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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의 존재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단풍의 절정
만추에
우리는 존재의 가치를 묻고 싶다.
“나는 정말 얼마나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인가?”
진화론에 심취한 한 과학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이제 수백년동안 연구한
인간의 가치를 말해 드리겠습니다.
오래도록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이기에
너무 섭섭해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자! 인간의 가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연히 왔다 사라지는 먼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존재의 시작이 우연이니
우연히 사라져도 아무런 문제가 생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닙니까?
그러니 정 억울하다 생각되시면
그저 사는 동안 하고 싶은 것하고
즐기다가 가십시오.
천국이니 소망이니 영생이니 하는
이런 허황된 것들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만족하는가?
인생은 그냥 제멋대로 살다가 죽으면 끝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가을에 진지한 삶의 도전을 시작해 보자.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 가운데 있는 동물과 식물들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또 사람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문제는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요 흥미로운 문제가 되어 왔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위해서 뿐 아니라 올바른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게 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기초가 된다.
초등학교 3학년 철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집에는 근사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철이는 이런 고민을 할까?
“도대체 누가 이 밥상을 차려 놓았을까?”
철이는 딱 보면 안다.
“세상에 엄마말고 누가 나를 위해서 이런 멋진 밥상을 차려 놓을수 있겠어!
나를 위해 멋진 밥상을 차려 준, 엄마 고마워”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숙제를 한다.
이게 정상적인 학생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우리앞에 차려진 밥상같은 이 세상의 기원에 대해 3가지 생각을 한다.
첫째는, 토마스 헨리 럭스레이가 말한 ‘불가지론’(不可知論)이다. 내가 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겠는가?
둘째는, 찰즈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進化論)의 사상인데, 온 세상이 저절로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셋째는, 엄마가 밥상을 차려놓은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과연 이 신비롭고 오묘한 지구, 신비한 인체, 신비한 생명은 저절로 생긴 것일까? 신비를 영어로는 미스테리(mystery)신비하고 알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한문에서의 신비(神祕)는 더욱 의미깊은 뜻을 전달해 준다. 하나님 신(神)자와 비밀스런 비(祕), 하나님이 하신 비밀스런 이야기가 신비한 것이다.
신빙성 없는 진화론의 정체
진화론적 사상은 옛날 헬라 시대에도 주장한 이가 없지는 않았으나 근대의 진화론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영국의 ‘찰스 다윈’이「종(種)의 기원(起源)」이라는 책을 저술함으로서 온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 진화론은 순전히 가정(假定)을 기초로 한 것으로서, 자연 도태(陶汰)와 적자 생존(適者生存)의 원리 즉 자연계에 있어서 그 생활 조건에 적응하는 생물은 생존하고, 그렇지 못한 생물은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는 이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완성된 과학이 아니라 일종의 학설에 불과한 것이다.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것이 입증되고 증명된 과학처럼 인식하고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진화론이 입증되고, 확인되어진 사실이 되었다면 진화법칙, 진화과학이 되어야 하지만, 그럴리는 없다. 왜냐하면 증명되지 않은 증명될 수도 없는 이론, 학설, 주장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이 사실이 아니라는 몇가지 증거들을 생각해보자.
진화론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수억년이 지나서 우연히 저절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이론이다.
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학의 기초는 인과(因果)론에 기초한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없다. 그 원인을 찾는 것이 과학의 정신인데, 진화론은 아무 이유가 없는 것에서 이렇게 엄청난 결과들이 발생했다는 상상에 기초한다.
②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원소, 물질, 단세포, 다세포, 생물들이 생겼다고 하지만, 이것을 증명해 주는 중간단계의 화석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 진화론에서도 밝히는 사실이다.
③ 진화론은 이론이지만 멘델의 유전법칙은 이를 반대한다. 유전법칙은 쉽게 말하면 종두득두(種豆得豆) 종과득과(種瓜得瓜)이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지, 그것이 바뀌어질리는 없는 것이다.
④ 그렇게 수많은 생명들이 다 진화되었다고 하는데 온 세상을 둘러보라. 수천 수만종의 생명체들이 어느 것 하나 제 부모가 없는 것이 없다. 다 생명체에 의해서만 생명이 전달된다. 사람뿐 아니라 개도 족보가 있고, 똥파리도 애미가 있다. 개천절 노래 가사처럼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저절로 되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⑤ 진화는 딱 한번, 딱 한 과정으로 되었기 때문에 절대 우리 눈으로 관찰 할 수 없는 것이라는데, 그것이 더 웃기는 이야기가 아닌가? 딱 한번, 한 곳에서 시작되었다면 그것은 진화보다, 창조에 가까운 주장이 아닌가? 만약 진화가 되어졌다면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다른 인종들이 나타나야 하지 않겠는가?
