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의 기원에는 여러설이 있지만 실제 유물상으로 보면 불상이 처음 조성된 시기는 1세기경인 인도의 쿠샨왕조 시대였다.. 즉, 부처자신의 존재는 불족적(佛足跡)이나 빈 의자로써 표현되었고, 부처의사리(舍利)나 불아(佛牙)는 부처 자신의 진신 그 자체로서 숭앙되었다. 그러나 쿠샨왕조시대에 이르러 불상의 표현이 인체의 형상을 빌려 나타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인도의 불상은 그 뒤 굽타시대에 이르러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불상표현이 이루어졌다. 굽타조각은 건장한 체구에 균형잡힌 신체비례 그리고 몸에 꼭 달라붙은 법의 밑에 팽팽하고 긴장감이 도는 불신의 모습으로 마치 불법 자체가 불상에 응결되어진 것 같이 신성한 감을 보여준다. 그러나 12세기 이후 인도에서는 불교문화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데, 그러나 그 대신 남으로 실론과 동남아지역으로 퍼져갔으며, 북으로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동전하면서 발전하였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1세기경의 후한시대로 생각되지만, 5호16국시대에 이르러서야 북방호족들의 적극적인 불교수용에 따라 불상제작도 활바랗게 진행되었다. 특히 후조의 금동불좌상은 현존하는 최고의 명문이 있는 불상이다.. 대체로 5세기 후반까지의 불상에는 서역이나 간다라의 영향이 강하였으며, 6세기에 들어서 부터는 좀더 중국화된 불상조각이 발달하였다.. 이것은 불교자체가 점점 토착되어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나라의 중국통일과 더불어 다양한 요소가 혼합되고 당대에 이르러서는 중국 불상조각의 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석조상과 금동상들이 당대의 불상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전통은 이후 오대, 요.금 및 송대의 불상양식 조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부처님의 명칭과 특징
비로자나불
대일여래라고도하며, 오지보관, 지권인이 특징이다.우주삼라만상의 진리와 법칙을 불격화하여 나타낸 법신불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대적광적, 비로전이라한다.
석가모니불
석가족의 성자로 불교의 교조이다. 기원적 623년 중인도 가비라국 정반왕의 아들로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 35세에 붓다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45년간 가르침을 펴다가 기원전 544년 80세의 나이로 쿠시라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한 분이다.
아미타불
무한한 광명을 비추는 부처님이란 뜻에서 무량광불, 무한한 수명을 지니 부처님이란 뜻에서 무량수불이라 부른다. 서방 극락정토의 교주이다. 좌우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거느리고 있다.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을 극락전, 미타전 무량수전, 무량광전이라고 한다.
약사유리광불
동방유리세계의 교주로 중생의 질병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약병을 들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좌우로 일광변조보살과 월광변조보살을 거느리고 있다. 약사유리광불을 일명 대의광불이라하며, 그 전각을 약사전이라 한다.
보 살
보살이란 여래가 되기 위해 수행을 계속하는 수도자, 대중의 교화를 위해 노력하는 봉사자를 의미한다. 보통 몸에 많은 장식을 하고, 특정한 지물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관세음보살
아미타불의 좌보처로 자비의 문을 담당하는 보살이다.. 일명 시무외자, 대비성자, 구세대사라 부른다. 중새으이 근기에 따라 크게 33응신으로 나타나 구제한다.. 감로병, 연꽃을들고있다. 6,7,33관음 등으로 구분된다. 7관음은 성관음, 천수관음, 마두관음, 십일면관음, 준지관음, 여의륜관음, 불공견색 관음이다.. 보관에 아미타불이 있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을 관음전, 원통전이라 한다.
대세지보살
아미타불의 우보처로 지혜의 문을 담당하는 보살이다. 그가 지닌 지혜의 광명으로 일체 세계와 중생을 비추어 깨달음에 이르도록 함으로 대세지라한다.
문수보살
석가모니 좌보처로 지혜의 보살이다. 머리에 오계는 대일여래의 다섯가지 지혜을 의미하고, 오른손에 지혜의 상징인 칼을 들고 있다.. 모든 보살 중에 으뜸가는 위치에 있는 보살이다. 반야의 가르침을 선양하는 지혜의 보살이다.
보현보살
석가모니 우보처로 행원의 보살이다. 여래의 이덕과 정덕, 행덕을 상징한다. 중생들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덕을 지니기도 하여 보현연명보살이라고도 한다.. 흰코끼리를 타고 있는 모습이 특징적이다.
미륵보살
미륵은 인도 바라나국에서 태어나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먼저 입멸하여 도술천에 오로가 천인들을 교화하다 성도한후 사바세계에 출현, 중생을 제도, 용화세계를 건설한다.. 성은 미륵이고, 이름은 아지타라고 한다. 미륵은 어머니란뜻에서 자씨라고 번역된다.
지장보살
미륵불이 오기까지 천상, 인간, 아수라, 아귀, 축생, 지옥의 중생을 교화하는 대비보살이다. 특히 지옥세계의 중생을 구원하는 지옥세계의 부처님으로 신앙된다.. 보통천관을 쓰고 석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 특징적이다.. 좌우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거느리고 있다.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을 지장전, 명부전, 시왕전이라한다.
일광보살
약사불의 좌협시 보살이다. 몸은 적홍색이고 왼손에 태양을 올려놓고 오른손에 넝쿨로 된 붉은색의 꽃인 만주적화를 들고 있는 형상이다.. 보관에 붉은색의 태양이 표현되어 있다.
월광보살
약사불의 우협시보살이다. 몸은 백홍색으로 왼손으로 월륜을 쥐고 오른속에 홍백의 연꽃을 잡고 있다. 보관에 흰색의 달이 표현되어 있다.
수인(手印)
불, 보살의 공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손 모양. 원래 불전도(佛傳圖)에 나오는 석가의 손 모양에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불의 경우에는 선정인, 항마촉지인, 전법륜인, 시무외인, 여원인의 5가지 수인을 주로 취한다.
대승불교의 여러 부처들도 대개 이를 따랐지만 아미타불은 구품왕생과 연결되어 9등급의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과 내영인(來迎印)을 새롭게 만들었다. 아미타정인을 9등분한 것은 중생들의 성품이 모두 다르므로 상·중·하 3등급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세분화하여 9등급으로 나누어서 각 사람에게 알맞게 설법하려는 뜻이라고 한다. 불상 종류에 따른 수인은 교리적인 뜻을 가지고 표현되었기 때문에 불상의 성격과 명칭을 분명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그 규칙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선정인(鮮定印)
선정인은 결과부좌일 때의 인이다. 양 손바닥을 위로 해서 겹쳐 놓되 두 엄지 손가락을 서로 대는 형식이다. 석존이 보리수 및 금강보좌 위에 앉아 깊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취한 수인이 바로 이것이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항마촉지인은 반드시 결과부좌한 좌상에 한하는 것이고, 입상에서나 의상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는 상이다.
전법륜인(轉法輪印)
부처의 설법을 전법륜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손모양이 전법륜인 것이다. 왼손의 엄지와 검지를 서로 대고 장지, 약지, 소지의 삼지를 편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하고 오른 팔목에 왼손 약지와 소지의 끝을 대되 오른손 손바닥은 밖으로 향한다.
시무외인(施無畏印)
중생에게 무외를 베풀어 소외에서 떠나게 하고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키고 대자의 덕을 보이는 인이다. 손의 모습은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뻗히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형태이다.
여원인(與願印)
부처가 중생에게 사랑을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게 하는 대자의 덕을 표시한 인이다. 손의 모습은 손바닥을 밖으로 다섯 손가락을 펴서 밑을 향하고 손 전체를 늘어뜨린다.
