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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것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V73jSQZGmyI&t=16s
대단한 대한민국!
극심하게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나라에서
김대중, 노무현. 상고 출신 고졸 대통령을 뽑아 엘리트 카르텔를 흔들어 놓고
또 독재자의 딸을 다시 청와대로 불러들이고 기업 엘리트에게 나라를 맡겼다가 감옥으로 돌려보내고
혁명의 기회를 쥐고도 흘려보내고 검찰 수장을 또 곧바로 대통령으로 만드는 참 다이나믹한 나라.
그러다 87년 헌법 체제 초유의 내란이자 45년 만에 군사 쿠테타를 겪고는 소년공 출신을 대통령으로 뽑은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옵니다.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만든 건 김어준, 유시민, 조국이 아니라 이 나라의 시민들입니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이 시민들의 촛불 혁명으로 들어섰지만, 이 시민의 바람을 저버린 채 모든 시민의 공을 자기들 소수가 가로채서 끼리끼리 전리품 나누고 등 따습고 배불러서 좋았을 거예요.
이재명 정권에서는 그게 안 되니 아마 죽을 마실 겁니다. 이 실질적 기여와 체감하는 지분 사이의 간극이 벌어질수록 저들의 반응 수위는 점점 더 세집니다.
기득권 카르텔이 작동하는 전형적인 방식이죠.
이게 한국만의 병증은 아닙니다.
영국, 브라질, 독일 등
당이나 진영의 핵심지지 기반이 과거의 헌신을 영구적 지분으로 여기고
지도자가 외연을 넓히려는 순간 그걸 배신으로 해석하는 건 좌우를 막론한 구조입니다.
다만 한국의 다른 점은
유시민과 김어준 같은이 선출되지 않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없는 사람들이 당원 표결권 같은 물리적 권한이 아니라 매주 매일 올라오는 유튜브 조회수로 여론을 움직이는 매체 권력이라는 점이죠. 지분을 주장하는 방식조차 진화한 겁니다.
이재명을 겨냥한 공격은 논리적인 정책 비판으로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대신 그의 가정사나 개인의 자격을 파고듭니다. 형수 욕설 녹음 파일 등
그런데 이 사건을 보는 사람들은 형제끼리 저러는 건 집안 내력이고 형수 욕설이 유전자 단위의 선천적인 문제라면 저런 집안에 국가의 명운을 맡길 수 없다. 뭐 이런 결론을 냅니다.
원인과 결과를 완전히 지우고 가난한 집안이라는 사실만 떼어내서 아이 집안은 원래 그렇다 라는 사회적 계급적 낙인으로 건너뛰어 버리는 거죠.
이 같은 잣대를 재벌가에 빗대 보면 비대칭성이 선명해집니다.
최태원 SK회장은 2015년 혼해자를 공개하면서 결혼 생활이 파국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안 좋은 소문으로 2009년 임세령 씨와 이혼
사실 관계만 보면 훨씬 큰 흠을 가진 쪽은 최태원과 이재용인데
이재명은 가난한 집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가족사가 이재명이라는 사람의 자격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증거로 재소환 됩니다.
이 차이는 경제력과 네트워크로 은폐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예요.
돈이 있으면 변호사와 비밀 유지 계약으로 가족의 문제를 관리할 수 있지만 가난한 집안은 그럴 자원이 없어서 갈등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부유층의 가정불화가 적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는 기술 그리고 경제력이 더 발달해 있을 뿐이죠.
그러나 한국 사회는 그 가십성의 차이를 본질의 차이라고 착각합니다.
이미 정당성을 의심받지 않는 자리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같은 크기의 흠집도 스캔들로 소비되고
정당성을 계속 증명해야 하는 자리에서 시작한 사람에게는 자격 박탈의 근거로 씁니다.
이 굴절의 모습
1980년 5월 광주에서 수많은 자국민을 학살했어요. 여기에서 소회당하고 국가 폭력을 당한 쪽은 명백히 호남이었습니다.
1990년 3당 합당은 영남과 충청 보수 세력을 하나로 묶었죠.
1987년 민주화로 민주대 반민주라는 균열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를 더욱더 강화된 지역 정체성 즉 지역주의가 매웠고 출신지 정체성이 강할수록 당파적 정체성이 강화된다는 게 실증 연구로도 확인이 됩니다.
