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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 체계는 거버넌스의 핵심 요소로 한 조직의 정체성과 건강성을 결정짓는다. 교회에서도 의사결정 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부정적 사건들로 인해 한국 교회의 의사결정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 문제를 계속 방치한다면 교회의 신뢰는 크게 훼손될 것이며 그만큼 신뢰 회복의 가능성도 낮아질 것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 의사결정의 현주소를 내·외부적 시각에서 평가해 보고, 문제점에 대한 근본 원인을 진단하며, 성경적 원리에 부합한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내부자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 의사결정의 현주소
《한국 교회 트렌드 2024》 설문조사 결과는 한국 교회의 의사결정 체계가 목회자에게 상당한 수준으로 집중돼 있음을 보여 준다. 응답자의 68.4%가 의사결정이 목사와 장로들에게 집중돼 있다고 응답했고, 58.5%는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목회자가 한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교회 내 다양한 사역과 사무처리 관련 의사결정에서 성도들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79.6%에 달했다. 물론 수렴된 성도들의 의견이 의사결정에 얼마나 반영됐지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성도들이 의견을 제시할 기회는 있으나, 실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 됐든 교인들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만족도는 78.5%로 높게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응답자의 82.4%가 교회가 의사결정 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했으며, 80.3%는 성령님의 인도를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고 논의하면서 확인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교회의 의사결정이 신앙적이고 영적인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고 믿는 신앙적 요인이 작용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동시에 성령님의 인도를 목회자를 통해 확인한다는 응답이 72.9%였다. 성령님의 인도를 강조하면서도 목회자를 통해 확인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은 결국 목회자의 해석과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이는 목회자의 의사결정 권한이 영적 권위로 받아들여지며, 교인들이 이에 대해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준다.
한편, 다양한 세대와 직분자들이 참여할 기회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70%였지만, 청년의 참여가 충분하다는 응답은 58.3%로 나타났다. 이는 일부 소수 그룹이 의사결정에서 소외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말해 준다. 그런가 하면, 의사결정과 관련된 소통 측면에서 교회가 의사결정 과정을 성도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75.6%를 나타냈지만, 의사결정을 충분한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경우가 많다는 응답도 44.2%로 나타났다. 이는 교회가 의사결정 내용을 성도들과 공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교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 내 실질적 의사결정 권한은 목회자와 장로에게, 그 중에서도 목회자에게 좀 더 집중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목회자의 권한이 영적 권위로 정당화되는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도 실제로는 목회자의 분별력과 판단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부자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 의사결정의 현주소
그렇다면 외부자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 의사결정의 현주소는 어떠할까? 챗GPT에게 한국 교회 의사결정의 두드러진 특징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챗GPT가 내주는 답변은 우리 사회에 축적돼 있는 공개된 자료들을 기반으로 생성한 내용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의 인식을 어느 정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챗GPT의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사회 구성원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 될 것이다. 챗GPT가 답한 한국 교회 내 의사결정의 특징과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권위주의적 구조가 강하다. 많은 한국 교회에서 목회자가 의사결정의 중심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목회자가 교회의 영적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행정적, 재정적 결정까지 주도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구조는 교회 내에서 목회자의 권위가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권위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구조는 교회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저해하며, 교인들의 참여를 제한한다.
둘째, 재정 운영의 불투명성이다. 한국 교회에서 재정 운영의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교인들이 교회의 재정 내역을 충분히 알지 못하고, 일부 목회자나 리더들이 재정을 불투명하게 운영하는 사례가 존재한다. 이는 재정 비리와 부정 가능성을 높이며, 교회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 재정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셋째, 민주적 의사결정의 부족이다. 교회의 중요한 결정을 목회자나 소수 리더가 독단적으로 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여러 교인의 경험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교인들의 의견 수렴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주요 의사결정이 탑다운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는 교회 내부의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역할의 부족이다. 많은 교회가 교인 수 증가, 재정 문제, 교회 건축 등 내부적인 목표에 집중하면서, 사회와의 소통과 참여는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며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성경 해석에서 개인 구원과 영적 성장에만 치중하고, 사회적 정의와 공동체의 복지를 강조하는 부분을 소홀히 한다.
