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인물과 사상 2월호] 지승호의 신해철 인터뷰
대선이 끝난지 일주일이 지난 12월 28일 방배동의 한 까페에서 가수 신해철씨를 만났다. 노무현 당선자 지지유세를 했던 신해철씨는 선거 과정에서 느낀점, 선거 후 벌어지는 논란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지승호 : 선거가 끝난 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신해철 : 선거 후예요? 인터뷰가 보시다시피 이러네요. <월간 인물과 사상>, <말>, <한겨레>니 이런 곳에서만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네요.(웃음) 스포츠 신문하고 인터뷰해 본 적이 없어요. '오늘 스케줄은 뭐냐?' 그랬더니 어디 표지모델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오! 표지모델. 어디냐? 레이디 경향?' 이랬더니 <월간 인물과 사상>이라고 하데요. 갑자기 맥이 빠져서 '어, 그러냐?' 했죠.(웃음) 만날 이런 것만 해서 음반 안 팔리면 어쪄죠?
지 : 팬층이 더 넓어졌다고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웃음)
신 : 글쎄요. 팬은 예전에도 꽤 넓은 층이었던 것 같아요. 활동연수가 오래됐으니까 어떻게 보면 당연한데 최근 음악 활동, <고스트 스테이션> 진행하면서 10대팬들이 늘었고, 2-3년에 한번씩 10대들이 늘어나는 해가 있어요. 공연장에 가면 초등학생부터 넥타이 부대까지 다 있죠. '그렇다고 해서 국민가수라고 부르면 죽여버린다'고 주위에 강요하고 있습니다.(웃음)
지 : 민주당 국민경선 때 '광주의 선택은 위대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대선 후 광주의 지지율 95%에 대해 말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신 : 숫자상으로 봤을때 위협감을 줄 수 있는 수치가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다면 그 안에 숨겨져있는 이야기들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것들을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그 수치가 주는 위압감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라고 봐요. 말을 꺼내는 사람들 자체가 이 나라에서 개혁되어야 할 대상임을 스스로 실토하고 있는 것이죠. 수치상으로 볼 때도 경상도의 70-80%는 전라도의 95%와 맞먹어요. 그렇죠? 경상도에는 전라도 사람들이 꽤 살지만, 전라도에는 경상도 사람들이 살지 않으니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비슷한 수치가 나온 겁니다.
예를 그대로 들기는 뭐하지만, 이번에 민노당 지지자들의 표가 정몽준이 나중에 지지를 철회하고 나서 급속도로 노무현 후보 쪽으로 몇십만표 이동했다고 하죠. 자신의 표가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임을 알고 있고, '그것을 미래를 위한 진보정당에 투자할 것이냐, 지금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냐?'를 두고 시간시간마다 상황 판단을 했을 거고,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고도의 정치적인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민노당 지지자라는 말입니다. 4%냐 5%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어떤 4%냐고 할 때 저는 고도의 정치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는, 대단히 밀집력이 있는 귀중한 퍼센트라고 생각해요.
호남 사람들은 그들의 절박함 때문에 고도로 정치적인 입장을 발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고,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정확한 선택을 했다는 거예요. 제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경상도 출신이기 때문에 편하게 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 면에선 고맙죠. 제가 전라도 출신이라면 이빨도 안 먹힐 거예요. 이게 슬픈 거죠. 바로 호남에서 90%대의 몰표가 나오고, 경상도 출신인 노무현 후보에 대해서 호남이 결집해서 표를 보내고, 이번에는 이 사람을 찍어야겠구나 이런 입장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지 : 그걸 보면서 어떤 분은 '나치스 같다'는 말을 하던데요. 그런 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 : 지금 우리는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 두명이 깔려죽었다고 난리치고 있는데, 전두환 군사정권은 장갑차 몰고 들어가서 수천명의 동포를 향해서 총을 쏘지 않았습니까. 그 역사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고, 그리고 각계각층에서 호남 사람들을 차별하도록 선동하고, 실제로 호남 사람들의 사회 진출을 막지 않았습니까? 그럼 노무현 당선자가 이런 상황에서 영남의 입장을 살려주거나 영남을 위주로 한 조각을 하면 호남 사람들이 욕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그 이면을 보는 거죠. 그쪽은 그 정도로 세련이 되었어요. 슬프게 세련된 거죠. 그런데 아직도 세련이 안 된 사람들이 그것을 무작정 어떤 지역감정으로 생긴 몰표라고 이야기하는데, 호남 사람들이 '이회창을 선택할 이유가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잖아요. 뻔한 거죠.
