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4월 1일 주일 [(백) 주님 부활 대축일 낮미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화답송 후렴). 주일이 한 주간의 절정이듯, 주님 부활 대축일은 전례주년의 절정을 이룬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님께서 죽음과 악의 세력을 이겨 내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장 큰 기쁨이며 희망이다. 오늘 주님 부활 대축일은 하느님의 권능과 주님 부활의 은총에 감사드리는 날이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으니, 이제는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맙시다. 부활의 첫 증인인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벅찬 기쁨을 노래합시다. “그리스도 나의 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알렐루야, 알렐루야. 베드로 사도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라고 한다(제2독서).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달려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았지만,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한다(복음).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0,34ㄱ.37ㄴ-43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여러분은 37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39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러나 모든 백성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증인으로 선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관으로 임명하셨다는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님을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합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4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5,6ㄴ-8 형제 여러분, 6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생명의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생명은 선물이고 은총이지만, 동시에 언젠가 멈추고 마는 운명의 굴레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생명은 애착이고 미련이지만, 살면서 이미 죽음과 같은 고통과 좌절을 맛보고 다시 일어선 사람은 죽음 너머의 희망을 봅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인류와 모든 생명체가 운명처럼 맞게 될 죄와 고통, 죽음이라는 무덤의 바위를 열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선포되는 희망의 복음입니다. 빈 무덤을 발견한 마리아 막달레나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본 슬픔에 가득 찼고, 베드로는 스승을 배신한 죄책감을 안고 빈 무덤으로 달려갔으며, 가장 사랑받은 제자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빈 무덤에 먼저 다다랐습니다. 이들의 마음이 곧 부활을 맞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사순 시기 동안 진정한 회개와 희생, 보속의 삶으로 죄와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한 사람에게, 부활은 축제이며 기쁨이고 희망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이 하느님께서 악의 굴레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이루신 영광스러운 사건이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의 기쁨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는 확신 속에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부활 신앙은 우리의 생명이 하느님의 생명과 결합되어 있음을 믿는 것이기에, 더 이상 땅의 세력에 지배되지 않고 하늘의 생명을 추구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제 ‘알렐루야’를 외칩시다. 아무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둡고, 지치고, 힘들어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죽음의 권세에서 일으키시어 희망의 사람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은혜로운 부활의 첫 새벽에 참으로 은혜로운 부활의 첫 새벽입니다. 공포의 대상, 미지의 대륙이었던 죽음이 예수님의 발 아래 완전히 정복된 은총의 아침입니다. “나는 더 이상 여기 무덤에 있지 않다. 나는 정녕 되살아났다.”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주님 음성에 세상만물이 용약하는 축복의 아침입니다.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처참한 십자가의 길에서도 끝까지 세상에 굴복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에서 부활신앙의 진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죽음의 골짜기로 내려 가시면서도 만왕의 왕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어떻게 매순간 부활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 정답이 나옵니다. 고통의 바다인 이 세상을 건너가면서 예수님처럼 우리도 고귀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면 그것이 곧 부활의 삶입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다가오는 크고 작은 십자가 앞에서도 세상에 굴하지 않고 미소와 여유를 지니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부활의 삶입니다. 임종을 목전에 두고서도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던 환우, 오히려 저를 위해 기도하고 저를 위로하던 한 환우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사형입니다!”라는 판결문이 울려 퍼지자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크게 외친 한 순교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참된 부활 신앙이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이제 더 이상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건너가는 관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이제 이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지나가면 이 세상보다 훨씬 따뜻하고 행복한 세상, 완전하고 충만한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이 예수님 부활로 입증되었습니다. 