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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4일(수)
* 시작 기도
주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자인 나를 어찌하여 이렇게 살리시고 주의 자녀 삼아주셨나이까?
내가 나를 봐도 죽기에만 합당한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이야 두 말 해 무엇 하겠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나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고 그 승리를 마음껏 누리라고 하셨는데 나는 주님이 지신 그 십자가를 지기는커녕 타고 다니며 나의 즐거움에 빠져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하오나 이 하루가 주님의 날이 되기를 소원하오니 어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참회함으로 주님이 주신 죄사함의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옵소서.
나의 주홍 같은 죄는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케 하여 주시옵소서.
흑암의 권세 아래 있는 자를 끄집어 내셔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옵소서.
그리하여 그 자리가 내가 있어야 할 영원한 나라, 하나님 나라, 영생의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을 빚어주시고 주의 영으로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삿 1:11-21
제목 : 철 병거가 있으므로 쫓아내지 못하였더라.
11. 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주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2.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라.
13.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4.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5.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16.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17.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18. 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0.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 나의 묵상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을 정복하러 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유다 지파가 들어가라고 하셨다.
이에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의 도움을 받아 예루살렘을 점령하였고 기럇 아르바라 불리는 헤브론에 사는 가나안 족속까지 진멸하였다.
그 후에 더 나아가서 기럇 세벨이라 불리는 드빌의 원주민들을 쳤다.
그 때 유다 지파에 속한 갈렙이 기럇 세벨을 쳐서 점령하는 자에게 자신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노라고 약속을 하였고 자신의 동생인 옷니엘이 나가서 그곳을 점령하여 형 갈렙의 딸인 악사를 아내로 맞았다.
악사가 옷니엘과 결혼할 때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아버지 갈렙은 윗샘과 아랫샘도 함께 주었다.
한편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으로 그의 자손들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남방의 유다 황무지에서 유다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여기서 모세의 장인은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이지만, 장인이라는 히브리어 ‘호텐’이라는 말은 ‘처남’이라는 뜻에도 사용될 정도로 폭넓게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삿 4:11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물론 모세의 장인이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손자를 데리고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는 모세를 찾아왔었다.
거기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듣고 놀라워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높여 경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그 일 이후로 다시 미디안으로 돌아갔다.
(출 18:1-3a, 27) 모세의 장인이며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가 하나님이 모세에게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일을 들으니라.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돌려보냈던 그의 아내 십보라와 그의 두 아들을 데리고 왔으니, 모세가 그의 장인을 보내니 그가 자기 땅으로 가니라.
하지만 모세의 처남 호밥은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면서 그 백성들과 섞여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십보라와 두 손자를 데리고 시내 광야로 올 때에 아마도 그의 아들 호밥도 함께 동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장인 이드로는 미디안으로 돌아가고 호밥은 계속해서 모세와 함께 머물렀을 것이다.
이는 민수기 10장에서 증언한다.
(민 10:29-32)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이드로)의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이렇게 해서 호밥은 모세와 함께 가나안을 향하여 동행한다.
오늘 본문에 이런 모세의 장인으로 나오는 호밥의 행적을 뜬금없이 기록을 하는 이유는 그의 후손들이 유다 족속과 함께 유다 남방의 황무지에서 살았음과 또한 그곳이 갈렙의 딸과 함께 결혼한 옷니엘이 결혼 후에 가서 살았던 곳임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유다 족속은 그들을 도와준 시므온 족속과 함께 스밧이라는 곳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고 그 성읍 이름을 호르마라고 불렀다.
‘호르마’라는 말의 뜻은 바로 앞에 스밧에 사는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였다는 말의 명사형이다.
여기서 가나안 족속을 진멸한 이유는 난하주에 나오는 것처럼 ‘여호와께 드릴 목적으로 멸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그 의미를 히브리어로 ‘와야하리무’라고 하는데 이 말은 ‘하람’이 그 어원으로서 ‘진멸, 봉헌’이란 뜻을 가지는 ‘호르마’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리고 유다 지파는 더 아래로 내려가 블레셋 지역의 가사와 아스글론 그리고 에그론 등 그 모든 지역을 점령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유다와 함께 하심으로 산지의 모든 주민들을 쫓아내었다.
