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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대학교 고고학 박물관장으로 재직중이던 스튜어트 컬린(Stewart Culin,1858~1929)은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컬럼비아 박람회에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였다. 이 소장품은 세계 각국의 놀이문화였다.
이를 계기로 스튜어트 컬린은 중국, 일본, 한국과 관련된 놀이를 정리한 『한국의 놀이Korean games』, 원제 ‘Korean Games: With Notes on the Corresponding Games of China and Japan’으로 한국과 일본, 중국의 전통놀이를 173개의 삽화와 함께 상세하게 수록한 것으로 우리나라 전통 민속놀이에 관해서 외국인이 저술한 최초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스튜어트 컬린은 <Korean games>에서 “한국의 윷놀이는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하는 수많은 놀이의 원형(原形)이다” 라고 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mA9ZFZKnRds
https://www.youtube.com/watch?v=-Mv39CsH2Rs
https://www.youtube.com/watch?v=OrdhisUHhf0
https://www.youtube.com/watch?v=cou0H99xPGA
https://www.youtube.com/watch?v=5iWkoN_05Xg
https://www.youtube.com/watch?v=zwxhFb4Z_fs
윷놀이의 원형은 환국으로부터 베링해협을 건너간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풍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것이 바로 북미 인디언들의 윷놀이와 마야족의 불(bul)게임과 아즈텍의 파톨리 게임이다.
그들은 신(神)의 뜻을 묻는 종교의식(占)으로도 사용되었고 윷놀이로 풍년과 흉년을 점치던 옛 풍속과도 흡사하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소노마 레이크의 인디언 민속 박물관에는 인디언들이 즐긴 윷놀이가 전시되어 있는데, 윷판과 윷 말이 우리 윷놀이와 같다.
인도의 힌두 게임인 ‘파치시(pachisi)’와 ‘차우자(chausar)’의 도형은 십자형이 있는 윷판을 확장한 형태이며, 윷놀이에서 발전된 놀이가 서양의 체스나 일본의 야사스카리 무사시(八道行成)라는 사실을 놀이 방식이나 판의 형상 등을 통해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고대 점술에 기원을 둔 윷놀이는 우주적이고 종교적인 철학도 담고 있다”고 극찬하였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는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 1938)'에서 "놀이(game)가 인류 문화를 탄생시킨 조건이었다"고 주장했다. 놀이는 인간의 언어, 법률, 전쟁, 철학, 예술 등에 앞선 인간의 행위라는 것이다. 즉,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된 인간의 활동으로 모든 문화 현상의 기원이라는 주장이다.
하이징아Huizinga는 '호모 루덴스'에서 "인간의 공동생활 자체가 놀이 형식을 갖고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와 관련된 삶의 통과의례인 제의(祭儀)에는 음악, 춤, 놀이가 수반됐다. 인간이 몸과 영혼을 다 해 표현하려는 욕구로부터 발생한 놀이는 창조의 원동력이다. 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하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활동,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활동인 놀이가 법률, 문학, 예술, 종교, 철학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현대에 이르러 일과 놀이가 분리되어 '단순한 놀기 위한 놀이'가 퇴폐적인 것으로 변질되었다며, 고대의 신성하고 삶이 충만한 '놀이 정신'의 회복을 촉구하면서 '놀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류 문명을 빛나게 한다"고 강조했다.
놀이에는 음악과 무용이 수반되며 연극으로 진화한다. 놀이는 또한 의례적이며, 축제, 종교의식과 연관된다. 놀이에는 규칙이 있으며, 경쟁심을 유발해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동네의 놀이에서 각종 스포츠, 그리고 '제퍼디'(Jeopardy), '서바이버'(Survivor),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 등 미국의 TV 게임쇼, 퀴즈쇼, 리얼리티쇼도 놀이가 그 원형이다. 놀이는 말싸움과 소송 분쟁으로 진화하며, 놀이는 또한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윷놀이는 태평양 건너 북미 인디언 부족들에게까지 전파되었다는 게 최근 알려졌는데 윷판이나 말이 우리와 거의 같으며 ‘윷’이라는 발음도 똑같은 데가 있다고 한다. 북미의 30개 어로 분류되는 130개의 부족들이 즐기고 있고, 이 놀이가 존재하지 않은 지역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는 고대문명의 발자취의 흐름이기도 하다.