지금 대구가 전국에서 왕따당한, 경북이 고립된 듯한 그림이 되어버렸는데, 저도 <개그콘서트>에서 선물 사가지고 들어오면서 '당신에게 좋은 선물을 준비했어요'라는 말을 경상도 말로 하면 '오다 주웠다'라고 하는 걸 보고 기절하도록 웃었어요. 경상도 정서를 알고 어릴때부터 몸에 밴 사람들은 100% 이해할 겁니다. 경상도쪽 이야기만 나오면 와아프는 까무러치게 웃어요. 저는 그게 무슨 이야긴지 아니까 웃고, 와이프는 평상시의 제 정서랑 너무 똑같으니까 웃거든요. 저는 뿌리깊게 경상도 정서가 남아 있지만, 모든 경상도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전두환을 찬성한 것도 아니었고, 역대 영남정권이 한 치졸한 행위라든가 현재 영남 사람들이 속좁게 웅얼거리는 데 대해서 찬동하지도 않아요.
대구 유세할때 그런 말을 했는데요. '대통령을 몇 번이나 배출했으면 전국적인 사고를 해야 할 거 아니냐?' 대구라는 도시가 아직도 일개 지방 도시만한 사고를 하니까 도지사 선거도 아닌 대통령 선거에서 '누굴 뽑아야 지역경제가 살아나나?' 이런 이야기들만 하고 있거든요. 매를 맞아야 해요, 매를 맞고 왕따를 당하고, 왜 우리가 왕따를 당하는지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하는 겁니다.
지 :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는 순간 어떤 기분이 드셨습니까?
신 : 제 의견에 동의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정치 관련 게시판이나 이런 곳에서 6·10 항쟁이 종료되었다는 감개무량함과 또 한편으로는 이것이 1막의 종장일 뿐이고, 이제 2막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역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요. 현실정치에서 일하는 것은 어쨌든 아닐 것이고, 내 직업군에서 내 직업 지키면서 앞으로는 지난 15년 세월을 살아왔던 것만큼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한 것이 자랑인 것처럼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는 결심을 했죠.
정치에서도 희망을 가진 사람들을 꾸준히 찾아내고, 지원하고, 마음을 모으고 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정치와 2주간 가깝게 지내면서 정치에 대한 환멸이 더 커지지 않을까, 마음을 다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많은 것을 얻었어요. 줄서기 하는 사람들부터, 생색내는 사람들,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까지, 경멸하는 것은 멀리서 보던 것보다 훨씬 심하더라고요. 클로즈업해서 보니까, '야, 이거 명불허전이다.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의외다 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지 : 보통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냉소적이라고 하는데, 유세 다니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30대의 씩씩한 운동권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유세장에 나오는 것을 보고 희망을 느꼈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요.
신 : 정치 행위 자체에 참여하는 그런 것들도 있겠지만, 자신들이 뜻하던 바를 현실 생활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실천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을때, 그것이 제 마음속에서는 대단한 희망의 싹이었어요. 왜 진작 나는 이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는가, 정치적인 성향이나 지지 후보가 같아서일 수도 있겠는데, 그 사람들이 길에서 악수를 청해올 때나 눈빛을 보내올 때의 동질감이나 이런 것들이 팬으로서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과는 느낌이 다르죠. 부부들이 아기를 데리고 와서 하는 말투나 표정들에서 올바른 게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모습이 보이니까 너무 상쾌한 거예요. 내가 활동하고 있는 곳에서는 그런 상큼한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아요.(웃음) 복마전 양상을 보이는 곳이니까.