지권인(智券印)
지권인은 비로나불이 걸하는 수단이다. 좌, 우 손으로 엄지를 속에 넣고 다른 손가락으로 주먹을 쥔다. 다음에 가슴까지 올려 들고 왼손의 검지를 풀어서 세우며 오른손 주먹 중의 소지로 왼손 검지의 첫째 마디를 잡는다. 그리고 오른손 주먹 속에는 오른손 엄지 끝과 왼손 엄지 끝을 서로 댄다. 이러한 형식은 일체의 무병 번뇌를 없애고 부처의 지혜를 얻는다는 뜻이다. 관음이나 문수 등의 보살이나 다문천(多聞天)등의 천부는 각기 다른 물건, 즉 연꽃이나 경, 또는 탑, 창 등을 들고 있어서 독특한 손모양을 하고 있다. 불상을 장엄하게 하는 것으로 불교상을 받치는 대좌와 그것을 받든 형식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대좌의 형식도 연화좌(蓮華座), 독자좌(獨子座)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부도
불타의 사리를 보존하기 위한 정통적 석탑 이외에 신라시대에는 고승의 유골이나 사리를 넣기 위한 당우형 석조물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부도(孚圖)이다. 부도는 부도(浮圖), 부두(浮頭), 불도(佛圖)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고 있는데 원래는 불타와 같이 Buddha를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부도는 원래 불탑의 총칭이 되는 것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승탑의 경우에만 이 이름을 쓰고있다. 그러므로 불탑이 불신골을 봉안한 부처의 묘탑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면, 부도는 승려들의 묘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부도는 선종의 발달과 더불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즉 부도는 조사숭배를 중시하는 선종의 발달과 더불어 성행하였으며 고승신앙의 한 형태로 전개되어진 것이다. 부도는 석탑이나 석등, 당간지주 등의 다른 불교적인 조형물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부도는 승려의 묘탑이기 때문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을 두고 건조되어 왔고 승려 개개인에 대하여 각기 부도가 세워졌으므로 그 수효는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형으로서의 부도의 발생은 석탑이나 불상에 뒤졌다고 하더라도 일단 건조가 시작된 이후에는 법맥이 끊이지 않는 한 존재하였다. 불교가 억압당하던 조선시대에도 법맥을 이은 사찰에는 승려들의 부도가 세워져있다. 이렇듯 부도는 그 수효와 형태의 다양성으로 많은 석조물 중 일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부도는 조형물이 갖는 건축적인 요소 이외에도 표면에 사자. 연하. 비천상 그리고 목조건물의 세부 등의 화려한 장식문양이 조각되어 있어 불교미술의 극치를 보여 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부도는 그 주인공을 알 수 있고 또한 부도에 따른 탑비가 건립되어 있어 건립연대를 비롯하여 주인공의 사상. 업적을 밝힐 수 있어 불교사 연구에 더욱 주의를 끄는 석조물이라 할 수 있다.
부도의 양식
8각원당형부도
8각원당형의 근원은 목조에서 찾을 수 있는데, 8각원당형의 목조물이 먼저 유행하고 뒤에 돌로써 그 양식을 번안한 것이 8각원당형의 부도인 것이다. 이 부도는 8각형을 기본으로 하여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 등의 기단부는 물론이고 이 위에 놓이는 탑신부, 옥개석, 상륜부재까지 모두 8각으로 조성되어 있다. 옥개의 기와골 등 세부는 목조건조물의 형식을 모방하여 돌로 만들었으며, 기단이나 탑신부에는 사자. 신장(神將).비천 등을 조각하였다. 8각원당형부도는 우리 나라 부도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신라 말과 고려 초기에 걸쳐 제작된 우수한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 오늘날에 전하는 대표적인 8각부도를 보면 현존 최고의 것으로 전흥법사(傳興法寺) 염거화상탑(廉居和尙塔)있다.
신라시대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철감선사탑(澈鑒禪師塔), 실상사 증각대사탑(證覺大師塔), 보림사보조선사탑(普照禪師塔), 대안사 적인선사탑(寂忍禪師塔), 봉암사 지증대사탑(智證大師塔), 진전사지 부도 등이 있고, 10세기의 것으로는 봉림사 진경대사탑(眞鏡大師塔) 등이 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흥법사 진공대사탑(眞空大師塔), 거둔사원공국사탑(圓空國師塔), 정진대사탑(靜眞大師塔) 등이 있다.
방형부도
평면 8각에서 완전히 벗어나 4각을 기본으로 함은 특수형식으로 탑 표면에 가득히 새겨진 장막을 비롯한 여러 조각에서 아라비아의 영향을 느끼게 하는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智光國師玄妙塔)이 있다. 옥개석 뒷면 중앙을 8각으로 파내고 다시 그 안에 8엽중판의 연화문이 아름답게 양각되어 있고, 이 8각내 연화문과 탑신 상면의 방형사리공이 서로 아래위에서 거의 부합되도록 마련된 희귀한 예이다.
5륜형부도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弘法國師實相塔)이 있다. 기단과 옥개석은 8각원당형을 유지하면서 탑신은 원형을 이루고 있는 현존 유일의 탑 양식을 가지고 있다.
복발형부도
금산사 사리탑과 통도사의 사리탑이 이에 속하는데, 이들은 모두 불사리를 봉안하고 있어 계단이라고 불리고 있으므로 승려의 묘탑인 부도와는 다르다. 그 중 금산사의 탑은 방형판석 위에 원통형의 탑신을 안치하고 다시 정상에는 9룡과 보주가 얹혀 있다. 이와 같은 복발형 계단 사리탑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 승려의 묘탑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추세는 그대로 계승되어 조선조 부도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부도법
부도를 조성하거나 조성한 이후 부도에 관계되는 제반 법식. 부도는 고승의 묘탑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넣은 묘탑을 지칭하고 있다. 탑은 가람배치에 관계되는 시설이나 부도는 가람배치와는 관계없이 사원의 앞이나 뒤쪽, 일정한 구역에 부도전을 두고 여러 부도를 이곳에 설치한다. 부도전의 신앙의례는 1년에 한 번씩 시제로 행한다. 승려의 기일제와는 관계가 없다. 매년 2월 또는 10월에 행하며, 제의 절차는 불보살에게 먼저 권공의례를 행하고 이어서 묘탑의 주인공에게 시식의례를 행한다. 이 의식은 문도들이 주관하고 문도들에 의하여 행해진다. 우리 나라에서는 선종이 전래된 신라말기부터 제작하였다. 부도법은 선종과 연관관계가 깊고 고승신앙과 관계가 깊다.
석 등
석등은 원래 등불을 밝히는 시설물이었으나, 후대에 이르러 불전 앞이나 탑 앞에 설치하는 가람배치의 하나의 구성요소가 되었다.
불교에서 불등을 밝힌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6법공양의 하나인 등공양으로서 유명할 뿐 아니라, 지혜를 밝힌다는 뜻으로 연등회 등의 행사와 깊은 관계를 가져왔다. 그러나 오늘날 사찰에 전하는 석등은 이와 갈은 연등의 의미를 상징화하여 그 상징적 의미를 가람배치상에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실제 등화(燈火)를 밝힐 수 있는 실용적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오히려 상징적 의미를 더 강하게 지니고 있다.
석등의 양식은 불을 밝히는 부분인 화사석(火舍石)을 주축으로 하여 그 위에 좌개석(座蓋石), 아래의 대좌부분(臺座部分)으로 나누어진다. 대좌부는 등부(燈部)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불상의 대좌나 부도의 대좌와 거의 같은 형식을 지니고 있다.
화사석은 다시 시대에 따라 4각, 6각, 8각의 세 가지 양식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와 같은 양식의 석등을 전형양식의 석등이라 하는데, 이같은 전형양식의 석등도 시대가 지나면서 화사석에 화창(和暢)을 내지 않고 이면에 보살상이나 사천왕상을 배치하는 경우도 보인다.
이상 전형양식의 석등에 비하여 이형의 석등이 있다. 이형석등은 주부에 해당하는 간주석 대신에 인물상이나 동물상으로 상대석(上臺石)을 받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인물상으로 대치한 대표적 예는 화엄사의 4사자 3층석탑 앞의 석등을 예로 들 수 있으며, 동물상이 받치고 있는 석등으로는 법주사 쌍사자 석등 등이 있다.
