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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에 추수감사절기인 추석를 명절로 새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과 이스라엘뿐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이스라엘 민족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슈메르(갈대아 우르국)에서 나왔다. 슈메르는 한국 말기에 해당하는 3-4천년전에 초원길을 따라 동방 한국에서 중동으로 이주해 온 고대 한국인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 경천애인의 사상을 가지고 삶을 지혜롭게 사는 잠언들과 지혜서들을 읽으며 살았다.
홍산인들은 자연석을 쌓아 우주을 나타내는 원형제단과 동서남북의 땅을 의미하는 사각제단을 만들어서 우주의 주인인 하나님(상제)에게 제사를 지냈다. 강화도 마니산 제천단은 자연석으로 쌓은 사각형과 원형이 결합되어 있다.
이스라엘 민족 역시 자연석을 쌓아 제단을 만들었다. 고대 한국인들의 제천신앙흔적이 그대로 전승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슈메르인들은 소호씨족이다. 소호금천씨라고 불리우는 배경에는 소호씨와 금천씨가 함께 살았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소호씨는 신라.가야인들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김천씨와 살다가 서쪽으로 이주해 갔다.
김천씨는 흉노족의 거주지가 되는 중앙아시아 감숙성 지역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고, 소호씨는 계속 이주하여 중동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소머리(슈메르) 문명을 건설하였다. 슈메르는 소머리라는 말로 본래가 농경민족이였음을 의미한다. 한반도지역을 의미하는 [산해경]'대황동경'편의 기록에 따르면 "소호씨는 대학(큰골짜기)에서 중국 3황5제 가운데 한 사람인 전욱을 키우다가 떠났다."는 기록이 있다.
큰골짜기를 의미하는 대학은 압록강이 흐르는 압록강 지역말고는 없다. 고구려 고추모가 고리국을 재건한 압록강지역은 세계 최다 적석총(피라미드) 지역이다. 소호씨는 이 압록강 지역에서 농사를 짓거나 수렵생활을 하다가 서쪽으로 이주해 갔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는 마고이래로 인류사에서 세계 최초로 농사가 시작된 농경지역이다. 씨족을 의미하는 소머리라는 의미에는 소호씨의 조상이 한반도인들임을 증명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슈메르인들은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 비옥한 지역에서 풍요로운 농경생활을 영유할 수 있었고, 농사철이나 추수철에는 고대 한반도인들이 그랬듯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벌었다고 할 수 있다. 추석이라는 민족의 추수감사절은 단군조선이전부터 어둠을 환하게 밝혀 주는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는 음력 8월 15일로 정해졌다고 할 수 있다. / 윤복현
[자료]한국과 이스라엘의 유일신 하나님,추석과 초막절, 가야 허황후는 예수교인
한국 4대 명절의 하나가 추수감사절에 해당하는 중추절․가배(嘉俳)․가위․한가위라고 불리우는 추석이다. 고대 사회의 추수 감사절, 이스라엘의 초막절에 해당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유리왕(儒理王) 때 6부(部)의 여자들을 둘로 편을 갈라, 두 왕녀가 여자들을 거느리고 7월 기망(幾望, 음력으로 매달 열나흗날 밤. 또는 그 날 밤의 달)부터 매일 뜰에 모여 밤늦도록 베를 짜게 했다. 8월 보름이 되면 그 동안의 성적을 가려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했다. 이 때 <회소곡 會蘇曲> 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놀았는데, 이를 '가배'라고 불렀다.
<회악 會樂>이라고도 하는 회소곡의 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삼국사기>에 그 유래만이 이렇게 전할뿐이다.
유리왕이 6부를 편성한 뒤 6부의 여자들을 두 패로 나누고 왕녀 둘을 각 패의 우두머리로 삼아 7월 보름부터 8월 한가위까지 길쌈 경쟁을 하게 했다. 그래서 진 쪽이 가무백희(歌舞百戱)를 갖추어서 이긴 쪽을 대접했다. 이 자리에서 진 편의 여자 하나가 “회소, 회소!”라는 감탄구를 가진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는데 그 소리로 인해 노래 이름을 <회소곡>이라 했다고 한다.
그런데, ‘會蘇’는 중국 발음으로는 ‘헤수’이고, 스페인에서는 예수를 ‘헤수’라고 한다.
