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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만나서 결혼해 살아 온지도 어느덧 45년의 세월이 흘렀다. 흰 머리의 남편을 슬쩍 훔쳐 보면 옛날의 환하던 모습은 간 곳이 없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본다. 이제 알콩달콩 살아 가는 맛은 없어졌지만 바라보면 그가 지낸 버거웠던
세월이 눈물겹고 안스럽다.
내가 첫 발령지에서 두 번째로 옮겨간 학교는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철정 초등학교다.그 곳에서 1학년을 맡았는데 막내 시동생이 우리반이었다.
그때 군대가서 휴가 나왔던 남편이 나를 만났다.
남편은 내게 청혼했지만 난 마음이 딴데 가 있어서 남편 속을 태웠다. (내가 좋아했던 이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애슐리형이었고
남편은 버틀러형아었나?)ㅎㅎㅎ
남편이 보낸 수십통의 편지는 뜯지도 않은채 되돌려 보내고
만나 주지도 않았다.그 때 우리 집은 서울 성북이었는데 아버지가
성동역장으로 근무하실 때였다.
매사에 적극적인 남편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학교 선생님을 통해서
우리 집을 알아냈다.
식목일날 라일락 한 그루를 사 들고 우리 아버지 근무하시는 성동역으로
찾아 갔는데 우리 아버지앞에서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같이 근무하는 동료
교사인데 서울 오는 길에 황선생님 부탁으로 나무를 가져 왔다고
하니까 우리 아버지께선 딸 본듯 반가워서 집으로 데려 오셨다.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은 넙죽 절한게 아니라(^^*) 삽 찾아 들고 우리 집 대문 앞에다가 가지고 간 라일락 묘목을 심었다.
우리 어머니께선 딸 본듯 너무 반가우셔서 한 달음에 정육점에 달려가셔서
쇠고기 한칼 끊어다 귀한 쇠괴기국 (^^)끓여서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셨다.
식성 좋은 남편이 국 맛도 보지 않고 대번에 밥 한그릇을 국에 첨벙
쏟아 붓고 탐스럽게 먹는 걸 보시고는 너무 맘에 드셔서 "결혼은 하셨어요?"
하고 물으셨댄다.
남편은 얼결에 "네!" 대답했는데 어머니께서 아쉬워하시며
"아이구 어느 댁인지 사위 잘 보셨네요!" 하셨다는 후일담... ^^* 남편이 간다고 일어서려니까 어머니께서는 우리딸 갖다 주라며
밑반찬이며 내가 갈아 입을 한복 저고리랑 (그때는 여교사들이 한복을 입었다)
챙겨서 한 보따리 싸서 보내셨댄다.
남편은 그 보따릴 들고 차마 내게 오지 못하고 자기 집으로 가져 갔는데
고민 하다가 며칠 후에 그 보따릴 들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찾아왔다.
그런데 시골학교로 찾아 온 남편은 교무실에 들어서자 마자 나를 보더니
느닷없이 "야! 너 찾아 오느라 힘들었다. 그런데 너 좋은 학교에 근무하는구나!"
이렇게 반말을 하는 거였다.
그리고는 교감 선생님 앞으로 가더니 꾸벅 절하면서
"제가 아무개 외삼촌입니다.우리 조카 잘 부탁드립니다"
이러는 거였다.
너무 어이가 없는데다가 교감선생님께 아니라고 말씀드리면
더 이상 할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으려니까
교감선생님께서
'아, 왜 그러고 있어요? 빨리 모시고 나가지 않구.."
하며 일찍 퇴근하라고 하셨다.
얼떨결에 일찍 퇴근을 하게 되었는데 신장에서 구두룰 꺼내 신으며
남편이 내게 말했다."죄송합니다!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골학교에 느닷없이 남자가 찾아 왔으니내 처지를 고려해서
그렇게 말했다는 거였다.
그 때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산골에 있는 작은 학교였는데 그 마을엔 찻집도
없고 음식점도 없었다.
밖에서 얼쩡댔다간 대번에 아무개 선생 애인 찾아 왔다고 소문날게
틀림없었다.하는 수 없이 자취방으로 데리고 들어 가서 앉자마자
땡벌처럼 쏘아댔다.
더구나 우리집에 찾아 갔다는 얘길 듣고는 길길이 뛰면서 화를
불같이 내며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며 쫓아 버렸다.
그러나 남편은 그길로 서울 우리 집으로 찾아가서 부모님 앞에 무릎 꿇고
사죄를 했다.
아무개 선생과 결혼하고 싶어서 지난번에 찾아 왔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서
어른들을 속였노라고. ..
그런데 무슨 인연인지 까다로운 우리 어머니께서는 그런 남편이 귀엽기만하고
맘에 쏙 드셔서 그날부터 사윗감으로 찍어 놓고 나를 닥달하시기 시작하셨다.
"네가 뭐가 잘났다고 그런 신랑감을 싫다고 하냐!" "그 사람하고 결혼하지 않으려면 집에 오지도 마라!"