예수님 빈 무덤 사건,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교 역사와 신앙 안에서 큰 획은 긋는 중요한 대사건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그냥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의 시신으로 그냥 무덤 안에 남아계셨더라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은 무의미합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창시자의 무덤에 대한 의미 부여가 대단합니다. 작은 조각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회당이나 법당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교는 창시자 예수님의 무덤이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시 빌리셨던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 소유의 무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빈 무덤입니다. 빈 무덤은 바로 예수님의 진정한 부활을 의미합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만왕의 왕임을 드러내는 확증입니다. 빈 무덤은 참으로 그분께서 부활하셨음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표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빈 무덤 앞에서 슬퍼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빈 무덤을 통해 드러난 예수님의 부활을 만천하에 알리는 부활의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죽음을 이겨냈음을, 예수님의 겸손과 순명이 죽음의 세력조차 물리쳤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일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부활의 기쁨은 계약의 약속이다
중국 전설 중 ‘홍옥아씨’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홍옥아씨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공주로 수많은 왕들이 와서 선물을 바치고 구애를 했습니다. 하지만 홍옥아씨는 만족할 줄 몰랐습니다. 그저 남자들이 자신 앞에 와서 쩔쩔매며 가진 것을 다 털어놓고 가는 것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도도함 때문에 더 이상 혼인을 청하는 왕들이 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햇빛에 그을려 일을 하고 돌아오는 아낙네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결혼도 못하게 될 것에 대한 불안함에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즐겁게 해 줄 광대들과 노래와 춤꾼들을 불러놓고 흥을 돋우려했으나 공허함은 더 깊어만 갔습니다. 뭇 왕자들이 선물하고 간 값진 보석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왕 중의 왕, 임금 중의 임금이 먼 얼음산 꼭대기에 살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가 다하기 전에 그 임금에게 자신의 춤을 보여주어 혼인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왕이 사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는 나이가 많은 현자 한 명과 수많은 병사들과 하인들을 데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정글을 지나고 사막을 지나고 겨울왕국을 지나는 동안 현자와 병사 몇 병사만 남고 다 죽어갔습니다.
마차만 타고 편하게 오던 그녀도 이젠 마차에서 내려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된 나이 든 현자를 태워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죽어가는 병사들을 위해 자기의 옷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들이 고마워하는 모습에 처음으로 따듯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결국 현자도 죽었고 마지막 한 병사만이 남았습니다. 홍옥아씨는 그 병사에게 고마워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산 정상에 오르기 전에 죽고 맙니다.
홍옥아씨가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본 것은 얼음뿐이었습니다. 그 얼음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마치 마귀할멈처럼 지치고 나이 들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 밑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산은 곧 눈사태로 무너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홍옥아씨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여 내려갔고 쓰러져 죽어가며 빨리 달아나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희미해져가는 눈으로 쓰러진 자신을 둘러싸 쳐다보고 있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외투를 벗어준 군인, 자유를 주었던 군인, 자신은 걸으며 자신의 마차를 내어주었던 현자 등이었습니다. 그들은 “홍옥아씨, 정말 아름답네요!”라고 말하고 있었고, 하늘 저 높은 곳에서 “홍옥아씨, 나를 찾고 있었느냐?”는 하느님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런 전설은 각 대륙마다 조금씩 다르게 토착화된 형태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결국 모든 인간은 이웃을 위해 자기 자신을 버릴 때 완성된다는 현자들의 깨달음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십자가 뒤에만 부활이 있다. 그러나 그 실천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반드시 져야만 하는 십자가가 부활의 조건인 것입니다.
우선 져야하는 십자가는 현세의 즐거움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현세에서 즐거움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상태여야 합니다. 현세의 즐거움에 만족해버린다면 자신을 버리는 여정을 떠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이웃사랑을 위해 자기를 버리는 과정에서 조금씩 기쁨을 체험해야합니다. 작은 십자가의 작은 부활들이 모여 결국 목숨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의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다 목숨까지 내어놓을 수준이 되었을 때 하늘나라 백성으로 맞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레오 리오니의 ‘티코와 황금날개’란 동화는 이 사랑의 완성이 작은 희생에서부터 시작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티코란 어린 새는 이상하게 날개가 없습니다. 물론 동료들은 자신들이 잡은 벌레를 날개 없는 티코에게 물어다줍니다.
