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씨'에 비유하셨습니다. 씨를 땅에 심고 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싹이 나듯이, 내 마음에 심어 놓은 하나님의 말씀도 '묵상'의 과정을 거쳐야 물리적인 세계로 표출됩니다. 이 과정이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거나 '왜 이런 과정을 중간에 끼워 놓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것은 사실 우리를 위한 안전장치입니다. 마음은 좋은 쪽으로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도 변화되기 때문에 마음이 무엇인가를 지속적, 반복적으로 품고 있을 때에만 그것의 열매를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문제아가 모범생이 되지도 않지만 동시에 하루아침에 모범생이 문제아가 될 것이라는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훈련은 마음에 말씀을 공급하는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마음의 변화 없이 신앙 훈련 자체가 우리를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매일 매일 성경을 일정 분량 정해서 읽는 것은 좋은 신앙의 훈련이지만 주변에 성경을 엄청 많이 읽는 사람들 중에서도 전혀 생각이 새롭게 되지 않고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지지 않은 분들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읽는 것은 다분히 머리만 가지고도 할 수 있는 활동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을 전혀 열지 않고서 종교적인 위안을 얻기 위해서 읽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얘기지요.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당부를 할 때, 아이들이 귀로 듣긴 들어도 마음으로는 듣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내가 들려주는 얘기를 다 흡수하고 받아들이며 그 속으로 완전히 들어오는 사람을 보신 적도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말씀은 읽고 난 뒤 반드시 마음을 열어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가 믿어야 하는 대상인데 믿는 것은 우리 마음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이 하는 일 중에 믿는 것 외에도 굉장히 영적인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엡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 묵상의 한 형태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본다’니 이 얼마나 추상적이고 시적인 표현인지, 듣는 이뿐 아니라 말하는 저 또한 알고 하는 얘기인지 모르고 하는 얘기인지 증명할 길이 없는 표현이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단 한 구절을 묵상한다 할지라도 그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시며(계 19:13) 내가 지금 천지를 창조하신 바로 그 창조주,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있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그것이 정말로 사실임을 믿으면서 주님이 직접 나에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우리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로 들면 다음 날, 누군가를 어딘가에서 만나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는 길을 미리 한번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그림을 그려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리듯, 말씀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려 보는 것이 묵상의 한 형태입니다.
연습 삼아 해 보면 좋을 만한 것이 바로 시편 23편 같은 것입니다. 대부분 내용을 외우고 계실 테니 눈을 감고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정말로 주께서 나를 쉴만한 물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묵상하는 것이지요. 성경 속의 나머지 모든 약속의 말씀도 그러한 방법으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제가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그 활동이 일어나는 곳은 우리의 머리가 아닌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에 이러한 묵상은 우리의 마음이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묵상이 됩니다. 그런데 믿는 일은 마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롬 10:10) 이렇게 마음이 참여하는 묵상을 할 때,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활발하게 역사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을 통해 우리의 말씀 묵상이 더욱 생생해지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길로 인도해 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