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집트는 세상의 그 어떠한 나라보다도 독특한 나라였습니다.
헤로도토스 왈,
"이집트 사람들은 인류의 나머지 사람들과는 정반대되는 풍속과 관례를 지닌 듯하다. 예를 들어, 여자들은 시장에 가서 거래를 하는 반면, 남자들은 집에 들어 앉아 옷감을 짰다."
오늘날 중동을 생각하면 고대 이집트의 여권도 으레 낮았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헤로도토스의 관찰대로 이집트의 여성은 동시대 다른 문명 국가의 여성들 보다 많은 참여와 권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나 중국 같은 고대 문명권에서는 여성이 남편이나 아버지 또는 남자 형제에게 예속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성은 단지 소유물에 불과했던 것이죠.
그러나 이집트 여성은 독립적인 법적 지위를 바탕으로 남성에 버금가는 법적인 권리를 행사했습니다. 이집트 여성은 따로 남성 보호자 없이 직접 자신이 법정 소송의 주체가 되었고 증언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소유하고 자기 의사대로 처분, 상속할 권리를 보장 받았습니다. 물건과 땅을 원하는 대로 팔거나 살 수 있었고, 계약을 맺어 땅과 물건을 임대해 주거나 빌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법적으로 독립된 신분이었기 때문에 재산만 있다면 혼자 사는 것에 제약이 없었습니다.

연회에 참석한 여인들
이러한 법적 지위의 이면에는 이집트 여성이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예속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여성은 자신의 재산을 운용하고 처분하는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고, 심지어 결혼 후에도 많은 여성이 가족의 공동 재산과 별도로 자신만의 '비자금'을 합법적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런 기록도 발견되었습니다.
"남편에게 자기(아내)가 갖고 있던 은의 일부를 빌려주면서 3년에 걸쳐 30%의 이자를 붙여 상환해줄 것을 요구했다."
여성은 자신의 의사대로 재산을 상속할 수 있었는데 나우나크트라는 이름의 이집트 여인은 여덟 자식 중 네명이 자신을 홀대한 것에 화가 나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나는 이집트의 자유민이다. 나는 여덟명의 자식들을 낳아 키웠고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이제 나는 늙었다. 그러나 보라. 나의 아이들은 더 이상 나를 홀대할 뿐이다. 따라서 나를 소홀하게 대한 아이들에겐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이집트에서 결혼은 사사로운 개인간의 일이었기 때문에 국가가 관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혼과 재혼은 남성 여성 모두에게 자유로웠습니다. 이혼할 때는 남녀 각자가 자신이 결혼할 때 가져온 재산과 결혼 후 새로 생긴 공동 재산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보통 여성은 공동 재산의 1/3에 대한 권리를 가졌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부부는 이혼할 경우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결혼 전에 미리 부부 각자의 권리와 재산을 규정하는 계약서를 썼습니다.

다정한 부부의 모습
이집트 여성은 가정 생활에서도 남편과 비교적 동등한 지위에 있었고 부부 관계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중에 기반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남녀, 부부간의 낭만과 사랑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들이 남긴 많은 시와 노래들은 남녀 사이의 욕망과 사랑을 열정적으로 노래합니다.
"내가 얼마나 그이를 끌어안고 싶어하는지, 그이가 우리 어머니에게 청혼의 말을 전하길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그이는 거의 모르고 있다."
"그녀의 모습은 나를 기쁘게 한다! 그녀가 눈뜰 때 내 몸은 풋풋해진다. 그녀의 말소리에 내 몸에서는 힘이 용솟움치고, 그녀를 끌어안을 때 나의 병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고대 문명권에서 부부의 모습이 같이 표현된 그림이나 조각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예술품의 묘사 대상은 주로 지배층인 경우가 많은데 보통 남성만 덩그러니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을 해야만 하는 열악한 상황에 있지 않는한 대부분의 여성이 공적인 삶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장막 뒤의 은폐된 삶을 사는 것이 이상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제 19 왕조 파라오 람세스 2세의 부인인 네프라타티의 신전 (기원전 1200년대)
이집트 왕실 여성들은 다른 문명권에 비해 공적인 영역에서 많은 역할들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예술품에서는 부부가 같이 등장하는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왕족과 귀족의 초상에는 대개 부부가 같이 묘사되었고, 나일강에서의 유람, 지인들과의 파티 등 일상 생활을 묘사한 벽화에서도 부부가 같이 등장합니다.