날짜가 같은 한국의 한가위와 이스라엘 초막절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열린 88서울올림픽은 160개국 1만3천명이 출전, 사상 최대의 규모로 치러졌고 완벽한 대회운영으로 역대 가장 훌륭한 올림픽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우리나라는 종합4위의 쾌거를 이룩하여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이 대회를 통해 공산권 국가와의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시켰으며 국제적으로 한민족의 무한한 잠재력과 역량을 공인 받는 효과를 거두었으며 공산권 와해의 계기가 되었다. 그 해 9월 25일이 추석날이었는데, 올림픽 경기장에는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다. 이스라엘 달력으로는 그 날이 7월 보름날이기 때문에 초막절 행사가 벌어져 전세계 160국 선수들이 신기하게 보았던 것이다. 유대인의 절기는 일곱 가지가 있다.
① 유월절(레 23: 5-14)
② 무교절(6-8)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간,
이 두 명절은 우리 정월 대보름에 해단된다.
③ 초실절(9-14)
이 명절은 우리의 단오절에 해당된다.
④ 오순절(15-22)
⑤ 나팔절(23-25)
이 절기는 우리의 설날에 해당된다
⑥ 속죄일(26-32)
⑦ 초막절(33-44)
이 절기는 우리 달력으로 음력 8월 15일이므로 한가위에 해당된다. 세계에 같은 날에 추수감사 절기를 지키는 것은 한국과 이스라엘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천막생활을 했던 일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이다. 매년 유대력 칠월 15일부터 7일 동안 종려나뭇가지를 베어다가 옥상이나 마당, 또는 광장 등에 초막을 짓고 살면서 광야에서 조상들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는 기간이다(레23:33~44). 예루살렘 거민들은 실로암 못물을 길어다 마시며, 광야에서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단군(檀君)왕검은 유일신 하나님의 제사장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절부터 "최고의 자리에 계시며 없는데가 없는(한단고기)" 유일신 하나님을 믿었다. 고조선은 47명의 단군임금들이 2000 여년을 다스렸다.
제사장 단군 왕검이 제단을 쌓은 곳으로 유명한 강화 마리산에는 높이 6m의 참성단(塹星壇:사적 제136호)이 있는데, 이스라엘 갈멜산의 엘리야의 제단과 같이 바다를 내려다보는 지형이 특이하다. 이 제단은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쌓은 제단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제단 축조법과 일치한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제단을 이렇게 쌓으라고 하셨다.
“주 너희의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을 만들되,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제단을 만들어라. 너희는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주 너희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번제물을 올려 주 너희의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표준새번역 신 27:5-6).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제단을 쌓은 민족은 세상에 이스라엘과 우리뿐이다. 그러니까 우리 민족은 단군 시절부터 유일신을 섬겼고, 그 신을 ‘하나님’이라 부른다.”
어떤 목사들은 교회에서도 표준어를 따라 ‘하느님’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무식한 소리다. 지금 표준어는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정했지만, 옛날에는 ‘하님’이라고 썼다. ‘아래 아 자’가 폐기되면서 그것들은 ‘ㅏ’, ‘ㅡ’ 등으로 표기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하님=하느님’으로 변한 것이다. 다음 글은 내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하나님’이란 신명(神名)은 고조선 시절부터 써온 자랑스러운 우리말이다.
♬ ‘하나님’이란 말이 한글로 기록된 것은 400년 전인 선조 때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시에 나타난 게 처음이다. 그 이전에는 한자로 ‘一神’, ‘天神’, ‘上帝’ 등으로 썼지만, 우리말로 말할 때는 모두들 ‘하나님’이라 했다. 박인로는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서 호는 노계(蘆溪)라 불린다. 9편의 가사와 70여 수의 시조를 남겼으며, 정철․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으로 불린다. 그가 임진왜란 때 쓴 <노계집>에 이런 시가 있다.
<원문>
時時로 머리드러 北辰을 바라보고
남모르는 눈물을 天一方에 디이나다.
一生에 품은 뜻을 비옵니다.
하나님아!
<역문>
때때로 머리 들어 북쪽 임금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남몰래 눈물을 하늘 저편에 떨어뜨린다.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니다.