챗GPT가 요약해 보여 준 특징은 사회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와도 결을 같이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조사한 “2023 한국 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 주는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21%에 불과하며, 74%는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특히 무종교인의 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전체 평균의 절반인 10.6%에 불과했다. 이러한 결과는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크게 상실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응답자의 69.6%는 한국 교회가 미래 사회에 기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60%는 교회가 사회 공동의 이익보다 교회 교리를 우선시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러한 전반적인 신뢰도 하락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교회를 떠나는 현상을 심화시킨다. 한국갤럽이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대의 개신교 인구 비율이 2014년 18%에서 2021년 14%로 크게 감소했다. 인정하기 어렵지만, 이상의 결과는 한국 교회 내 의사결정의 누적적인 결과가 대외적으로 빚어 낸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교회 내 의사결정에 대한 내부자의 인식과 교회 밖 외부자의 인식 간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이는 사회 구성원의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하락하고 사회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지만, 교인들은 자신이 소속한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교인들은 교회의 기존 관행에 익숙하고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부족할 수 있다. 또한, 교인들은 신앙적 가치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에 널리 퍼져 있는 성직주의와 가부장적 유교 문화가 강하게 작용해 목회자의 영적 권위가 절대화된 것도 이러한 경향에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목회자 중심 의사결정의 한계와 위험성
교인 대상 설문조사와 챗GPT에 비친 한국 교회 의사결정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된 특징은 목회자 중심의 의사결정이라 할 수 있다. 챗GPT가 추출한 특징 중 두 번째부터 네 번째 특징은 목회자 중심의 의사결정 관행에서 파생돼 나타나는 특징이라 볼 수 있다. 목회자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는 신속한 결정과 일관된 비전 실행이라는 장점이 있다. 위기 상황에서 빠른 대처가 가능하고, 목회자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교회가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의사결정 관행이 장기적으로는 부메랑이 돼 목회자 자신과 교회의 건강성은 물론 대(對) 사회적 신뢰를 훼손할 위험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권력의 집중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교회의 많은 경우 목회자는 교회의 영적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행정과 재정까지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다. 이는 교회 내 대부분의 결정이 목회자에게 집중되며, 권력 남용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목회자의 결정이 절대화되면서, 교인들은 비판적 사고와 견제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교회의 의사결정은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둘째, 교회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 재정 운영이나 인사 문제 등에서 목회자의 독단적인 결정이 이뤄질 때, 이는 교회 재정의 불투명성과 불공정한 인사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교인들은 교회의 재정 내역이나 의사결정 과정을 알지 못한 채, 목회자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는 교회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해치고, 교인 신뢰를 떨어뜨리며, 교회 내부의 잠재적 불만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셋째, 성도들은 수동적 참여자가 돼 교회 운영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못하게 된다. 성도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고, 분별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게 되면, 교회는 영적 성숙과 활력을 상실한다. 이는 교회 공동체의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다양한 문제에 대한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장애가 된다.
끝으로, 교회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저해한다. 목회자의 권위가 절대화되면서, 교회 내 다양한 의견과 관점이 무시되거나 배제될 수 있다. 이는 교회가 목회자의 관점이나 이념에 편향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며, 교인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닫힌 체계로 전락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외부 변화와 도전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점차 시대에 뒤처진 조직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이성의 빛으로 근현대 과학기술문명을 이끌었던 계몽주의가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도구적 이성에 경도돼 결국 인간성 상실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교회 내에서도 유사한 폐해가 나타날 수 있다. 목회자 중심의 의사결정은 목회자의 역할과 책임의 중력을 고려할 때 교회의 관리와 성장, 운영의 효율성, 선교의 확장 등 양적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 가치를 강조하기 쉽다. 이는 본의 아니게 교회의 또 다른 본질적인 목적을 훼손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 속에 배태된 소중한 가치,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 등을 간과하게 만든다. 교회는 현대사회의 효율성과 성장 위주의 가치관에 대응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고, 성도들이 복음 안에서 총체적 삶을 회복하고 독립적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 의사결정의 패러다임 전환
한국 교회는 목회자 한 사람의 판단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재의 의사결정 구조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한 개인, 즉 목회자가 하나님의 뜻을 완벽히 알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성경적 가르침과도 배치된다. 이사야 55:8-9에서는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름이니라 …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니라”라고 말씀한다. 또한 고린도전서 13:12에서 바울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라고 기록한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에 있어서 우리 모두 인간 인식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해야 함을 시사한다.
의사결정 이론 중에는 이상의 성경적 관점과 궤를 같이하는 이론이 있다. 허버트 사이먼이 제안한 ‘제한된 합리성 모델’(Bounded Rationality Model)이 그것이다. 사이먼은 인간이 완전한 정보와 무한한 계산 능력을 갖추고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전통적 합리성 모델의 가정이 비현실적이라고 봤다. 대신 인간은 정보와 시간의 제한으로 인한 ‘제한된 합리성’을 바탕으로 만족스러운 수준의 결정을 내린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제한적 조건 하에서의 의사결정은 그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과 정보를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며, 최적의 완벽한 해결책보다는 합의할 수 있는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것이 더 현실적임을 강조한다. 그뿐 아니라, 이미 내린 결정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필요시 재검토해 보완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교회의 의사결정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제한된 분별력’을 인정하고 다양한 구성원의 참여와 숙의 과정을 통해 대안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교회가 의사결정을 할 때 완벽한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기도와 토론을 통해 현재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러한 접근의 좋은 예다. 초대교회는 중요한 신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고, 사도들과 장로들이 함께 논의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이는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수렴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접근법은 ‘집단지성’의 개념과도 맥을 같이한다. 집단지성은 여러 장점을 가진다. 다양한 관점의 통합으로 더 균형 잡힌 결정이 가능하고, 구성원들의 참여로 인해 결정에 대한 수용성과 실행력이 높아진다. 이러한 집단지성의 활용은 교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중요한 원칙이 될 수 있다. 이는 목회자의 비전이 더욱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책임이 분산돼 목회자 개인 부담이 줄어들고, 공동체 전체의 영적 분별력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공동체 전체의 지혜와 영적 분별력을 활용함으로써, 목회자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했을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할 수도 있다.
