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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장1-24절 사마리아 여인에게 구원의 제시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반드시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예배하는 시간은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예배 시간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입니까?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이 시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잃은자을 찾고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수 있다.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중 이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요4;4]
예수께서 유대를 떠나서 다시 갈릴리로 가실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의 여행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간에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가면 빠른 여행길이 됩니다.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로 지나가지 않고 그 사마리아를 피해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4절)고 기록한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는 유대인이었지만 유대인들이 회피하는 사마리아로 직접 지나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마리아 지방의 수가성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사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왜 이렇게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면서도 원수같이 지내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BC 7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원래 이스라엘은 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때에 나라가 남쪽에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유다와 북쪽에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은 이스라엘로 두 쪽이 나고 말았습니다.그러다가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라는 나라에게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던 남자들을 다 사로잡아가서 전쟁터에 내보내 다 죽게 만들고 여자들은 다른 나라 남자들과 살도록 만들었습니다.이 여자들은 남의 나라 남자들과 살게 되자 혼혈아를 낳게 되고,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국민성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다 사람들은 사마리아를 아주 나쁘게 보았습니다. 사람 취급을 안했습니다. 개 같이 여기고 상대를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
더욱기 사마리아인들은 종교적으로 유대인들과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세 오경만이 경전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도 멜기세덱을 만난 것도 바로 그리심산이었다고 믿었습니다.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께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4:20)고 하였습니다.유대인은 하나님께 예배할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 성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갈등은 너무나 심각했습니다.
사마리아는 본질상 별개의 민족이 되어서 ,
유대인들은 그들은 이방인보다 더 가증스럽게 여겹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서로의 증오와 원한은 수세기동안 이어졌다.
주님은 그 길로 가셔만 한 이유? 잃은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오셨다. [눅19;10]
요4장 우리 주님은 버림받은 여인에게 마치 마실물을 주시는 것처럼 구원을 제시한다,
그 여인의 배경은 그녀의 삶은 간음과 깨진 결혼으로 엉망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한다. 복음은 히브리 민족 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 이며 , 자신의 사역이 엘리트 에게 있는것만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 된자 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다.
주님은 요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로마 시간로 정오 ,,,수가성 사람들은 대부분 일을 마쳤을 것이고, 여인들은 물을 긷는등 일상적인 일을 할 시간 이다.
요4;7절]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지금도 중동에서는 길가에서 남녀 간에 말하지 않는데,
더욱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 정도로 취급하는데 물을 좀 달라 하니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당시 랍비나 종교지도자가 평판이 나쁜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있을수 없는일 이다.
그 여인은 예수님이 자기에게 말하는 것 도 그렇치만 “부정한”그릇으로 물을 마시겠다고 하니 더욱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 여인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하나이까”(9절)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이 여인은 도덕적으로 버림 받은자요, 사회적으로 추방 당할자 였다. 물을 길을 도구가 없는 예수님이 그녀에게 “물좀 달라” 7절“ 했을 때 이 여인이 받았 들일 충격을 생각해 보라!
그래서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라고 물었다.
그녀는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의 회피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게다가 남자가 여자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심지어 아내에게도..} 나아가 예수님은 인종 장벽을 무너뜨리셨다.
하나님은 차별하지 않으신다.
니고데모, 바리새인, 심지어 문둥병자, ...누구든지 구원에 차별이 없다.그러기에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 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4;10절]
주님은 상황을 반전 시킨다.
예수님이 목마라고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핬던 분이 이제 그녀는 묵마르고 자신이 물을 가지신 것 처럼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물을 달라는 대신 그녀은 자신의 샘에서 물을 마셔야 한다고 선언 하신다.
이제 화제는 예수님은 육신의 목마름이 아니라 영적인 목마름을 말씀 하신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의 생수, 죄에서의 자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능력, 등을 말한다.
불행히도 이 여인은 문자적인 물을 생각한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요4;11-12]
예수님은 야곱이 필적할수 없을 만큼 크고,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야곱의 물보다 나음을 그녀는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생수의 독특한 성격을 더 설명하신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3;13- 14] 이 물은 메마른 영혼의 갈증을 해소 하는물 이다.