티코는 황금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리고는 요정이 나타나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티코는 황금날개를 청합니다. 그런데 황금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티코는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아무 짓도 하지 않는데도 동료들이 잘난척한다고 생각하여 티코를 따돌리는 것입니다.
외톨이가 된 티코는 돈이 없어 자식의 수술을 시킬 수 없는 바구니장수를 만납니다. 그는 자신의 황금 깃털 하나를 뽑아 그 바구니장수에게 줍니다. 그 다음은 돈이 없어 인형놀이를 할 수 없는 사람에게, 그 다음은 또 다른 가난한 사람에게 깃털을 뽑아 나누어줍니다. 황금 깃털이 뽑혀도 그 밑에는 검은 깃털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모든 깃털이 검게 되자 동료들이 다시 티코를 받아줍니다.
황금 깃털을 뽑아 줄 때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 아깝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완성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죽어야 부활한다는 것은 맞지만 항상 작은 죽음과 작은 부활이 매일의 삶에 일어나야합니다.
세바시 610회엔 전종목이란 강사가 자신이 어머니와 누나를 암으로 보내고 어떻게 그런 상실감을 극복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운동을 잘 하셨던 어머니가 목소리도 안 나올 정도로 몸이 말라 위암으로 돌아가시고 그때 유일하게 자신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누나도 결혼 직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전정목 강사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었습니다. 죽기로 결심하고 인생을 정리하고 위해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바로 그 시간 6살 정도 된 남자 꼬마아이가 초등학교 누나에게 과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도망치다가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고 과자는 진흙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울고 있는 동생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집에 가면 더 맛있는 거 있어. 먹지도 못하는 거 쳐다보면 뭐 해, 바보같이. 빨리 가자!”
이 말이 마치 죽은 자신의 누이가 자신에게 해 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여전히 아버지도 있고 새 엄마도 있고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는 되돌아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고 예쁜 아이도 낳았습니다. 아이는 혈우병을 앓고 있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고 멍이 심하게 드는 병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많이 가진 것 중에 단 하나만 핏속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런 부활의 경험이 더 내어주는 삶을 살게 만듭니다. 불만과 죽음의 그림자로 자신이 사로잡힐 때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감사와 사랑이 그 그늘에 숨어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내가 모함을 당할 때 눈물이 흐르고 분노가 끓어오를 때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를 반복해서 기도하면 어느새 눈물이 나오고 용서와 평화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무덤에 묻힌 내가 무슨 분노와 무슨 미움이 있겠습니까? 내가 죽으면 반드시 부활이 오게 돼 있습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성혈을 들고 “너희와 맺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다”라고 하는 사제의 말을 듣습니다. 돈을 지불했으면 당연히 물건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계약입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기만 하면 반드시 그 피를 주겠다고 들고 서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피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기쁨이고 행복이고 힘이고 부활입니다. 그분은 계약을 어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한 번도 그분의 말씀 때문에 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십자가와 부활의 계약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올 성주간 때 수원교구 내에서 큰 사랑을 보았습니다. 한 신부님이 간이 안 좋아 급하게 간을 이식하지 않으면 며칠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란 문자가 돌았습니다. 가족 내에서는 그 신부님에게 간을 기증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간이 안 좋은 집안병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자가 있자마자 많은 동료 사제들이 서로 자신의 간을 기증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간 기증을 위해서는 자신의 간 70%를 절제해 주어야하고 함께 붙어있는 담낭은 제거됩니다. 간이 다시 회복된다고는 하나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 아프신 신부님이 본당 신부님일 때 신학생이었던 한 가녀린 신부님이 간 크기가 맞아 선택되었습니다. 사실 그 신부님은 몸이 약해 보여 처음부터 제외되었던 분입니다. 간 기증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허락도 받아야하는데 그 부모님은 “사제단이 제 아들 신부님의 가족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수술을 받고 두 분이 회복중에 있습니다. 한 분은 다시 의식을 찾아 부활을 맞고 다른 한 분은 자신의 살을 나누어준 기쁨에 부활을 맞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매우 가까워진 그 신부님의 모습을 보며 그 불안함과 두려움을 견뎌내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 기쁨으로 부활을 맞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당신 살과 피를 나누어주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위해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활이 없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면 당신처럼 부활의 기쁨을 누릴 것이란 확신도 주십니다. 자신의 간을 내어주는 그 큰 결정이 아니더라도 나의 작은 시간, 작은 관심,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부활의 기쁨 속에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고베 대지진이 있었을 때 봉사하러 온 사람들 중에 막 자살을 하려던 젊은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또 마더 데레사에게 와서 봉사를 하다가 자살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죽음은 바로 이웃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찾아옵니다. 부활은 이웃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반드시 오게 돼 있습니다. 살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이웃을 위해 죽어야만합니다.