역사학자인 이이화 선생은 우리나라 생활사에 있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3대 발명을 온돌과 김치 그리고 윷놀이라고 하였다. 윷은 북방퉁구스계인 우리 동이족이 창작해낸 놀이라는 것이다.
윷판에서 중앙은 천원(天元)이다. 우주나 만물에는 핵(核)이 있는 것이요, 그 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윷판 중앙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청룡칠수.백호칠수.현무칠수.주작칠수의 28수(宿)와 북두칠성이 운행하는 이치를 윷판으로 표현한 것이다.
윷놀이는 윷가락을 던지고 말(馬)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한자어로는 ‘사희(柶戱)’ 또는 ‘척사(擲柶)’라고도 한다.
‘윷’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놀이를 떠올리지만, 정작 윷이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윷점’에서 시작되었다. 신채호(申采浩, 1880~1936)선생은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윷판을 고조선시대 오가(五加)의 출진도(出陣圖)’라 하였다. 윷판은 고구려 백제 신라 구분없이 널리 유행했다. 옛 고구려 영역인 중국 길림성 집안 현의 암각바위부터 고인돌까지 남한 전 지역에서 수백 점이 발견되고 있으며 경북 안동시 임동면의 한들 바위 암각화는 청동기시대의 윷판도형이다.
윷을 학문으로 연구해서 그 철학적 의미를 밝힌 김문표(金文豹, 1568∼1608)는 <사도설柶圖說>에서 "윷을 만든 분은 도를 알고 있었으리라!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져 방정하니 건곤(乾坤)이 정해지며, 하늘의 일월성신(日月星辰,해달별)에는 궤도가 있어 경위(經緯)가 세워지며, 태양의 운행에 법도가 있으니 밤낮이 나눠진다. 그러나 하늘은 지극히 높고 성신(星辰)은 지극히 멀어 선기옥형의 도(圖)나 혼천의 의(儀)로 미뤄서 헤아려야만 알 수 있다. 지극히 간단하면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윷뿐이로다.”<사도설柶圖說>
윷놀이판은 북두칠성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모습이다. 고구려때는 북두칠성을 온별이라고 불렀다. 옛날에는 성인이 되면 상투를 틀었다. 상투는 앞으로 세번 뒤로 네번, 도합 일곱번(7) 꼬아서 상투를 올리면 하늘의 칠성(七星) 기운을 받는 솟대가 된다.
또 사람이 죽으면 돌아 가셨다고 말한다. 바로 북두칠성(北斗七星)으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그래서 관아래 칠성판(七星板)을 깔았다. 윷놀이는 4700년 전, 배달국의 자부선인이 역법의 이치를 놀이문화로 처음 만든 것이다.
고인돌에도 윷놀이판이 새겨져 있으며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해와 달 그림과 함께 북두칠성을 볼수 있다. 한국의 사찰에는 대웅전보다 높은 곳에 칠성각이 있다. 칠성탱화의 본존은 북극성의 치성광(太一神))여래로 좌보우처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로 해와달이다.
윷판은 총 스물 아홉(29)점이다. 그 중, 윷판의 중앙에 있는 점은 천원점(天元點)이라고 해서 황극(皇極: 임금자리)에 해당하는 중심자리로 하늘에서는 북극성(일명 太一星)을 말한다. 바둑판에서도 중앙의 한 점을 천원점이라고 하는데 윷판에서 28수(宿)는 하늘의 별자리를 상징한다.
