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목장에서 일하는 규례들
사도행전 20:25~38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전도단 일행과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밀레도 항구에 들렀을 때에 거기서 백 리 정도 떨어진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그들에게 고별설교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지난 주일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당부한 초반부 말씀에 이은 말씀으로서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인 에베소 장로들에게 교회를 섬기는 바른 규례들을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직분자들이 어떻게 섬겨야 할 것인가 또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인 교회에서 어떻게 일하며,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배우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자기가 복음 전파자로서 마땅히 전할 말을 다 증거했노라고 이야기합니다.
25절로부터 27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약 1년 내지 1년 반 정도 이전에 말씀을 증거하던 에베소 교회에서 그가 세운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불러놓고 이제 다시는 그들과 얼굴을 직접 보게 될 날이 없을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이는 그가 앞으로 예루살렘에 들른 후에 로마에 들러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서바나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파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시 에베소에 갈 일이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 입장에서는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는 앞으로 다시 보게 될 일이 없을 것이기에 이번 담화는 매우 진지한 말씀입니다. 실제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다가 풀려나서 지중해 연안의 여러 교회를 순방하면서 성도들을 독려하며 전도할 때에 에베소교회에 재방문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나와 교회들을 순방할 때 에베소에서 목회하도록 머물게 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쓴 편지 디모데전서 1:3 말씀에 보면 그러한 근거가 있습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디모데전서 1:3,4)
사도 바울은 디모데와 더불어 에베소교회에 들러서 잠시 가르치다 보니, 그 교회 지도부에 있는 어떤 사람들 곧 장로들 중에 일부가 다른 교훈을 가르치고 신화와 족보에 몰두하여 성도들을 미혹케 하는 자들이 있음을 보고 필요상 마게도냐로 자기는 떠나지만 디모데를 에베소교회에 머물도록 남겨두었던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밀레도 회동 이후에도 에베소 교회를 다시 방문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20장에서 밀레도에 있는 사도 바울은 장차 멀리 있는 로마와 서바나에 선교차 떠날 계획이었고 에베소 교회에 다시 방문할 계획이 없었으므로, 이렇게 다시 에베소 장로들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별의 당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자기는 그들 장로들에게나 그 에베소 성도들의 피에 대하여 자기는 깨끗하다고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전했고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하여 남김없이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에베소의 장로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저버리거나 마땅히 전해준 교회를 섬기는 법도에서 벗어나 배교의 길로 가거나 타락하여 악한 길로 간다면 그것은 자기들의 잘못이요 자기들 스스로 행한 일이기에 사도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영혼의 멸망에 대하여는 아무런 책임이 없노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에스겔서 3:16 이하의 말씀에 나오는 바 파수꾼의 사명에 대한 말씀에서 나오는 표현입니다.
만약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 악인을 깨우치라 했는데 내버려두고 그 말을 전하지도 아니하여 그 악인이 죄악 중에 멸망한다면 하나님은 그 영혼의 피 값에 대하여 선지자로 부름받은 영혼의 파수꾼인 에스겔의 손에서 찾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에스겔 선지자가 악인을 깨우치고자 증거했으나 그 악인이 돌이키지 아니하여 그가 죄악 중에 죽으면 선지자는 깨우치는 일을 했기에 생명을 보존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러한 파수꾼의 사명을 받은 선지자와 같이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의 지도자들에게도 맡은 사명을 감당하라고 지침을 엄중하게 주었으므로, 만약 듣지 아니하고 순종치 아니하고 악을 행한다면 그들은 죄악 중에 죽으려니와 자기는 그들의 피 값에 대하여 자기의 손은 깨끗하다고 여기서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이 고백에서 우리가 생각할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받은 바 장차 올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하여 전혀 증거하지 않고, 그들에게 장차 임할 심판을 경고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에 대하여 전혀 전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믿지 않는 죄악 중에 그대로 멸망하게 된다면, 그 사람의 생명의 피 값에 대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책임을 묻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변에 마음이 완악한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나 동료나 이웃에게 듣든지 아니 듣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최선을 다하여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혹시 이 복음 전도 때문에 인간 관계에 어려움이 생기고 멸시와 무시를 당하는 일이 생길 수 있으나 진지하게 명확하게 복음을 전하고자 노력합시다. 그리하여야 우리는 그 영혼의 피 값에 대하여 우리가 깨끗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열매 맺는 것은 정말 적지만 기이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씨 뿌리는 수고를 통하여 어떤 사람에게는 때가 되면 발아가 되고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에게 붙여주신 영혼들에 대하여 우리 손에 그 피가 남아 있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전도의 기회를 만들어서 계속 전도하기를 부탁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그 에베소 장로들에게 교회를 돌보는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당부합니다.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사도는 자기가 친히 안수하여 세운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다시 한번 그들의 직분의 막중한 책임 의식을 일깨워 줍니다. 그들의 사명은 교회를 보살피는 일입니다. ‘보살핀다’라는 단어는 헬라어 ‘포이마이노’로서, ‘목자가 양을 친다’, ‘목자가 양떼를 먹인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목사’라는 단어도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목사는 양을 치는 목자처럼 하나님의 양떼들인 성도들을 말씀으로 먹이고 기르고 하늘 목장인 천국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도록 명을 받은 영적인 목자인 것입니다. 이 에베소의 장로들은 사도의 명을 받아 그 지역 교회를 맡아 양떼를 치는 목사들입니다.
