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하지 않은 손님이지만 때론
두려움에 떨며 조용히 다녀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연중행사 태풍이 온다고 한다.
하필이면 몇 달 만에 제대로 산행할 기회가
생겼는데 태풍이라니 어이가 없지만 주중에
'카누'가 올라온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무던히도 산행을 기다려본다.
아침가리골 트레킹.
입추도 지나고 말복도 지나 이제는 가을이 올 거라고
은연중에 가을냄새를 풍기려 하지만 여전히 무더위는 들은 척도 않는
8월 둘째 주 일요일은 계곡 트레킹의 성지라고 하는 아침가리골로
계곡 트레킹이 있는 날이다.
계곡 트레킹은 준비할게 많다.
배낭 속에 김장용 비닐봉지를 넣어 계곡물이
스며들어도 내용물이 젖지 않게 해야 하고
특히 핸드폰은 두툼한 비닐봉지에 넣어 재무장시켜야 한다.
등산화는 물에 젖으면 천근만근이라 물이 잘 빠지는 트레킹화가 제격이다.
이른 아침 부산을 떨며 준비한 배낭을 둘러메고
한껏 설렘으로 부풀어 오른 마음을 진정시키며 현관문을 나섰다.
낮고 두툼하게 드리워진 구름이 아직도 태풍의 자취를 풍기고 있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를 철석같이 믿으며 발걸음도 신나게 지하철역으로 갔다.
군자역에서 아침가리골 가는 산행버스에 올라
이제는 가족 같은 산우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방동약수의 맛.
산허리를 뻥뻥 뚫어놓은 터널을 무심한 듯 재빠르게 달려가던
아침가리골 산행버스는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여전히 두툼하게 내려앉은 구름이 기특하게도 파라솔인양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고 있어 그들에게 눈인사를
잊지 않으며 천천히 언덕길 올라갔다.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있는 등산객들이 먼발치에서도 보인다.
철분이 들어 있어서 몸에 좋다고 하는 방동약수터에 도착했다.
약수터 안에 들어가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로 동그랗게
모여진 물을 떠서 우선 살짝 맛을 봤다.
탄산수같이 톡 쏘는 맛에 갑자기 만병통치약 같다는 생각이 왜 들었을까?
벌컥벌컥 많이 마시고 싶었지만 마음뿐 병아리
물 먹듯이 서너 모금 마시고 말었다.
'고요 속 쉼터'가 있는 아침가리골 숲 속.
방동약수터 사잇길을 치고 올라가니 회색빛 시멘트가 깔린 임도가 나왔다.
임도에는 방동리 고개 안내센터까지 등산객을
실어 나는 택시가 우리를 기다린다.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면 임도길이 더위로 초주검의 길이겠지만
오늘같이 구름이 파라솔을 대신하는 날에는 굳이 방동리 고개 안내센터까지
택시를 타고 가지 않아도 충분히 즐기면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왜 생겼는지 모르겠다.
특히나 택시를 타고 가시는 산우님들께 배낭을
맡겼으니 등에 짐을 짊어지지 않고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땀도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맨발의 청춘같이 여름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올라가시는 산우님을 보고 따라쟁이 같이 트레킹화를 벗었다.
트레킹화를 벗고 맨발로 시멘트 바닥을 밟는
순간 자유롭다는 것이 뭔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맨발로 가 보세요
얼마나 시원한데요"
나도 모르게 산우님들께 권유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왜 그럴까? 이렇게 시원하고 얽매이지 않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데.
방동 고개 안내센터까지 3km를 가볍게 올라가서
우리들의 배낭을 지키고 있던 산우님들을 만났다.
안내센터에는 예전에 못 보던 포토존까지 만들어 커다란 하트모양 안에 의자가 있고
'고요 속 쉼터 아침가리골'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방태산(해발 1,435m) 자락에 있는 아침가리골은 6.25 한국전도 몰랐다고 하니
첩첩산중에 평화로운 산마을 '고요 속 쉼터'가 안성맞춤이다.
이제는 올라왔으니 올라 온만큼 내려가야
아침가리골을 만날 수 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말이 있듯이 첩첩산중 산중이지만 나무들을
베어낸 임도는 햇볕이 쨍쨍 나는 여름날에는
나무 그늘조차 없어 무더위와 지칠 줄 모르는 씨름으로
허덕이지만, 초대하지 않은 손님 태풍 '카누'가
남긴 먹구름이 햇볕을 가려주고 있어 효자 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다.
