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판사일 때 간통죄 사건기록을 보는 게 참 힘들었다. 첨엔 호기심에 열심히 보는데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그건 '내가 봐서는 안 될 것을 보는 듯한 죄책감'이었다. 그들이 매일 다정한 문자를 주고받고 서로 지지하고 위로해 주고 때로는 성적인 대화를 나누며 낄낄거리고 행복해 하는 걸 보면서 "내가 이걸 왜 형법이라는 잣대로 들여다봐야 되지?" 라는 깊은 고민에 빠지곤 했다.
배우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천인공로할 배신행위이겠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것에 국가가 개입해서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들을 옷벗은 채 사진을 찍고 체포하고 판사 앞에 데려오고 그들의 연애사를 세금을 들여 재판하고 나는 공문서인 기록으로 그걸 확인하고 "배우자하고는 마음도 몸도 멀어졌고 이 사람하고 진짜 사랑했구나, 진짜 나쁜 놈이네....근데 이게 진짜 나쁜가?" 느끼며 처벌형량을 고민했다.
사회적 비난을 가하려면 다른 사람들도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꾸 의문이 들었다. 배우자하고 마음도 몸도 멀어져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그 배우자의 배신감을 위로하는 차원 이외, 부부 사이의 길고 긴 히스토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비난할 수 있는 사안인가. 비난 이전에 "나는 그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몰라요"라는 스탠스를 취하는 게 맞지 않은가.
비난을 가하는 사람들은 결혼 이후에 상대가 더 이상 내 짝이 아닌 것 같고 그래서 매일이 괴롭다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때 억지로 그 상대만을 사랑할 수 있는지, 그런 고민을 하느라 과도기를 거치고 이혼하면 안 되는지,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나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고 남의 시선대로 "남편 또는 아내의 기능"을 반드시 선택해야만 해야 하는 것인지, 그걸 생판 알지도 못하는 남들이 간섭할 수 있는 사안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고 그러는 걸까(물론 배우자는 약속을 깬 것을 비난할 수 있고 민법상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의 지급은 충분히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
2. 존재와 기능의 구별. 치유과정을 거치며 가장 크게 깨달은 부분 중 하나다. 우리 모두는 개별적 "존재"다. 우리 각자는 살아오는 동안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개별적 경험들을 했고 그 수많은 요소들의 교집합으로 나라는 인간이 현재를 산다. 다들 비슷하게 사는 것 같지만 정말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살아간다.
다만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요구받는 "기능"(역할)들이 있다. 독립적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공부나 뭔가를 해야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하고 등등. 그런데 기능이 비대한 사회일수록 존재는 쪼그라든다. 특히 우리 사회는 어릴 때부터 존재와 기능을 구별하지도 않은 채 기능으로서 완벽한 사람을 자꾸 요구한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기능으로서 완전할 필요가 없고 그럴 수도 없으며 그건 개별적 선택일 수 있어야 하고 국가와 사회는 어떤 존재라도(아프거나 약하거나 부족하거나) 존재답게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개인들에게 불가능할 정도의 완벽한 기능을 요구한다(산재현장에 가서 법조차 모르는지 개인 책임부터 따지고 주당 120시간 일할 수 있다는 윤석열이 대표적이다).
국가와 법, 사회는 개인들에게 사회 유지를 위해 기능을 요구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존재 그 자체를 보장하기 위해 형성된 틀일 뿐이다. 존재는 헌법상 규정된 인간과 동물, 생명 그 자체의 존엄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돈과 경제와 먹거리, 일자리 같은 기능을 최우선의 고민거리로 삼고 달리고 있지만 그런 기능을 요구하는 것도 사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제대로 생존하고 행복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함일 뿐 경제, 돈 같은 기능이 본질이 될 수는 없다.
노동자로서 대표로서 과장으로서 엄마로서 아빠로서 딸로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역할 이전에 나는 나로 존재하는데 존재를 망각하고 기능만 요구하는 사회에서 개인들은 완벽한 기능을 수행해도 불행하다. 매일 숨쉬면서 매순간 무언가를 느끼고 혼자 있을 때도 슬프거나 웃거나 하는 우리는 존재인데 존재일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럼 나로 '존재'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안전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안전은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 사랑은 존재를 존재답게 한다. 그래서 누구를 사랑하느냐는 존재의 핵심문제이고 그건 배우자 이외 어느 누구도 함부로 비난할 문제가 아니다. 배우자의 마음을 공감할 순 있지만 당사자를 악마로 취급할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3.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평생 동안 충실한 기능을 하지 못한 사람은 정치를 할 수 없는가. 정치를 어느 모로 보나 완벽하거나 모범적인 사람이 그 완벽함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치 결격사유가 되겠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원하는 정치는 무엇인가. 양극화를 해소하고 우리 각자의 존재를 존재답게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 수 있게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다른 역량을 따져봐야지 혼외자 출산이 범죄도 아닌데 무조건 결격사유가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많은 남자들이 정치를 하는 데 그것이 결격사유가 되어 오지 않았는데 왜 여성이 나서기만 하면 다들 관음증 환자처럼 달라붙어서 외모비교부터 사생활 죽도록 파헤치기, 가족까지 괴롭히기 등등 지들은 완벽하고 이 사람만 마녀인양 달려들까. 그런다고 우리 삶이 나아질지. 공적 기능 및 책임과 사적 영역 및 존재의 구분은 언제쯤 가능할까. |
첫댓글 나로 존재하게 하는 것...
안전과 사랑..
사이다같은 글이네요.
공적 기능 및 책임과
사적 영역 및 존재의 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