2024년 12월 윤성열이 비상 개엄을 선포하고 탄핵된 뒤에 치러진 2025년 대선에서도 대구는 67.62% 경북은 66.87%가 여전히 국민의 힘 후보를 대통령으로 찍었습니다.
대한민국 기업, 언론, 정치, 종교 카르텔의 결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있는 다리 역할을 하는게이 적자는 대한민국 교수 지식인들이에요.
‘똑똑한 바보들’의 시대가 저문다
대한민국에 형성된 크고 작은 카르텔이 유독 이재명을 위협으로 느끼는 이유는 그가 다른 언어를 쓰기 때문이에요.
9월 12일이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청년 오늘 연구소장 박태훈의 글을 인용한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개혁의 이름으로 개혁을 방해하는 것.
이 마지막 문장은 프랑스 혁명의 교훈과 정확히 겹칩니다.
한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상대 진영을 국정의 동반자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폐로 규정하는 순간 그 구호는 상대진영의 반감을 결집시키는 연료가 됩니다.
혁명의 열기가 뜨거울수록 반동의 결집도 거세진다는 걸 문재인 정부의 5년은 실증적으로 보여줬어요.
이재명은 그 셈법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민주당 코어 지지층만이 이 승자 독식의 몫을 나눠 가질 자격이 있다는 문법에 대한민국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자리는 그런 게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은 겁니다.
대부분의 한국사 엘리트 정치인들은 처음부터 한 세계의 언어 안에서 정치에 입문합니다.
이재명은 공장 노동자의 언어, 시장의 언어, 검정고시생의 언어, 법정의 언어, 시민운동가의 언어를 순서대로 살아내면서 익혔어요.
이재명은 하늘이 내린 타고난 준비된 대통령이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 준비한 대통령이에요.
상것은 애초에 지킬 격식도 지켜야 할 가문의 체면도 없었어요. 잃을 게 없다는 건 동시에 넘나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히려 상것이라서 더 자유롭고 유연한 삶을 살 수 있었어요.
이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대기업 CEO부터 영화인, 시민 단체, 시장 상인들까지 그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마주 앉아도 대화가 끊기지 않습니다.
공감 능력, 자기 객관나 세상을 넓게 보고 시간을 길게 보는 관점, 다양한 계층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
상것이라는 자리가 오히려 그를 가장 많은 세계와 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죠. 상것들의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대한민국의 비주류의 시대가 옵니다.
챕터 7: 상것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이재명의 언어의 가장 실질적인 효과는 해석자를 필요 없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정치인의 모호한 언어는 그동안 그 틈을 메우는 해설자의 자리를 만들어 왔어요. 저 말이 진짜 무슨 뜻인지 풀어주는 사람들.
유시민과 김어준, 뭐 최육 같은 이들이 방송에서 누려온 권력이 정확히 그 틈에서 나옵니다. 시청자가 정치인의 말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할수록 해석자의 자리는 더 커지죠.
그런데 이재명의 언어는 애초에 해석할 틈을 남기지 않아요.
그는 소셜 미디어에 직접 쓰고 국무에 의해서 직접 설명하고 기자들 앞에서 직접 답합니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시민들이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읽으면 됩니다.
유시민과 김어준 같은 이들이 유독 이재명 앞에서 나를 세우는 데는 그가 자신들의 해석 권력을 구조적으로 축소시키는 존재라는 사정도 섞여 있습니다. 지분을 요구하는 분노 밑에는 자신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깔려있는 거죠.
지배 계층이 정말 두려워하는 건 이재명이라는 개인이 아니에요.
김대중과 노무현이 한 번씩 하고 끝났다면 예외로 처리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이재명까지 세 번째로 나오면서 이건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경로가 됐어요. 실력 있는 상의 등장은 계급의 기대에 호위호식 해오던 이 무능력한 양반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챕터 9: 사방이 적이다
박근혜와 윤성열을 만든 쪽의 논리와 유시민과 김어준과 조국 쪽의 논리는 겉보기엔 정 반대처럼 보이죠. 하나는 혈통과 검찰이라는 국가 엘리트 코스를 또 다른 하나는 촛불과 민주화 투쟁의 이력을 정통성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둘 다 같은 질문 앞에서 이재명을 동시에 밀어냅니다. 이 자리는 원래 누구의 것이었는가?