그들 장로를 향하여 사도는 경고하기를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였습니다. 원문에는 “자기를 위하여 그리고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자기 통제입니다. 목회자와 교회의 일꾼들은 항상 자기를 근신하여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양떼 곧 자기의 피로써 값을 지불하여 세운 교회를 위하여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세운 직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양들은 자기 양떼도 아니요 하나님의 양떼요 교회도 자기 목장도 아니요 하나님의 목장이요 그들은 자기 스스로 목자가 된 것도 아니요 목자장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임명하여 세운 위임받은 목자이기에, 그들은 목자장의 뜻을 따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써 값을 주고 세우신 교회를 정말 근신하는 자세를 가지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목회자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교만하고 안일하고 양떼들을 함부로 해치고 하나님의 목장인 교회를 목자장이신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이 이끌어간다면 그는 큰 심판을 받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들과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인 장로들과 교회의 직분자들은 자기를 늘 살피고 절제하며 자기의 직임을 잘 감당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나와 마게도냐에서 머물면서 에베소에 머물러 목회하여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 성도들을 잘 지도하도록 명한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 보냅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디모데전서 4:7~16)
여기서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에서 목양할 때에 무엇보다 디모데 자신의 경건을 위하여 계속하여 진력을 다하라고 권면합니다. 양을 치는 목자가 경건에 이르도록 개인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믿는 자들에게 말이나 행실이나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본이 될 수 없을 것이며 그의 모든 가르침의 사역에도 아무런 권위가 따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래서 마땅히 주의 종은 그의 영적, 정신적, 도덕적 성숙함을 추구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자신과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양무리를 치는 그 목양의 직분을 충성스럽게 도모함으로써 자기 자신도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은 교회를 섬기는 자로서 자기 자신을 무엇보다 삼가고 개인 경건을 위하여 늘 힘을 써서 날마다 성숙해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고 우리 곁에 있는 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구원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기를 늘 쳐서 복종케 하고 믿음과 사랑과 정절과 겸손의 말과 행실에 있어서 날마다 주님 닮아가는 성숙의 진보를 이루는 저희 모두가 됩시다.
그러면서 사도는 그 에베소 장로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경고를 줍니다. 그것은 에베소 교회에 장차 사나운 이리가 들어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이리떼 말고도 그 장로들 중에서도 변질되어 양떼들을 해치는 거짓 교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29절로부터 30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하나님의 목장인 교회에는 목자와 양떼만 있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양떼를 노리는 이리 곧 늑대들이 늘 주변에 서성거리며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목자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사이거나 양이 목자를 떠나 무리에서 떨어지거나 혹은 밤중에 양우리의 빈 틈이 있는가를 살펴서 기어들어오거나 울타리를 뛰어넘어 와서 양떼를 해칩니다. 우리 주님께서 자주 이르신 바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마태복음 7:15 말씀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선한 목자인 척하지만 그 속에는 영혼을 더럽히고 삼키려는 늑대의 악한 마음을 갖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화려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호리고 자기들의 신분이나 출신을 과장하여 사람들을 현혹하고 당장 세상적인 어떤 대단한 축복을 받을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깁니다. 그리고 교리를 교묘하게 비틀어서 자기를 우상화하며 자기가 가르친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하면 구원이 없다고 속입니다. 그리하여 화려한 말솜씨와 종교적 연기력을 통하여 사람들을 끌어가고 교회 안에 혼란을 일으킵니다. 사도는 이러한 이리들이 에베소 교회에도 찾아올 것이라고 경각심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사도가 그들에게 경고한 바는 사도 앞에서 당부의 말을 듣고 있는 그 에베소교회 장로들 중에서도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사람들을 현혹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려는 거짓 교사들이 장차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마 이 말을 듣는 그 에베소 장로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절대로 그럴 일은 자기들 중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말씀들은 지나친 사도의 염려 탓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밀레도의 회동 이후 5~6년 후에 쓴 사도 바울의 디모데전서 편지에 보면 실제로 그러한 일이 에베소 교회에 일어났습니다.