하지만 골짜기에 있는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한편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명령한 대로 유다 족속이 갈렙에게 헤브론을 주었다.
그러자 갈렙은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다.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해서 여전히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전쟁은 이미 승리한 전쟁이다.
이는 마치 오늘날 우리가 악한 영인 마귀와 싸우는 전쟁과 동일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전쟁은 이미 우리의 대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신 전쟁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이 치르신 전쟁은 표면상으로는 마귀에게 지는 싸움처럼 비쳐진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기 때문이다.
거기까지만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왕인 마귀에게 맥없이 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이 그 십자가를 지고 맥없이 죽으신 이유는 힘과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나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십자가에 내어주셨기 때문이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행 2:23) 그(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주였으나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그 십자가에 죽으심은 하나님 아버지의 행동하심으로 인함이다.
그런데 그 죽음으로 그치지 않고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
이것은 곧 불의한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함이다.
불의한 나는 하나님과 분리되었다.
이는 아담 안에서 처음부터 분리된 자이기 때문이다.
그 후로 아담의 생명으로 살면서도 예수를 알고 믿으며 일명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해왔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안에 있는 진멸되어야 할 가나안 족속 곧 죄를 제거하지 못하고 은밀하게 이를 즐기며 지금까지 살아온 자이다.
주님께서는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건만 나는 그것을 버리기는커녕 은밀한 곳에 숨겨서 아무도 모르게 가지고 놀며 즐기곤 하였다.
(살전 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유다 족속은 골짜기에 있는 철 병거를 가진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고, 베냐민 족속은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얼마 후에 이들 곧 이스라엘 사람들은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족속들을 물 긷는 자와 나무를 패는 자들 곧 그들의 종으로 삼아 일을 시켰지만, 당장은 그들을 돕는 종의 역할을 하기에 좋을지 모르지만, 쫓아내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음으로 결국 이들이 이스라엘의 가시가 되어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통하여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삿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전쟁을 하여 그곳을 하나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완전한 복지로 만들어야 했음에도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남아 있는 그들을 그들의 종으로 삼아 일을 시키곤 하였다.
그 때 당시에는 자신들을 위하여 일을 하고 도움을 주니까 좋아보일지 모르지만 이들이 결국은 그들을 찌르는 가시가 되고 그들을 얽어매는 올무가 되어 괴롭히게 된다.
이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한 전쟁을 우리에게 주시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라고 하신 것을 세상의 쾌락과 세상이 주는 미혹들에 마음이 빼앗겨 그런 악의 모양들을 버리지 못하고 즐기다가 결국 그들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의 예표이다.
하지만 내가 비록 이 땅에 살면서 이처럼 죄에 종노릇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 안에 계시는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은혜로 결국 승리할 것을 믿는다.
이는 어제는 비록 넘어졌을지라도 다시 예수를 힘입어 담대히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주님이 지신 그 십자가에 나도 나의 옛 사람을 못 박아 죽이고 주님이 장사되신 그 무덤에 나 또한 함께 장사되어 연합할 때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새 생명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그의 메시야적 행위로서의 복음에 연합되어 오늘도 옛 사람으로 인하여 죄에 종노릇하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주님과 함께 영원에 잇댄 삶을 살아가는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바라본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셨으므로 산지의 주민들은 쫓아내었지만,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두려워 쫓아내지 못한 유다 족속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신 전쟁을 우리가 치르고 있으면서도 그 미혹에 넘어지고 자빠지는 것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뻗치는 손을 잡고 쾌락을 즐기며 나락에 빠지는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이 원수는 맨 나중에 멸망 받을 것을 알고 있기에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우리 믿음의 대 선배이신 바울 사도가 종말을 현재로 보면서 넉넉히 사망과 죄의 권세를 ‘그 따위’ 쯤으로 꾸짖었는데 오늘 나 역시 종말을 현재로 사는 삶, 그리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는 영생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복음을 통하여 생명 얻게 하는 일인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오늘도 아담 안에 있는 생명인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고 거룩한 불구자의 삶을 즐기며 기뻐하는 자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