짝을 찾느라 주야장천 목청 높여 노래하던 여름날의 소리꾼 매미조차 무더위에 지쳤는지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숲 속에 계곡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졸졸졸 약하게 그렇지만 내려갈수록
계곡물소리가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며
조경동다리에 왔다고 한다.
방동리 고개 안내센터에서 아침가리골 계곡 트레킹 시작하는
조경동교까지 3.2km를 계곡물이 들려주던 다양한 소리를
벗 삼아 지루하지 않게 내려왔다.
고요한 쉼터 아침가리골 계곡물을 보며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아침가리골 트레킹을 시작했다.
태풍'카누'가 아침가리골에 남긴 하이라이트.
아침가리골 트레킹을 몇 번 해봤지만 오늘은 물이 유난히 차갑고 깨끗하다.
'왜 그럴까 왜 그런 거지'
'물속이 이물질 없이 옥빛으로 훤하게 속살을
볼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아~하 그렇구나'
'태풍 '카누'였어'
어린아이 물장구치듯 물속에 들어가 첨벙첨벙
하였지만 물이 워낙 히 차가워 물에서 나와 물을 보면서 걸어내려 갔다.
계곡길이 없어 징검다리 건너듯 물을 가로질렀지만 유속이 심해 휘청했다.
무릎까지 오는 물이지만 유속이 심해 휘청하고 나니까 갑자기 어떻게 하면 물살을 잘 달래서
사고 없이 무사히 트레킹 끝낼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래 물살이 가는 대로 파도타기 하듯 발걸음을
맡겨보는 거야' 번개처럼 떠오르는 생각대로 흐르는 물살에
발걸음을 맞추니 유유하게 걸을 수도 있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오른쪽 계곡 길을 가다가 길이 없으면 다시 징검다리 물속을 건너 왼쪽으로 계곡길을 가기를
수십 번 하다가 수량이 많아 수영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장소에서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휴가를 보냈다.
특히나 첨벙거리고 물속을 걸어 다녀 전쟁이라도 난 듯
우왕좌왕하던 작은 물고기들도 상황파악을 했는지
휴가에 기꺼이 동참하듯 가까이 다가와 옛 친구를 만난 듯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우리들은 다시 뾰족 뾰족 칼처럼 위험천만
넘어졌다 하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위협적이 바위길을 스틱에 의존하여
조심조심 걸어 내려오며 길이 없으면 징검다리 물속을 건너
맞은편 계곡길을 걷기도 하고 유속이 빠르지 않은 장소에서는 물속을
스틱으로 조심조심 짚으며 내려왔다.
원시림이 그대로 살아있는 깊은 숲 속을 걷기도 하고 옥빛 계곡물이
넓게 펼쳐 저 있는 물속을 걷기도 하고 징검다리 물을 수없이 건너기도 하면서
우리는 13km 아침가리골 트레킹을 3시간 30분 만에 끝냈다.
2023.8.13
NaMu
첫댓글 어쩌면 이리도 글을 잔잔하게 잘 쓰시는지요.
참 차분하고 단정한 느낌의 글에서
청량감이 느껴집니다.
13km를 3시간 반만에 트래킹 하신 것도
그리고 8월 중순이면 아무리 구름 파라솔
덕을 본다고 해도 습도 높은 무더위인데 정말
대단들 하십니다.
나무랑님 외모도 너무 멋지시네요.
미소가 백만불짜리 나무랑님으로
기억될거 같아요.
좋은글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은 글이 많이 어설픈데요.
그래서요 현장감있으라고
사진도 넣어보고 그려긴해요.
잘 봐 주셔서 넘넘 감사드려요.
전체적으로 16.5km를 5시간 반만에
했는데요.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싶어서
할때마다 감사해요.
그 유명한 트레킹 코스
잔잔하게 묘사를
해 주시어 마치 내가 직접 다녀온 듯 ㅎ
디테일 하게 장면 하나 하나
잘 표현하시니 실감 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옙^^ 드뎌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휴가를
아침가리골 트레킹 보낼 수있어 넘넘 좋았어요.
(이건 자랑질 인거죠ㅠㅠ)
많이 서투른데 잘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시원한 가리골 골짝 시냇물 소리가
들려 오네요.
태풍이 지나가도 더위는 계속되는 날에
아침가리골 산행 이야기는
가슴을 활짝 열리게 합니다.
그때 그시절이 그립게 다가옵니다.
나무랑님의 지금의 나이에 아침가리골 산행을 갔었지요.
님의 글에서 처럼,
가리골 물이 배꼽 바로 밑까지 왔습니다.
난생 처음의 가리골 산행은
아직도 여름철이면 생각나는 기억입니다.ㅎ
그러게요 나도 한때 그런적이 있었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글이예요.