디모데전서 1:18 이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라는 사람들의 이름이 여기서 거론되거니와 디모데후서 1:15 말씀에, “부겔로와 허모게네”라는 이름도 나오고, 디모데후서 2:17에서는 “후메내오와 빌레도”라는 배교자와 타락자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들은 양심이 깨어졌고 참 교리에서 이탈하였고 교만하여 사도 바울을 대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로 변질되었습니다.
이렇듯 에베소 교회나 하나님의 참 교회에서 언제나 이러한 변질자들이 일어나며 타락자들이 일어나는 것은 마치 목장 부근에 이리들이 양떼를 노리고 양우리를 틈타 들어오려는 것과 같고, 진실한 목자들 말고도 돈을 받고 양들을 이리떼에게 내버려두는 삯꾼 목자들이 생기기 마련인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0:11 이하에서 이르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해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한복음 10:11~15)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의 종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목장을 잘 돌아보고 양떼를 잘 돌볼 뿐 아니라 양을 해치고 죽이고 빼앗아 달아나려는 이리떼들을 늘 조심하여 경계해야 합니다. 이단과 사이비들이 양떼들을 도적질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양떼들인 성도님들 역시 너무 목자 곁에 멀리 떨어져 홀로 지내지 말고 늘 목자 곁에 가까이 머물러서 꼴을 먹어야 합니다. 혼자 떨어져서 이것 저것 먹다가 독초를 먹어 쓰러져 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울타리 구멍난 곳을 찾아 밖으로 나가 남의 울타리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한 마리 양이 이런 일을 하면 곧 다른 양들도 따라 가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다가 그만 양들이 길을 잃고 도적질하는 이리에게 잡혀 먹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함부로 다른 교회에 다니지 말고 본교회에 충실하게 모여 예배 생활에 충실하기 바랍니다. 좀 현대적인 것 같고 좀 세련된 것 같은 교회들도 있고 시스템이 좋은 교회가 있어도 눈 돌리지 말고 불러주신 본 교회에서 내적 신앙을 더 충실하게 잘 가꾸어가고자 힘쓰기 바랍니다.
그리고 에베소교회의 일부 목자들이 후에 변질된 것처럼 변질되지 않도록 여러분 모두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청한 것처럼 저도 여러분들에게 간청합니다. 늘 주의 종들을 위하여 늘 기도해주셔서 혹시라도 변질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맡은 바 주님의 목장을 잘 돌보고 양떼를 잘 섬기다가 후일에 목자장 앞에 설 때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는 목자들이 되도록 끝까지 항상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맡깁니다.
31절로부터 3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사도 바울은 이제 다시는 얼굴을 보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을 앞두고서 그들의 영적인 안위를 염려하면서 그들을 가장 든든하고 확실한 보증인에게 맡깁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삼년 동안 에베소 교회에서 머물면서 그들에게 전파하였던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과 그가 그들에게 눈물로 가르쳤던 사도적 훈계들입니다. 사도는 그들에게 자기를 믿으라고 권면하지 않았고 어떤 성령의 은사를 믿으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도는 그들에게 자기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삼년 동안 눈물로 가르친 그 훈계들을 기억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들을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게 그들의 영혼을 위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야말로 그 듣고 믿는 자들을 든든하게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장차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곧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 영원한 기업 곧 천국을 상속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인간 목회자를 믿지 마십시오. 교회당 건물의 크고 화려한 외적인 모양도 믿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대단한 세 과시를 한다고 해서 그 교회 성도들의 교세도 믿지 마십시오. 진정 우리들을 저 천국 백성으로 끝까지 인도하는 가장 완전한 인도자는 하나님이시며 우리 주님의 은혜의 십자가 대속의 복음과 사도들이 남긴 훈계들인 경건의 가르침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여기서 말한 바대로 우리도 오직 우리를 능히 저 썩지 않는 영원한 기업의 상속자로 세워갈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착념합시다. 날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가까이 하고, 주님의 목장인 교회에 나와 주께서 심부름꾼으로 세우신 주의 종의 입술을 통하여 선포되는 말씀에 귀 기울여 그 말씀을 붙드십시다. 그리할 때 그 복음의 말씀과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그 훈계들이 우리 영혼을 붙들어주므로, 우리로 길 잃지 않고 새 힘을 얻고 끝까지 천국 들어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는 에베소 장로들에게 물질 문제에 대하여 훈계를 남깁니다.