어머니와의 싸움은 2년을 끌었는데 어느 달 밝은 보름날 밤에
남편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내 마음을 돌이킬 수 없어 마지막으로 찾아 왔는데 무슨 조화속이었는지
그날밤의 남편 모습은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새로 이발을 했는지 그에게선 싱그런 비누냄새가 났고 흰 와이셔츠는 달빛을
받아 푸르른 색으로 빛났다.
그런 그의 모습에 홀려서 (^^*) 1962년 12월 29일에 서울 을지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사랑을 하는 청년은 달밤에 연인을 만나시라!)
결혼후 남편은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어머니는 고생하는 딸을 보다 못해 사위를 나무라셨지만 아버지께선 그런
사위를 늘 다독이시며 격려해 주시고 사위를 믿어 주셨다. 그래선지 아버지 돌아 가셨을때 남편이 하도 서럽게 울어서 어느
자식이 그리 슬피 울 수가 있냐고들 문상객들이 감탄했었다.
친정 집이 이사를 한 후, 남편이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었는데 하루는
아버지께서 먼저 집에 가셨다가 옛날 집 바깥에 사위가 심었던 라일락을 동네
애들이 꺾어 가지를 부러뜨린 걸 보시고 "저 나무가 애들한테 시달려서
아범 하는일이 안되나 보다"하시며 캐다가 이사간 집에 옮겨 심으셨다.
가지가 꺾이고 볼품 없이 자란 라일락이 우리 집으로 옮겨 온 후로 매년 탐스런
꽃을 피웠다. 남편이 우리 집에 갖다 심은 어린 라일락 묘목이 이제 45년의 세월을
지내고 고목이 되어서 이제는 꽃을 많이 피우지 못한다.
지난번에 친정에 가서 몇 송이밖에 피지 못한 라일락 나무를 손으로 쓸어 보았다.
상처투성이의 늙은 고목을 주름 투성이의 늙은 손으로 어루만지며
"그동안 너도 참 고생 많았다. 잘 견뎌 줘서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대답이라도 하듯 꽃에서 말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풍겼다.
라일락 나무에 기대서니 모든 게 엊그제 일만 같다!
이만하면 잘 산 게 아닌가 싶다.
(이궁, 늙으니까 이런 수다가 부끄런줄도 모르고 술술 나온다.하긴
여자 나이 육십이면 바람 핀 얘기까지도 다 한대나 어쩐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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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팔랑개비 -큰 아들 - (2006, 3,1 해안일주 떠나던 날)
앞으로 남은 여생도 이렇게 손잡고 마지막날까지 살아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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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삶은 오고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예기치 않은 복병들까지 끌어안고 살아내야한다는 글이 생각납니다, 안나님! 건강하게 살아가시는 모습을 오랫동안 뵙고 싶습니다,
이렇게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두 손 잡은 안나님과 옆지기님의 손 말입니다^^
정말 사내다운 남자랑 한세상 사셨군요. 그래서 그런 용기가 전염이 된거구요..... 멋진 生이었다고 여깁니다.
그런 아픔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안나님이 계실리도 없고...그죠?
45년 세월에 비하면 많이 짧지만 24년 전에 비스무리한 사연에 웃음이 납니다
안나님 을지예식장에서 64년에 저도 식을 올렸답니다 .2년 선배돼시네요 전.2남일녀 인데 딸이없으셔서 심심하시겠네요 .저보다 신경쓸일이 없으신건 좋은일이예요,두분의 인생사가 참 아름답습니다 .
안나님 지난 세월만큼 아름다운 사랑 라일락처럼 향기로우세요^^
어린 후배들이 사표를 보는 것 같아 우리 부부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멀리서 가까이서 라일락 나무는 안나님의 생애을 바라보고 있었을 거에요. 어떤 시절은 그윽한 향기를 내면서, 또 다른 시절은 잎만 무성한 모습으로. 그러나 잎만 무성하여 잠시 라일락인 줄 모를 때도 라일락의 본질은 향기가 아닐까 해요. 안나님을 잘 모르지만 그와같은 향기를 평생 지녀오신 분일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안나님 처럼 살고싶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잖아요. 저도 그중 하나이구요. 안나님 참 잘 사셨습니다. 늘 편하시기만 했었다면 안나님께서 풍기는 라일락향보다 더 진한 향기가 있었을라구요? 두분 더욱더 오래오래 해로하시길 바랍니다.
'라일락 연정 그후..' 영화 한편 본 듯하네요. 일전에 봤던 '내 마음의 풍금'같이 서정적인...이제 라일락 향기 날리는 5월이면 두 분의 아름다운 사랑 얘기가 떠오를 것 같습니다. 안나님, 정말 부럽게 잘 어울리세요. 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글과 사진을 보노라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네요... 두분 모습, 안나님의 미소가 라일락 향기 같네요.. 건강하세요..~
재밌는 소설의 줄거리를 읽은 기분입니다. 애슐리보다는 레트 버틀러가 훨~~ 매력적이지요~ ㅎㅎㅎ 안나님의 사랑이야기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안나님 결혼하신 1962. 12. 29일은, 제가 태어난 지 꼭 3개월째 되는 날이었네요... ^^*
영화가 따로없군요 ^^ 주인공들은 늘 끝에는 해피하던데 역시나 아름답게 사시네요~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