이형석등의 또 다른 양식은 운룡문석등(雲龍文石燈)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원형의 간주석 표면에 움직이는 용과 구름을 조화있게 양각한 것으로 전북 옥주군 발산리 석등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유형의 석등은 안정감을 주는 대신 우둔한 감을 느끼게 하고 있으나 매우 화려한 장식이 새겨져 있어 장식등(裝飾燈)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절의 건물 구조
오늘날 절의 명칭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寺'는 원래 중국 관청의 부서 명칭인데, 외국인을 접대하는 흥로사에 맨 먼저 방문한 사람이 서역에서 온 스님이었기 때문에 뒷날 스님이 머무시는 곳을 모두 '寺'라고 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혼자 수행하는 곳을 암자라고 하는데, 이것은 다만 작은 절이라는 뜻이며 그 이상의 의미나 장소에 대한 규정은 없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절에 대한 여러 가지 명칭이 통용되고 있다. 앞에 고유명사를 붙여서 '사, 암, 정사, 난야, 총림' 등의 명칭을 쓰며 절을 가리켜 사찰, 사원, 가람이라 이르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는 많은 사찰이 있는데 그 중 신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절은 오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을 들 수 있다. 신라시대 자장법사가 중국으로부터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와 양산 통도사, 오대산 중대,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에 모셨는데 이곳을 통칭하여 오대적멸보궁이라 한다.
그리고 조계종단의 삼보사찰(三寶寺刹)로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가 있는데 양산 영축산의 통도사는 오대적멸보궁의 하나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불보(佛寶)사찰이라 하고, 대웅전 법당에 부처님의 존상을 봉안하지 않았다. 법당 안에서 정면을 향하면 사리를 모신 보궁이 보이도록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법당의 구조는 오대적멸보궁이 모두 동일하다.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어 법보(法寶)사찰이라 하고, 순천 조계산의 송광사는 국사로 존칭받던 많은 스님의 대표적 수도처이기 때문에 승보(僧寶)사찰이라고 칭한다.
절은 삼보를 모시고 불자들이 모여서 정진하는 도량이다. 도량(道場)은 불법의 도를 선양하는 곳을 의미한다. 실질적인 절의 개념에 따르면 절의 건축물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전통사찰은 만다라 형상을 나타내고, 극락세계를 표현한 장소로서 독특한 건물구조로 되어 있다.'만다라(曼茶羅)'는 어느 부족한 것이 없이 모두 다 갖추어졌다는 뜻이며 법당에 모신 탱화는 만다라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절의 주요 건축물로는 법당, 불탑, 요사를 들 수 있고 이에 따르는 부속 구축물 등이 있다. 우리가 절에 갈 때에는 본사의 경우 대개 일주문과 천왕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가는 도중에 부도전을 지나게 된다. 그리고 법당 앞에 탑과 석등을 보게 되고 법당의 좌·우에 선방·승방이 있고 누각이 있음을 흔히 접하게 된다. 이러한 절의 건축물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法堂
불보살을 모신 가장 중심부가 되는 건물로서 당호는 전(展)을 쓴다. 예컨대 대웅전, 관음전, 비로전과 같은 건물이 법당이며 어느 부처님, 혹은 어느 보살님을 모셨느냐에 따라 불당의 명칭이 다음과 같이 달라진다.
대웅전(大雄殿) : 석가모니를 모신 법당을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大雄寶展)이라 하는데 대웅은 석가모니의 다른 호칭이며 대장부라는 뜻과 같다.
비로전(毘盧殿) :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이며 대광명전(大光明殿)또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도 한다.
극락전(極樂殿) : 서방정토의 주불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며 극락보전, 미타전,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한다.
미륵전(彌勒殿) : 미래에 오실 부처님인 미륵불을 봉안한 법당인다. 미륵불이 계시는 세계를 용화세계라 하기 때문에 미륵전을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한다.
약사전(藥師殿) : 중생의 재난과 질병을 없애고 고난에서 중생을 구해주는 약사여래(藥師如來)부처님을 모신 법당이며 만월전(滿月殿)이라고도 한다.
관음전(觀音殿) :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으로 원통전(圓通殿), 원통보전(圓通寶殿) 또는 자비전(慈悲殿)이라고도 한다.
지장전(地葬殿) :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으로서 명부전(冥府殿)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을 중앙에 모시고 좌측에는 도명존자 우측에는 무독귀왕을 모시기도 한다. 그리고 시왕(十王)을 좌·우에 모시기도 하여 시 왕전(十王殿) 또는 대원전(大願殿)이라고도 한다.
팔상전(捌相殿) :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부분(八相)으로 나누어, 여덟폭의 그림으로 모시고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이다.
이외에 비로자나불과 화엄경의 여러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모신 화엄전,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모신 웅진전 또는 나한전, 민간 신앙을 불교에 흡수한 산신이나 칠성을 모신 산신각·칠성각이 있고, 또 산신·칠성·독성을 함께 모신 삼성각(三聖閣)을 큰법당의 뒷편에 건립하기도 한다. 그리고 불경을 보관하는 장소로서 경장(經藏)이라고도 하는 장경각(藏經閣)과, 불교의식의 기본법구인 종·북·운판·목어를 봉안하는 종각(鐘閣) 또는 고각(鼓閣)이 있다. 또한 절과 인연이 있는 고승석덕(高僧碩德)들의 초상화를 봉안하는 영각(影閣)이 있는데, 따로 지을 때도 있고 고승이 거처하였던 방을 영각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여러 승려들의 초상화를 함께 모시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주로 조사당(祖師堂)이라 한다.
참고) 석가삼존 --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미타삼존 --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약사삼존 -- 약사여래불: 일광보살, 월광보살
탑(塔)
법당이 있으면 탑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불교신앙의 원류를 고찰해 볼 때 법당보다도 탑이 먼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법당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상이 조성된 후에 지어졌다고 볼 수 있고, 탑은 불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불교신앙의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탑은 부처님 이전부터 인도에 있었던 것이지만 불교의 탑으로서 그 기원을 찾는다면 부처님을 독실히 신봉하는 한 제자가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그때에 그 제자는 "제가 세존을 떠나서 멀리 있는 동안 항상 부처님을 마음 속에 모실 수 있는 어떤 표증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머리카락을 잘라주시면서 그것을 탑과 같이 만들어진 곳에다가 넣고 모발이 들어 있는 탑 같은 형태에 항상 예불을 드리고 가까이 하면 된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때부터 사실상으로 불교의 탑의 원시적인 기원이 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 탑 중에는 대웅전 뒤에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탑이 있다. 이 경우 법당에는 부처님을 모시지 않는다. 이 때에는 당탑의 구분이 아니고 바로 부처님 사리를 모신 그 탑이 기본이 되고 본당이 되는 것이다.
요사(寮舍)
스님들이 생활하는 건물을 통틀어서 요사라고 한다.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 일하는 곳, 공부하며 기거하는 곳을 모두 요사라 하므로 사무실, 후원, 객실, 동사, 욕실 등이 모두 요사에 해당한다. 스님들이 수도하는 요사의 명칭은 여러 가지를 사용하며 현판을 붙이는데 올바른 행과 참선하는 장소라는 의미로 解行堂, 修禪堂이라는 현판을 붙이기도 하고, 지혜의 칼을 찾는 공부를 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심검당(尋劍堂), 부처님을 선출하는 장소라는 뜻으로 選拂場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문루(門樓)의 부속 구축물
절의 건물배치를 보면 모두 일정하지는 않으나 본사의 경우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지나서 일직선으로 보이는 법당을 만나게 된다. 법당에 도달하기 전에 강당이나 종무소를 지나기도 하며 좌우에 종각을 볼 수도 있다. 절 입구에 찰간(刹), 또는 당간(幢)이라 불리는 돌이나 쇠로 만들어 세운 기둥이 있다. 그 위에는 긴 쇠로 만든 깃대를 세워서 그 절의 종지와 寺格을 표시하였는데 지금은 이 찰간의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절에 들어서기 위하여 통과하는 문은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등이 있으며 절마다 조금씩 다르게 배치되어 있는데, 이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일주문(一柱門)
사찰에는 여러 가지 문이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산문 중 첫 번째 문은 일주문이다. 일주문[一柱門]이란 사찰에 들어가는 산문[山門]중 첫 번째 문이 기둥이 한 줄로되어 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네 곳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덮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에 세운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독특한 형식의 건축물이다.
일주문을 들어섬으로써 사실상 사찰 경내에 들어서는 것이고 부처님의 세계에 다다른 것이다. 일주문 앞에서는 멀리 본당[本堂]을 향해서 합장하고 반배를 올려야 한다.
