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밤
어젯밤부터 속이 메스껍고 갑자기
열이 한 번씩 온몸으로 '확' 하며 번지는 게 몸이 이상하다.
어떤 땐 섬뜩할 정도로 기운이 역류하는것 같다.
좌복에 앉아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는데
아침이 돼도 여전히 몽롱한 기분이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끔 이명도 있고, 몸 전체가 영 말이 아니다.
앉아 있지도 서 있지도 누워 있지도 못하겠고 머리까지 떵하다.
억지로
좌복에 않아보지만 금방 일어서고 만다.
천천히 포행하며 관음정근을 계속했다.
눈까지 희미해지는 걸
억지로 부릅뜨며 정신을 차려보려 애쓴다.
우연히 가져온 손목시계를 보다가 방에 있던
탁상시계가 삼십분 늦게 맞쳐진 걸 알았다.
여태까지
모든 걸 삼십 분 늦게 하고 있었던거다
그러고보니 된가 이상한 게 많았다.
새벽예불도 세시 반에 하고
아침공양도 여섯시 반.
사시예불도 아흡시 반
점심공양도 열한시반
모든 게 삼십 분 타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냥 시간을 조정했나 보다 했는데
한 달 넘게 나 혼자 삼십 분 늦은 시간을 산 것이다.
다시 삼 십분 빠르게 조정해서 적응하려면 며칠 결리겠다.
쪽지에다가 조정 시간표를 써 벽에 붙여났다.
갇혀 지내다 보니 시간이 틀린 줄도 모르고,
틀린 시계에 맞춰 모든 걸 했으니 사람 우매한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어쨋든 삼십 분이 늦어져 있었든 다시 빨라지든 간에
저 하늘의 태양은 무심히 그냥 그 시간에 지나간다.
오늘은 종일 굶기로 했다.
환자인 경우는 괜찮으니 더 고집 피우지 말고
병원에 가보자는 주지 스님 전갈이 왔다.
갈것 같으면 벌써 갔지.
여태 고생하다 지금에 와서
문을 연다는 것은 내가 용납을 못 하겠다.
어찌됐건 더 버텨볼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월드컵도 끝날 때가 됐을 텐데
한국이 십육강 진출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계속 얼굴이 화끈거리고
열이 나 물수건으로 적시고 나니 좀 낫다 ...
이럴 때 누가
옆에서 물수건이라도 좀 적셔눴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심하게 아플 맨 마음이 자꾸 약해진다
오늘따라 법당 부처님이 많이 보고 싶다.
하염없이 오래도록 그냥 바라만 보고 싶다.
그러다 눈물이 나면 그냥 울고,
화가 나면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다.
건강하게 정진하고 싶다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이렇게도 몸과 마음을 또 아프게 하냐고 따지기라도 하고 싶다.
저녁예불을 좌복 위에서
온 마음으로 모시고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잘 앉지를 못하니 그냥 엎드렸다.
계속 온몸이 '훅 하며 열이 차오르고 머리가 불덩이 같다.
이젠 아무 생각도 없다.
오래 엎드려 있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절을 계속하며 오직 일념으로 화두를 챙겨본다.
그래,누가 이기나 보자!
오늘 밤도 잠자기는 틀린 것 같고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판이 될것 같다.
구내염도 신경을 쓰니
더 크게 번져서 입천장에 혀를 못댈 지경이다.
침도 삼키기 힘들 정도라 겨우 물배만 채웠다.
거의
최악의 상황까지 온 것 같다.
조금만 더 힘내자.
막바지 고비는 원래 더욱 힘든 법이니
조금만 더 견디면 모든 게 좋아질 거야.
어두워지는 방 안만큼이나
내 고독과 아픔도 깊어가는 방이다.
좌복에 엎드려 있는데 밤늦게
혜안 스님이 걱정이 된다며 우황청심환을 가지고 왔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내가 전에 입원했던 병원에라도
다녀오는 게 좋겠다는 것이 주지스님과 대중들의 뜻이라고 전해 왔다.
1호 실이 조용하다 했더니
주지스님이 얼마 전에
큰절로 소임 보러 내려가서 비어있다고 했다.
소임 보랴, 정진하랴 아무래도 힘들었던가 보다
주지스님이 마침 1호실도 비어 있고 하니
1호실로 옮겨 병원도 다니라고 했다며 전한다.
월드컵 때문에 모레까지 연휴라니
7월 2일에는 꼭 병원에 가자며 처소인 수도암으로 올라갔다.
일단 상황을 보자고 했지만 나도 이제 자신이 없어진다.
하도 몸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괴로우니까 너무 힘들다
대중들이 초비상사태라고 하니 걱정을
덜어드리는 의미에서라도 병원에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다.
계속 몸에서 열이 나 난방도 하지 않고 선풍기만 틀어놓았다.
혜안 그님이 주고 간 체온계로 재보니
아까는 36.6도였는데 지금은 35.5다
정상이 36.5도이니까 열은 있는데 체온은 떨어진 거다
회라도 힘들면 입원하라며 재촉했는데 지금
입원해봤자 이 시골에서 열어놓은 병원도 없을 테고.
큰 병원에 가도 응급실 당직 의사들 뿐일텐데
그들은 나의 이 특이한 증상들을 잘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여간 내일 아침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터볼 테니까
걱정 말라고 했지만 대중들 눈치 보는 게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아.오늘 밤은 너무 힘들고 길다
밤 열두시가 넘었다.
아무래도 1호실에 짐이라도 옮겨뇌야 할것같아 대강 짐을 챙겼다.
한탄이 절로 나온다.
옆방 스님 깰까 봐
조심조심 짐을 정리하자니 내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다.
걸망 메고 선방 다닌지 어언
육 년째인데 이렇게 힘들게 지내긴 처음이다
무문관이라는 특수성도 있지만,
아무래도 내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겨울안거를
지리산 칠불암에 부탁해놓았는데 재고해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아파가지고는 한 철 난다는 게 무리다.
짐을 꾸리는 중에도 계속 그 증상이 나타난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이 안 선다.
이런저런 병을 앓아봤지만 이런 증상은 처음이다.
온 방에 이것저것
널어놓고 쳐다보고 있으니 그냥 말문이 꽉 막힌다.
날이 밝으면 6월 30일이다.
아니 벌써 6월 30일이다.
나를 힘들게 한 6월의 마지막 날이다.
하루만 더 버터보면
어쩌면 새로운 기운이 나를 일으켜 세울지도 모른다.
마음이 약해지니까 또 별생각을 다 한다
6.29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