전국 명산의 사찰에 가보면. 삼신각(三神閣)과 칠성각(七星閣)이 있다. 삼신각은 삼신신앙을, 칠성각은 칠성신을 섬기는 곳이라고 한다.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한민족의 철학과 역사와 종교가 무엇인가는 알아야한다.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샤마니즘』의 저자 박원길 박사는 몽골, 터키, 위구르, 여진, 사모예드, 에벤키, 거란, 선비 등.. 수많은 유목민족과 수렵민족의 신화와 종교의식의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2000년 3월 몽골정부로부터 학술상을 받았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 민족들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삼신(3)과 칠성(7)의 성수(聖數)신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군세기’와 ‘북부여기’‘태백일사’에서는 윷놀이가 한역(桓易)사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태백일사’에 “윷놀이를 만들어 한역(桓易)을 강연(講演)하니 신지 혁덕이 문자로 적어놓은 천부경의 남겨진 의미일 것이다.”라고 했다. 즉, 천부경이 나온 이후에 세상 만물의 변화와 그 이치를 풀어낸 한역을 대중을 위해 고안한 윷놀이로 쉽게 이해하도록 한 것이다.
‘단군세기’또한 “신시 시대의 우사(雨師) 복희가 한역을 만들고 같은 시대사람 발귀리 선인의 후손인 자부 선생이 윷놀이를 만들어 한역을 계승 발전시켜 일월의 운행도수를 측정하고 오행의 수리를 미루어 만든 천문 역법을 발달시켰다.”고 했다.
『태백일사』에 의하면 윷놀이는 배달국 치우천황 때 자부선생이 환역(桓易)을 연역(演繹)한 것으로 천부경이 전하는 정신을 구체적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適以是時, 紫府先生 造七回祭神之曆 進三皇內文 於天陛, 天王嘉之 使建三淸宮而居之, 共工 軒轅 倉 大撓之徒 皆來學焉. 於是 作柶戱 以演桓易, 盖神誌 赫德所記 天符之遺意也."
윷판은 쌍방이 각각 말 4개를 가지고 승부를 겨루므로 윷판을 '말판' 또는 '말밭(馬田)' 이라고 한다.
서구 유럽의 역사왜곡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이 『블랙아테나』이다.
유럽에서는 원래 유럽문명의 기원은 이집트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일학자들이 19세기 후반 같은 아리안인종의 고대 그리스를 적극 발굴하여 유럽과의 연계성은 강화하고 이집트와의 연계성을 축소하였다. 그리고 이집트문명과는 별도로 성장해온 독창적인 문명으로 그리스를 부각시켜 그 때부터 서양문명의 기원이 되었다.
많은 서구학자들은 『블랙 아테나』를 읽고서 그리스의 역사와 서양사, 그리고 세계사를 왜곡했을 가능성은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라는 반성을 했다. 그리스문명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2000~2500년 늦게 시작돤 문명이었으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나 페니키아 문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발전시켜왔으리라는 것이 순리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약소국인 아테나의 왕자 테세우스가 제물이 될 사람들과 함께 크레타로 간다. 이미 많은 연구들이 축적되어 그리스신화는 이집트신화와 터키지역의 히타이트신화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또한 탈레스, 피타고라스, 아르키메데스, 솔론, 유클리드, 플라톤 등 그리스의 유명학자들이 이집트를 갔다. 피타고라스 정리는 피타고라스보다 1500년전의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서 찾아냈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철학의 기원은 이집트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수학의 기원도 이집트라고 했다. 또한 헤로도토스는 많은 그리스신들이 이집트에서 왔다고 말했다.<출처: 전북대 이정덕교수님 글 요약>
볼프강 작스가 『반자본 발전사전』12쪽에서 이야기한대로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도 세계사, 사상, 학문은 서구중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구학자들이 수많은 역사왜곡으로 서구에 편향된 세계관을 만들어왔고 우리는 지금도 따르고 있다. “서구중심의 탈식민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리오리엔트』는 일찍부터 서구가 앞섰다는 주장을 모두 부정한다.