기둥을 일렬로 세운 일주문이 상징하는 뜻은 모든 진리는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일심[一心]의 작용에 의해서 나타난다는 불교의 근본 진리를 나타내고 있다. 산과 바다세계와 인생 정신과 물질, 부처와 중생 너와 나 사랑과 미움 등 우주에 존재하는 정신적 물질적 모든 것이 일심 동체로서 그 근본은 오직 하나이지 둘이 아니라는 뜻이 일주문에 담겨있다. 모든 것의 근원은 오직 하나이며 둘이 아니라는 실상[實相]을 잘 알고 착하고 너그러운 본연의 허허로운 마음으로 부처님 앞에 나가야 한다. 일주문에는 보통 사찰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사찰 이름 앞에는 그 사찰이 자리잡은 산 이름도 함께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 이름을 사찰 앞에 붙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보기 : 운달산 금룡사, 지리산 실상사, 금정산 범어사
1. 같은 이름의 사찰을 구별하는 일종의 주소 역할을 한다. 보기: 보현사[普現寺] 충남 서산 사왕산 보현사
전남 고흥 팔령산 보현사
강원 양주 천후산 보현사
경북 청송 보현산 보현사
2.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액수리 백양산에 있는 백양사[白羊寺]는 白羊山 白羊寺 라고 하지 않고 大伽藍 白羊寺 라고 하였다. 절이 크다고 대가람이 아니라 대가람 이 되려면 다음 네 가지가 구비되어야만 한다. 백양사에는 그런 요건이 모두 다 갖추어 졌다고 한다. [1] 강원[講院] :경전을 전공하는 사원. [2] 율원[律院] :계율을 학습하는 사원. [3] 선원[禪院] :참선을 공부하는 사원. [4] 열반당 [涅槃堂] :병든 스님들이 입적할 때까지 거처하는 곳.
천왕문(天王門), 사천왕문
일주문을 들어서면 사찰의 수호신인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사천왕문(천왕문)이 있다. 사찰에 들어오는 산문[山門]중 일주문 다음에 있는 두 번째 문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곳으로써 여기에 사천왕의 조상이나 그림을 봉안하고 있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하던 귀신들의 왕이었는데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방의 지국(持國)천왕, 남방의 증장(增長)천왕, 서방의 광목(光目)천왕, 북방의 다문(多聞)천왕 등 사천왕은 여러 단계나 되는 천상계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천왕천이라는 하늘나라에 살며 그 나라의 왕인 제석천왕[帝釋天王]의 지시에 따라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이 세계를 크게 둘로 나누어 하나는 "깨달음의 세계[悟界]" "헤맴의 세계[迷界]" 로 나눈다. 이것을 다시 세분해서 십계[十界] 아래와 같다.
위의 내용과 같이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들의 6단계는 범부[凡夫]가 스스로 지은 업[業]에 따라 생사를 거듭하며 끝없이 윤회하는"헤맴의 세계" 이며 성문.연각.보살.불의 세계는 오랜 세월 수행 공덕으로 깨달음을 얻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난 성자[聖者]의 세계인 "깨달음의 세계"라고 한다. 미혹[迷惑]의 세계 가운데도 특히 지옥.아귀.축생은 삼악도[三惡道]라고 하는데 많은 고통이 따른 세계이다. 그러한 천[天]가운데 사천왕이 사는 사천왕천은 가장 낮은 천이라고 한다. 사천왕들은 수미산에 살면서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고 불도를 닦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다. 또 사천왕과 그 부하들은 온 천지를 돌아다니면서 이 세상의 선악을 모두 살펴서 그 결과를 매월 8일에는 사천왕의 부하들이 14일에는 사천왕의 태자들이 15일에는 사천왕 자신들이 제석천[帝釋]에게 직접 보고하는 중대한 일을 하고 있다.
인왕문(仁王門), 금강문(金剛門)
어떤 사찰에는 일주문과 사천왕문 사이에 사찰의 수호신으로서 인왕님이나 금강 역사를 안치한 문도 있다. 인왕님을 모신 문을 "인왕문" 금강 역사를 모신 문을 "금강문"이라고 한다. 본래는 인왕이 아니고 이왕 또는 집금강신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원래 인도에서 문을 지키는 신 이였다. 그 신을 불교가 수용해서 불상이나 사리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삼았기 때문에 인왕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인왕상은 주로 그림으로 등장하는데 왼쪽이 밀적 금강 역사[密迹金剛力士]이고 오른쪽이 나라연 금강 역사[那羅延金剛力士]이다. 밀적 금강 역사는 금강[金剛]의 무기를 갖고 항상 부처님을 수호하는 야차신 가운데 한 분이다. 그는 늘 부처님께 친근하기를 원하고 부처님 가까이 있기를 원하며 부처님의 비밀스러운 사적을 들으려는 원이 가득하므로 밀적[密迹]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나라연 금강은 천상에 있는 역사[力士]의 이름으로 그 힘이 코끼리의 100만 배나 되는 어마어마하게 힘이 센 분이다.
인왕문에는 주로 두 분 금강 역사를 모셨으나 나라연 금강 역사나 밀적 금강 역사 이외에도 다른 많은 역사들이 부처님을 수호하는데 인왕문이나 금강문이 마련되지 않은 사찰에서는 대웅전이나 극락전 등 금당의 벽면에 여러 인왕존의 모습을 그려서 부처님을 수호하도록 하고 있다. 무기로서 금강은 금강저[金剛杵]를 말하며 제석천과 밀적 역사가 가지고 있는 무기 이름이다. 이 세상의 무엇으로도 이를 파괴할 수 없지만 이 금강저로써 파괴할 수 없는 무기는 또한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금강저를 수행자의 정신력을 무장하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많이 쓴다. 이를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서가 아니라 번뇌를 부수는 무기 즉 보리심을 얻기 위해 번뇌 망상을 부수는 상징적인 무기로 승려들이 수행할 때 쓰는 도구로서 받아들였다. 여러 가지의 금강저를 금강 역사들이 들고 있다. 끝이 날카로운 것을[독고], 끝이 세 개로 갈라진 것을[삼고], 다섯 개로 갈라진 것을 [오고]라고 한다.
불이문(不二門)
사찰로 들어가는 문 가운데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이 불이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불법의 세계이며 부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둘이 아니고, 현재와 미래가 둘이 아닌 완전히 하나의 불법세계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불이[不二]라는 말은 " 둘이 아니다 " 라는 뜻으로 진리 그 자체를 표현한 말이다. 일체의 두루 평등하고 원만한 진리가 이 문을 통해서 재조명되고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된다는 뜻이다. 크나큰 근본 진리는 오직 하나이고 둘이 아니며 하나를 깨달으면 백 가지에 통달할 수 있다. [一通百通] 잘 생각해 보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생[生]과 사[死]가 둘이 아니며 부귀와 가난이 둘이 아니며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다. 그 나타난 결과는 다르게 보여도 근원을 찾아가면 모두가 하나일 뿐 다를 바가 없다. 생과 사가 다른 듯해도 생이 있으므로 사가 있고 생 속에는 이미 사라는 도달점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를 살았다 하는 것과 하루를 죽었다 하는 말은 사실상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 이와 같은 이치를 아는 불이[不二]의 경지에 도달하면 불[佛]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불이문에는 이와 같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불이문은 금당과 가장 가까운 곳에 만들고 그곳을 지나면 금당[金堂](부처님 계시는 집)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세우는 것이다.
해탈문(解脫門)
해탈이란 "풀려 나오다" 라는 말인데 번뇌에 묶인 상태에서 풀려 나오며, 미혹[迷惑]의 고통에서 풀려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별것 아닌 것에 집착해서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고 또 자기가 만든 괴로움에 구속되며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실상을 바로 보고마음을 고쳐먹으면 모두가 별것 아닌 것들인데 그것을 못 하고 눈앞의 자질구레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늘 그늘진 인생을 보내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것은 모두가 자기의 마음 탓이며 바로 어리석은 집착 때문에 해탈하지 못한 탓이다. 실상을 바로 깨닫지 못한 탓이다. 해탈문은 그 문을 통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같은 모든 번뇌와 미혹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라는 상징적인 문이다. 해탈에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이 있다. 심해탈은 마음속에 가득한 탐욕과 집착을 없애서 허허롭고 자유로운 해탈의 경지에 들어가는 의미이며, 혜해탈은 지혜에 의해서 어리석은 무지에서 벗어나 만물의 실상든 번뇌에서 해탈하라는 말이다.
