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지다
내 엄니
집 나서며
툭 떨군 무명옷을
봄볕이 심지 돋워
연기 없이 태우던 날
머리 푼
아지랑이는
눈물 훔쳐 보였다
자화상
잘 벼린 조각도로 신기神技 부린 샛바람이
미세한 금 하나도 정교하게 그어놓고
저녁놀 물감을 풀어 붉은 덧칠 하고 있다
삶이란 돌아보면 산그늘로 짙어지고
거실의 벽시계는 낙엽 밟는 소리 낸다
어둠 속 수도꼭지는 녹물 뚝뚝 떨구고
흔히들 또 누구는 내일이 있다지만
하늘이 문답하듯 근심스레 보는 낮달
갑자기 소나기 한 줄 후둑후둑 쏟아진다
코스모스
시집을 허리 끼고
꽃양산 둘러대며
다랑이 논길 지나
읍내 가는 내 누이야
오늘 밤
별들 내려와
책장 넘겨 보겠다
고매古梅
몇 해째 종가 뜰에 눈 못 뜬 늙은 고매
빙판길 걷고 걸어 발 퉁퉁 부어있다
섬돌 위 묻은 볕 좋아 졸고 있는 고무신
밤 내내 설한풍이 살갗 쩍쩍 갈라놨다
생인손 아린 그 끝 송송 비친 핏방울
두레박 줄 끊긴 우물 달이 가만 숨었고
흰 도포 벗어놓고 합죽선 펴든 노옹老翁
북장단 없는 굿판 혼자 추는 춤사위에
하르르 날리는 꽃비 여긴 분명 별천지다
- 시집 『뫼비우스 띠』 작가시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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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만 시인 시집 『뫼비우스 띠 』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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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6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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