하나님이시여!
<해설>
1636년 (인조14)에 박인로가 76세 때 지은 가사. 총 208구 93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가 남긴 7편의 가사 가운데 최후의 작품으로 <노계집>에 수록되어 있다. 형식은 4음 4음보격 무한연속체라는 가사의 율격을 대체로 지켰으나, 2음보를 추가하여 6음보로 늘어난 행이 상당수 보인다. 서술양식은 1인칭 독백체로 작자의 주관적 감회와 체험을 노래하는 서정적 양식을 취하였으나, 끝대목에 이르러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니다.
하나님아"로 진술함으로써 하나님(天)을 청자(廳者)로 설정하여 작자가 청자에게 자신의 강렬한 염원을 제시하는 주제적 양식을 취하였다. 즉, 작자의 감흥과 체험만을 노래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작자가 염원하는 바의 이상세계를 제시하였다.
1882년에 발행된 맨 처음 우리말 성경인 [로스역 성경] 초판에는 ‘하느님’으로 썼다가, 이듬해에 ‘하나님’(아래 자가 아님)으로 다 고쳤다. 박영효와 함께 일본에 수신사(修信使)로 가서 일본인 야스가와(安川)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1883) 이듬해 [현토한한신약전서(縣吐韓漢新約全書)]를 번역 출판한 이수정(李樹廷, 1842-1886)은, 한자로 된 일본 성경에 한글로 토만 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이란 말 대신 일본 성경의 한자 그대로 ‘神’이라고 두었는데,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인천에 상륙할 때(1884. 4. 5.), 그들은 일본에 들러 이수정 역의 이 신약을 들고 입국했던 것이다.
장․감 두 선교부는, 선교에 있어서 찬송가의 위력을 알았기 때문에, 성경보다 먼저 찬송가를 출판하기로 하고 작업 중, ‘God’를 어찌 표기할 것인가를 놓고 팽팽히 맞서다가, 1894년 번역자 회의에서 가톨릭 식으로 ‘텬쥬(天主)’로 할 것인가, 재래식으로 ‘하나님’으로 할 것인가를 투표하였는데, 4대 1로 ‘텬쥬’가 채택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주장하는 이들이 끝내 승복치 않아 투표는 무위로 돌아 갔다.
그런데 감리교 찬송가 편찬 위원인 로스와일러 목사가 안식년으로 미국에 가 있는 동안, 언더우드는 단독으로 하던 작업을 마무리, 한국 최초의 곡조 찬송가인 [찬양가](117곡 수록)를 1894년에 내었는데, ‘하나님’이란 말은 안 쓰고, ‘하늘 아버지’, ‘상제’, ‘주’, ‘여호와’ 등으로 번역하여 찬송가를 내었다. 안식년에서 돌아온 로스와일러는, 언더우드가 단독으로 ‘하나님’이란 말을 다 빼고 출판한데 항의하고, 서둘러 감리교 단독으로 [찬미가](90장 수록․무곡․1897)를 내었는데, ‘하나님’으로 통일하였다.
장로교 선교사들은 하나님․하느님․천주․상제 등 용어를 놓고 많은 논의를 하고, 고문(古文)을 찾아보고 하던 중, ‘하나님’이란 말이 고대부터 사용해온 한국의 고유의 신명(神名)임을 발견하고, 그들은 놀라움과 함께 이런 글들을 남겼다.
♣ 언더우드(H. G. Underwood, 한국명 원두우)의 글:
“옛 한국의 일부였던 고구려 왕국(The Kingdom of Kokureo)에서는 하나님(Hananim)이라 불리우는 유일한 신만을 섬겼다. 그리고 유일하신 하나님(Hananim)은 크고, 유일한 하나(only One)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 게일(J. S. Gale, 한국명 奇一)의 글:
“우리의 색슨(Saxon)어 'God'는 복수로 사용되었고, 이방신에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원하는바 목적에 사용되기 전에 많이 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스어 'Theos'나, 일본어 「Kami(神)」는 소위 많은 신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이었고, 중국의 상제(上帝) 또한 많은 신위(神位) 중에서 최고신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이름들이 오랜 기간동안 사용시기를 거치면서 애써 도달하려 했던 의미를 일시에 획득하고 있다.”