33절로부터 35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도 바울은 여기서 목회자로서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서 청렴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에베소에서 목회할 때에 일체의 탐욕을 부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에 은금의 보상을 바라지 아니하였고 화려한 의복을 탐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도리어 그는 그렇게 바쁜 중에도 두란노 서원에서 대낮의 낮잠 시간을 빌려서 설교 사역을 하였고 아침이나 저녁에는 장막 만드는 일을 계속하면서 돈을 벌어서 자신과 선교단 일행의 경비를 조달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사도는 그 남는 돈들을 약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사용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사도 바울이 행한 이런 사역을 자비량 사역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오늘날 선교의 최 일선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이 직업을 가지고 가서 사역하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이슬람이나 힌두교나 토착 종교가 강한 지역에 가서 현지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접촉점을 늘려가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웃과 친구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파하면서 선교사 신분을 숨기고 생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극히 선교가 어려운 지역에서 지금도 이렇게 자비량 선교를 하는 선교사님들이 계십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힘을 내어서 물질과 기도로 후원하면서 선교의 열매를 맺도록 후방에서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선교 지역이 아니고 기독 교회가 이미 세워진 상황에서는 사도와 같이 자비량 선교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설명한 대로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주의 종들은 성도들이 교회에 드리는 헌금을 통하여 생활비를 받아서 목회에 전념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복음적인 사역 형태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가 가르쳐주신 대로 주의 종들이 물질에 대한 탐심을 가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은금을 탐하고 좋은 옷을 탐하고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재정적 보상을 갈망하는 자는 주의 종의 본래적 자세에서 이탈한 자입니다. 그것은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종들의 열매가 아니라 양들을 팔아 먹고 양들을 잡아 그 고기를 먹고 그 가죽을 팔아서 자기 배를 채우는 삯꾼 목자의 못된 열매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이르신 말씀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의 ‘평지 설교’가 나오는데 주님께서 거기에서 이르기를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즉 이렇게 베풀고 나누어주고 약한 자를 돕기를 힘쓰는 것이 목자의 마음이어야 하고 주의 백성들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 세상의 풍조는 더 많은 물질을 갖고 남보다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도록 부추기고 있지만 우리가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함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가진 바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하게 여기고 할 수 있는 한 나누고 베푸는 일에 동참합시다. 그것이 우리의 영혼의 터를 굳게 하고 장차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에 큰 상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길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의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여 그 진지한 가르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장인 교회 곧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써 값을 지불한 하나님의 목장은 참으로 지극히 소중합니다. 이 교회의 양떼들은 목자장이신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 앞에 한 영혼 한 영혼이 너무나 귀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 목장을 치도록 목자들을 성령께서 구별하여 불러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들은 자기의 양이 아니고 주님의 양들이므로, 목자장이신 주님의 법도를 따라 주님의 직속 종인 사도의 지침을 따라 목양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목장에서 각각의 직분을 맡아 교회를 섬기며 양떼를 돌볼 때에 우리는 항상 자기를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자기를 삼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우리의 생계를 버는 세상 직장과 다릅니다. 자기 마음에 안 맞는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 그만인 곳이 아닙니다. 주님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딴 교회 가버리면 그만이라면서 떠나버리면 되는 곳도 아닙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 주님께서 불러주셔서 섬기도록 부름받은 주의 목장인 교회에서 양들을 섬기는 겸손하고 근신하는 목자의 사명들을 각각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목장 주변에는 양을 노리는 이리들이 기회를 엿보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단과 사이비들에 속한 자들이 틈타지 않도록 잘 살펴 보아야 하고 혹시 들어오면 분별하여 내쫓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변질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항상 겸손하고 또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도가 말한 바대로 우리의 영혼을 끝까지 지켜 천국으로 인도하는 힘은 주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훈계들이므로, 우리는 인간 지도자에 너무 매달리지도 말고 외적인 교회의 세력에도 휘둘리지도 말고, 우리 영혼을 든든히 세워 끝까지 인도할 하나님 말씀을 늘 꼭 붙들고 순종하여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힘씁시다.
그리고 물욕을 조심하고 영혼의 부요함을 늘 추구하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친히 이르신 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누가복음 16:9)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재물로 선행과 구제와 복음 전도 후원을 위하여 사용함으로써 그 재물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영원한 친구가 되어 줄 것이며 천국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보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사도가 가르쳐준 바 하나님의 목장에서 일하는 규례들을 늘 기억하면서 모든 일에 정진함으로써 하나님의 목장을 잘 세워감으로써 장차 목자장이신 주님으로부터 귀한 칭찬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