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역사왜곡이 도를 넘고 있다. 말이 史劇이지 창작 수준이다.
오래전에 방영되었던 신봉승 작가의 "왕건"과 "조선왕조 500년"이나 유현종 작가의 "연개소문"과 "천추태후" 등은 역사적 사실에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어 나갔다.
그런데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KBS1 TV의 주말사극 "대왕의 꿈'을 보면,
일연의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역사를 무시한 채 흥미 위주로 각본을 쓰고 있어 그 작가의 역사적 의식이 의심된다.
요즘 사극은 어찌하여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오도하고 왜곡하는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이것도 시대의 흐름이란 말인가?
그런데 큰 문제는 역사드라마를 보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도 그것이 역사적 사실인 것으로 받아 들인다는 점이다. 국영방송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BBC나 NHK도 이런 작태를 감행하고 있을가.
더구나 50세의 최수종이 10대의 김춘추로 나오는데 그는 이미 장보고 역도 했고 대조영이 되는가 하면 왕건도 했다. 얼마나 인물이 없으면 늙은 그에게 어린 김춘추 역을 맡겼을가.
화랑은 19세 이하에 수장인 風月主가 된다. 김춘추는 김유신 보다 7살 연하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나이가 비슷하다.
김춘추가 좀 큰 다음에 최수종이 그 역을 맡겼으면 안 될가.
19세 이하 역에 50살 늙은이가 캐스팅되니 영 밥 맛이다.
각설하고, 이 사극에 등장하는 鬼門의 수령 비형랑(鼻荊郞)의 정체에 대하여 알아보자.
비형랑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실제 인물이다.
신라 25대 임금 眞智王은 眞興王과 思道夫人의 둘째 아들이다.
태자였던 銅輪이 먼저 죽고 동륜의 아들은 매우 어렸기 때문에 진지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삼국유사는 "진지왕이 576년에 즉위하여 나라를 다스린지 4년 만에 정치가 문란해지고 진지왕이 주색에 빠져 음탕하므로 신하들이 왕을 몰아냈다"고 한다.
진지왕이 여색을 밝히다가 폐위됐다는 사실은 "화랑세기"에도 나온다.
그가 왕위에서 쫓겨나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서라벌 사량부에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 녀를 도화랑이라고 불렀다. 진지왕은 도화를 궁중으로 불러 보니 참으로 절세미인이었다. 그런데 도화는 남편이 있는 유부녀이기에 진지왕은 이렇게 물었다.
"만일 너에게 남편이 없다면 내 뜻을 받아 주겠느냐?"
"남편이 없다면 그럴 수도 있지요."
그리고 나서 얼마 뒤에 진지왕이 죽었는데 그로부터 2년 뒤에 도화의 남편도 죽었다.
도화가 과부가 된지 열흘이 지난 어느 날 깊은 밤 중에 죽은 진지왕이 도화의 방에 나타났다.
그래서 둘이 동침을 하고 도화는 태기가 있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비형랑이다.
진평왕이 비형이 태어난 이상한 사연을 듣고 아이를 궁중으로 데려다가 길렀다.
그리고 비형의 나이가 15세가 되자 집사 벼슬을 주었다. 집사는 궁중의 하급관리였다.
그런데 비형은 밤마다 대궐을 월담하여 멀리 나가서 놀곤 했다. 이런 사실을 보고 받은 진평왕이 군사들에게 엄중히 지키게 했지만 비형은 번번이 월성을 훌쩍 타 넘어 서쪽 황천 언덕 위에 가서 귀신들과 놀았다. 군사들이 숲속에서 매복하여 엿보니 귀신들이 서라벌 여러 절에서 새벽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자 각각 헤어지는데, 비형도 그 때 헤어져 대궐로 돌아왔다.
이상이 삼국유사 紀異의 "도화녀와 비형랑" 편의 내용이다
형은 진지왕의 庶子로서 진평왕의 사촌아우가 된다. 삼국유사와는 달리 진지왕은 죽어서 귀신이 되어 비형을 낳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도화와 관계하여 비형을 낳았던 것이다.
"화랑세기" 제13세 풍월주 金龍春 편을 보면 "庶弟인 비형랑과 함께 힘써 낭도를 모았다. 그러자 대중이 따랐고 3파가 모두 추대하고자 하였으므로 舒玄郞이 位를 물러 주었다"라고 했다.
용춘은 김용수의 아우로서 진지왕과 지도부인 소생이다. 따라서 비형과는 배 다른 형제인 것이다.
김용춘은 진지왕이 폐위될 때 어려서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것을 진평왕이 대궐에서 살게 했으므로 사촌형인 진평왕을 아버지로 알고 자랐다. 진지왕의 서자인 비형도 이들 용춘 형제와 같이 진평왕에 의해 어릴 때부터 궁궐에서 자랐다.
그러니까 비형랑은 진지왕의 귀신의 아들이 아니라 폐위 당해 잔명을 보존하던 그 3년 사이에 도화녀와 관계하여 낳은 자식인 것이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진지왕이 폐위되기 1년 전인 578년에 태어났고, 비형랑은 진지왕이 도화녀가 과부가 되는 2년을 기다렸다가 관계를 맺어 581년에 태어났다.
용춘이 제13대 風月主에 오른 때가 596년이니 용춘은 18세에 풍월주가 되고 비형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용춘을 도운 것이다.
이런 비형랑을 "대왕의 꿈'에서는 비적인 鬼門의 수령으로 그렸으니 황당무게한 역사 날조요 역사극이라 하겠다.
요증음 독도문제다 고구려영토문제다 하여 역사날조가 국제문제화 되고 있는데 자국내에서 드라마이지만 역사날조를 이렇게 해도 되는지 방영 관계자들의 의식수준이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