지 : <딴지일보> 인터뷰에서 "딴따라판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대상을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부정의 에너지로 씹어대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듣기에 따라서는 신해철씨가 체제옹호적, 현상유지적 발언을 하고있는 것처럼 <딴지일보>측은 말하고 있던데요. '네가 여유가 생겼으니까 그런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고 들릴 수도 있겠던데.
신 : 파토라는 사람이 쓴 <딴따라판의 주류가 교체되어야 한다>에서 저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더라고요. 정치적으로 액션을 취하고, 자발적으로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대단히 반가운데, 이를테면 너는 이런 움직임을 리딩할 위치가 되었는데, 거기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보신주의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거거든요. 공격에 나서라는 압력을 넣은 거죠.
그것은 전략적인 사고가 대단히 달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제 자신이 훨씬 공격적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네거티브의 공세로 '이 음악은 안된다. 얘네는 이래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건 수비라고 봐요. 대안을 찾아내고, 뭔가 판을 바꾸기 위해서 근본적인 개혁을 해나가는 것이야말로 훨씬 적극적인 공격입니다. 단지 내가 미안한 것은 바로 그 적극적인 공세라는 부분에서 성과물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지 : 노후보 캠프에서 연락이 많이 왔는데도 참여하지 않다가 TV에서 지지율은 노무현 후보가 더 높지만, 당선 가능성은 이회창 후보가 높다는 뉴스를 보고 바로 노후보 캠프에 전화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신 : 사실 저는 딴따라고 감정이 앞서는 인간이라 이인제가 탈당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안 했을 거예요.(웃음) 노무현 캠프에 가서 돕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어쨌든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아닙니까? 거기 이인제가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가 경선에 불복했다는 것이 보기가 싫었고, 그러고 난 다음에도 일정 지분을 가지고 떵떵거리는 분위기 이런 게 대단히 싫었거든요. 그 이후에도 잘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꼭지가 열려버렸고, 결심을 하게 된 겁니다.
지 : 사실 외국의 레드 제플린이나 비틀스니 하는 밴드들을 보면 어릴때부터 같이 놀던 친구들이 모여서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 드러머 이런 식으로 되거든요.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서로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우리는 '내 주변의 사람이 뭘, 내가 뭘' 이런 패배주의와 무기력을 학습받고, 세뇌당해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신 : 그 패배의식이라는 게 줄다리기할 때와 참 비슷해요. 나는 지금 열심히 줄을 잡아당기고 있는데, 내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하고요. 나 하나 따위가 여기에 도움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리고 열심히 끌고 있는데, 줄은 저쪽 진영으로 끌려가면 정말 그 기분이 더러워요.(웃음) 집단적인 패배의 느낌을 줄로 연결된 물리적인 힘을 통해서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에 줄다리기 패배는 정말 뼈아픈데, 저는 패배의식이 뒤집어지는 것을 여러번 봐왔어요. 6·10 항쟁 때도 그랬고요. 대학가요제에 나갔을때도 패배주의는 밴드의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거든요. 밴드는 아무리 잘해도 동상 이상을 받을 수가 없다는 징크스가 있었거든요. 동상, 은상 수상자가 불려진 다음 금상에도 안 나오니까 밴드들 표정이 흙 씹은 표정이 돼서 집에 갈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그때가 정몽준이 지지철회 할 때와 비슷한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몽이 지지철회 했잖아. 근데 이렇게 해서 이기면 대박이잖아.'(웃음) 금상에서 우리의 이름이 불리지 않을때, '가만있어봐. 그럼 남은 건 대상 밖에 없는데, 지금 불리면 대상 아냐?' 하고 생각했죠. 그 당시의 분위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알 거예요. 밴드는 대학가요제라는 행사에서 구색으로 전락한 시대였죠. 근데 그게 뒤집어지더라고요. 이번에도 보니까 뒤집어지고, 아직까지는 소수파 정권의 당선자를 하나 더 낸 것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싹을 내고 열매를 맺게 하고, 키워내려면 여러가지 작업이 필요하겠죠?
