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되지 않은 이야기에 매료되고 처음 품은 생각을 철회하거나 바꿀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한숨을 쉬며 가슴 깊숙한 곳에서 이런 생각을 품게 된다. '저걸 진짜로 믿는 사람이 내 가족, 내 형제, 내 친구란 말인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 전에 내 생각을 바꾸는 게 더 빠를 것만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잦아지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거짓과 선동에 마비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품은 신념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을 것만 같다.
단 한 번의 대화로 그들의 마음을 역류시키는 방법은 정말로 있을까? 딥 캔버싱(Deep Canvassing)이란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사용된 유권자 설득 방법으로, 설득의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기법을 뜻한다. 텔레비전 광고나 홍보물보다 100배 효과적이란 사실이 조사되기도 했다. 딥 캔버싱의 방법이란 이런 것이다.
첫째, '그들'의 주장에 반박하지 않는 것이다. 의견에 논리로 맞서려 할 때 사람은 신체적 위협을 당한 것과 같은 두려움에 빠진다고 한다. 따라서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게 된 방법을 되돌아보고 모순을 깨닫게 만드는 게 딥 캔버싱이다.
둘째, 구체적인 경험이 백 마디의 수사보다 낫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다"(데이비드 흄)란 말을 기억해보자. 실제 경험은 강한 감정을 유발하고 결국 마음을 바꾼다.
셋째, 스토리텔링은 라포르(rapport)를 형성한다. 라포르는 두 사람 사이의 신뢰를 뜻하는 심리학 용어를 뜻한다. 제3자의 이야기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이라도 그들과 우리 사이에 접점은 생긴다.
최신 뇌과학,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진짜 주인은 감정이다. 우리의 모든 생각, 행동, 판단, 심지어 도덕적 판단까지도 감정이 주인이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의 실험에 따르면, 감정 중추가 손상되는 순간, 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아무렴 좋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어떤 판단이나 결정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감정은 '가치 판단 체계'이기 때문이다.
신선하고 달콤한 과일처럼 유익한 것엔 좋은 감정이, 뱀이나 사자처럼 위험한 것엔 나쁜 감정이 따라오고 우리는 그 감정을 토대로 판단하고 사고한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알 땐, 우린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내가 믿는 것이 곧 나 자신이며, 내 정체성이 나의 우주이기 때문이다. 나에겐 지극히 객관적인 이 현실이 틀렸다니, 사람들이 미쳐버린 게 틀림없어! 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단순히 정보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위험한 상황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이성은 우리 감정이 내린 판단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말이 되는지 아닌지는 별로 상관이 없다. 뇌 본인도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의 동기를 모두 알지는 못하고, 단지 스스로를 제 3자처럼 관찰해 가면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변명을 급조해 내느라 급급하기 때문이다. 이를 내성 착각(Introspection Illusion)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진지하게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팩트를 이야기해도, 그 믿음은 견고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뇌 자체가 가진 본질적인 결함 때문이다. 그들이 사는 세계뿐 아니라, 여러분이 사는 세계도 여러분의 감정이고 여러분의 뇌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세상, 움벨트(umwelt)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은 그동안 노예제, 여성 차별, 동성 결혼 등 굵직한 역사에서 스스로 오류를 인정하고 이를 전환해 진보의 길을 걸어왔다. 이 과정에서 설득, 대화, 경청은 인간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 모든 설득은 자기 설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며, 그런 점에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광기와 편견에 절망만 하고 있을 순 없다. 끊임없는 질문이 견고한 벽을 두드리고 마침내 균열을 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