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오고 심심풀이로 한번 읽어 보세요
좀 길다 싶으시면 잠깐 쉬다 읽어셔도 됩니다
끝까지 읽다보시면 한반도인으로서 자긍심도 생길수 있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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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용 죽겠지? 메롱~~
요즘 국제정세가 불안하고 지나와 타이완 사이에서도 긴장감이 맴돕니다. 사실 타이완이라는 곳은 우리에게는 계륵 같은 곳일 수도 있겠습니다. 불필요하면서도 꼭 필요한 그런 곳이라고나 할까요? 예나 지금이나 지나는 시끄러운 것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세상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시끄러운 족속들.. 우리조상들은 저 지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의식속에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니 태생적으로 누구나 상대방을 놀릴 때 얄밉게 혀를 내밀고는 메롱~~하며 약을 올립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잘 쓰지 않지만 기성세대는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양볼에 대고 나머지 손가락은 쫙 펴고 돌리며 '용용 죽겠지?'라고 상대의 약을 올렸던 경험들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용용 죽겠지?를 하고 메롱하며 마무리 양념?을 쳤지요. 우리의 DNA는 태생적으로 메롱을 알고 있습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상대방의 약을 올릴 때 자연스럽게 혀를 내밀고 언어구사가 가능해지면 소리음까지 덧붙입니다. 뭐로? 메롱으로..
우리는 현재 최고의 꿈을 용꿈이라합니다. 특히 시골의 촌부나 가난한 빈민이 출세하게 되면 개천에서 용났다고 합니다. 개천의 용은 중국 한(漢)나라를 건국한 유방(劉邦)이나 명(明)나라를 건국한 주원장(朱元璋)을 빗대어 말함이라 추측합니다. 시골무지렁이가 황제가 되고 나라를 건국했으니까요. 거두절미하고 용은 출세의 상징이고 권위의 상징이 되었지요.
헌데 우리의 사상 속에 용은 일개 장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제 고향은 백제(남부여)의 수도인 부여지요. 또 제가 태어났고 자란 동네가 구드레였습니다. 약간 언덕 진 위치에 집이 있었고 백마강의 굽이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지요. 마을에는 나루터가 있었고 둑을 따라 맨 끝에 양수장 뒤로 낙화암이 있었습니다. 그 낙화암 저쪽에 조롱대(조룡대釣龍臺)라는 바위가 있습니다.
조롱대는 전설에 의하면 당(唐)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용이 된 무왕을 낚으려 자신이 아끼는 백마를 투척한 장소라합니다. 용과 힘겨루기를 하다 바위에 발자국이 새겨졌는데 이를 '조롱대'라합니다. 말 그대로 백제의 신인 무왕을 백마로 조롱하고 잡았다 해서 조롱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웃기지도 않는 전설이지요.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 뒤편에 용전(龍戰)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조금 넓은 벌판인데 이곳을 현재도 용전이라 부릅니다. 즉 전투를 벌였던 장소로 추측됩니다. 용과의 전투 즉 당나라군과 혈전을 벌였던 장소지요. 그리고 패전한 백제군의 수도경비사령관 의직(義直)은 결국 후퇴하다 강에 이르러 죽음을 택하게 됩니다.
그곳이 바로 조롱대입니다. 당군의 기습으로 궁궐수비대만으로 적을 막아야했었기에 2만의 병력 중 일부(오천결사대)는 진군하는 신라군을 막고 나머지 1만 5천의 병력으로 당군 11만을 막아야했던 것입니다. 헌데요. 생각해보세요. 의직 장군은 지금으로 치면 수도경비사령관이었을 것입니다. 수도방위군이 그 당시에 2만병력이라.. 과연 백제가 작은 나라였을까요?
현재도 수도방위사령부에 2만병력이 되나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때 당시 지방군이 원정을 오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병이야 모르겠지만 보병은 도보로 와야하니까요. 기습을 당했기에 백제가 망한 것이지 결코 국력이 약해서 망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두절미하고 그 당시 의직 장군은 전 임금(무왕) 대부터 명장 아님 용장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계백장군은 달솔으로 지금으로 치면 높아야 별 한개 짜리 여단장급이나 아님 연대장급인 대령 정도의 계급에 불과했습니다. 총지휘관으로 좌평계급인 상영이 있었지만 황산벌 전투 후 투항했지요. 총지휘관인 상영보다 끝까지 목숨을 바쳐 싸운 계백을 더 칭송했기에 죽어서 장군의 칭호를 백성들에게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야기가 많이 옆으로 새었네요.
즉 우리의 의식 속의 용은 나라를 지키는 군병 또는 장수를 칭하는 계급이었다는 겁니다. 황제가 아니라 일개 장수에 불과한 상징이 용이었던 것입니다.