그녀는 즉시 반응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4;15절]
이여인은 아직도 예수님이 실제적인 물인지,
영적인 것이진 분간을 하지 못합니다. 어쨌든 이 생수을 원했다.
예수님이 죄에 눌린 사마리아 여인에게 제안한 초청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을 은혜로 귀중히 여길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그녀가 아직 생수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으셨음을 아셨다.
예레미야 2;13절 예레미야는 불순종한 유대인들에게 책망할 때 “ 생수의 근원: 되신 여호와를 바린 것을 꾸짖으신다.
이 여인은 :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두가지 ,
즉 그녀의 죄와 예수님의 진정한 정체성이 다루져야 했다.
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저희죄에서 구원하러 오셨지 [마1;21] 사악한자들에게 불멸을 주러 오지 않았다 [창3;22-24]
주님은 문제의 핵심 으로 들어 가는데 그녀가 감추고 싶은 죄을 들어내신다. 네 남편을 불러 오라[요4;16] 이는 의도적인 말씀이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그녀은 자신의 끔찍한 죄 즉 고백의 자세 없이는 진정한 영적[하나님과의 예배, 만남]인 목마름을 해결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물처럼 엉킨 이 여인의 죄 너무도 복잡하고 죄의 크기가 커서 설명할 엄두가 나지 못하니 “나는 남편이 없다고 ”합니다. [6번째 살고 있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다]이것이 그녀가 할수 있는 대답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 좋다 너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는다해도 나는 네죄의 실상을 말함으로써 너를 직면[ 어떠한 일이나 사물을 직접 당하거나 접함]할 것이다.
그래도 예수님은 진실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7-18]
예수님이 그녀의 모든죄을 알고 계심을 깨달을 때 그녀가 느꼈을 수치심을 생각해 보라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죄앞에 직면하고 있다....죄의 실상에 직면하고 있다.
그 여인은 큰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감추인 것이 드러난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죄을 고백합니다 “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이 말은 사실은 “당신이 옳습니다. 그게 접니다. 그것이 저의 죄악된 삶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가면을 벗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년의 부패성을 속속들이 아시면서 생수[하나님]를 제공한다.
사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주님은 “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이런 명령을 떼어놓고“ 물[하나님께로] 로 나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생수을 들려 마시라고 초청 합니다.
사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예수님이 단순한 나그네가 아님을 안후,
그녀는 영적인 질문은 처음 합니다.
[ 요4;20 ]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참으로 선지자 인줄 알겠는데 어느쪽이 옳은지 알려달라..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4;23-24 ]
참된 예배는 산이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에서 이루어 진다.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예수님은 지금 긴급하게 이 여인 에게 개인적인 초청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참된 예배입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영어 성경에 ‘in spirit and in truth’라고 했습니다. ‘성령 안에서 진리 안에서’ [인간의 마음 , 내면에서 시작된다 ] 예배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예배란 자기 생각과 편리성에 따라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진리의 말씀에 따라 예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후6;2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바울은 메시야가 오셨다. 구원의 날이 이르렀다. 지금은 메시야의 때뿐 아니라 그녀의 때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는목적 참되게 예배하는자 들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빌3;3] 우리 주님은 잃은자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그녀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 하는자가 되라는 도전을 받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요4;25절]
이에 예수님의 대답은 그녀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단순히 물 한잔을 부탁했던 이 사람이 이제는 생수를 내밀면서 그녀의 죄를 용서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자가 되게 약속하신 것이다.
본문은 그녀가 신자가 되었다고 말하지 않지만 26절27절 사이 어느 지점에서는 예수님을 메시야와 구주로 받아들였다고 믿는다.
그녀는 자발적인 참된 예배자가 될 것이다. 이 여인의 한 행동은 그녀가 신자가 되었음을 강력히 시사 한다.
요28-29]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녀는 진정한 회심의 증거을 모두 보였다.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했다.
자신의 죄을 고백했고,그리고 다른 사람 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옴으로써 변화된 삶의 열매을 보였기 때문이다.
요4;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자는 예수님은 구주가 아니라 심판자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에게 격려나 위로나 소망을 제공하신적이 없다.
다만 죄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영과 진리로 예배 [순종]하는자에게 그의 “메시야”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