♣ 헐버트(H. B. Hulbert, 1863-1949)의 글:
“한국인은 엄격한 일신론자(monotheists)이다. 그리고 한국인이 소유하고 있는 종교적 개념은 외래적 의식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가야의 허황옥 왕비와 5병2어
아까 주제로 돌아가서 ‘회소’란 말을 예수로 본다면 삼국시절에도 예수를 믿었다는 말이 되는데, 경주 불국사에서 돌로 만든 십자가상이 출토되었으며(숭실대학교 기독교박물관 소장), 아기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기사가 있단다.
김수로왕은...천신(天神)의 명으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삼았다<삼국유사>.
이 말을 중심으로 다른 자료를 추가하여 정리해보자. 의심 많은 도마는 예수의 손발과 옆구리의 상처를 만져보고 확신을 가지고, 당시 ‘땅끝’으로 알고 있던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 그의 전도로 예수를 영접한 인도의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은, ‘하나님(天神)의 계시를 받아’ 복음을 들고 주후 48년에 남해안 항구로 들어와,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왕비가 되어, 가야의 2대 왕 거등왕(居登王)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입항한 항구는 주포(主浦)라 불렀는데 ‘주님의 항구’란 뜻이다.
열 두 사도의 한 사람인 도마가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것은 외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도마에 의해 전파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은 공주 허황옥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우리나라로 올 때, 빵 모양의 페르시아 ‘돌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문양을 가져왔고, 지금도 수로왕릉의 납릉(納陵) 정문에는 떡 그릇과 물고기 두 마리의 그림이 있는데, 이는 오병이어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또 그가 왕과 함께 지었을 것으로 보이는 ‘가야’라는 나라 이름은 드라비아(dravya)어로 ‘물고기’라는 뜻인데, 물고기는 초대교회부터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주’라는 헬라어 다섯 단어의 첫 글자를 조합한 ‘익두스’로서 요새 성도들이 자동차 뒤에 붙이고 다니는 그리스도교회의 상징이다.
역사학자의 글을 보자.
...首露王陵은 金海市 西上洞에 있고, 許王后陵은 그곳에서부터 북쪽으로 약 1km 떨어진 金海市 龜山洞에 있다. 만일 수로왕릉 정문의 雙魚文 그림이 허왕후의 출신 국인 아요디아국의 文章이고 A.D.1세기의 허왕후 때부터 전승된 것이라면, 그 그림이 있는 건물인 納陵 정문이 지속적으로 보수되면서 이어진 것이 확인되어야 한다...許王后陵과 首露王陵은 각각 서기 189년과 199년에 조성되었다고 하며, 당시에는 수로왕릉 옆에 便房이라는 작은 건물만 있었다(金泰植, 홍익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인터넷 글에서 발췌).
무궁화는 ‘샤론의 장미’
어느 교회에서는 찬송가 89장 ‘샤론의 꽃 예수’를 ‘무궁화 꽃 예수’라고 부르고 있다. 무궁화는 영어로 Rose of Sharon(아가 2:1)이기 때문이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에서 무궁화를 찾아본다.
무궁화(無窮花, rose of Sharon, 학명 Hibiscus syracus)
온대지방에서 7~10월의 약 100일 동안 줄기차게 피는 아름다운 꽃나무. 보통 키가 2~4m이지만 가로수로 심는 교목도 있다. 무궁화는 보통 홑꽃․반겹꽃․겹꽃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반겹꽃과 겹꽃은 일반 꽃들과 같이 수술이 꽃잎으로 변한 것으로, 수술이 일부만 변한 것은 반겹꽃, 거의 다 변한 것은 겹꽃이 된다. 꽃의 빛깔은 흰색․분홍색․연분홍색․보라색․자주색․청색 등이다...무궁화의 'syracus'라는 종명은 '시리아 원산'이라는 뜻.
중국의 <산해경 山海經> 제9권 해외동경(海外東經)에 보면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는 시든다"(君子之國在其北...有薰花草 朝生募死)라는 구절이 있다. 군자국은 한반도라는 것이 밝혀졌고, ‘훈화초’는 무궁화를 일컫는 중국의 옛말이다. 또한 중국의 <고금주 古今注>에는 "군자의 나라는 지방이 천리나 되는데 무궁화가 많더라"(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라는 구절이 있다.