영국이 벵골을 식민지화하면서 인도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 아편을 팔고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유럽은 중남미의 은을 착취하여 부를 이루고 인구와 자원이 부족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기술투자가 증가하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을 성공시킨 다음에야 겨우 아시아을 앞섰다는 것이다. 아시아를 추월한 것이 150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이 동양을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곳으로 낙인을 찍고 자신들은 이성적이고 문명적인 곳으로 서양은 긍정적인 것으로 동양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었다. 자신들이 만든 동양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근거로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하였다. 자신들이 야만적인 세계를 문명화시키려고 식민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프랑크는 동양과 서양의 경제적 현실 자체를 유럽학자들이 왜곡하여 거짓말을 했고 영국의 산업혁명이 이루어진 1820년대까지 유럽이 아시아에 뒤쳐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서구가 세계사를 가장 발전시켜왔다고 배워왔고 따라서 근대를 서구를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중세는 동양의 중세보다 뒤쳐진 암흑중세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칼 맑스나 막스 베버 같은 학자들은 왜 이런 거짓말을 했을까?
그들은 서양이 우월하다는 관점에서 자료들을 해석하고 이론화 했기 때문이다. <출처: 전북대 이정덕교수님 글 요약>
서양사는 아시아 문명이 모태
20세기 초중반 미 컬럼비아 대학의 유명 철학자였던 윌 듀런트(1885∼1981)는 1930∼50년대 지식인들에게는 중요한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지식인들은 그를 통해 철학과 역사의 교류에 눈을 떴다고 평자들은 풀이한다. 그는 유럽과 미국은 아시아 문명의 응석받이이자 손자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조상인 동양의 풍요로운 유산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꼬집는다.
종래 서양사 중심의 서술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듀런트는 “서양의 이야기는 동양에서 시작된다. 아시아가 가장 유서 깊은 문명의 장으로 유명해서가 아니다. 동양의 문명들이 서양의 시작인 그리스 로마문화의 배경과 토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그리스와 로마가 현대 지성의 모든 원천은 아니다”면서 “서양 문명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발명품들, 예컨대 서양의 정치 기구 및 경제 과학 문학 철학 종교의 뿌리가 이집트와 동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 출처: 세계일보 2011년7월15일
서양 중심의 세계사는 가짜다.
리 오리엔트 = 다시 동방으로 !!
저자 프랑크는 유럽중심주의의 잘못된 시각을 수정하고 세계사에 관한 사고의 틀을 완전히 재정립할 것을 요구한다. 2000년 미국사회학회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 된 바 있는 이 책은 서구의 발전과 세계체제의 기원에 관하여 근본적인 재인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혁신적이고 흥미진진한 프랑크의 역작이다.
" 오리엔트" "빛은 동양에서".
세계 문명의 근원은 동양이었고 동양 역사의 시작이 곧 세계 역사의 시작 이었다.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는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강조하며 유럽 중심주의에 빠져있는 역사관과 세계사를 수정 하기를 요구한다. 우선 프랑크는 유럽 중심주의에 대해 거세게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년 남짓이다. 그 이전, 그러니까 1800년 이전까지는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 하고 있었다.
1800년 이전 변변한 자원도, 풍부한 자본도 없었던 유럽은... 자원과 자본뿐만 아니라 기술 역시 1800년 이전 유럽은 아시아의 기술에 미치지 못했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계기는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 때문이었다. 출처: 경향신문 2003년 3월 07일
서구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존 M. 홉슨 저 / 정경옥 역 / 에코리브르 / 2005년 1월/ 18,000원
동도서기(東道西器)가 아니라 동도동기(東道東器)
동양과 서양의 문명적 특징을 축약해 흔히 동도서기(東道西器)란 말을 쓴다. 그러나 이 책을 보고 나면 이 말은 동도동기(東道東器)로 바꾸어야만 할 것 같다. 정신문명은 물론이고 기계문명마저도 그 발원지는 동양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동양이 서양과의 문명발달 경쟁에서 근소한 시간적 우위를 점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역사의 전 과정을 통틀어 ‘숙련된’ 동양에서 ‘미숙한’ 서양으로 ‘모든’ 인문적 지식이 ‘전수’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이 전수목록에는 원천기술뿐만 아니라 거의 완제품 수준까지 아우르고 있다. 저자가 참조하고 인용하는 사료와 자료들은 충분히 치밀하고 방대하다. 따라서 구태여 저자가 존 M.홉슨이라는 전형적인 서양인 혈통이란 걸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그러한 문명발달의 원조 논쟁에 있지 않고, 인류문명에 있어서 동양의 명백하고 압도적이었던 문명사적 역할이 얼마나 축소되고 은폐되어 왔는지를 밝히려는데 있다. 그 과정에서 서양이 자기기만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부터임도 알게 된다.
