요. 분향하면서 묵념드리면서 저는 내내 속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속엣눈물 질금거리면서 언뜻언뜻 바라본 304위의 영령들은 그러나 담담했습니다. 초연해져 있었어요. 죽음이 아니라, 죽음 밖에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저도 정신 차릴 수 있었지요. 그렇습니다. 더 이상 죽음에 머물러 있어서는 곤란하지요. 누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를 먼저 살펴야겠지요. 무엇이 왜 이들을 죽음 속에 잠기게 했을까요. 이 죽음에 관한 진상 규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이것 없이 그 어떤 추모도 치유도 헛것일 테지요.
그런데 왜 저는 자꾸만 저를 자책하게 되는 걸까요. 마치 제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무구한 목숨들이 스러지고 만 것처럼 여겨지는 겁니다. 물론, 기성세대로서 제 잘못 적지 않습니다. 천민자본주의의 흐름 거스르지 못했지요. 돈의 유혹과 무사안일한 태도 또한 제 몫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만 정리하기에는 어쩐지 억울하기도 합니다. 이 참사의 대부분을 국가라는 괴물이 저지르지 않았습니까. 우리 사회를 이렇게 몰아간 국가와 정부에게로 향하는 미움을 도저히 그칠 수 없습니다. 이 죽음을 그저 재난 정도로 그저 덮으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304개나 되는 우주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겁니다. 그만큼 소중한 목숨들입니다. 안산을 떠나 진도로 가는 동안 ‘304 개의 우주’가 잇달아 천체를 바꾸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찾은 팽목항은 뜻밖에도 잠잠했습니다. 어떤 특별함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그 마음이 무색토록 고요했습니다. 안산 분향소에서 이미 참담함을 겪어 그런지 팽목 분향소 앞에서의 떨림도 한결 누그러져 있었어요. 저는 차분하게 한 분 한 분 눈 맞춰 드릴 수 있었습니다. 슬픔만이 아닌, 어떤 애도의 교감이 분향과 묵념을 떠도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차분함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윤희 삼촌이 들려주는 실종자 유가족들의 생활을 듣는 순간, 애써 찾은 제 평형은 깨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실종자들, 그렇지요. 아홉 분의 실종자들이 여태껏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참혹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윤희 삼촌의 말에 따르면 그러나, 이 삶은 살아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낮은 그런대로 버티지만 밤만 되면 통곡의 시간이라는 겁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함께 먹고 자야 할 식구들이 저 차디찬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데요. 도저히 잠들 수 없는 거지요. 목 터져라 외쳐 부르다가 미치지 않겠습니까. 그리움에 가슴 터지지 않을까요.
이런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디느라 가족들은 다 이미 환자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장 운동이 멈춰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원인 불명이라 했다는군요. 저는 그 분의 생의 욕구와 의지가 다 소진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윤희 삼촌은 이렇게 말했지요. 차라리 그 지독한 포르말린 냄새를 맡으며 가족들의 통곡소릴 듣고 싶다고 말이지요. 그 통곡은 실종자 귀환의 호곡이며 부르짖음일 것인데요. 오히려 그 소리가 삶의 소리가 아니겠느냐는 거지요. 이 무슨 기막힌 역설의 정경인가요. 죽음을 맞이하는 게 사는 것이라니요.
하지만, 아닙니다. 이런 게 삶일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살아서도 안 됩니다. 산자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가족들의 힘은 너무나 미약합니다. 정부의 지원 없이 무슨 수로 저 막막한 바다에서 사람들을 찾아내고 또 배를 인양하겠습니까. 그러니 원통함이 어찌 뼈를 치지 않겠습니까. 듣고 있는 저도 등이 시리고 아파왔는데요. 바다 쪽 빨간 리본 등대를 향해 가는 동안 제 발걸음이 휘청거렸습니다. 수많은 노란 리본들이 불러대는 호명 소리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우리끼리 진행한 등대앞 낭독회에서 제 시 <팽목항>을 읊으며 아홉 분을 일일이 불렀습니다. 남현철님 박영인님 조은화님 허다윤님 이영숙님 고창석님 양승진님 권재근님 권혁규님. 한 분 한 분 부를 때마다 울컥거려서 혀가 다 마르더군요.
이처럼 팽목항은 지금 외롭게 죽음을 견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디보다도 뜨겁게 살아야 하는 곳입니다. 그래야 저 죽음이 뜨거워집니다. 죽음을 사는 곳이 아니라, 죽음을 살려내어 새로운 삶을 사는 곳이어야 합니다. 산자의 죽음이 아니라 죽은자의 새로운 삶이어야 하지요. 그러므로 반드시 모두를 위해 죽음의 그늘을 벗겨내어야 합니다.
유가족들이 고난의 도보 행진을 펼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무척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때 제 몽매를 깨운 건 소설가 윤정모 누님의 한마디였습니다. 우영아, 편지를 쓰자.
아하, 그렇지요. 편지입니다. 편지야말로 죽음을 걷을 수 있는 온기이자 생기 아니겠습니까. 편지는 또, 늘 같이 머물러 있진 못하지만 마음 함께 나눌 수 있는 중요한 메신저이기도 하니까요.
우리의 따뜻한 생기 담은 편지라면 저 죽음의 기운도 가시고 참담한 비애도 걷힐 거라 여깁니다. 어떤 내용이든 상관없을 거예요. 팽목항을 다감한 온도로 채울 수만 있다면 되지 않을까요.
자, 공식적으로 제안 드립니다. 마음 담은 편지를 쓰고 봉투에 넣어서 팽목항으로 부치는 겁니다. 참 쉽지요? 이때, 봉투나 편지글을 인증샷으로 찍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블로그 등에 공유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여기저기 알릴 생각입니다. 그러면 팽목항에는 우체통이 하나 있어야겠지요. 팽목항에 계시는 윤희 삼촌이 든든한 우체통 지킴이가 되어주실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편지를 팽목항에 있는 윤희 삼촌에게 부치려 합니다. 윤희 삼촌이라면 제 모자란 마음 잘 받아들여서 거기 있는 실종자 가족들, 유가족들에게 따뜻하게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윤희 삼촌에게는 괜한 짐을 지워주는 것 같아 참 미안한데요. 기꺼이 이 짐 걸머져 주리라 믿습니다. 미리 고맙다는 말씀 앞세웁니다.
저는 벌써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편지로 온기 두터워진 팽목항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수만 통의 편지들이 지켜주는 유가족과 팽목항. 생각만 해도 마음 절로 훈훈한데요, 편지 한 통의 기적을 애타게 꿈꿔 봅니다.
저는 요즘 페이스북에 글 올릴 때마다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끝냅니다. “실종자는 찾아내고 세월호는 인양하라.” 이 편지의 끝도 이렇게 맺겠습니다.
실종자는 찾아내고 세월호는 인양하라.
2015년 1월 28일
정우영 드림.
※ 참고로, 팽목항 주소 남깁니다.
539-842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윤희 삼촌(김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