이상의 문헌만으로도 한반도에는 수천 년에 걸쳐 무궁화가 널리 자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신라의 효공왕이 897년 7월 당나라의 광종(光宗)에게 국서를 보낸 일이 있었는데 그 국서 가운데 신라를 자칭하여 근화향(槿花鄕)이라고 한 구절이 있다.
이 국서를 초한 사람은 중국에까지 문장가로 이름이 나 있던 최치원으로, 그의 문집인 <최문창후문집 崔文昌候文集> 제1권에 그 초안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이미 신라시대부터 한국을 '무궁화 나라'[槿城]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윤치호는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음으로써 조선의 나라꽃이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옛날 신라에서는 화랑들의 머리에 무궁화를 꽂아주었다고 한다. 이런 화랑을 ‘천지화랑’이라고 불렀는데, 무궁화를 천지화(天指花)라고도 불렀기 때문이다. 장원급제한 사람 머리에 씌워주는 조선 시대의 어사화(御賜花)도 무궁화이다. 1986년 경북 영풍군 평온면에 있는 ‘분처바위’에서 ‘야소화왕(耶蘇花王)’이라 새겨진 음각이 발견되었는데, ‘야소’는 물론 예수이며, ‘화왕’은 무궁화의 별칭이니까, 89장의 영어 가사 그대로 ‘Jesus, Rose of Sharon’이 아니냐. 일제가 이 땅을 강점했을 때, 제일 먼저 한 짓이 ‘무궁화 없애기’였다.
그러자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작사한 감리교의 장로이신 남궁억(南宮億, 1863-1939) 선생은 ‘무궁화 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 전국 방방곡곡에 3000만 그루의 무궁화 묘목을 나눠주었을 뿐만 아니라,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에 나오는 경쾌한 합창곡에다가 [무궁화 동산]이라는 가사를 붙여 전국에 퍼뜨려 나도 불렀는데 그 가사는 이렇다.
1. 우리의 웃음은 따뜻한 봄바람
춘풍(春風)을 만난 무궁화 동산
우리의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또 다시 소생하는 2천만
<후렴>
빛나거라 삼천리 무궁화 동산
잘 살아라 2천만의 고려족
2. 백화(百花)가 만발한 무궁화 동산에
미묘(美妙)히 노래하는 동무야
백천만 화초가 웃는 것과 같이
즐거워하라 우리 2천만
이 사건으로 하여 남궁억은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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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스라엘민족은 조상이 아브라함이고, 이스라엘민족을 형성한 아브라함은 슈메르 우르국 사람입니다. 아마도 우르국의 귀족집안이였던 것으로 추종됩니다. [환단고기]에는 우르국 사람들이 홍수때문에 모국 단군조선으로 이주해 온 기록이 있지요. 평양 대동강변에서 출토된 기원전 1000년전의 고대 히브리어문자가 기록된 기와장 5개(도착했다..등 기록)가 출토되었는 우르국 사람들이 남긴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입니다. 슈메르는 동방 한국에서 이주해 온 고대 한국의 문명이지요. 슈메르인들은 유프라테스강을 이용하여 풍요로운 농경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평지라 진흙으로 제천단(지구라트)를 만들어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지요
슈메르 말은 현대 한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말과 같고,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체형과 풍습은 한국인들의 풍습과 체형이 동일합니다. [환단고기]에 12환국의 하나가 수밀이국인데, 슈메르지요. [산해경]기록에는 소호씨가 전욱을 키우다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소호씨가 바로 중동에 소호왕국을 건설한 슈메르족입니다. 이들 소호씨는 소를 토템으로 삼았던 농경족으로 문정창씨의 연구을 통해서도 이들은 만주에서 이주해 온 고대 한국인들인데, [산해경]기록을 상세히 분석하면 이들이 떠난 지역은 한반도지역인 압록강지역임을 명확히 알 수 있지요.이스라엘의 농경.적석문화는 한반도 문화가 전승된 것이지요.야곱의 돌단신앙이 적석신앙
아주유용한자료같읍니다
중동인과 우리가 같은 민족이었다? 5000 여 년의 세월이 말, 글, 피부, 생김새, 풍습 등을 모두 변화시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