|
오늘의 성인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 은수자
마리아는 히브리어 Myriam에서
유래된 말로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여자’란 뜻이다.
젊은 테오도시우스의 통치때, 팔레스티나에는 한 집에서만
43년동안 살았고,
하느님만 섬기는 거룩한 조시모라는 수도자가 있었다.
그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요르단으로 향하였으나,
자신은 자기 수도원과 20일 간의
거리나 떨어져 있음을 알고는
기도 시간이 되어 시편을 외우고 있었다.
이때 그는 "조시모 신부님, 나는 여자입니다. 당신의 겉옷을 던지면
나를 볼 수 있습니다."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의 주인공이 곧 이집트의
마리아는 히브리어 Myriam에서
유래된 말로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여자’란 뜻이다.
젊은 테오도시우스의 통치때, 팔레스티나에는 한 집에서만
43년동안 살았고,
하느님만 섬기는 거룩한 조시모라는 수도자가 있었다.
그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요르단으로 향하였으나,
자신은 자기 수도원과 20일 간의 거리나 떨어져 있음을 알고는 기도 시간이 되어 시편을 외우고 있었다.
이때 그는 "조시모 신부님,
나는 여자입니다. 당신의 겉옷을 던지면 나를 볼 수 있습니다."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의 주인공이 곧 이집트의 마리아이다.
그녀는 이집트 여성인데, 17년 동안이나 거리의 여성으로 살아왔지만,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28세때, 신비스런 방법으로 그녀는 예루살렘으로 성 십자가 축일을
지내려 가는 일단의 무리들과
합류하게 되었는데,
여행을 하는 도중에 자기의 악습을 고치지 못하고 열심한 순례자들을 타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드디어 예루살렘에 당도하여
성당에 들어가려 하니,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듯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서 있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크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윽고, 눈을 들어 마리아 상을 바라보니, 그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고 한다.
그제서야 그녀는 밝은 마음으로 성당으로 갔고, 깊히 통회하니, "너는 요르단으로 가서 여생을 지내라."고 명하여 이렇게 사막에 산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요르단 사막에서 47년 동안이나 사람 한사람 구경못하고 살았다.
조시모는 그녀를 위해 성체를 영해주고, 그녀가 약속한 두 번째 지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갔으나, 그녀는 이미 운명하고 있었다.
"조시모 신부님, 가련한 마리아를 장사지내 주십시오."하며 숨을 거둔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자기의 모든 형제들에게 이야기해주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그레노블의 성 후고 주교
프랑스의 샤토외프에서 태어난
그는 평신도로서 방랑스의 주교좌에서 활동하다가 주교의 협조자가 되었다.
그는 성직매매를 반대하는 주교의 캠페인에 적극 가담하여 큰 성과를 얻었고,
1080년에 열린 아비뇽 시노드에 참석하고 있던 중에 그레노블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교황대사로부터 서품되고, 로마에서 교황으로부터 직접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는 주도면밀한 교구 개혁안을 수립하였는데, 성직매매와 고리 대금업을 철저히 배격하였고,
성직자의 규율과 사제 독신제를 확립하는 한편, 텅빈 교구 재정을 튼튼히 하였다.