영국의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Fred Hoyle)**은 생명 탄생의 확률을 10⁴⁰,⁰⁰⁰분의 1 정도라고 추정했다. 그는 이 확률이 너무 낮아 **"마치 고철 더미 위를 지나가는 토네이도가 우연히 보잉 747을 조립하는 것과 같다."
일본 평범사(平凡社) 발행 대백과사전 “진화론의 추세(趨勢)”라는 항목에는 이러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진화설은 생물 학계에서 널리 또 확실히 신뢰하는 바 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늘날도 여러 가지 점에 회의적 태도를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근래에 와서 이런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뒤를 이어 일어나고 있다. 그런 이들의 주장의 요점은, 요컨대 오늘날 진화론설을 입증하는 데 사용한 자료가 오늘날에 제공하는 결론을 위하여 너무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창조의 기록
구약 성경의 첫 번째 창세기 1장 1절에 기록하기를,“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였다. 매우 단순하고 명료하고 확실성 있는 어조다. 또 시편 기자는,“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만 상이 그 입기 운으로 이루었도다”(시편 33편 6절)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무슨 이론(異論)이 없다. 다만 사실을 사실로 인정했을 뿐이다. 그러면 이 세상이 어떻게, 얼마 동안에 이루어졌는지 상고해 보자.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였다. 태초에는 이 지구가 많은 물로 둘러싸였고 흑암과 공허뿐인 혼돈한 세계였음이 짐작된다.
첫째 날
그 첫째 날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세기 1장 4, 5절).
여기서 아침과 저녁이라고 말한 것은 지구의 자전(自轉)으로 인한 1주야(晝夜)즉 24 시간을 뜻하는 것임을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경상 사실을 진화론과 부합시켜 보려는 노력에서, 창세기의 1일이 오늘날의 하루가 아니요 한 세대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창세기의1 일이 10만 년 혹은 수백만 년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모순된 의견이요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을 의심하는 태도이다.
둘째 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창세기 1장 7절).
즉 공기(空氣)를 만들어 물을 지면(地面)과 공간(空間)에 나뉘게 하셨다. 그리고 공간에 증기층(蒸氣層)이 있어, 지구는 한 대(寒帶)나 열대(熱帶)의 구별이 없어 기온이 균일하였다. 그리고 그 증기 층은 노아 홍수 때에 제거된 것이 아닌가 한다(오늘날 시베리아의 빙원에서 ‘맘모스’라는 열 대산 코끼리의 동결(凍結)된 시체가 부패되지 않은 채 매몰(埋沒)된 것이 고스란히 발굴된 것은 그 증거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셋째 날
땅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육지가 드러나게 했으며, 그 육지에는 풀과 곡식과 나무들이 자라게 하셨다.
넷째 날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창세기 1장 15절)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늘의 천체 즉 해와 달과 별들이 이 날에 지구와 관계를 맺고 빛을 비추어 주었다.
다섯째 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를 각각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여섯째 날
육충과 곤충과 땅의 짐승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즉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모든 생물을 각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만일 한 종류만 창조해도 여러 종류로 변할 수 있었다면 종류대로 창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유명한 멘델의 법칙에 의하면, 생물의 종류는 결단코 다른 종류로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즉 어떤 한도 이상 더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의 창조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장 26-28절).
이리하여 사람은 만물 가운데 가장 고귀한 존재로, 하나님의 사라의 대상자로 창조함을 입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고상한 뜻을 자각할 때에 그의 인생관이 달라지고 그 생애의 발걸음은 자연히 변화를 가져오레 된다.
창조 사업의 완성과 안식일
하나님의 창조 사업은 6일 만에 완성되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이 좋았더라”(창세기 1장 31절). 이와 같이 6일 동안에 창조 사업이다 이루어지매 하나님이 제7일을 안식일로 구별하시고 이 날을 창조의 기념일로 삼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날을 지킬 때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업을 기억하고, 그분께 예배하고, 그분의 사랑을 감사함으로 복을 받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인류가 태초로부터 이 귀한 안식일 제도를 계속하여 거룩이 지켜 왔던들 오늘날 세상에는 북가지론이나 진화론 같은 불신의 사상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창세기는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님
그리고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것은, 이것이 마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의 사실을 기록한 서사문(敍事文)이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일자와 연대와 장소와 인명과 연령과 족보까지도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무슨 글이든지 그 글 자체가 자체의 진실성 여부를 잘 드러내는 것이다.
