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문은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불심이 참 좋으셨던가 봅니다.
저희 조부님은 그 당시에 스님들이 탁발(托鉢)을 다니실 때 조부님께서 머무시는 사랑방에 모셔서 주무시고 갈 수 있도록 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맨 처음에 시골 산사에 입산했을 때 그때는 옥련사였는데 요즘 옥련암으로 이름을 부르고 있대요. 그 옥련사 스님은 탁발하러 오시면 주무실 곳이 정해져 있어 아주 편안하게 탁발하실 수 있도록 해드렸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 제가 열여덟 살에 출가 결심을 하고 해인사로 날라 버렸잖아요.
어머님과 아버님은 이 출가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그런 상황이었겠죠.
맏아들이 소식은 없지. 그래서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겠어요.
그래서 옥련사에 가셔서, 옥련사 노스님 법명이 운학스님이세요.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릴 때 불렀던 이름이 운학이라 그래요. 이름이 똑같아요.
어머님이 스님한테 가셔서 우리 아들이 지금 행방불명이 됐는데 아마 절에 간 것 같다.
그렇게 급박한 말씀을 드렸겠죠
그 옥련사의 운학스님은 “참 좋은 일이다. 걔는 어디 가도 잘해 낼 수 있을 훌륭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불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답니다. 그래서 염불 수행은 저희 어머님이 저보다 더 빨리 시작하셨어요.
그 이후에 여러분 아시다시피 2012년부턴가요 대비주 수행 십 년 결사 1차 회향을 앞두고 BTN 불교 TV에서 대비주 수행 강설을 했잖아요. 방송을 했잖아요.
그 시청자 넘버 원이 저희 어머님이셨습니다.
늘 보시고 그것도 본 방송하고 재방송까지 다 챙겨서 보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 내용을 여러분들이 녹취를 하고 우리 금문보살님께서 그것을 잘 다듬으셔서 [대비주는 언제나 최상의 길을 내십니다] 책을 냈죠.
저희 어머님은 글을 잘 안 보시는 분이거든요.
그래서 아마 평생에 책 한 권 딱 보셨을 거예요.
원당 집에 가면 소파에 그 책을 두 권을 이렇게 고여 놓고 계신데 아마 손때가 묻은 것이 역력해요.
그것을 애독하셨습니다. 금문보살님 참 고맙습니다. 참 잘하셨습니다.
불심이 저보다 더 좋으신 것으로 저는 봅니다.
그래서 병원에 계실 때 하시는 말씀이 “나아서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마치 생사를 해탈하신 큰스님 말씀처럼.
그리고 병원 그 자리가 불편할까 봐 우리 아들이 또 딸이 걱정을 하시면 “안 좋은 곳이 어디 있노” “안 좋은 곳이 어디 있노.”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늘 소리 높여서 외치는 처처대비주라는 말씀을 그렇게 하셨어요.
그리고 여러분이 어머니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님 용돈을 챙겨주셨잖아요.
그 용돈을 가실 때까지 품고 계시다 가셨고 또 편지글을 읽어 드렸는데 그 편지글을 읽으실 때는 말씀을 못하시는 정도로 쇠약해지신 상태였는데 그 편지글을 읽으시고는 누워서 애써서 왼손을 가슴에 올리시고 오른쪽 손도 분명히 합장하는 모양을 만드시면서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
하는 말씀을 뚜렷하게 하셨어요.
그것이 또렷하게 말씀하신 마지막 말씀이셨어요,
그리고 아마 여러분들댁에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평소에 “우애 있게 살아라.”하는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처럼 우애 있게 살아라.”
우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다시 오늘 49재를 맞이해서 “우애있게 살아라”하는 어머님의 말씀을 다시 마음속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그래서 아버님 돌아가신 것을 천붕(天崩)이다고 한답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죠.
그다음에 어머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땅이 꺼진다. 지괴(地壞).
천붕지괴(天崩地壞) 이런 말씀을 옛날 어르신들은 하셨나 봅니다.
대비주에 집중하고 또 그때그때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 애를 많이 쓰지만 그래도 불현듯 어머님이 또 생각이 날 때는 참 이 온 세상이 그대로 슬픔 덩어리인 것 같애요.
효를 다하지 못한 머리 깎고 이 길로 들어와 버린 제가 이런데 정말로 효를 잘 실천해 온 우리 누님이나 또 동생들은 어떻겠습니까?
슬픔도 이제 오늘 어머님 극락세계 가시는 길에 다 보내드리고 이제 누님하고 자형을 우리 가문의 가장 큰 어른으로 잘 모시면서 어머님 말씀대로 지금처럼 우애있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 못다한 효를 제가 수행하는데 그리고 여러분들과 함께하는데 보다 정성을 기울여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이 평일입니다. 수요일인데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함께 해주신 여러분 은혜가 참 큽니다.
특히 덕림사 신도회장님은 제주도에서 이렇게 바다 건너서 오셨는데 감사드립니다.
덕림사 주지 스님이시고 또 우리 종단의 복지원장이시고 제주 총무원장이신 '휴休 자' '완完 자' 스님은 제가 91년도 동방불교대에 입학해서 불교 의식을 처음으로 가르쳐주신 분이에요.
저의 스승이십니다.
그것 중의 하나가 아까 나무아미타불을 길게 했죠.
길게 한 그 종송(鐘頌) 그리고 장엄 염불을 휴완(休完)스님한테 배운 거예요.
그것을 그때 배워서 평생 잘 쓰고 수행을 잘하고 있습니다.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기회는 드물지만 늘 존경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우리 현서스님 오늘 법문 잘 들었습니다. 그죠.
다른 가문 49재 지내고 할 때는 보통 1시 돼야 끝나요. 지금 한 12시 20분밖에 안 됐어요. 오늘 많이 봐 드린 겁니다.
거듭거듭 감사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