증거가 있느냐고요? 있습니다. 바로 '백제 금동대향로'에 있습니다. 모든 시대의 유물은 그 시대의 사상이 새겨지거나 배어 있지요. 더구나 금동대향로는 종교의식에 쓰던 향로이므로 그 무엇보다 그 시대의 사상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받침은 용이오, 몸체는 백제의 산하, 만물이 새겨져 있고 뚜껑에는 숭배의 소리(음악)와 봉황이 있습니다. 즉 삼신사상과 일치합니다.
삼신은 하늘, 땅, 사람을 의미하는데 향로는 장수와 백성 그리고 어라하(왕)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삼신사상이오, 다르게 보면 백제인의 그 당시 사상이 그대로 새겨진 유물이라할 수 있습니다. 즉 조롱대는 백제의 장수를 희롱하여 죽게 만든 장소인 것입니다.
그럼 '용용 죽겠지? 메롱~~'의 의미를 제대로 찾아가보겠습니다. 우리와 저들(중국)과의 대전 중에 황제가 직접 친위대를 이끌고 온 전쟁이 바로 고구려와 수나라 그리고 당나라와의 전쟁이었습니다. 두 전쟁 모두 황제의 깃발인 용의 깃발이 휘날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패하여 퇴각하는 용의 군대에게 비아냥거림으로 '용용 죽겠지? 메롱~~'했을 것입니다.
천 오백년 전의 의식은 후대로 전해내려오면서 우리의 DNA는 무의식 속에서도 혀를 내밀며 '메롱~~'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천 오백년 전에 중국을 비아냥거렸고 용의 계급은 우리에게는 장수의 계급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양볼에 댄 엄지손가락은 정곡을 찌르는 의미이며 나머지 네 손가락을 곧게 펴서 흔듬은 용의 뿔(화남)을 비꼬았던 것입니다.
'백만의 대군으로도 우리에게는 안 돼.'
이것이 바로 메롱이었고 죽을 정도로 약이 올랐을 그 당시의 집권자 양광과 이세민을 희롱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유학이 들어와 사대사상을 심어놓기는 했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메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용은 우리의 발음이고 롱은 저들의 발음이니 용용 죽겠지?하며 우리말로 비아냥거린 후 마무리는 저들의 발음으로 '메롱~~' ^^
엉터리 같나요? 아닙니다. 깊이 생각하면 우리의 의식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의식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은 물론이고 음식, 패션, 전자, 반도체 심지어 방위산업까지.. 그 원동력을 우리는 무의식속에 지니고 있었고 이제야 세상이 알아주고 있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이제 어깨를 좀 펴고 당당해도 됩니다.
출처: 해강 카스
첫댓글 저도 어릴때 앞동네랑 단체로 돌싸움질 할때 용용죽겠지~ 메롱~ 많이 했던거 같습니다
그러다 대갈에 돌몡이 한방 맞고 된장 처바른 기억이 납니다 ㅎ ㅎ
진짜 멋진 글을 오늘 보네요
글 올리고 격찬은 첨 들어 보는거 같습니다
오늘 비옴에도 기분 댓끼리 입니다 ㅎ
댓글 감사합니다~*
지피지기 님 덕에 오늘 비오는 우울한 기분을 떨쳐 낼수있었네요 좋은글입니다 오늘부터 당당해져 보렴니다. ㅎ ㅎ
오늘부터 우리 함께 당당해 보입시다 ㅎ~
양엄지척 감사합니다~**
국보인 저 백제금동대향로 언제봐도 멋져요 오래전부터 감동하는 향로입니다 너무 아름답지않나요
오~ 전 오늘 첨봤는데 커피콩님께선 오래전부터 봐왔고 그에 감동받아 오셨군요
참 아름답다 못해 그 시대에 어떻게 저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경외로움 마저 드네요
미국사람들도 용용 죽겠지 메롱을 합니다,
제 생각에 알류산 열도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온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의해 전파된것 같아요.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들의 조상이 한반도에서 넘어갔다는 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더군요
언어도 그렇고..미국서도 용용 죽겠지 메롱이 있다니 참 신기합니다
@지피지기(경북) 멕시코 어느 산골마을에,
용용 죽겠지와 비석치기,자치기,구슬치기,공기치기,땅따먹기,말타기등의 놀이가 있는데요,
누가 알려줬냐니까,
아버지와 삼촌들이 알려줬다하고요,
그 아버지와 삼촌들도 아버지와 삼촌들에게 배웠다고 합니다,
중공이 자기들거라고 하기전에 정부 차원에서 우리의 역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칸츄리꼬꼬(미국) 백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칸츄리꼬꼬(미국) 옛날 놀이중에 일본전승놀이도 있다네요
링크 한번 보시죠
http://www.sj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59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