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이 어느 순간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속된 말로 하늘이 노래집니다. 그래도 살아 있으니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헤쳐 나갑니다. 때로는 평범한 사람이 특별한 일을 해내기도 합니다. 기적을 만들기도 하지요. 물론 두려움과 공포에 짓눌려 자신을 잃고 삶 자체를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에 대한 본능은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더구나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생명에 대한 본능보다 강할 때가 있습니다. 거침없이 위험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런 위기에서 시들했던 가족애가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배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잠재되어 있던 의식의 회복이기도 합니다.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자식을 살리려는 마음과 자신의 임무와 사명에 대한 태도입니다. 이미 퇴직한 상태입니다. 그냥 그 자리를 떠난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동행하던 버스에서 홀로 내립니다. 그리고 사고 현장으로 복귀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명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 자식에게 보다 나은 혜택을 주려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는 아픔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사람됨을 증거해 보이고자 하는 바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겁쟁이나 졸장부로 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요.
오랜 이별이 있었습니다. 십년 세월 아무런 소식도 없이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여자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습니다. 이제 나타나서 뭐 하자고? 멀리하려고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따라붙습니다. 그리고 집에까지 찾아옵니다. 문을 열자 아이가 보입니다. 깜짝 놀라지요. 결혼하여 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들과 둘이서 사나보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자기와 헤어졌던 때와 비슷합니다. 소년이 원하는 것을 선물로 전해줍니다. 낡은 캠코더로 억지로 촬영하다가 새 것을 얻으니 날아갈 듯 기쁩니다. 당장 사용하고 싶어집니다. 이슥한 밤에 친구들과 카메라를 들고 보고 싶고 찍어보고 싶었던 원전이 있는 근처로 달려갑니다. 불빛이 환한 광경을 찍습니다. 갑자기 그곳이 폭발합니다. 친구들은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떠납니다. 그 광경을 목격하는 소년은 지체합니다.
무시무시한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소련이 자랑하던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였습니다. 그 여파는 어마어마하였습니다. 당장 근방의 소방관들이 모두 집합하였습니다. 불길 속을 드나들며 소화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무시무시한 광경을 목격해야 합니다. 방사능 오염의 결과입니다. 소방관들은 이미 화상 환자들이 되어 여기저기 아우성입니다. 현장에서 당하는 사람들은 화상과 방사능 오염이 온 몸을 망가뜨립니다. 그런 가운데서 건물 안에 남아있는 동료들을 꺼내려 목숨을 걸고 다시 뛰어듭니다. 가장 가까이서 가장 심하게 피해를 당한 것은 화재진압 소방관들입니다.
‘알렉세이’는 막 퇴사하였지만 사고 즉시 일단 현장에 달려갑니다. 동료들을 건져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참여하지 않습니다. 현장 책임자가 자원자를 찾지만 물러섭니다. 물론 지시 받을 의무가 없습니다. 더구나 애인 ‘올가’의 아들이 피해를 당하여 입원 수속을 밟아야 합니다. 따라다니며 돕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단 도시를 빠져나가는 버스에 오릅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가며 안심시켜줍니다. 그러나 결심합니다. 돌아가야 해. 동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방사능과 화마에 맞서 싸우고 있는데 홀로 도망하는 것 같습니다. 올가에게 목돈을 건네주며 뒤를 지켜줄 테니 염려 말라고 당부하여 버스에서 내립니다.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건 작전이 전개됩니다. 그러나 과연 누가 갑니까? 성공 확률도 적을 뿐만 아니라 살아 돌아올 확률도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알렉세이입니다. 자원합니다. 단 조건 식 부탁을 합니다. 아들(후에 자신의 아들임을 확신하지요)을 스위스 병원으로 이송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작전에 들어갑니다. 성공하여 사고는 일단락되지만 몸은 엉망이 됩니다. 올가가 찾아옵니다.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엉망이 된 알렉세이 곁에 누워봅니다. 얼마 후 아들은 한결 좋은 모습으로 엄마에게 돌아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사고가 났을까요? 보통 대형 공사에는 엄청난 자금이 투입됩니다. 어쩌면 사업을 추진하면서 팥고물 떨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꽤 될 것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사고의 위험은 커집니다. 그런 경우들을 여기저기서 보았습니다. 정부와 국가는 체제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사고를 축소화 무마하려고만 애씁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로 전가됩니다. 몸이 망가지고 삶이 피폐해집니다. 누가 보상합니까? 보상한들 빼앗긴 시간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사람, 한 가족의 이야기로 풀었습니다. 큰 감동은 없어도 경각심은 확실하게 새겨집니다. 영화 ‘체르노빌 1986’(Chernobyl: Abyss)을 보았습니다.
첫댓글
항상 행복한 일만 가득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좋은일만 가득할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우며 지치고 쓰러질 정도의
힘에 겨웁지요.
그런 속에서 이기고 승리하며 나아가는 것이
삶 이겠지요.
오늘도 모두에게 주어진 아주 특별한 날이 밝았습니다.
이 주어진 시간을
저마다의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왕이면 좀더 아름답고 행복이 가득한 멋진시간 되시길.....
좋은 답신 감사드립니다. 건강하고 복된 주말을 빕니다. ^&^
감사합니다
^&^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