허리까지 오는 물을 가르면서
가는 느낌
여름철 산행으로는 정말 좋아요.
특히나 저같이 산행을 즐기는 사람은
아침가리골 트레킹만한게 없는것 같아서요.
아침 가리 트래킹을 다녀오셨군요 ^^
예전엔 그곳이 오지라고 해서
일부러 오지 탐험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잘 찾아가는곳이 아니라 했는데
지금은 많이들 가시나 봅니다
섬세하게 아침 가리 트래킹을 써주셔서
저도 그 계곡에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
옙^^ 이제는 아침가리골 가는 안내센터까지
택시가 올라가니까요.
삼복더위 여름산행 넘나 지치는데요.
누가 개발했는지 물속을 걷는 계곡 트레킹 이보다 더 좋은 여름산행은 없거든요.
잘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아침가리골 물길 트레킹. 지난해 일부 구간만 걸었지요.
물살이 센 구간에는 남자 산우들의 도움이 없으면 금방
물살에 휩쓸려 갈 듯 하여 무서웠어요.
나무랑님은 아직 젊으시니 가능합니다.
나는 맨발도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포기했어요.ㅎ
아~함 작년에 가셨군요^^
그러게요 유속이 심한데는 위험해요.
우째 이런일이 발바닥이 문제였네요😭
안녕하세요 나무랑님.
태풍 카누가 흘리고 간 곳에
뭉게구름의 파라솔이 있었고
잠깐 흔들리는 속세의 마음을 씻어주는
옥빛 계곡물이 흐르고요
그리고 친구들과 세상 잡담을 나누는
나무랑님의 나이든 환한 모습의 여유를 제가 구경합니다.
방태산, 아침가리골 그리고 구룡덕봉
저에게 늘 꿈을 잃지마라 다독여주는 곳입니다.
언제나 가고픈 그곳 이야기를
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행복하십시요.
아참ㅡ 하나 빠뜨렸다.
나무랑님이 맨발로 걷던 길
다람쥐도 다니지만 무서운 삵도 다닌다는것,
무서버요 ㅡㅋㅋㅋ
어쩐지 무서운 삵이 지나가서 산우님들께서
맨발 산행을 안하셨군요🤣
이스트우드 님께서 구룡덕봉 이야기를 하셔서요.
저도 제 히스토리를 봤더니 2008년 6월에 갔어요.
6월에도 정상에는 산철쭉이 있다고 써 놓았네요. 벌써 15년전 산행이면 제 나이 쉰이 갓 넘었을때 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을때다 그런데요.
그때는 여자 나이 쉰. 모든게 끝나는 나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게 50세을 맞이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근데말예요 육십이 되던 해에는 기대가 컸어요.
왜냐면 삶을 조금씩조금씩 내려놓고 관조하는 삶을 살 수있는 나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정감록에 '삼둔사가리'라고 난이나 전쟁을 피해 숨기 좋은 곳으로 꼽은 곳들이 있었답니다.
그 사가리 중 하나가 '아침가리'라더군요. 저는 아침가리 1번 연가리 2번 가보았어요.
참 맑고 시원한 계곡, 여름 피서에도 좋고 겨울 설경 또한 대단하다 들었습니다.
제가 다시 가본 듯, 글 따라 첨벙첨벙 계곡물 같이 건너 다녔습니다. ㅎ 감사합니다.
아~하 정감록에도 아침가리가 나왔나봐요.
지금은 많이 개발되었지만 아직도 깊은 산중이란 느낌은 지울수가 없었어요.
저는 아침가리골은 4번 정도 간 것같은데요. 연가리는 안가봤어요.
그러게요 아직도 울창한 나무들이 많아서
겨울 설경도 좋을 듯합니다.
맘자리 님께서 저번 날에 글을 넘 기발하게
잘 쓰셔서 저도 함 써 볼까 생각만 했었는데요.
글을 쓸 수있는 동기부여를 해 주셔서
넘넘 감사드려요👍
잘 읽고 갑니다 .
와 ~ 대단 하십니다 .
올려주신 사진을 보니 마음이 덩달아 상쾌해 지네요.
이곳은 지난주에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
엄청 긴장했는데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
늘 좋은 글 올려 주시니 감사 합니다 .
완주 할 수있는 기회가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까 싶어서요.
갈 수있음에 감사해요.
그러게요 태풍이 무사히 지나갔다니
천만다행이예요.
글 잘 안써져요.ㅠㅠ
큰 맘 먹어야 쓰는데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아직은 서투른 글 잘 봐 주셔서
감사는 제가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