보수 쪽 카르텔의 답은 우리 혈통, 우리 엘리트입니다.
진보적 카르텔의 답은 우리가 만든 정권, 우리가 쌓은 지분입니다.
이재명은 이 두 서사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대통령이 됐어요.
그러니 좌우여야를 막론하고 그를 공격하는 목소리에는 같은 문법이 흐릅니다.
이제명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구나라는 결론 말이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같은 표적을 겨누는 거죠?
챕터 10: 당신도 화살을 쥐고 있다.
피지배자의 수는 언제나 지배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 피지배자가 그들이 뭉치면 지배 구조 자체가 무너지죠.
그러니까 지배자가 할 일은 간단합니다.
그 다수가 서로를 경계하고 미워하고 혐오하게 만들어서 이 뭉칠 여유도 명분도 갖지 못하게 하는 거죠.
대구와 광주 사이, 유시민 김호준 팬덤과 이재명 지지자 사이에 파인 그 균열 밑에도 같은 원리가 흐릅니다.
다만 지금은 식민지 총독이 지도 위에 선을 찍찍 그던 방식 대신에 알고리즘과 조회수가 그 선을 대신 그어 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비판할 거 있으면 해야 합니다.
건전하고 건강하게 이 정부의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함께 힘을 모아서 나갈 수 있는 대안이요.
하나의 유튜브 채널에 판단을 몰아 주지 말고 지금 내 반응이 사실에 대한 판단인지 이 소속감 내 소속감을 지키려는, 안정감을이 찾으려는 반사 작용인지 우리 모두 각자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87년 헌정 체제 이후에 초유의 내란을 한 윤석열에 대한 협박글이 없는데 이재명은 대통령이 되고도 물리적으로 그의 목숨을 끊어 버리겠다는 글이 서슴없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정작 민주진보진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지금 탄핵을 하네마네 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고 있어요.
윤성열이 내란을 저지르고 스스로 무너지기 전까지는 탄핵은 커냥 입도 뻥긋 못 하던 사람들이 말이죠.
이재명이 만만한 겁니다.
자신들도 상것이면서 양반들 앞에선 고개를 조아리고 다른 상것에게 분풀이하는 겁니다. 강약약강은 한동은만의 병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낙관하게 만드는 건 다른 장면입니다.
저격수의 시선을 분산시키겠다고 그 유세 현장을 파란 풍선으로 가득 채우던 사람들. 그 손거울과 쌍안경을 들고나와서 혹시 모를 위협을 함께 살피던 사람들 말이죠.
이재명 후보가 연설하다가 시민들의 얼굴이 안 보여서 답답하다면서 방탄유리에서 조금이라도 이제 벗어나면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막 들어가라고 뭐 소리 소리를 칩니다.
그런 끔찍한 테러를 당하고 나면 그 불특정 다수의 군중 속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에 트라우마가 생길 법도 한데 이 이재명이라는 사람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주저 없이 시민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군중이야말로 그의 존재 원천이며 그의 힘이기 때문이죠.
우리 사회엔 화살을 옆으로 쏘는 이들도 많지만 몸을 던져서 화살을 막아서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 사회엔 끔찍한 사람들도 많지만,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니 아름다운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이 시끄러운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지배하게 둬서는 안 돼요.
창과 칼, 법전, 마이크, 구독자 수백만을 가진 이 소수의 목소리가 선량하고 합리적인 우리 사회 다수인 시민의 목소리를 가리게 해선 안 됩니다.
이게 바로 제가 작은 목소리라도 힘껏 내는 이유입니다.
우리 사회엔 더 많은 예외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이재명이 생겨야 합니다.
카르텔의 횡포 https://www.youtube.com/shorts/BADxGHSE8zE
통폐합 반대: 기득권의 저항
https://youtube.com/shorts/CkOFTDAK9hs?si=mxBLyhG_itvumslh
반성 없는 기득권
https://www.youtube.com/shorts/Ad857Mrw_V8
부끄럼 없는 기득권
https://www.youtube.com/shorts/uRjlrtLq0Mc

첫댓글 제 2 이재명 오려면 https://www.youtube.com/shorts/lXWvmsMzY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