불상의 기원에는 여러설이 있지만 실제 유물상으로 보면 불상이 처음 조성된 시기는 1세기경인 인도의 쿠샨왕조 시대였다.. 즉, 부처자신의 존재는 불족적(佛足跡)이나 빈 의자로써 표현되었고, 부처의사리(舍利)나 불아(佛牙)는 부처 자신의 진신 그 자체로서 숭앙되었다. 그러나 쿠샨왕조시대에 이르러 불상의 표현이 인체의 형상을 빌려 나타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인도의 불상은 그 뒤 굽타시대에 이르러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불상표현이 이루어졌다. 굽타조각은 건장한 체구에 균형잡힌 신체비례 그리고 몸에 꼭 달라붙은 법의 밑에 팽팽하고 긴장감이 도는 불신의 모습으로 마치 불법 자체가 불상에 응결되어진 것 같이 신성한 감을 보여준다. 그러나 12세기 이후 인도에서는 불교문화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데, 그러나 그 대신 남으로 실론과 동남아지역으로 퍼져갔으며, 북으로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동전하면서 발전하였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1세기경의 후한시대로 생각되지만, 5호16국시대에 이르러서야 북방호족들의 적극적인 불교수용에 따라 불상제작도 활바랗게 진행되었다. 특히 후조의 금동불좌상은 현존하는 최고의 명문이 있는 불상이다.. 대체로 5세기 후반까지의 불상에는 서역이나 간다라의 영향이 강하였으며, 6세기에 들어서 부터는 좀더 중국화된 불상조각이 발달하였다.. 이것은 불교자체가 점점 토착되어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나라의 중국통일과 더불어 다양한 요소가 혼합되고 당대에 이르러서는 중국 불상조각의 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석조상과 금동상들이 당대의 불상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전통은 이후 오대, 요.금 및 송대의 불상양식 조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부처님의 명칭과 특징
비로자나불
대일여래라고도하며, 오지보관, 지권인이 특징이다.우주삼라만상의 진리와 법칙을 불격화하여 나타낸 법신불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대적광적, 비로전이라한다.
석가모니불
석가족의 성자로 불교의 교조이다. 기원적 623년 중인도 가비라국 정반왕의 아들로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 35세에 붓다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45년간 가르침을 펴다가 기원전 544년 80세의 나이로 쿠시라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한 분이다.
아미타불
무한한 광명을 비추는 부처님이란 뜻에서 무량광불, 무한한 수명을 지니 부처님이란 뜻에서 무량수불이라 부른다. 서방 극락정토의 교주이다. 좌우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거느리고 있다.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을 극락전, 미타전 무량수전, 무량광전이라고 한다.
약사유리광불
동방유리세계의 교주로 중생의 질병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약병을 들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좌우로 일광변조보살과 월광변조보살을 거느리고 있다. 약사유리광불을 일명 대의광불이라하며, 그 전각을 약사전이라 한다.
보 살
보살이란 여래가 되기 위해 수행을 계속하는 수도자, 대중의 교화를 위해 노력하는 봉사자를 의미한다. 보통 몸에 많은 장식을 하고, 특정한 지물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관세음보살
아미타불의 좌보처로 자비의 문을 담당하는 보살이다.. 일명 시무외자, 대비성자, 구세대사라 부른다. 중새으이 근기에 따라 크게 33응신으로 나타나 구제한다.. 감로병, 연꽃을들고있다. 6,7,33관음 등으로 구분된다. 7관음은 성관음, 천수관음, 마두관음, 십일면관음, 준지관음, 여의륜관음, 불공견색 관음이다.. 보관에 아미타불이 있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을 관음전, 원통전이라 한다.
대세지보살
아미타불의 우보처로 지혜의 문을 담당하는 보살이다. 그가 지닌 지혜의 광명으로 일체 세계와 중생을 비추어 깨달음에 이르도록 함으로 대세지라한다.
문수보살
석가모니 좌보처로 지혜의 보살이다. 머리에 오계는 대일여래의 다섯가지 지혜을 의미하고, 오른손에 지혜의 상징인 칼을 들고 있다.. 모든 보살 중에 으뜸가는 위치에 있는 보살이다. 반야의 가르침을 선양하는 지혜의 보살이다.
보현보살
석가모니 우보처로 행원의 보살이다. 여래의 이덕과 정덕, 행덕을 상징한다. 중생들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덕을 지니기도 하여 보현연명보살이라고도 한다.. 흰코끼리를 타고 있는 모습이 특징적이다.
미륵보살
미륵은 인도 바라나국에서 태어나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먼저 입멸하여 도술천에 오로가 천인들을 교화하다 성도한후 사바세계에 출현, 중생을 제도, 용화세계를 건설한다.. 성은 미륵이고, 이름은 아지타라고 한다. 미륵은 어머니란뜻에서 자씨라고 번역된다.
지장보살
미륵불이 오기까지 천상, 인간, 아수라, 아귀, 축생, 지옥의 중생을 교화하는 대비보살이다. 특히 지옥세계의 중생을 구원하는 지옥세계의 부처님으로 신앙된다.. 보통천관을 쓰고 석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 특징적이다.. 좌우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거느리고 있다.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을 지장전, 명부전, 시왕전이라한다.
일광보살
약사불의 좌협시 보살이다. 몸은 적홍색이고 왼손에 태양을 올려놓고 오른손에 넝쿨로 된 붉은색의 꽃인 만주적화를 들고 있는 형상이다.. 보관에 붉은색의 태양이 표현되어 있다.
월광보살
약사불의 우협시보살이다. 몸은 백홍색으로 왼손으로 월륜을 쥐고 오른속에 홍백의 연꽃을 잡고 있다. 보관에 흰색의 달이 표현되어 있다.
수인(手印)
불, 보살의 공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손 모양. 원래 불전도(佛傳圖)에 나오는 석가의 손 모양에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불의 경우에는 선정인, 항마촉지인, 전법륜인, 시무외인, 여원인의 5가지 수인을 주로 취한다.
대승불교의 여러 부처들도 대개 이를 따랐지만 아미타불은 구품왕생과 연결되어 9등급의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과 내영인(來迎印)을 새롭게 만들었다. 아미타정인을 9등분한 것은 중생들의 성품이 모두 다르므로 상·중·하 3등급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세분화하여 9등급으로 나누어서 각 사람에게 알맞게 설법하려는 뜻이라고 한다. 불상 종류에 따른 수인은 교리적인 뜻을 가지고 표현되었기 때문에 불상의 성격과 명칭을 분명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그 규칙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선정인(鮮定印)
선정인은 결과부좌일 때의 인이다. 양 손바닥을 위로 해서 겹쳐 놓되 두 엄지 손가락을 서로 대는 형식이다. 석존이 보리수 및 금강보좌 위에 앉아 깊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취한 수인이 바로 이것이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항마촉지인은 반드시 결과부좌한 좌상에 한하는 것이고, 입상에서나 의상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는 상이다.
전법륜인(轉法輪印)
부처의 설법을 전법륜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손모양이 전법륜인 것이다. 왼손의 엄지와 검지를 서로 대고 장지, 약지, 소지의 삼지를 편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하고 오른 팔목에 왼손 약지와 소지의 끝을 대되 오른손 손바닥은 밖으로 향한다.
시무외인(施無畏印)
중생에게 무외를 베풀어 소외에서 떠나게 하고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키고 대자의 덕을 보이는 인이다. 손의 모습은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뻗히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형태이다.
여원인(與願印)
부처가 중생에게 사랑을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게 하는 대자의 덕을 표시한 인이다. 손의 모습은 손바닥을 밖으로 다섯 손가락을 펴서 밑을 향하고 손 전체를 늘어뜨린다.