지 : 영화 <친구>를 봐도 그렇듯이 교육이 경쟁을 조장하고, 사회환경이 어린 시절 친구들마저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월드컵 때도 그런 측면이 있었듯이 노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우리가 그런 패배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보는데요. 노후보 당선의 의미를 어디에 두십니까?
신 : 노후보 당선의 의미라? 여러가지가 있을텐데, 상대측과의 전략적인 면에서 포지티브가 네거티브를 완파한 승부가 되었다는 것, 조직의 운영이라든가 재정의 운영면에서도 현재까지 치른 선거 중에서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였지 않나 생각해요. 그리고 고졸 출신의 대통령, 사병 출신의 군통수권자를 갖게 된 것도, 사실은 그것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직까지는 가뭄에 단비로 보이는 사회니까요.
제가 찬조연설 나갔을때 '노무현은 지킬 것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이미 승리자이고, 당선되기 위해 그걸 버리는 순간 패배자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여러 사안, 특히 정몽준 지지철회를 포함한 사안에서 노무현이 얼마나 꼴통인가를 여실히 보여줬잖아요.(웃음) 대단한 거죠.
결과적으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정치인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쓴 상황에서 그렇게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닌데, 그런 면에서는 높게 평가하고 싶어요. 앞으로 당선자가 어떻게 일을 해나갈지 어떻게 정국을 운영할지는 모르겠지만, 두고 봐야죠. 본인이 의지가 있어도 상황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의지가 바뀔 수도 있는 거니깐 모르는 겁니다. 앞으로 무조건 잘해나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는 제가 했던 행위들이 부끄럽지 않게 해준 것 같아요. 저로서는 이 정도가 노무현이라는 사람한테 할 수 있는 최선의 찬사예요.
지 : 사실 우리 국민들보다 노무현 당선자가 앞서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적대적인 언론에서도 취임 후 6개월 동안은 지켜봐주는 게 예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지자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노사모를 노감모(노무현을 감시하는 사람들의 모임)로 만들자고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강박관념 같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당분간은 충분히 기뻐해도 될 상황 같은데요.(웃음)
신 : 너무들 당해와서 그렇죠.(웃음)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부정부패, 친인척 비리를 상징하는 직업이 된 게 두 대에 걸쳐 있었고, 그 전에는 막가파 조폭식으로 동포들한테 총 쏘고 휘두르고, 이런 걸로 통치했잖아요. 그 전에는 자기 혼자 살겠다고 한강 다리를 건너는 대통령과 살았으니까, 제가 볼 때는 측은한 거죠.
지금 당선되자마자 웃고 있어도 될 시기에 그만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거고, 감시라는 표현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그 사람들이 여전히 노무현의 지지세력인 것이 당연한 것이고요. 어떻게 보면 정치적으로 두들겨 맞거나,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고도의 처신까지도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요. 이게 자발성 있는 순수한 아마추어들의 단체이기는 하지만, 행동패턴에 있어서는 날고뛰는 패턴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지 : 서태지씨와 먼 친척이고 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태지씨가 인디 진영하고 갈등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뮤지션으로서의 서태지씨를 어떻게 평가하세요?
신 : 서태지라는 아이콘이 가지는 지나친 무게와 파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욕을 먹은 부분이 있어요. 그런 걸 보면 참 측은해요. 뮤지션으로서의 서태지에 대해서는 대단히 많은 불만이 있어요. 매스컴을 통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뿐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해요. 용필이형을 볼 때도 그렇고, 태지를 볼 때도 그렇고, 그런 것이 마땅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는데, 연민의 정 같은 것이 들 때가 있어요. 개인적인 삶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희생당하고, 용필이형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지 않습니까? 외국 나가서 어떻게 보면 그것을 도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그렇게 살라고 하면 저 같으면 6개월이면 죽어버릴 거예요.(웃음)
지 : 김광석 컬렉션 앨범이 나왔는데, 거기 " '나, 형 졸라 맘에 안 들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러면 그 주름 만들면서 웃어줄 텐데"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였나요?
