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과 천사
세상에 천사란 없다.
물론 요정도 없다.
종교적으로 분명히 존재하고 주술적으로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기독교인인데도 부정한다.
때론 그래서 곤란한 경우도 있지만 사실인 걸 어쩌나?
허지만 나는 천사를 하루에 한번 이상 수십 번 만난다.
내가 만나는 천사는 진짜 형체를 가진 세상에 존재하는 천사다.
쫄망쫄망 걷고 노란가방을 벗을 때까지의 어린 아이가 천사다.
그래서, 지나가는 아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어린 아기들을 보면 나는 그 아이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천사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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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듣기에 같아 보이지만 요정은 천사와 의미가 좀 다르다.
요정은 선한 요정도 있고 악한 님프도 있으며 변신을 잘하고 골탕 먹이기를 즐기는 장난꾸러기 뿐 아니라, 때론 인간을 해치는 무리도 있다.
그러니까 재주가 많고 비상한 마술을 걸줄 아는 것이 요정이라는 말이다.
허지만 천사는 오로지 한 가지 재능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사물의 느낌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해치는 법은 없다. 자신을 해치려하는데도 두려워하거나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는다. 오로지 미소할 뿐이다. 미소로 악을 물리치고 미소로 희망을 준다. 이런 천사도 아주 곤란할 때가 있다. 그때는 하품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전부다.
하품.
인간도 하품을 하면 왜 눈물이 나올까?
답은 하나. 인간은 원래천사였으니까.
그러니까 인간은 태어나서 철들기까지는 모두 천사였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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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면 흐른 만큼, 천사였던 인간의 속성은 변한다. 천사가 성장한다는 말이다. 천사가 성장하면 뭐가 될까? 두말할 필요 없다. 삶의 전사戰士가 된다.
그러나 순수했던 삶의 전사가 더 넓은 세상을 접하면 일곱 번 우화한다. 이 우화의 시기를 거치면서 대개의 사람들은 평범한 인간으로 유체流滯되지만, 그 중 극히 일부는 모사謀士가 된다. 어떤 사람은 명인이 되고 어떤 이는 영웅이 되며 또 어떤 인간은 지도자가 되고 파괴자가 되기도 한다.
단출하게 정리하면 천사에서 전사가 되는 과정이 인생이다.
허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타고난 운명적 재능으로 인해 모사가 된 이들의 거의가 투사偸士로 변이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과욕을 업으로 쌓으려 하기 때문이다. 투사가 되면 모든 면에서 성취자로 인정받는 것은 분명하지만 두 개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즉 고수叩首 또는 고두孤頭가 된다는 말이다.
끝없는 과욕과 과신으로 영욕嶺縟을 이루지만 이때부터 이 모사들은 자신의 인생을 영혼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투명고치 속에 자신을 가두고 망령으로 살며 영생하기를 바라지만 결국 인생시한은 넘지 못한다.
이것을 나는 모사한시限時라 이른다.
그러나 영욕을 이루기 직전 소취沼醉한 몇 사람을 요행히 나는 기억한다.
코미디언으로 유명했던 분이다.
그가 비록 고인은 됐지만 정치인이 된 후 했던 말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얕보는 코미디언이 되기 싫어 정치인이 되었더니 그곳이야 말로 진짜 코미디천국이더라.”
그리고 그는 과감히 정치판을 떠났다.
그가 영면한 후에도 어눌한 웃음꾼이지만 모사정치인으로 가장 그를 존경하고 가장 오래 기억할 사람으로 남겼다.
반면 그와 정 반대의 길을 택한 방송인도 봤다. 톱 뉴스앵커로 가장 좋아하고 내가 가장 존경했던 분이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여의도코미디천국에 귀의하더니 그토록 선했던 얼굴의 표정은 사라지고 총명했던 눈은 살기로 가득해 아이스 맨 처럼 느껴져 섬뜩했고, 꿈에서 검은 양복 입은 그를 피해 달아나느라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떠오르면 지금도 진저리가 쳐진다.
나 같은 무의無意한 민초가 그런 분들의 변모하는 모습에서 인생의 유상무상 함을 느꼈다고 무엇이 달라질까만.
그래도 내 마음은 고독苦毒하고 까칠하며 씁쓰레하고 안타깝다.
그런 분들이 한 두 사람인가?
전자공학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고, 학문을 내던진 법관도 있고, 스스로 민중의 대변자가 되었던 변호사도 있고. 다 말하면 너무 길다. 그 뿐일까? 세계평화에 공헌한 위인도 끼어들지 모르는데.