지권인(智券印)
지권인은 비로나불이 걸하는 수단이다. 좌, 우 손으로 엄지를 속에 넣고 다른 손가락으로 주먹을 쥔다. 다음에 가슴까지 올려 들고 왼손의 검지를 풀어서 세우며 오른손 주먹 중의 소지로 왼손 검지의 첫째 마디를 잡는다. 그리고 오른손 주먹 속에는 오른손 엄지 끝과 왼손 엄지 끝을 서로 댄다. 이러한 형식은 일체의 무병 번뇌를 없애고 부처의 지혜를 얻는다는 뜻이다. 관음이나 문수 등의 보살이나 다문천(多聞天)등의 천부는 각기 다른 물건, 즉 연꽃이나 경, 또는 탑, 창 등을 들고 있어서 독특한 손모양을 하고 있다. 불상을 장엄하게 하는 것으로 불교상을 받치는 대좌와 그것을 받든 형식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대좌의 형식도 연화좌(蓮華座), 독자좌(獨子座)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부도
불타의 사리를 보존하기 위한 정통적 석탑 이외에 신라시대에는 고승의 유골이나 사리를 넣기 위한 당우형 석조물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부도(孚圖)이다. 부도는 부도(浮圖), 부두(浮頭), 불도(佛圖)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고 있는데 원래는 불타와 같이 Buddha를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부도는 원래 불탑의 총칭이 되는 것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승탑의 경우에만 이 이름을 쓰고있다. 그러므로 불탑이 불신골을 봉안한 부처의 묘탑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면, 부도는 승려들의 묘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부도는 선종의 발달과 더불어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즉 부도는 조사숭배를 중시하는 선종의 발달과 더불어 성행하였으며 고승신앙의 한 형태로 전개되어진 것이다. 부도는 석탑이나 석등, 당간지주 등의 다른 불교적인 조형물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왜냐하면 부도는 승려의 묘탑이기 때문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을 두고 건조되어 왔고 승려 개개인에 대하여 각기 부도가 세워졌으므로 그 수효는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형으로서의 부도의 발생은 석탑이나 불상에 뒤졌다고 하더라도 일단 건조가 시작된 이후에는 법맥이 끊이지 않는 한 존재하였다. 불교가 억압당하던 조선시대에도 법맥을 이은 사찰에는 승려들의 부도가 세워져있다. 이렇듯 부도는 그 수효와 형태의 다양성으로 많은 석조물 중 일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부도는 조형물이 갖는 건축적인 요소 이외에도 표면에 사자. 연하. 비천상 그리고 목조건물의 세부 등의 화려한 장식문양이 조각되어 있어 불교미술의 극치를 보여 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부도는 그 주인공을 알 수 있고 또한 부도에 따른 탑비가 건립되어 있어 건립연대를 비롯하여 주인공의 사상. 업적을 밝힐 수 있어 불교사 연구에 더욱 주의를 끄는 석조물이라 할 수 있다.
부도의 양식
8각원당형부도
8각원당형의 근원은 목조에서 찾을 수 있는데, 8각원당형의 목조물이 먼저 유행하고 뒤에 돌로써 그 양식을 번안한 것이 8각원당형의 부도인 것이다. 이 부도는 8각형을 기본으로 하여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 등의 기단부는 물론이고 이 위에 놓이는 탑신부, 옥개석, 상륜부재까지 모두 8각으로 조성되어 있다. 옥개의 기와골 등 세부는 목조건조물의 형식을 모방하여 돌로 만들었으며, 기단이나 탑신부에는 사자. 신장(神將).비천 등을 조각하였다. 8각원당형부도는 우리 나라 부도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신라 말과 고려 초기에 걸쳐 제작된 우수한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 오늘날에 전하는 대표적인 8각부도를 보면 현존 최고의 것으로 전흥법사(傳興法寺) 염거화상탑(廉居和尙塔)있다.
신라시대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철감선사탑(澈鑒禪師塔), 실상사 증각대사탑(證覺大師塔), 보림사보조선사탑(普照禪師塔), 대안사 적인선사탑(寂忍禪師塔), 봉암사 지증대사탑(智證大師塔), 진전사지 부도 등이 있고, 10세기의 것으로는 봉림사 진경대사탑(眞鏡大師塔) 등이 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흥법사 진공대사탑(眞空大師塔), 거둔사원공국사탑(圓空國師塔), 정진대사탑(靜眞大師塔) 등이 있다.
방형부도
평면 8각에서 완전히 벗어나 4각을 기본으로 함은 특수형식으로 탑 표면에 가득히 새겨진 장막을 비롯한 여러 조각에서 아라비아의 영향을 느끼게 하는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智光國師玄妙塔)이 있다. 옥개석 뒷면 중앙을 8각으로 파내고 다시 그 안에 8엽중판의 연화문이 아름답게 양각되어 있고, 이 8각내 연화문과 탑신 상면의 방형사리공이 서로 아래위에서 거의 부합되도록 마련된 희귀한 예이다.
5륜형부도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弘法國師實相塔)이 있다. 기단과 옥개석은 8각원당형을 유지하면서 탑신은 원형을 이루고 있는 현존 유일의 탑 양식을 가지고 있다.
복발형부도
금산사 사리탑과 통도사의 사리탑이 이에 속하는데, 이들은 모두 불사리를 봉안하고 있어 계단이라고 불리고 있으므로 승려의 묘탑인 부도와는 다르다. 그 중 금산사의 탑은 방형판석 위에 원통형의 탑신을 안치하고 다시 정상에는 9룡과 보주가 얹혀 있다. 이와 같은 복발형 계단 사리탑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 승려의 묘탑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추세는 그대로 계승되어 조선조 부도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부도법
부도를 조성하거나 조성한 이후 부도에 관계되는 제반 법식. 부도는 고승의 묘탑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넣은 묘탑을 지칭하고 있다. 탑은 가람배치에 관계되는 시설이나 부도는 가람배치와는 관계없이 사원의 앞이나 뒤쪽, 일정한 구역에 부도전을 두고 여러 부도를 이곳에 설치한다. 부도전의 신앙의례는 1년에 한 번씩 시제로 행한다. 승려의 기일제와는 관계가 없다. 매년 2월 또는 10월에 행하며, 제의 절차는 불보살에게 먼저 권공의례를 행하고 이어서 묘탑의 주인공에게 시식의례를 행한다. 이 의식은 문도들이 주관하고 문도들에 의하여 행해진다. 우리 나라에서는 선종이 전래된 신라말기부터 제작하였다. 부도법은 선종과 연관관계가 깊고 고승신앙과 관계가 깊다.
석 등
석등은 원래 등불을 밝히는 시설물이었으나, 후대에 이르러 불전 앞이나 탑 앞에 설치하는 가람배치의 하나의 구성요소가 되었다.
불교에서 불등을 밝힌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6법공양의 하나인 등공양으로서 유명할 뿐 아니라, 지혜를 밝힌다는 뜻으로 연등회 등의 행사와 깊은 관계를 가져왔다. 그러나 오늘날 사찰에 전하는 석등은 이와 갈은 연등의 의미를 상징화하여 그 상징적 의미를 가람배치상에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실제 등화(燈火)를 밝힐 수 있는 실용적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오히려 상징적 의미를 더 강하게 지니고 있다.
석등의 양식은 불을 밝히는 부분인 화사석(火舍石)을 주축으로 하여 그 위에 좌개석(座蓋石), 아래의 대좌부분(臺座部分)으로 나누어진다. 대좌부는 등부(燈部)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불상의 대좌나 부도의 대좌와 거의 같은 형식을 지니고 있다.
화사석은 다시 시대에 따라 4각, 6각, 8각의 세 가지 양식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와 같은 양식의 석등을 전형양식의 석등이라 하는데, 이같은 전형양식의 석등도 시대가 지나면서 화사석에 화창(和暢)을 내지 않고 이면에 보살상이나 사천왕상을 배치하는 경우도 보인다.
이상 전형양식의 석등에 비하여 이형의 석등이 있다. 이형석등은 주부에 해당하는 간주석 대신에 인물상이나 동물상으로 상대석(上臺石)을 받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인물상으로 대치한 대표적 예는 화엄사의 4사자 3층석탑 앞의 석등을 예로 들 수 있으며, 동물상이 받치고 있는 석등으로는 법주사 쌍사자 석등 등이 있다.
이형석등의 또 다른 양식은 운룡문석등(雲龍文石燈)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원형의 간주석 표면에 움직이는 용과 구름을 조화있게 양각한 것으로 전북 옥주군 발산리 석등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러한 유형의 석등은 안정감을 주는 대신 우둔한 감을 느끼게 하고 있으나 매우 화려한 장식이 새겨져 있어 장식등(裝飾燈)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절의 건물 구조
오늘날 절의 명칭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寺'는 원래 중국 관청의 부서 명칭인데, 외국인을 접대하는 흥로사에 맨 먼저 방문한 사람이 서역에서 온 스님이었기 때문에 뒷날 스님이 머무시는 곳을 모두 '寺'라고 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혼자 수행하는 곳을 암자라고 하는데, 이것은 다만 작은 절이라는 뜻이며 그 이상의 의미나 장소에 대한 규정은 없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절에 대한 여러 가지 명칭이 통용되고 있다. 앞에 고유명사를 붙여서 '사, 암, 정사, 난야, 총림' 등의 명칭을 쓰며 절을 가리켜 사찰, 사원, 가람이라 이르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는 많은 사찰이 있는데 그 중 신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절은 오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을 들 수 있다. 신라시대 자장법사가 중국으로부터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와 양산 통도사, 오대산 중대,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에 모셨는데 이곳을 통칭하여 오대적멸보궁이라 한다.
