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설악!'
지난 5월 설악산 공룡능선 종주에 이어 두 번째 설악을 찾았다. ‘어게인, 설악!’이란 이름을 정한 부산대학교 ROTC 동기 모임이다. 일흔 살까지 산(공룡능선 규모)에 오르자고한 약속의 첫 실행이기도 하다.
내설악 수렴동 계곡과 외설악 천불동 계곡을 거쳐 설악소공원에 도착하는 1박 2일의 일정이다. 이번 설악 콘셉트는 무리하지 않고 가을단풍을 즐기며, 설악의 기운을 받아, 삶을 더욱 충전함에 목적이 있다.
제1일(10월 26일) : 백담사-영시암-수렴동계곡-구곡담계곡-관음폭포-쌍용폭포-봉정암-소청-중청대피소(12.9km, 7시간)
# 수렴동계곡(水簾洞溪谷)
수렴동계곡은 백담사에서 수렴동대피소까지 약 8km에 이르는 계곡이다. 외설악의 천불동계곡과 쌍벽을 이루는 내설악의 대표적인 계곡이다. 백담사를 출발하여 3.5km 거리의 영시암(永矢庵)까지는 평탄한 길을 따라 오를 수 있고, 우측으로 수렴동계곡의 맑은 물을 만나게 된다. 길가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절정을 맞고 있다.
영시암(永矢庵)의 영시(永矢)는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라는 뜻이다.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암자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 삼연 김창흡(1653~1722)이 창건해 6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이후 몇 번의 중건을 거쳤고,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94년 백담사 주지 설봉 도윤이 중창했다고 한다.
수렴(水簾)동 계곡의 뜻은 ‘물방울을 매달아 발을 쳐놓은 계곡’이란 뜻이다. 맑고 깨끗하고 눈부신 계곡물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리라, 계곡의 동남쪽에 귀떼기청(1,578m)이 있고 계곡 바로 위로 옥녀봉, 오세암, 봉정암이 있다. 수렴동대피소에서는 가야동계곡과 구곡담계곡이 만나고 이후 봉정암에 이르기까지 용손폭포, 용자폭포, 쌍용폭포가 이어지며 해탈고개와 사자바위를 넘으면 봉정암에 닿게 된다.
봉정암에는 칠형제봉과 용아장성이 암자를 호위하듯 둘러져 있어 웅장한 화강암에서 전해지는 짙은 정기가 온몸에 퍼지는 듯하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양산통도사, 태백산정암사, 사자산법흥사, 오대산상원사)이 위치하고 있으며, 5층 불뇌사리보탑은 바위를 뚫고 나온 형상의 자연 암석을 기단삼아 5층의 몸체를 얹은 모습이다. 부처님의 정좌 모습을 상징하고 있으며 적멸보궁 참배는 곧 부처님의 친견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리탑 위의 너른 바위에 서면 그 무시무시한 용의 이빨형상인 용아장성을 만날 수 있고, 우측 칠형제봉 사이로는 공룡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의 의미, ‘여기에 들어오면서부터는 모든 알음알이를 내려놓아라’ 라고 하는 주련의 의미를 새기고, 가파른 길 1.1km를 힘차게 오르면 소청을 만나고, 다시 0.6km를 오르면 중청대피소를 만나게 된다.
봉정암에서 부처님의 가피를 받은 덕분인지 중청대피소에 들어선 후에야 어둠과 함께 장대비가 퍼붓고 세찬 바람이 대청봉을 울렸다.
제2일(10월 27일) : 소청-희운각대피소-무너미고개-천불동계곡(천당폭포-양폭대피소-귀면암)-비선대-와선대-설악소공원(12.6km, 7시간)
# 천불동계곡(千佛洞溪谷)
천불동계곡은 대청봉을 중심으로 동쪽을 외설악이라고 하고, 오련폭포에서 비선대까지 약 3km의 계곡을 천불동계곡이라고 한다. 계곡 양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각기 다른 모습의 불상 1,000여 개를 새겨놓은 듯해 천불동이라고 했다.
공룡능선과 천화대능선, 화채봉 아래 화채능선 사이에 있는 경승지로서 흘림골, 구곡담 단풍과 함께 설악산 3대 단풍 명소로 알려져 있다.