그후 그는 세즈-디외 수도원에서 베네딕또 회원이 되었으나,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권고로
자기 교구로 돌아갔다.
그는 성 브루노의 제자였기 때문에
늘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성 브르노의 카르투시오회가 크게 번창하는데 기여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로도비코 파보니(Lodovico Pavoni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연도 : 1784-1849년
같은이름 : 누수, 로도비꼬, 로도비꾸스, 로도비쿠스,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코,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성 로도비코 파보니는 1784년 9월 11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의 브레시아(Brescia)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활기 넘치고 총명한 아이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관심을 갖고 당대의 사회적 문제들을 이해하는데 재빨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후에 브레시아의 주교가 된 도미니코회의 카를로 도메니코 페라리(Carlo Domenico Ferrari) 신부의 집에서 신학교육을 받으며 사제직을 준비하였다. 집에서 공부했던 것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Napoleon I)가 이탈리아를 점령했던 시기(1799-1814년)에 신학교가 강제로 폐교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1807년 브레시아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818년, 그는 고아원과 직업학교를 설립할 허락을 받고 성 바르나바(Barnabas) 성당의 주임신부로 임명되면서부터 불행한 소년들을 돌보는 사업을 시작했고, 이는 1821년 ‘성 바르나바 학교’로 구체화되었다. 그는 첫 번째 사업으로 인쇄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1823년에 ‘성 바르나바 학교 출판사’를 설립했고, 이는 오늘날의 ‘안코라 출판사’(Ancora Press)의 전신이 되었다. 소년들은 또한 목수, 은세공인, 대장장이, 제화공, 염료 제조 기술자가 될 수 있는 교육을 받았다. 같은 해에 그는 처음으로 농아들을 학교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농장을 구입하여 농업학교도 설립하였다.
1825년,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는 자신의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사제와 수사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만들었고, 1843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는 브레시아를 위해 이를 승인해 주었다. 1847년 8월 11일, 브레시아 교구의 주교좌 참사위원장 루치(Luchi) 몬시뇰이 ‘원죄 없으신 성모의 아들회’[또는 ‘파보니아니’(Pavoniani)]를 설립했고, 그해 12월 8일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와 첫 회원들의 수도 서원이 거행되었다.
1849년 3월 24일, 브레시아가 오스트리아에 저항했던 ‘열흘’ 동안, 양측은 모두 브레시아를 약탈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콜레라마저 유행하는 동안 시민들을 돌볼 책임을 느낀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는 12km 떨어진 사이아노(Saiano) 언덕에 있는 수련소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소년들을 이끌며 그의 마지막 영웅적인 애덕의 행위를 완수했다. 한 주일 뒤인 1849년 4월 1일, 주님 수난 성지주일이 밝아오던 새벽녘에 그는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30여 년간 교육의 긍정적 방법으로 거리의 소년들의 필요에 봉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영감을 쏟아 부었던 그의 생이 마감된 것이다.
교육에 대한 그의 이상은 광범위한 것으로 한 인간의 전인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제자들을 훌륭한 사회인이자 그리스도인으로 교육했다. ‘노동헌장’이 반포되기 50년 전에 이미 그는 사회정의의 종교적 의미를 이해하고, 그 스스로 고용인들을 올바로 대우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후대의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처럼 격려하고 예방하는 교육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엄격함보다 관대함을 선호했다. 그래서 종종 “엄격주의는 하늘나라를 텅 비게 만든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가 설립한 수도회의 회원들은 현재 브라질, 콜롬비아, 에리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에스파냐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책을 출판하는데, 로마에서는 성 베드로 광장 밖에서 안코라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는 2002년 4월 1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16년 10월 16일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는 성 루도비쿠스 파보니(Ludovicus Pavoni)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