그리고 조계종단의 삼보사찰(三寶寺刹)로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가 있는데 양산 영축산의 통도사는 오대적멸보궁의 하나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불보(佛寶)사찰이라 하고, 대웅전 법당에 부처님의 존상을 봉안하지 않았다. 법당 안에서 정면을 향하면 사리를 모신 보궁이 보이도록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법당의 구조는 오대적멸보궁이 모두 동일하다.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어 법보(法寶)사찰이라 하고, 순천 조계산의 송광사는 국사로 존칭받던 많은 스님의 대표적 수도처이기 때문에 승보(僧寶)사찰이라고 칭한다.
절은 삼보를 모시고 불자들이 모여서 정진하는 도량이다. 도량(道場)은 불법의 도를 선양하는 곳을 의미한다. 실질적인 절의 개념에 따르면 절의 건축물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전통사찰은 만다라 형상을 나타내고, 극락세계를 표현한 장소로서 독특한 건물구조로 되어 있다.'만다라(曼茶羅)'는 어느 부족한 것이 없이 모두 다 갖추어졌다는 뜻이며 법당에 모신 탱화는 만다라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절의 주요 건축물로는 법당, 불탑, 요사를 들 수 있고 이에 따르는 부속 구축물 등이 있다. 우리가 절에 갈 때에는 본사의 경우 대개 일주문과 천왕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가는 도중에 부도전을 지나게 된다. 그리고 법당 앞에 탑과 석등을 보게 되고 법당의 좌·우에 선방·승방이 있고 누각이 있음을 흔히 접하게 된다. 이러한 절의 건축물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法堂
불보살을 모신 가장 중심부가 되는 건물로서 당호는 전(展)을 쓴다. 예컨대 대웅전, 관음전, 비로전과 같은 건물이 법당이며 어느 부처님, 혹은 어느 보살님을 모셨느냐에 따라 불당의 명칭이 다음과 같이 달라진다.
대웅전(大雄殿) : 석가모니를 모신 법당을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大雄寶展)이라 하는데 대웅은 석가모니의 다른 호칭이며 대장부라는 뜻과 같다.
비로전(毘盧殿) :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이며 대광명전(大光明殿)또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도 한다.
극락전(極樂殿) : 서방정토의 주불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며 극락보전, 미타전,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한다.
미륵전(彌勒殿) : 미래에 오실 부처님인 미륵불을 봉안한 법당인다. 미륵불이 계시는 세계를 용화세계라 하기 때문에 미륵전을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한다.
약사전(藥師殿) : 중생의 재난과 질병을 없애고 고난에서 중생을 구해주는 약사여래(藥師如來)부처님을 모신 법당이며 만월전(滿月殿)이라고도 한다.
관음전(觀音殿) :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으로 원통전(圓通殿), 원통보전(圓通寶殿) 또는 자비전(慈悲殿)이라고도 한다.
지장전(地葬殿) :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으로서 명부전(冥府殿)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을 중앙에 모시고 좌측에는 도명존자 우측에는 무독귀왕을 모시기도 한다. 그리고 시왕(十王)을 좌·우에 모시기도 하여 시 왕전(十王殿) 또는 대원전(大願殿)이라고도 한다.
팔상전(捌相殿) :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부분(八相)으로 나누어, 여덟폭의 그림으로 모시고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이다.
이외에 비로자나불과 화엄경의 여러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모신 화엄전,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모신 웅진전 또는 나한전, 민간 신앙을 불교에 흡수한 산신이나 칠성을 모신 산신각·칠성각이 있고, 또 산신·칠성·독성을 함께 모신 삼성각(三聖閣)을 큰법당의 뒷편에 건립하기도 한다. 그리고 불경을 보관하는 장소로서 경장(經藏)이라고도 하는 장경각(藏經閣)과, 불교의식의 기본법구인 종·북·운판·목어를 봉안하는 종각(鐘閣) 또는 고각(鼓閣)이 있다. 또한 절과 인연이 있는 고승석덕(高僧碩德)들의 초상화를 봉안하는 영각(影閣)이 있는데, 따로 지을 때도 있고 고승이 거처하였던 방을 영각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여러 승려들의 초상화를 함께 모시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주로 조사당(祖師堂)이라 한다.
참고) 석가삼존 --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미타삼존 --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약사삼존 -- 약사여래불: 일광보살, 월광보살
탑(塔)
법당이 있으면 탑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불교신앙의 원류를 고찰해 볼 때 법당보다도 탑이 먼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법당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상이 조성된 후에 지어졌다고 볼 수 있고, 탑은 불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불교신앙의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탑은 부처님 이전부터 인도에 있었던 것이지만 불교의 탑으로서 그 기원을 찾는다면 부처님을 독실히 신봉하는 한 제자가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그때에 그 제자는 "제가 세존을 떠나서 멀리 있는 동안 항상 부처님을 마음 속에 모실 수 있는 어떤 표증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머리카락을 잘라주시면서 그것을 탑과 같이 만들어진 곳에다가 넣고 모발이 들어 있는 탑 같은 형태에 항상 예불을 드리고 가까이 하면 된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때부터 사실상으로 불교의 탑의 원시적인 기원이 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 탑 중에는 대웅전 뒤에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탑이 있다. 이 경우 법당에는 부처님을 모시지 않는다. 이 때에는 당탑의 구분이 아니고 바로 부처님 사리를 모신 그 탑이 기본이 되고 본당이 되는 것이다.
요사(寮舍)
스님들이 생활하는 건물을 통틀어서 요사라고 한다.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 일하는 곳, 공부하며 기거하는 곳을 모두 요사라 하므로 사무실, 후원, 객실, 동사, 욕실 등이 모두 요사에 해당한다. 스님들이 수도하는 요사의 명칭은 여러 가지를 사용하며 현판을 붙이는데 올바른 행과 참선하는 장소라는 의미로 解行堂, 修禪堂이라는 현판을 붙이기도 하고, 지혜의 칼을 찾는 공부를 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심검당(尋劍堂), 부처님을 선출하는 장소라는 뜻으로 選拂場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문루(門樓)의 부속 구축물
절의 건물배치를 보면 모두 일정하지는 않으나 본사의 경우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지나서 일직선으로 보이는 법당을 만나게 된다. 법당에 도달하기 전에 강당이나 종무소를 지나기도 하며 좌우에 종각을 볼 수도 있다. 절 입구에 찰간(刹), 또는 당간(幢)이라 불리는 돌이나 쇠로 만들어 세운 기둥이 있다. 그 위에는 긴 쇠로 만든 깃대를 세워서 그 절의 종지와 寺格을 표시하였는데 지금은 이 찰간의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절에 들어서기 위하여 통과하는 문은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등이 있으며 절마다 조금씩 다르게 배치되어 있는데, 이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일주문(一柱門)
사찰에는 여러 가지 문이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산문 중 첫 번째 문은 일주문이다. 일주문[一柱門]이란 사찰에 들어가는 산문[山門]중 첫 번째 문이 기둥이 한 줄로되어 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네 곳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덮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에 세운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독특한 형식의 건축물이다.
일주문을 들어섬으로써 사실상 사찰 경내에 들어서는 것이고 부처님의 세계에 다다른 것이다. 일주문 앞에서는 멀리 본당[本堂]을 향해서 합장하고 반배를 올려야 한다.