신 : 광석이형 생각하면 원망스럽죠. 살아있었으면 지금까지도 좋은 음악 더 만들어 놓았을 거고, 인간적으로도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광석이형의 죽음이 주위 사람들 가슴 찢어지게 했잖아요. 자살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음악계에서는. 저도 광석이형이 자살했다는 것을 믿지 않거든요.
지 : 예전에 <고스트 스테이션> 게시판에 올라왔던 연평총각의 글 때문에 논란이 많았지 않습니까? 진중권씨는 처음에 '주사파 문예소조'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신 :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진중권씨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온 모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양반은 지금 우리나라 민중들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입이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그런 사안 하나하나마다 자기가 믿고있는 신념이나 평소의 행동패턴 또는 관성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칼을 세울 수 있는 게 그 사람의 장점이에요.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에 그 사람이 자신의 지지자들, 그 바닥을 봤을때 분명히 연평총각의 이야기를 이용하고, 이야기하고, 그쪽으로 쏠렸어야 맞는데,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이야기했거든요. 이건 대차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죠.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제가 알고 있기로는 그 어느 쪽도 100%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더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지 : 노무현 당선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있나요?
신 : 제가 대통령에게 할 말이 뭐 있겠습니까?(웃음) 알아서 하겠죠. 문화계의 바람이라든지 하는 것은 누가 정권을 잡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올바른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고, 싸워서 얻어내야지 시혜물을 받아먹으려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지 : 나이든 분들은 여전히 노무현 당선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세대간의 갈등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젊은 사람이 먹는 걸로 먹어야지'라는 자조적인 신문 만화도 있었고, '저것들이 몰라서 그래. 저런 것들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겨'라며 불안해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신 : 끝내 곳간 열쇠 며느리한테 안 주던 시어머니 말로가 좋을 수가 없어요.(웃음) 끝까지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윗목으로 밀려나서 찬밥 먹는 수 밖에 없거든요. 그러면 따뜻한 밥 먹고 싶으면 젊은이들에게 양보해야 된다는 게 아니라, 따뜻한 밥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좀 멋있어지려면 바뀌어야죠. 노인분들도.
그것은 지금의 기성세대, 노년층의 세대가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레퍼토리가 너무나 제한이 되어 있고, 노년기의 허탈감에서부터 자신들이 극복할 수 있는 어떠한 카드도 가지고 있지 못해요. 그분들을 위로하고, 설득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경고는 하고 싶어요. 끝내 곳간 열쇠 안 내놓던 시어머니 말로가 어떻게 되나 보라고.(웃음) 물론 젊은 세대들도 반성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신해철 약력]
1968년 출생. 서강대학교 철학과 중퇴.
1994년-2002년 대한민국청년대중음악인협회 회장 역임.
2001년 세종사이버대학 겸임교수 역임.
그룹 무한궤도, 넥스트, 비트겐슈타인 등을 통해 20여 장의 앨범 발표.
SBS Power FM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 진행 중.
현재 빅뱅뮤직 대표.
< 월간 인물과 사상>
dadadack by 뮤지션그이상
(<월간 인물과 사상> 기사는 인터넷에 업데이트가 안돼서리, 설날을 맞아 가내수작업을... ^^;;
지승호님의 인터뷰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하고, 해철님의 좋은 인터뷰를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하는 바램에서... ^^*)
< 퍼옴--cafe.daum.net/crom ..글쓴이:뮤지션그이상>
첫댓글 보들이님 울 해철님 말씀 자~알 하시지요^^*
해철님 말씀 한마디 힌마디 情이 넘치는데....
해철님께서 계신다면 더 알찬 말씀 마니 마니 해 주셨을텐테...
늘 아쉽네요~~~~
보들이님 멋진 인터뷰 올려 주셔서 감사 감사합니다..
그 목소리 너무 그립네요..
자료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