연회에 참석한 부부

제 18 왕조 왕실 주치의였던 네바문과 그와 동행한 부인, 딸 (기원전 1400년대 말)
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있거나, 남편이 아내의 어깨를 감싸고 있거나, 서로 마주 보고 껴안고 있는 모습 등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아내의 모습을 그린 그림 주위에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 경우도 흔합니다.

제 18 왕조 시대 고위 관료였던 세네페르와 그의 부인 메리트 (기원전 1400년대 말)

제 4 왕조 시대 파라오 멘카우라와 부인 카메레르네 (기원전 2500년대)

제 18 왕조 시대 관료였던 유니와 부인 레네누테트 (기원전 1200년대 초)

부부와 두 아이의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
물론 이집트 여성의 지위가 현대와 동등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성이 높은 지위의 관료나 신관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고 파라오의 부인이나 어머니 정도만이 막강한 정치적 권한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여성이 다른 고대 문명권에 비해 비교적 높은 지위를 누렸음은 많은 사료와 유물들을 통해 쉽게 확인됩니다.

제 19 왕조 네페르타티 왕비 (기원전 1200년대)

제 18 왕조 네페르티티 왕비 (기원전 1300년대)
왕실 여성들은 본인이 왕비, 모후 또는 파라오 자격으로 나라를 직접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제 18 왕조 파라오 아멘호텝 3세의 부인인 티이 왕비는 외교 업무의 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고, 파라오 아케나톤의 왕비 네프리티티는 남편과 함께 공동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가장 유명한 하트셉수트 여왕은 이집트 역사상 두번째 여성 파라오로서 손에 꼽히는 유능한 통치자였습니다.

하트셉수트 여왕 (기원전 1400년대)
첫댓글 이집트문명은 정말 신기하네요
신기ㅋㅋㅋ 저는 타임머신 있으면 이런 문명에 직접 가서 관찰하고 싶어요ㅋㅋ 아니면 선사시대도 재밌을것 같고요ㅋㅋㅋㅋ
지니님 가자마자 말 안 통하고 외모가 판이하게 멋져서 보복으로 으앙 주금요 ㅜㅠㅜㅠ 가지마세요 ㅜㅠㅜㅠ
호오.. 신기하네여..!
우리나라도 과거사를 보면 여성들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고 또 존중받는 사회였었죠 헌데 그놈의 유교가 모든걸 망쳐놨어요
결혼만봐도 과거엔 여성의 집으로 남성이 장가를 갔습니다 헌데 유교가 들어서면서 반대로 여성이 남성의 집에 시집을 가게 됬죠
유교는 나쁠 것 없습니다. 꼰대들이 늘 문제였죠.
유교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고해요 점점 변질되면서 남성에게 유리한 점들만 남게 고쳐서 바뀌게됐다고 ㅎ..합니당..
ㅇ..아님 말구요...쭈굴..
대표적 예로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여권이 높았죠 고려는 말할것도 없구요 제사도 같이 지내고 족보에도 같이 올라갔구요~ 고려시대에 남편이 마누라를 욕했다가 마을 아녀자들한테 흠씬 두들겨맞기도 하구.. ㅋㅋㅋㅋㅋㅋ
심지어 신라는 모계사회라서 선덕여왕만 봐도 여성의 지위가 어느정도 였는지 간략하게 알게되더라구요 물론 그땐 남녀로 나누기보다도 골품제가 위주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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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
우리도 고려시대에는 정치만 안했을 뿐 경제적이나 가족내에서는 차별이 많이 없었다고 하더라구요ㅠㅠ 자식이 없어도 딱히 양자 안들이는 집도 많았고...
오 이런거 넘 신기해용
파라오가 되려면 왕실 여성과 결혼이 필수라고 하더라구요 ㅋㅋㅋ 그래서 근친이 성행...
앗 파라오는 남자 파라오 여자 파라오 둘이었다는 그건가욤 ㅇ0ㅇ?!
@안그래 장그래? 넵 뭐 실질적인 통치는 남자 파라오가 한 것 같지만 그래도 여자 파라오랑은 꼭 결혼해야만 했대요 ㅋㅋㅋ
어릴때부터 이집트너무좋아했어요
미이라생각나는것...
고대 이집트도 시기별로 달라요... 고대 이집트 시대가 이집트 후 - 현대까지보다 더 깁니다... 기원전 4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니까
고대 이집트 또한 가부장적인 시기가 분명히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