중청대피소에서 2.1km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희운각대피소를 만나게 된다. 최근에 지어져 시설이 좋은 대피소이다. 무너미고개는 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의 분기점이다. 천당폭포, 양폭대피소를 거쳐 귀면암과 만나게 되고, 다시 비선대에 이르게 된다. 계곡 양쪽으로 펼쳐진 다양한 암봉들과 터질 듯한 단풍들을 감상하면 신선의 경지가 따로 없음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짙은 구름과 얕은 안개, 가랑비가 내리는 계곡을 뒤돌아보는 경치는 선경이 아닐 수 없었다.
비선대(飛仙臺)는, 와선대에서 누워서 주변경관을 감상하던 마고선이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비선대라고 부른다. 기암절벽 사이로 한 장의 넓은 바위에 못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계곡 쪽에서는 미륵봉(일명 장군봉), 형제봉, 선녀봉이 보이며, 미륵봉 등허리에 금강굴이 보인다. 이곳에서 남쪽으로는 천불동계곡에서 대청봉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금강굴을 지나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탐방로의 시작 지점이 된다.
비선대에서 설악소공원까지의 약 3km는, 비교적 평탄하고 낭만적인 코스이다. 와선대 주변의 맑은 물과 아직 덜 여문 단풍의 싱싱함을 볼 수 있다. 특히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 기분은 긴 등정의 피로를 씻기에 충분했다. 무명용사비에서 소공원에 이르는 포장도로 양쪽에 펼쳐지는 단풍은 다음 주가 되면 최절정이 될 전망이다.
# 귀로
산행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보람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갖게 되는 성취감은, 쉬이 위축되기 쉬운 나이에 대한, 위기의식을 극복하는 유일한 처방이 아닐까 생각한다. 벌써부터 내년, 신년 산행모임을 덕유산, 지리산, 소백산 중에 택할 것을 약속했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긴 운전에서 피로감을 느끼지 못한 것은, 설악의 그 큰 정기를 받아서가 아닐까!
첫댓글 정말 멋집니다! 천산만홍 설악의 단풍도 멋지거니와 정비석의 '산정무한'을 능가하는 글 솜씨 또한 설악 단풍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30년 전, 백담사-봉정암-소ㆍ중청-희운각-양폭-비선대-소공원, 똑 같은 코스를 걸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생을 마치기 전에 이 코스를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는데 실현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설악단풍보다 더 아름다운 산행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글을 자세히 읽다보니, 달리마님의 글에서는 너무나 귀한(?) 오타와 띄어쓰기 두어군데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산행일자도 한 달 넘어가 있습니다. 그냥 넘기기에는 워낙 보석같은 글이라ᆢ
감히 지적질(?)의 오지랖을 용서하소서^^
새벽! 죽비소리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ㅋㅋ 고맙습니다 ㅎㅎ
우리 가야지 까페에만 올려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멋진 산행기가 달리마 샘의 섬세한 마음을 뚫고 나와 손끝을 통해 설악 단풍보다 더 아름답게 펼쳐지네요. 글과 사진이 일심동체 불이의 경지에 도달해 글을 읽고 사진을 감상하다 보니 나도 일행들 속에 섞여 신선놀음을 하고 있는 착각에 빠져듭니다. 설악동의 가을 풍광과 달리마 샘의 글과 사진이 군더더기 없이 천의무봉의 삼위일체를 이루어 거듭 읽고 보아도 자꾸 눈이 갑니다. 지금보다는 한참 젊은 날 등정했던 공룡능선과 용아장성, 그리고 여러 계곡들을 가보지 못한 지가 2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샘의 설악산 산행기를 읽고 나니 당장이라도 찾아가 보고 싶은 열정이 솟네요. 눈과 마음을 맑게 정화시켜 주는 주옥같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지나가는길에 잠시 들러
산행후기 즐감하고 갑니데이~~
감사합니다 ^^.
서원장님, 몇년전 효마클에서 마라닉 형태로 함께 갔었던 코스와 중.후반부는 똑같은데, 초입부분만 다른 코스..
다시 한번 가고 싶습니다.
@진돗개 도기정 그때는 오색-대청-중청-회운각-공룡-비선대로
약8시간(?) 날라갔지요~~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느낌입니다....
사진으로 설악의 가을을 만끽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구만리 밖을 훤히 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름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금정산 단풍이라도 보러 가고 싶어집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