고작 그것이 나의 자위다.
그래서 나는 정치를 마술에 걸릴 수밖에 없는 요정의 샘에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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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우리 대한민국은 급성괴질에 걸려 있다.
배신의 지도자 때문이다.
또 배신자를 처단하려는 집단과 민중 때문이다.
배신의 지도자가 고수에서 깨어나 자신의 맑은 영혼을 확인시켜 주기를 바라는 민중 앞에 무엇이 두렵고 아까워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두 세력의 대치는 죄 없는 대한민국을 혼란의 열병으로 광역 전염시키기만 한다.
믿었던 지도자는 이중배신자가 틀림없고.
분노한 민중은 모사집단의 허수아비가 되는 건 아닐까 두렵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시절에 어른들의 이야기로 들어보던 인민재판하면 어쩌나? 쓰잘데없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민의民意와 정의政意가 다르기 때문일까?
분노하면서도 뒤숭숭하다.
나만 그럴까?
허지만 며칠 전 나는 작업 중 옆 눈에 스쳐지나가는 뉴스를 보고 나의 이런 허접한 걱정이 태첨苔簽이끼낀통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제 주저앉은 군인이고 노정치인이었다.
그가 작은 꽃씨 같은 말을 내뱉을 것이라곤 짐작도 예감도 못했다.
혁명의 시절에 가장 무서웠던 사람이라는 기억뿐이었다.
“우리 대통령 힘 너무 빼지 않도록 도와주시오. 대통령 힘 너무 빼면 나라가 절단 나요.”
꽃씨 같은 말을 던지고 휠체어로 그가 사라진 후 내 머릿속은 휩쓸고 지나가는 광풍에 무뇌가 되고 말았다.
“어린아이가 자라 늙으면 다시 어린아이가 되고, 죄지은 자가 크게 뉘우치면 덕을 베푼다.”
스승의 말이 나의 무뇌를 가득 채웠다.
그의 한마디 말은 지금까지의 내 걱정을 가을비처럼 지저분하고, 말끔하게 세척해버렸다.
그러나 씻겨 지지 않는 잔상이 하나 남아 나를 천사와 요정의 연민에 빠지게 했다.
수십 명 모사들 앞에 휠체어를 탄체 쭈그리고 앉아 손도 쳐들지 못하고, 받쳐주는 우산아래서 힘겨워 애처롭게 외치던 위안부할머니의 표정이다.
나는 부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왠지 그 할머니가 광고모델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몹시 언짢았다.
“박근혜야! 네가 우리 팔아먹고 대통령이냐? 물러나라!”
첫댓글 티끝 하나없는 어린아이의 눈동자에서
거짓을 모르는 천사 ~~
과연 천사가 따로 없겠지요..
요정과 천사.전사 유체ㅡ 모사 에대한 여러가지로 변한다는 말씀
좀 어렵지만 이해하면서 잘보았슴니다.
밤이 깊었슴니다. 곤한밤 되세요^^
ㅎ
그런게 사는 과정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잠버릇이 세상살이처럼 바뀌어 며칠전부터 초저녁에 잠들었다 자정무렵에 이렇게 깨네요.....이제 한물 간거 맞죠?....ㅎ
새로운 주일은 미국대통령이 탄생하는날인데 우리외교와 마찰 없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긴 댓글이 저를 피로에서 구제해 주십니다.
고맙습니다.
누구나 어린 아이를 볼때 너무 이뻐소 꼭 개물어 주고 싶은 심정 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안다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천사님으로 보이는것은 어쩌면 당연 한지도 모릅니다.
좋은글 잘봤슴니다. 감사합니다.
네 항상 저는그렇게 느낍니다.
고운밤되십시오
아이들의눈은 천사표가 맞슴니다.
천사에 비유하신 작가님, 그리고 광고모델에서보신 위안부 할머니의 애절한 모습
도 요즘 박근혜 하야 목소리와 같슴니다.
잘읽었슴니다.
나라 꼬이 말이 아닙니다.
갯벌님이 어떻게 좀 해보세요...ㅋㅋㅋ
요정과 천사 잘읽었슴니다.
박근혜 하야운동 20만군중들이 외치고있군요..
아니 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불통 불통해도 전 그런줄까지는 몰랐습니다.
아버지 닮아서 그럴까요?
어머니는 안그랬는데....안타깝습니다
좋은글 통해서 많은것을 배우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ㅎ
배울거야 뭐가 있겠습니까?
천일염님께서 좋게보시니까 그렇죠.
허지만 감사한 마음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