조물주이신 하나님의 존재
과학 문명이 발달하고 물질주의가 팽창해짐에 따라 진화론이 성행하고 무신론적 사상이 널리 퍼졌다. 심지어 종교를 미신으로 돌리고 “신이란 것은 사람들이 가상적으로 만들어 낸 개념에 불과하다” 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유물주의 사상은, 눈으로 복 수 없는 것은 실재(實在)한 것으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부인하지 못할 여러 가지 증거들이 많이 있다.
① 양심이 스스로 증거함
첫째는, 인간의 양심이 스스로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더구나 우리 한민족(韓民族)은 옛날부터 하나님을 천지 만물의 지배자로 믿어 왔다. 그것은 우리의 본심이 전능하신 이를 신뢰해야만 만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각인은 하나님을 분별해서 알 만한 영적 능력을 스스로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은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로마서 1장 19절)고 하였다. 인간의 생애에는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마음으로 생가하고 느낄 수 있는 기이한 경험들이 많이 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하여 사람들은 누구나 신의 존재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다.
② 만물을 봄으로
둘째로는, 우리가 만물을 봄으로써 조물주가 계신 것을 인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원인 없는 결과는 없고, 모든 것은 그 만든 자가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로버트 잉거쏠’이라는 미국의 한 불가지론 자가 ‘헨리 와드’라는 유명한 설교자의 집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응접실에 들어가니, 거기에는 하늘 성좌(星座)들을 그려서 만든 훌륭한 천구의 (天球儀)가 있었다. 그가 주인을 향해, “이거 참 훌륭한데요, 누가 만든 것입니까? “하고 물으니, 주인은 서슴지 않고, “만들긴 누가 만들어요, 저절로 그렇게 되었지요”라고 대답하였다. 물론 인걸쏠 그 대답에 만족했을 리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스스로가 대답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아름답고 기묘하여 너무도 질서 정연하고 조직적인 천연 계를 볼 때 이것이 저절로 우연히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드시 어떤 전능한 지혜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봄이 더욱 자연스럽고 타당한 생가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로마서 1장 20절).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이사야 40장 26절).
③ 신앙심이 증거함
모든 인류가 존재하는 곳에는 문명의 발전과 상관없이 다양한 형태의 신앙이 존재했다. 인간을 짐승들과 다르게 만드는 유일한 것이 신앙심이다.
④ 성경 말씀이 확증됨
구약 성경 맨 서두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는 아주 확실하고 장중(莊重)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주는 말씀이다.
⑤ 나의 존재가 아버지의 존재의 증거임
어느 대학교에서 교수님이 학생에게 질문을 했다.
“자네는 자네 부모님이 계신가?”
“네, 계십니다”
“그렇다면 부모님이 계심을 증명해보게?”
“눈으로 볼수 있고, 만질 수 있으니 계신 것입니다.”
“자네 논리라면 부모님이 멀리 출타하셔서 볼수 없고, 만질 수 없다면 안 계신 것인가?
부모님의 존재의 가장 분명한 증거는 자네일세, 자네가 있다는 사실이 자네를 존재케 한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에 대한 가장 명확한 증거일세.
자녀는 아버지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하고 완벽한 이론이다. 이 사실을 명제(命題)화 하면 "나의 존재는 부모의 존재의 증명이다" 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는 유기적(有機的)이며 개별적(個別的)인 관계의 연속 상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 내가 있다는 사실은 나의 보모가 있다는 확실한 증명이며 그것은 또한 그 부모가 있다는 증명도 되는 것이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 3: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참 하나님
우리는 세상의 허다한 신 가운데서 오직 참 신, 참 하나님을 찾아 알고 그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어떤 신이 참 신이요 참 하나님인가?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오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한 왕이시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예레미야 10장 10-12절).
과연 세상에 허다한 신이 있으되 이 세계와 만물을 짓지아니한 신은 참 하나님이 아니요 우리가 존경하고 신뢰하고 경배할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https://youtu.be/y9fWUlEmqcY?si=M3RSiH3jUzkVryrF
https://youtu.be/lZAo5miNkzQ?si=oba9qZy8LHn-mv6e
https://youtu.be/1NX7aEAv-JI?si=tr1iG3a4N1cc25vT
https://youtu.be/z5GJgYUX9IU?si=Oq62ekrbK5hkqoqi
https://youtu.be/bXPaqsmxMrU?list=PL-xlRAs8H4lzt60AFKPgdb4PlHPdgXVb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