기둥을 일렬로 세운 일주문이 상징하는 뜻은 모든 진리는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일심[一心]의 작용에 의해서 나타난다는 불교의 근본 진리를 나타내고 있다. 산과 바다세계와 인생 정신과 물질, 부처와 중생 너와 나 사랑과 미움 등 우주에 존재하는 정신적 물질적 모든 것이 일심 동체로서 그 근본은 오직 하나이지 둘이 아니라는 뜻이 일주문에 담겨있다. 모든 것의 근원은 오직 하나이며 둘이 아니라는 실상[實相]을 잘 알고 착하고 너그러운 본연의 허허로운 마음으로 부처님 앞에 나가야 한다. 일주문에는 보통 사찰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사찰 이름 앞에는 그 사찰이 자리잡은 산 이름도 함께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 이름을 사찰 앞에 붙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보기 : 운달산 금룡사, 지리산 실상사, 금정산 범어사
1. 같은 이름의 사찰을 구별하는 일종의 주소 역할을 한다. 보기: 보현사[普現寺] 충남 서산 사왕산 보현사
전남 고흥 팔령산 보현사
강원 양주 천후산 보현사
경북 청송 보현산 보현사
2.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액수리 백양산에 있는 백양사[白羊寺]는 白羊山 白羊寺 라고 하지 않고 大伽藍 白羊寺 라고 하였다. 절이 크다고 대가람이 아니라 대가람 이 되려면 다음 네 가지가 구비되어야만 한다. 백양사에는 그런 요건이 모두 다 갖추어 졌다고 한다. [1] 강원[講院] :경전을 전공하는 사원. [2] 율원[律院] :계율을 학습하는 사원. [3] 선원[禪院] :참선을 공부하는 사원. [4] 열반당 [涅槃堂] :병든 스님들이 입적할 때까지 거처하는 곳.
천왕문(天王門), 사천왕문
일주문을 들어서면 사찰의 수호신인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사천왕문(천왕문)이 있다. 사찰에 들어오는 산문[山門]중 일주문 다음에 있는 두 번째 문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곳으로써 여기에 사천왕의 조상이나 그림을 봉안하고 있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하던 귀신들의 왕이었는데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방의 지국(持國)천왕, 남방의 증장(增長)천왕, 서방의 광목(光目)천왕, 북방의 다문(多聞)천왕 등 사천왕은 여러 단계나 되는 천상계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천왕천이라는 하늘나라에 살며 그 나라의 왕인 제석천왕[帝釋天王]의 지시에 따라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이 세계를 크게 둘로 나누어 하나는 "깨달음의 세계[悟界]" "헤맴의 세계[迷界]" 로 나눈다. 이것을 다시 세분해서 십계[十界] 아래와 같다.
위의 내용과 같이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들의 6단계는 범부[凡夫]가 스스로 지은 업[業]에 따라 생사를 거듭하며 끝없이 윤회하는"헤맴의 세계" 이며 성문.연각.보살.불의 세계는 오랜 세월 수행 공덕으로 깨달음을 얻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난 성자[聖者]의 세계인 "깨달음의 세계"라고 한다. 미혹[迷惑]의 세계 가운데도 특히 지옥.아귀.축생은 삼악도[三惡道]라고 하는데 많은 고통이 따른 세계이다. 그러한 천[天]가운데 사천왕이 사는 사천왕천은 가장 낮은 천이라고 한다. 사천왕들은 수미산에 살면서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고 불도를 닦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다. 또 사천왕과 그 부하들은 온 천지를 돌아다니면서 이 세상의 선악을 모두 살펴서 그 결과를 매월 8일에는 사천왕의 부하들이 14일에는 사천왕의 태자들이 15일에는 사천왕 자신들이 제석천[帝釋]에게 직접 보고하는 중대한 일을 하고 있다.
인왕문(仁王門), 금강문(金剛門)
어떤 사찰에는 일주문과 사천왕문 사이에 사찰의 수호신으로서 인왕님이나 금강 역사를 안치한 문도 있다. 인왕님을 모신 문을 "인왕문" 금강 역사를 모신 문을 "금강문"이라고 한다. 본래는 인왕이 아니고 이왕 또는 집금강신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원래 인도에서 문을 지키는 신 이였다. 그 신을 불교가 수용해서 불상이나 사리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삼았기 때문에 인왕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인왕상은 주로 그림으로 등장하는데 왼쪽이 밀적 금강 역사[密迹金剛力士]이고 오른쪽이 나라연 금강 역사[那羅延金剛力士]이다. 밀적 금강 역사는 금강[金剛]의 무기를 갖고 항상 부처님을 수호하는 야차신 가운데 한 분이다. 그는 늘 부처님께 친근하기를 원하고 부처님 가까이 있기를 원하며 부처님의 비밀스러운 사적을 들으려는 원이 가득하므로 밀적[密迹]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나라연 금강은 천상에 있는 역사[力士]의 이름으로 그 힘이 코끼리의 100만 배나 되는 어마어마하게 힘이 센 분이다.
인왕문에는 주로 두 분 금강 역사를 모셨으나 나라연 금강 역사나 밀적 금강 역사 이외에도 다른 많은 역사들이 부처님을 수호하는데 인왕문이나 금강문이 마련되지 않은 사찰에서는 대웅전이나 극락전 등 금당의 벽면에 여러 인왕존의 모습을 그려서 부처님을 수호하도록 하고 있다. 무기로서 금강은 금강저[金剛杵]를 말하며 제석천과 밀적 역사가 가지고 있는 무기 이름이다. 이 세상의 무엇으로도 이를 파괴할 수 없지만 이 금강저로써 파괴할 수 없는 무기는 또한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금강저를 수행자의 정신력을 무장하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많이 쓴다. 이를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서가 아니라 번뇌를 부수는 무기 즉 보리심을 얻기 위해 번뇌 망상을 부수는 상징적인 무기로 승려들이 수행할 때 쓰는 도구로서 받아들였다. 여러 가지의 금강저를 금강 역사들이 들고 있다. 끝이 날카로운 것을[독고], 끝이 세 개로 갈라진 것을[삼고], 다섯 개로 갈라진 것을 [오고]라고 한다.
불이문(不二門)
사찰로 들어가는 문 가운데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이 불이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불법의 세계이며 부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둘이 아니고, 현재와 미래가 둘이 아닌 완전히 하나의 불법세계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불이[不二]라는 말은 " 둘이 아니다 " 라는 뜻으로 진리 그 자체를 표현한 말이다. 일체의 두루 평등하고 원만한 진리가 이 문을 통해서 재조명되고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된다는 뜻이다. 크나큰 근본 진리는 오직 하나이고 둘이 아니며 하나를 깨달으면 백 가지에 통달할 수 있다. [一通百通] 잘 생각해 보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생[生]과 사[死]가 둘이 아니며 부귀와 가난이 둘이 아니며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다. 그 나타난 결과는 다르게 보여도 근원을 찾아가면 모두가 하나일 뿐 다를 바가 없다. 생과 사가 다른 듯해도 생이 있으므로 사가 있고 생 속에는 이미 사라는 도달점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를 살았다 하는 것과 하루를 죽었다 하는 말은 사실상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 이와 같은 이치를 아는 불이[不二]의 경지에 도달하면 불[佛]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불이문에는 이와 같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불이문은 금당과 가장 가까운 곳에 만들고 그곳을 지나면 금당[金堂](부처님 계시는 집)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세우는 것이다.
해탈문(解脫門)
해탈이란 "풀려 나오다" 라는 말인데 번뇌에 묶인 상태에서 풀려 나오며, 미혹[迷惑]의 고통에서 풀려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별것 아닌 것에 집착해서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고 또 자기가 만든 괴로움에 구속되며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실상을 바로 보고마음을 고쳐먹으면 모두가 별것 아닌 것들인데 그것을 못 하고 눈앞의 자질구레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늘 그늘진 인생을 보내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것은 모두가 자기의 마음 탓이며 바로 어리석은 집착 때문에 해탈하지 못한 탓이다. 실상을 바로 깨닫지 못한 탓이다. 해탈문은 그 문을 통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같은 모든 번뇌와 미혹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라는 상징적인 문이다. 해탈에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이 있다. 심해탈은 마음속에 가득한 탐욕과 집착을 없애서 허허롭고 자유로운 해탈의 경지에 들어가는 의미이며, 혜해탈은 지혜에 의해서 어리석은 무지에서 벗어나 만물의 실상든 번뇌에서 해탈하라는 말이다.
첫댓글 어렵지만 그래도 나름 해석하며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돌아서면 뭔소린지...ㅎ
고운날 되세요
참 으로 공부ㅡ를많이해야하는구나생각이듭니다~~ 감사합니다,,
돌아서면 헸갈리니 큰일 입니다 ㅎ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