물론 집단지성을 활용한 의사결정에도 단점은 있다. 의사결정 과정이 길어질 수 있고, 때로는 명확한 결론 도출이 어려울 수 있다. 또한 다수 의견에 휩쓸려 소수의 중요한 의견이 무시될 위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들은 적절한 제도와 문화를 통해 보완될 수 있다. 회의에서 지켜야 할 프로토콜 공유, 소수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 필요시 신속한 결정을 위한 비상 의사결정 체계 등을 마련할 수 있다.
제한된 합리성을 전제로 한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의사결정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효과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는 교회의 본질, 즉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지체가 각자의 역할을 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건강한 공동체.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다. 현재 한국 교회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 - 세대 갈등, 사회적 신뢰 하락, 역성장 등 - 은 더 이상 한 사람 혹은 소수 리더의 지혜로 해결하기 어렵다. 이제는 공동체의 지혜를 모으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함께 구하는 새로운 의사결정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다.
성직주의, 한국 교회 내 ‘방 안의 코끼리’
한국 교회 의사결정 구조의 개혁을 가로막는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는 과연 무엇일까? 여기에서 말하는 ‘방 안의 코끼리’는 눈에 띄게 분명하지만 사람들이 이야기하거나 인정하기를 꺼리는 문제나 상황을 가리킨다. 패러다임 전환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차원에서 우리는 성직주의와 직분 중심의 서열 문화를 신학적 공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 성직주의는 목사를 성스러운 직분을 맡은 구별되는 성직자로, 일반 교인보다 특별한 영적 권위를 지닌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는 특정 성직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에게 다양하게 주어져 교회 공동체를 섬기도록 한다(고전 12:4-7). 종교개혁의 정신 중 하나인 직업소명설도 모든 직업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던 바,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은 성직자의 직분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신성한 부르심을 받은 성스러운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교회의 리더십은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셨듯이 섬김과 겸손으로 나타나야 한다. 목회자의 역할은 교회 공동체 내에서 교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며 사랑으로 돌아보는 것이다. 이것이 목사가 일반 교인보다 반드시 더 높은 영적 권위를 갖고 교인들의 판단과 생각까지 대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목회자와 성도는 동등한 가치와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서 서로를 섬기며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목사를 특별한 성직자로 구분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신자가 직분의 틀에 매이지 않고 함께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 가는 상호 섬김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본질을 훼손한다.
한국 교회에 뿌리 깊은 성직주의와 직분 중심의 서열 문화는 교회 내 의사결정을 소수의 성직자와 상위 직분자에게 집중시키며,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를 제한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이러한 구조는 과거에는 효율적인 의사결정과 안정적인 교회 운영에 기여했을지 모르나, 현대사회의 복잡성과 다원화된 요구에 부응하기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와 평신도의 참여를 제한함으로써, 교회의 쇄신과 시대적 적응을 어렵게 만든다. 이는 결과적으로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 감소와 젊은 세대의 이탈로 이어진다.
나가는 말
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 대학살에 깊이 관여했던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 과정을 취재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그는 결코 유대인 혐오자가 아니었고, 그는 결코 인류의 살인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의 죄는 그의 복종에서 나왔고, 복종은 덕목으로 찬양된다. 그의 덕은 나치스 지도자들에 의해 오용됐다”라고 썼다. 아렌트가 봤을 때 아이히만이 저지른 악의 뿌리는 사유의 불능성에 있었다. 그래서 “사유하지 않는 것이 바로 악이다”라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사유는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을 가리킨다.
건강한 교회는 ‘사유하는 신자’들로 구성된다. 맹목적으로 목회자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경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신자들이 필요하다. 교회 안의 내부지향적 논리와 관점에서 한 발 걸어 나와 사회 구성원의 관점에서 교회의 사명을 생각할 수 있는 신자들이 필요하다. 교회는 교인들이 사유하는 신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이러한 신자들이 많아질 때, 교회는 내부적으로 건강해지고 외부적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목회자들은 단기적인 편의보다는 장기적인 교회의 건강성을 고려해야 한다. 당장은 불편할지 모르나, 함께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신자들을 길러 내는 것이 진정한 목회의 본질이다. 평신도 리더 역시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 교회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생각하는 힘과 영적 분별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시인인 폴 발레리의 말마따나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기존의 관성과 관행에 머물러 있으면 익숙한 일상성 속에 배어 있는 악이 우리의 사유 능력을 마비시킬지 모른다.
본고를 쓰면서도 감사한 것은 한국 교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교회의 본질과 건강성을 회복하고 강화하기 위한 길을 찾으며 애쓰는 목회자들이 곳곳에서 목격되기 때문이다. 거목이 쓰러지는 곳에서 새로운 싹들이 자라나듯 한국 교회 생태계를 관리하시고 건강하게 회복시키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기대한다.