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도의 염전과 마을을 둘러 본 다음, 승호는 다시 일을 하러 염전으로 갔고 난 해발 100m 정도 되는 무녀봉 일대와 안쪽 마을을 둘러보았다. 작은 섬으로만 알고 갔던 무녀도에는 식당과 횟집, 민박집에 여러 곳 있었고, 통닭과 맥주를 파는 곳도 있었다.
논과 밭은 물론 어업이 많은 지역이라 곳곳에 굴을 까는 아주머니들의 모습과 갯벌에서 작업을 하는 어민들이 모습도 보였다. 낮선 관광객이 카메라를 들고 다녀도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는 외지인이 많이 찾나보다.
작은 교회와 초등학교, 제방, 정수장 등을 한 시간 정도 둘러 본 다음, 승호가 있는 무녀도염전으로 다시 돌아갔다. 난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승호랑 같이 자면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는데, 승호는 선착장 인근에 민박집을 예약해 두었다며 나를 그곳으로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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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녀도의 민박집 참 크고 좋은 집이다.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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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입구에 위치한 민박집은 섬에서는 쉽게 볼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잘 지은 양옥집이었다. 200평 정도는 되어 보이는 마당에 50평정도 되어 보이는 집에 방4개, 화장실2개, 거실과 앞 뒤 베란다까지 너무 잘 지은 별장 같은 집이었다.
마당에는 개와 고양이, 닭이 여러 마리 있고, 꽃과 나무도 많은 것이 70대 중반의 노부부만 살기에는 왠지 규모가 커 보였지만, 승호가 구해준 민박집에서 난 편안하게 쉴 수 있어 좋았다.
승호랑 나, 그리고 주인 어르신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섬이라 그런지 해산물 반찬이 많았다. 나는 굴을 넣은 된장국과 굴비를 발라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승호는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는 슈퍼에 가서 맥주와 굴을 한 접시 사왔다.
술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지만, 오랜 만에 친구가 사온 맥주와 굴 안주가 좋아 각 1병씩 맥주를 마시고 방으로 들어갔다. TV를 잠시 보다가 두어 시간 승호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모친이 돌아가시고, 갓 20살을 넘겨 부친이 가신 승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철물점 점원, 가방공장 시다, 양식요리사, 한식요리사, 어부, 김 양식장 인부 등을 거쳐 작년부터 염전에서 일하고 있다.
여동생 둘은 어린 시절부터 식모살이를 하면서 고생을 했고, 바로 아래 여동생은 스물 살을 넘기고는 바로 시집을 가서 안성에서 아이 3명을 두고 농사를 짓고 살며, 막내 여동생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온전하지 못해 신탄진에 있는 요양원에서 10년째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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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유도 초중학교 터가 좋은 곳이라 사진을 한장 찍어 달라고 한 친구 지승호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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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부모하여 지금까지 고생을 하면서도 40대 중반의 나이에 장가도 가지 못한 승호를 보면서 난 눈물이 났다. 온전하지 못한 막내 여동생 이야기와 식모살이하면서 고생한 여동생 이야기를 할 때는 승호도 눈물이 나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난 20년 넘게 승호의 소식을 알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늦은 시간 전화를 하여 승호와 통화를 하게 해 주었고, 승호도 오랜 만에 친구들과 전화를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많이 했다.
10시가 넘어 승호가 내가 불편해 할까봐 자기는 집으로 돌아가 자겠다고 하여, 난 혼자 잠자리에 들었다. 오랜 만에 만나 같이 자면 좋을 것을 승호는 내가 불편해 할까봐 혼자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아침 일찍 오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승호의 마음이 고마웠지만, 난 서운했다.
낯선 잠자리가 불편하기는 했지만, 공기가 너무 좋고 조용한 곳이라 큰 어려움 없이 아침까지 잘 잤다. 10일 아침 7시 30분, 승호가 나를 깨우기 위해 왔다. 난 급히 세수를 하고는 승호랑 같이 어르신들과 식사를 했다. 아침 해산물 반찬도 무척 좋았다.
식사를 마친 승호와 나는 다시 무녀도염전으로 돌아가 직원 분들에게 인사를 했고, 소금 5포대를 택배로 주문하고는 선유도로 갔다. 사실 선유도에는 혼자 가려고 했지만, 첫 배가 있는 1시 반까지 승호가 애써 선유도 안내를 하겠다고 하여 함께 섬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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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유도해수욕장 모래가 참 좋은 곳이다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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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는 고군산군도의 중심이라고 할 정도로 큰 섬이었다. 섬의 북단에 해발 100여m의 선유봉이 있는데, 그 정상의 형태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선유도라 불린다.
고려시대에는 여 송 무역로의 기항지였을 뿐만 아니라, 최무선이 왜구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진포해전 기지였고, 임진왜란 때는 함선의 정박기지로 해상요지였다.
원래 이름은 군산도였으나 조선 초기에 창설된 수군진영이 세종 때 옥구현 북쪽 진포로 이동하면서 '군산'이란 명칭까지 옮겨감으로써 이곳을 '고군산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는 3개로 분리된 섬이었으나 중앙에 긴 사주가 발달되면서 하나로 연결되었다. 선유도해수욕장과 옛날 유배되어 온 충신이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한양 땅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하였다는 망주봉이 있는데, 나는 망주봉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초중학교와 교회, 우체국, 파출소, 해수욕장도 여러 곳, 보건소, 슈퍼와 민박, 식당 등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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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갈밭인 해수욕장도 있다 선유도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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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4시간 정도 있어서 천천히 걸어서 섬을 돌았다. 섬 입구의 수군절제사 선정비와 비석군, 이순신 장군이 잠시 다녀간 터, 해수욕장, 학교, 우체국, 파출소 등을 보았다. 선유1구에서 2구로 가는 길에 있는 선유도해수욕장에는 정말 모래가 고왔다.
나는 망주봉이 마음에 들어 자꾸 사진을 찍었고, 승호는 임산부의 누워있는 배 위에 자리한 학교터가 좋다면 사진 한 장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남서쪽에 있는 장자도와는 장자교로 연결되어 있어 쉽게 왕래할 수 있어 좋았다. 멀리서 사진을 많이 찍었고, 장자도 방문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난 섬 안쪽의 자갈밭으로 유명한 몽돌해수욕장까지 가려고 했지만, 바람이 많고 날이 추워 섬을 반 바퀴 정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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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주봉 돌산이 봉우리가 두 개라 특이하다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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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기 직전 천천히 점심을 먹고 승선을 하려고 했는데, 1시 30분에 있는 줄 알았던 배가 12시 30분에 출발을 한다고 하여, 물 한잔 마실 틈도 없이 승호를 안아보고 배에 오른 뒤 군산으로 향했다.
날이 따뜻해지고 염전에 일이 많아지는 5~6월 경 가족과 함께 다시 무녀도에 갈 생각이다. 아름다운 섬 무녀도와 선유도를 가족과 함께 느끼면서, 염전 일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승호를 다시 만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