동양은 ‘창조’ 서양은 ‘모방’
“서양 사람들은 독일의 발명가 구텐베르크가 문명에 혁신을 가져온 인쇄기를 최초로 세상에 소개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그림자 뒤에 숨은 진실은 이동형 인쇄기에 사용하는 최초의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의 것보다 적어도 50년은 먼저 한국에서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서문 중)
흔히 인류의 3대 발명을 화약, 나침반, 인쇄술이라고 한다. 이 발명품들은 모조리 동양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서양으로 전수되었다. 앞서 저자의 서문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구텐베르크는 인쇄기술을 독자적으로 연구해낸 것이 아니라 동양에서 입수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고정관념의 먼지를 털어 내어야 한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은 훨씬 오래 전부터, 아니 역사의 전 과정에서 무차별적인 교류를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교류는 일방통행이었다는 점이다. 즉 서양은 늘 문명의 수혜자였다.
동양은 ‘창조’하고 서양은 ‘모방’했다. 사실상 근대까지도 유럽인들의 기술수준은 모든 분야에서 동양에 비해 아주 조악했다.
한 유럽 지식인은 그의 저서 『위대한 우(禹)임금과 공자(Yu le Grand et Confucius)』에서 ‘유럽이 17세기에 이르러 마치 ‘유전자 대혁명’을 겪는 것처럼 일대 변신을 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뉴턴 등을 비롯한 대과학자들의 세기가 열린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동양은 더 이상의 ‘창조적 지식’의 출현이 없는 까닭 모를 정체기로 빠져들게 된다
서양인들의 모방과 착취
문제는 서양인들이 주도권을 쥐자마자 그것을 남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비약적인 발흥은 단순히 동양에 대한 지적인 부채에만 기인했던 것이 아니다. 서양은 식민지화를 통해서 무상의 노동력과 자원, 무엇보다도 독점에 가까운 시장확보라는 이중 삼중의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 또한 동양으로부터 이러한 경제적인 이득뿐 아니라 기술적인 모방까지 동원되었다고 말한다. 현대문명을 말함에 있어서 수학(數學)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는 없다. 아라비아 숫자로 알려진 오늘날의 십진법 수 체계 그 외에도 항해술, 조선술, 천문학, 도로망 등 세계를 이미 하나로 만들었던 교통수단은 그 어느 것도 동양인들의 지적산물이 아닌 것이 없다.
콜롬부스가 신대륙이라고 착각하고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작명하기 훨씬 이전부터 동양을 비롯한 소위 제3세계인들은 전세계를 누비고 다녔다.(이하 생략)
대만출신으로 일본 도카이대학 교수로 있는 사세이키가 쓴 『유럽중심사관에 도전한다』에 따르면 “유럽중심 사관이 대두된 것은 176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이때부터 서구가 직선적으로 발전한다는 진보사관을 확실하게 확립시켰고 이러한 발전의 최첨단에 서구가 있다는 믿음이 확고하게 정립되던 시기이다.
계몽주의 이후 유럽중심사관이 유럽을 우월한 모습으로 역사를 과장하고 왜곡하였다. 유럽에서 만든 세계사는 서구편향적으로 쓰여졌다며 비판하고 있다.
그는 유럽의 시대가 지속되면서 유럽학자들이 주도하여 세계사를 유럽의 모습으로 보이도록 왜곡하여 썼고 이러한 해석과 왜곡에 의존한 세계사가 현재도 학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 미국 부통령 엘고어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했다고 말했지만 서양의 교황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뒤 얻어 온 기술"이라며 "이런 면에서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혁명은 역사적으로 보면 두번째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기술 발전 기여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5월 19일 서울디지털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
첫댓글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네,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